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르헤스의 상상동물 이야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304쪽
인간의 환상이 만들어 낸 기묘한 존재들에 대한 자료집.
‘도서관 천국’에서 살았던 보르헤스의 놀라운 독서력과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 책.
1967년 판의 서문
이 책의 제목은 햄릿 왕자, 점, 선, 평면, 관처럼 생긴 것, 입방체, 창조와 관련된 모든 단어들,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신을 망라한 모든 것을 정당화할 것이다. 한마디로 삼라만상, 즉 우주를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상상의 존재’에 국한된다. 즉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간의 환상이 만들어 낸 기묘한 존재들에 대한 자료를 편집했다는 의미이다.
일상생활에서 우주의 의미를 무시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는 용의 의미 또한 애써 축소하거나 무시한 채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의 상상과 일치하는 용의 이미지에는 확실히 어떤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시대와 장소에서 용이 계속 출현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책을 필연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을 확장하여 새로운 책을 편집할 때에는, 그 책의 중심을 잡아 줄 것이다.
우리는…독자들을 책의 편집에 직접 초대하고 싶다.
그 지방 괴물들의 정확한 이름과 독특한 성격, 그리고 이것들에 대한 자세한 묘사 등을 우리에게 보내 주기 바란다…이 책 역시 일관된 내용으로 구성되진 않았다. 만화경이 보여 주는 여러 가지 변이 형태들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듯이, 호기심 있는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의 이런저런 내용을 마음대로 확장해 나갔으면 좋겠다.
스웨던보리의 천사
만일 한 천사가 다른 천사를 자기 곁으로 부르고 싶으면, 부르고 싶은 천사를 머리에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 (맘에 쏙 드는 ‘도서관 천국에 살았던’ 보르헤스의 천국의 상상력!)
지상에서 서로 사랑했던 두 사람은 하나의 천사가 된다. 천사들의 세계는 사랑의 지배를 받는다.
천국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물은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변화한다. 천사들은 각자의 지혜에 따라 다양한 복장을 하고 있다. 지혜가 많을수록 빛이 강하다. 천국에서도 지상에서 부자였던 사람들이 가난했던 사람들보다 부자로 산다. 왜냐하면 부자였던 사람들은 부에 길들어 있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은둔자들은 천국의 즐거움을 맛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쾌락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은 자를 삼키는 동물
죽은 자는 다음 내용을 맹세해야 한다.
기아나 고뇌로 죽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사람을 죽이지 않았고 자기 역시 살해되지 않았다는 것, 또한 장례 음식을 훔쳐 먹지 않았고, 저울 눈금을 속이지 않았으며, 아기가 먹을 우유를 빼앗지 않았고, 동물들을 목초지에서 쫓아내지도 않았으며(울타리 없이 농사짓기 힘든 오늘날의 농부들은 죽은 천국에 가기 힘들 것 같다!), 신들의 새를 괴롭히지도 않았다는 것을.
상상력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
상상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상상의 세계는 인간의 머릿속에서만 가능하거나 단순한 유희적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상상의 세계는 우리를 둘러싼 삼라만상의 여러 요소들을 재구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나름대로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상의 세계를 포기한다는 것은 삶을 해석하고 현상을 인식할 수 있는 인간 능력의 상당 부분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상상의 세계는 언제나 변화를 수용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