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
나는 개입니다
그는 말할 나위 없이 아둔한 설교자였습니다. 그런데 머리에 든 건 없었지만 입심 하나는 대단한 사람이었지요. 매주 금요일, 그가 신도들을 얼마나 흥분시켰는지, 눈물이 모두 말라버릴 때까지 울며 소리치다 기절하거나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잠깐,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그는 달변인 여느 설교자들과는 달리 절대 울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울부짖는 동안에도 그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청중들을 나무라듯 더욱 열렬히 설교를 계속했지요…신도들을 울리는 것만큼이나 겁주는 일이 각별한 희열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럴수록 돈이 더 많이 들어온다는 걸 눈치 챈 그는 기고만장해서 더 심한 말들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살인자라고 부를 것이다
그들은 아직 살인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무죄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사소한 운명의 장난으로 나에게 벌어진 일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도덕적이거나 더 선하다고는 믿기 어려웠다.
다만 그들은 아직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더 바보 같은 표정을 지을 뿐이며, 모든 바보들이 그렇듯이 착해 보일 뿐이다…..눈빛이 명석하고 얼굴에 영혼의 그림자가 비치는 모든 이들이 잠재적인 살인자임을 깨닫는 데는 그 가련한 놈을 죽이고 나흘간 이스탄블 거리를 걷는 것으로 충분했다. 오직 바보들만이 무죄다.
“평생 신념을 갖고 열심히 일한 결과, 자연스럽게 장님이 되는 우리 세밀화가는 빨강이 어떤 색이고, 어떤 느낌인지를 알고 기억하지. 그런데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다면 지금 이 견습생이 칠하고 있는 빨강을 어떻게 알 수 있겠나?”
기억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세밀화가의 물음에 다른 세밀화가가 대답했다.
“훌륭한 의견이요. 그렇지만 색이란 아는 게 아니라 느끼는 거지.”
“그렇다면 자네는 한 번도 빨간색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빨강의 느낌을 어떻게 설명하겠나?”
내 이름은 빨강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농도다. 물을 끓이되 너무 오래 끓여서도 안 된다. 꼬챙이 끝으로 그 물을 떠서 엄지 손톱에 발라 본다. 아, 빨강이 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손톱이 붉은색으로 물든다. 그런데 농도는 좋지만 찌꺼기가 있군. 냄비를 화로에서 내리고 나를 깨끗한 천에 부어 거른다. 이제 나는 한층 맑아진다. 그리고 다시 냄비에 부어 불에 올려놓는다. 그렇게 두 번을 더 끓여서 거품을 내고, 약간 빻은 백반을 넣어 찬 곳에서 식힌다.
335 “색의 의미는 그것이 우리 앞에 있다는 뜻이며, 그것을 우리가 본다는 것을 뜻하지, 보이지 않는 사람에겐 빨강을 설명할 수 없네.”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 이단자, 불신자들은 신을 부정하고자 할 때 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네.”
“그러나 신은 보는 사람에게만 보이네. 그래서 코란에는 보는 사람과 보지 않는 사람이 절대로 같지 않다고 쓰여 있지.”
어떤 화가의 예술 작품이 이렇게 한번 우리 영혼 속에 자리 잡으면 그것은 우리가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잣대가 되고 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