
왜 우리는 더 불평등해지는가. 김공회 외.
『21세기 자본』 피케티가 말하지 않았거나 말하지 못한 것들
자본수익률 > 경제성장률
불평등의 심화, 자본주의의 핵심 모순? 자본의 증가 속도가 경제의 성징 속도보디 빨리 자본 소유자 쪽으로 소득이 점차 쏠리게 된다.
피케티는 자본주의란 본성상 소득불평등을 낳는 체제라고 보는 셈이다.
다시 말해, 불평등은 이제 빈곤층에 대한 구호의 차원을 넘어 어느덧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으며, 인류가 풀어야 할 시급한 난제로 부상했다.
130 문제는 실천적 쟁점에 관한 것이다. 누적된 불만은 ‘왜’라는 물음을,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란 대안을 요구한다. 불평등은 왜 민주주의에 해악인가? 불평등 문제를 극복할 방안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른바 ‘피케티 열풍’으로 드러난 세간의 뜨러운 관심은, 한편으로 불평등한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는 열망의 표현 방식이며, 실천적 물음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디딤돌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더 많은 질물과 문제가 제기가 필요하다.
제국주의는 얼굴을 바꾸었을 뿐이다. 고전적 제국주의는 사라졌다. 그러나 새로운 제국주의로 얼굴을 바꾸었을 뿐이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경쟁하는 여러 자본과 국가가 위계를 이루고 있는 피라미드 꼴이다. 그리고 그 위계는 해외투자, 국제차관, 국제무역뿐 아니라 세계적 생산체계에도 아로새겨져 있다.
135 그러나 정치는 무엇보다 권력과 갈등의 문제다. 제도와 정책은 관료들의 기술적 결정만으로 산출되지 않는다.(정치는 사사로운 욕심들의 충돌의 장)
우파의 효율이 이윤을 위한 것이라면, 좌파의 효율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독자의 입장에서 피케티가 ‘무엇을 위한’ 효율을 말하고 있는지 매우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모순으로 가득 찬 복잡한 현실을 ‘심플한’ 정책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일지도 모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