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학교 학교의 길을 묻다. 작은학교교육연대.
작은학교교육연대 11년의 기록
‘혼자서 꾸는 꿈은 꿈에 그치지만, 여럿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왜’라는 질문이 없이 ‘어떻게’를 찾는 것은 공허함만을 남긴다
작은학교교육연대의 탄생. 100명 이하의 학교는 당연히 폐교되어야 한다는 논리에서 벗어나 학생 한 명 한 명, 학교 한 곳 한 곳이 얼마나 소중한지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작다는 의미는? 모인 사람들이 정을 나누며 서로 아끼고 살아가는 삶터가 바로 작은 곳이다…
’작은 곳’이란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가까운 정도를 말한다. 가까움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서로의 작은 일, 작은 것에 주목할 때 살아난다.
‘작다’는 사람 사이의 관계이고, 정이며, 자연이며, 마을이며, 우주 목숨들을 보는 눈이다.
“정말 이것이 교육일까?”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을까?” 고민하는 교사들이 많다…교육을 중심에 두고, 학생들을 중심에 두고 학교에서 교육을 제대로 해보자는 실천들이 모인 곳이 바로 작은학교교육연대이다.
똑같은 운동회? 논의는 효율성이나 관행에 막혀 버리고, 다시 똑같은 운동회를 반복하게 된다.
그냥 했던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교사들의 논의 속에서 다듬어지고 기획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갈등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를 잘 풀어서 더 나은 에너지와 경험으로 승화시키느냐 서로 싸우고 마느냐의 문제이다.
연대는 다른 말로 이야기 터이며 마을이며 동네이다. 내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곳, 내 입을 막는 곳에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없다.
국어능력만 좋아지면 뭐하는가? 이 능력이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나누고 함께 잘 살아 가는 쪽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지 않을까?
가르치는 일은 삶을 가꾸는 일이 되어야 한다(이오덕 선생님)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어른들이 있는 학교를 다니면, 교사끼리의 관계나 학부모끼리의 관계, 부모와 자녀들의 관계에서도 기존과는 다른 교육 장면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삶의 구체적인 낱말은 사람이다. 사람이 사는 것이 삶이다.
자발적 조직은 5년마다 위기를 맞는다. 처음에는 ‘얼씨구!’ 하며 불같이 일어났다가 안정이 되면 고만고만한 실천으로 지루해진다. 빠져나가는 사람이 생긴다. 소수에게 일이 집중된다. 떠넘기기 바빠진다…누군가 이야기하여 함께 새 길을 연다. 이 속에 삶이 있고 교육이 있다.
물음을 던지고 마음껀 꿈꾸는 것은 쉬우나 그 물음과 꿈에 답하고 실현하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교사의 자율…자율은 자유와 다르다. 자율은 힘이 세다…스스로 주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무슨 일이든 신이 나고 자신감이 생겼다…주인이 되면서 고달프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추상적인 문구에는 다들 동의하지만 각자의 결과를 풀어내는 방식이 모두 달라 여러번 어려움이 있었고 지금도 그 어려움은 계속되고 있다.
어느 사이, 여느 학교에선 놀이가 사라졌다.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학원으로, 집으로 가는 아이들…작은 학교에선 학부모와 교사들의 노력으로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놀이’와 ‘자연’이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다.
자유놀이의 4가지 요소는 1)스스로 하고 싶고(Self-motivated), 2)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야 하고(Imaginative), 3) 누구의 간섭도 받지 말아야 하며(Independent), 4)짜여 있어서는 안된다(Unstructured)
#책 읽는 즐거움, 온작품 읽기
익숙해져 있는 사물을 낯설게 하면 그 사물의 본질이 보인다
교사를 길들인 익숙함들….80점과 79점의 차이는 무엇인가? 80점을 맞은 아이는 40점을 맞은 아이보다 두 배나 학습능력이 뛰어날까? 0점 맞은 아이는 학습 능력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