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산자 김정호. 우일문. 411쪽
몇 줄 안 되는 기록에서 이야기로 다시 살아나는 역사 이야기
역사소설.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또다른 방법? 맥락없는 사실과 기록만으로 기억되기 어려운 역사의 진실…이야기에 담아 전하는 역사소설
“자, 어디로 갈 텐가?”
“길이 있으니 가는 것이고 도가 있으니 따르는 것이지.”
“무슨 일이든 해야 먹고 살 테니 글 읽은 것을 본분으로 삼더라도 먹고 사는 일을 먼저 한 연후에 글을 읽도록 해라.”
“가문이 쇠락했다 해도 책 읽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그것이 어찌 기회라고야 할 수 있겠습니까? 부사 나리(다산) 때문에 유능한 자제분들이 벼슬길이 막혔는데요.”
“역사를 알아야 땅의 유래도 알 수 있는 법이니 역사를 읽는 데 게을리 하지 말거라.”
“자고로 책만큼 귀한 것이 없는 법. 대개 선비라고 하더라도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나 장서를 가지고 있으니 그런 사람들과 교분을 가져야 책을 얻어 볼 수 있으리..”
“젊은 시절, 공부를 하고 싶어도 읽을 책이 없더구나. 그래서 책이 있다는 곳은 어디든지 달려가 베껴 온 것이다…”
“무릇 저술할 때는 경전에 대한 저술이 으뜸이라 하겠으나 너나없이 경전에만 매달리면 되겠느냐? 그리 되면 사람들의 사상이 편협해지고 견문이 좁아지게 될 터. 그러므로 세상을 알게 하고 백성에게 혜택을 베풀어주는 실용지학의 저서가 필요한 것이라.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질구레한 얘기들로 한때의 괴상한 웃음이나 자아내거나, 진부하고 새롭지 못한 이야기, 지리멸렬하고 쓸모없는 의론을 책으로 만드는 일은 다만 종이와 먹을 허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리 차라리 손수 맛있는 과일이나 영양가 높은 채소를 심어 살아 있는 동안의 생활이나 넉넉하게 하는 것이 좋으리.”
정호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저술한 사람에 따라 같은 사건이라고 여러 가지 시각으로 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주관이 뚜렷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베끼게 된다. 물론 뚜렷한 주관 때문에 왜곡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아. 가령 『삼국사기』는 훌륭한 사서지만 간혹 불공평한 기술이 보이지 않더냐?”
“그렇습니다. 대체적으로 신라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요, 중국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다는 것입니다.”
“들어보시오. 일은 다 앞뒤가 있어서 앞을 알아야 그 다음을 알게 되는 것이오…”
“…백성들이 땅의 생김을 알고 각 지방의 성질을 안다면 부족한 산물들을 서로 나누어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무슨 학을 공부하는것이 아니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잡념을 없애는 게 가장 큰 공부란 걸 깨달은것도 그 무렵이다. 그는 오래된 산의 아들이라 하여 스스로 고산자라 하였다.
“보았으니 잊지 않으려고 적는 것이지.”
“참 괴상한 취미로군.”
“…즉, 중국에 온 선교사들은 이 세상에는 중국말고도 훨씬 더 발전한 더 많은 나라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줌으로써 몽매한 눈을 뜨게 했고 그들이 가지고 온 문물을 받아들이게 했던 것이며 아울러 천주학도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소?”
“...백성들이 몽매하다하나 그것은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소위 사대부들이 얕잡아 하는 말일 뿐, 목민관은 백성을 섬길 줄 알아야 한다네. 그래야 섬김을 받는 법.”
“풍수가 이렇게도 큰 의미를 지닌 것인데 작금의 풍수는 남의 묏자리나 잡아 그 후손의 광영이나 바라고 있으니 딱한 일이로다. 모름지기 큰 것을 모르매 미혹한 생각에 빠지게 되면 어리석은 것이나…”
예로부터 뒷산 앞강(배산임수)이라 한 것은 그 자리가 살 만한 자리라는 뜻이니 그것을 두고 조상의 음덕이니 귀신의 조화니 할 것은 없으되 산과 강이 만나는 곳은 그 일대가 기름져서 많은 수확이 있을 것임을 말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