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폐라는 짐승. 고병권. 203쪽
철학자 고병권과 함께, 카를 마르크스를, 『자본』을 다시 읽는다!
#저자의 말_국경을 사유하기
도대체 화폐는 어디서 온 것인가.
마르크스는 놀랍게도 우리가 좀처럼 생각하지 못하는 곳을 지목했습니다. 화폐는 모든 공동체들의 바깥에서 왔다. 그는 말했습니다. 다른 공동체에서 온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바깥’에서 왔다고 말입니다. 공동체가 끝나는 곳, 공동체의 규칙이 작동하지 못하는 곳, 거기가 어딘가요? 우리는 그곳을 지도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곳은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 바로 ‘경계’(Grenze)이기 때문이지요. ‘끝’이면서 ‘사이’인 공간입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거기서 상품교역이 이루어졌고 거기서 화폐가 생겨났습니다. 그러고는 마치 반동처럼 공동체 안으로 파고들었습니다.
도대체 국가는 어디서 온 것인가?
마르크스는 『국가』가 아니라 『자본』을 썼기에 이렇게 묻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같은 대답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화폐’라는 짐승도, ‘국가’라는 괴물도 모두 ‘바깥’에서 왔다고 말입니다. 모든 코뮨들의 바깥,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 종족과 종족이 마주치는 곳에서, 다시 말해 국경에서 태어났다고요. 거기서 생겨난 폭력이 반동적으로 내부로 파고들어 주권이 되었을 것이라고요.
상품소유자-상품을 소유한다는 것
“상품이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인간은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 이 문장의 ‘상품’ 자리에 ‘몸을 파는 여성’을 넣어볼까요. 이 문장에 마르크스가 주석을 달아둔 걸 보면..
사물들을 보다가 사람들을 보는 것. 이는 시야의 단순한 확대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물건을 교환할 때는 욕구와 의지가 개입합니다. 가치가 동일하다고 무조건 교환하는 게 아닙니다.
특별한 ‘상품’으로서의 노동력.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장면
니체는 근대인들이 말하는 ‘노동의 존엄’을,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노예의 자기기만이라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화폐, 코뮨을 해체하다
“그들은 모두 한마음이 되어 자기들의 힘과 권세를 그 짐승에게 주더라.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상품을 교환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타인이다
개인과 사회는 ‘함께’ 탄생했습니다. 교환될 수 없다면 자신의 상품은 무가치한 상품이 됩니다. 상품일 수 없는 물건인 셈입니다.
교환은 사회적인 과정(개인적이지 않다)
상품과 화폐의 유통은 특정한 인간관계를 전제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공동체적 인간관계와는 맞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공동체들이 상품과 화폐의 유통에 경계심을 보인 것은 당연합니다.(상품과 화폐가 아닌 나눔과 배려(선물)가 있는 곳, 돈이 필요없다!)
공동체는 교환을 통해 이익이 아니라 우정을 키운다.
상품교환이 일반화되고 화폐가 일반적 등가물로 기능하는 곳에서는 공동체가 해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고, 이익은 나눌수록 작아진다!)
“화폐 자신이 코뮨이 아닌 곳에서 화폐는 코뮨을 해체해야 한다.”
어쩌면 근대사회란 공동체를 해체하면서 생겨난 ‘화폐공동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공동체들의 바깥! 마르크스의 천재성이 빛을 발합니다. 그는 우리가 좀처럼 생각해내지 못하는 장소를 제시합니다.
“공동체가 끝나는 곳, 하나의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 또는 다른 공동체의 성원들과 접촉하게 되는 그 지점에서 비로소 상품교환이 시작된다.”
상품의 가치는 ‘사회적’으로 결정된다? 개인들은 서로의 사정을 알지 못한 채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각자도생의 사회)
‘화폐’를 기능별로 살핀다는 것
#내 머릿속의 금화-가치척도로서의 화폐
가치를 잴 때 실제 금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금”으로 충분합니다.
중국과 인도가 ‘은’을 좋아했어요. 서양의 ‘뱅크’(bank)의 번역어가 ‘금행’이 아니라 ‘은행’인 것도…
#상품과 화폐의 순탄치 않는 사랑-유통수단으로서의 화폐
이제 공동체는 없습니다. 생존은 철저히 개인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아무도 곁을 돌보지 않습니다. 누군가 굶어 죽는다면 그 자신의 책임입니다. 좋게 말하면 제 하기 나름이죠…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게 자족적 삶은 아니라는 겁니다. 상품은 개인이 생산하지만 그 가치는 사회적으로 결정됩니다. 한편으로는 서로 독립해 있는데 또 한편으로는 상품과 화폐를 매개로 묶여 있습니다.
유통이란 상품의 흐름. 마르크스는 “사회적 물질대사”라고 불렀습니다.
상품-화폐-상품(W-G-W) . 유통에서는 상품과 화폐가 반복해서 교환됩니다. 화폐를 매개로 해 상품들이 계속 바뀌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상품의 목숨 건 도약? 만약 이 도약이 실패한다면 상품 자체로서는 고통스러울 것이 없으나 상품 소유자는 분명 고통스러운 일이다!
돈 세탁? “화폐가 어디로부터 왔든 화폐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소유의 배변적 기원
수요-공급의 균형? “상품유통은 판매와 구매 사이의 필연적 균형을 낳는다는 이론처럼 황당무계한 이론도 없다.”
판매와 구매가 따로 놀 수 있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사회의 커다란 위기, 즉 공황의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화폐증가로 가격이 오를 때 ‘노동의 가격’이 가장 늦게 오릅니다…상인과 기업…통화가 확대되는 시차를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거죠.
처음에 금화로 시작….일단 시작하기만하면 지폐까지 나아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어려운 것은 첫걸음일 뿐”이죠.
은행의 탄생? 권력자는 돈을 쓰고, 백성은 돈을 갚고, 자본가는 돈을 번다. 군주가 돈을 쓰고 백성이 그 빚을 갚습니다. 이 과정에서 채권자인 상인이 은행을 통해 이익을 뽑아낼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 겁니다.
우리는 현상과 원인을 거꾸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통속도가 느려지만 우리는 돈의 부족을 느낍니다…그런데 상품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통화량이 부족해서 상품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느끼는 겁니다)
#특별히 사랑스러운 화폐-화폐로서의 화폐
화폐가 상품으로 전환되는 일은 즉각적이고 쉽습니다.
마르크스는 이런 ‘화폐의 힘’을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는 절대적인 사회적 부의 형태”라고 불렀습니다…그야말로 모든 것을 살 수 있으니까요. 돈만 있으면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다는 식의 사고가 가능해지죠.
화폐로서의 화폐? 다른 상품들로는 도저히 대체할 수 없는 어떤 매력을 느끼는 겁니다. 상품이 아니라 돈을 갖고 싶은 거죠.
‘화폐’로 기능하는 화폐와 ‘자본’으로 기능하는 화폐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가치의 형태인 ‘화폐’와 가치 증식으로서의 ‘자본’)
화폐를 갖고 있으면 마음이 놓인다. ‘유동성 선호’. 상대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은 화폐의 힘 덕분입니다. 그는 고전경제학 모델에서는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지만, 시간이란 변수를 끌어들였습니다.. 시간이란 ‘불확실성’과 관련이 있습니다…화폐자산은 불확실성을 대처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죠.
물욕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물욕의 경우에는 어느 양을 넘어서면 욕망에 의미가 없습니다. 돈의 노예? 치부욕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세계 제일의 부자도 결핍감을 느끼는 것이 치부욕입니다. (보이지 않는 돈? 머릿속 숫자일 뿐!)
수전노는 자본가가 아닙니다.
현물납부에서 현금납부로 바뀐 조세제도? 근대적 시각에서 보면 낡은 생산양식을 혁파하는 효과를 냅니다만, 전통적인 시각에서 보면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생산방식과 인간관계를 파탄 내는 효과가 있습니다.
화폐공황? 자본주의의 거의 모든 위기는 화폐를 통해 나타나니 당연한 일입니다.
마르크스의 『자본』
마르크스의 섬세한 독해에는 항상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두 상품소유자가 만난다는 단순한 사실로부터 그는 (과거 공동체와 다른) 근대사회 인간관계의 특징을 읽어냈습니다. 그리고 화폐가 가진 각각의 기능이 전제하거나 수반하는 관계가 어떤 것인지 읽어냈고 그 기능에 내재한 자본주의사회에 고유한 위기의 양상들을 읽어냈습니다. 매 장을 읽을 때마다 ‘잘 읽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작은 차이로 보이는 것이 사실은 큰 차이라는 것! 이것이 독해의 매력, 해석의 매력이지요.
#지역화폐(LETS)오 공동체
공동체의 삶을 비자본주의적으로 전화할 수 있는 지역화폐? 이자 발생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도 떨어지도록 설계하기도 하지요(돈도 썩어야 한다!)
공동체 문탁네트워크의 ‘복’ 화폐. 특이한 것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에는 ‘복’이 지불되지 않습니다. 가치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가치가 너무 높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먹을 것을 마련하는 일은 대가 없이 ‘그냥’ 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일은 어떤 것으로도 평가할 수 없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화폐는 물론이고 공동체화폐조차 침입해 들어갈 수 없는 영역이 있는 것이죠.(가치을 넘어서는 가치! 돈으로 셀 수 없는 가치!)
화폐만 보고 있으면 우리는 화폐에 대해 실상은 아무것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가치가 아니라) ‘존재들’에 대해 우리는 사고해야 할 겁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