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전한 마을. 조영태. 399쪽
반쯤은 마을 이야기, 반쯤은 대학교 이야기
10년 동안 쓴 글들
삼례와 우석대학교
삼례 배차장. “이리로 가면 이리, 저리로 가면 전주, 그리고 가면 금마, 고리로 가면 고산”이라는 재미있는 말이 있는 네거리가 있다. 배차장. 그전 세대는 어쩌면 차부라고 불렀을지도 모른다. 배차장은 보았다. 물론 삼례에서 보았다. 배차장과 터미널의 차이를 알고 싶은 사람은 서울 서초동에 있는 남부터미널에 가서 삼례행 직행 버스를 타면 된다. 3시간 가까이 걸리는데, 탄 곳은 터미널이지만 내리는 곳은 배차장이 된다.
지방 도시나 시골 마을의 정취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곳은 그 지역의 시외버스 터미널이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이런 양반이 배차장을 관리하는데-혹은 관리하지 않는데-배차장은 잘 돌아가고, 삼례 주민들은 그 누구도 불평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누구의 며느리라는 배차장 운영자도 큰 문제점을 느끼지 않는 눈치다.
#독서하는 법 및 발표하는 법
강의? 집에서 독서하고 강의실에서 발표 ‘에세이 쓰기’? 남의 책을 읽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생각을 찾아내어 적는다. 독서하고 발표하기, 독서하고 에세이 쓰기-이 두가지 일을 학생들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정보의 획득이 아닌 개념의 획득
#내 강의를 수강하는 법
교사의 일방적 강의는 학생의 이해를 보장하지 못한다.
#발표하는 법
이해 여부의 점검 및 이해 정도의 확충 나열인가, 조직인가. 조직이 중요하다
#판서하는 법
“이보게, 질문이 무엇인지를 알면 다 안 것이네…”
신기료장수? 구두수선공? “신기우려, 신기우려.”
탈지방화? “그런데 왜서 탈지방화를 하려고 하지요? 탈지방화할 필요가 있습니까?”
방학을 보내는 제3의 방법있다? 그것은 공부하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 그 깨달음을 세상에 전할지를 두고 번민하였다고 한다. 그것은, 자기가 깨달은 내용에 대한 의혹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전달할 방법에 대한 의혹 때문이었다. 특히 그는 언어적 전달의 한계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배은망덕…이러한 경지에 이르게 되면 학생은 교사 옆에 나란히 선 듯 말대꾸도 할 수 있다. (스승이 아닌자 벗이 될 수 없고, 벗이 아니자 스승이 될 수 없다) (강의?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함께 배우는 자)
논문 심사? 창의성이 없다? 플라톤이 이미 다 말한 것을 어째서 또 말하는가? 플라톤이 이미 다 이해한 것을 어쨰서 또 이해하고자 하는가? “나도 이해하고 싶어서”…그런데 이때 그가 도달한 존재는 플라톤을 통해 도달한 것이지만, 존재의 속성상 플라톤 등등의 개인을 벗어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논문은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의 독창성이나 차이점은, 표적으로 삼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저절로 성취되는 부산물 같은 것이다.
완주시 통합 여론? 군민 중 상공업 종사자들이나 서비스없 종사자들은 대개 통합에 찬성하고 농축산업 종사자들은 대개 반대한다.
교육으로서의 연구. 이때의 교육은 누구를 가르치는가? 당연히 교수를 가르친다. 나에게 있어서 교육은 종교의 경쟁자이다? 결국 종교도 인간 존재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