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식인의 표상. 에드워드 사이드. 143쪽
지식인이란 누구인가?
지식인의 사명 가운데 하나는 인간의 사고와 의사소통을 제한시킬만한 상투적인 생각과 환원적 범주를 허물어뜨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저 수동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을 향해 거부를 적극적으로 밝히는 존재입니다.
이는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자가 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원한 각성의 상태, 절반의 진실이나 널리 퍼진 생각들을 끊임없이 경계하는 상태가 지식인의 소명입니다.
우리가 바자로프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사태에 굳건하게 맞서는 지식인으로서의 순수한 동력입니다.
지식인의 표상은 합리적 조사와 도덕적 판단에 끊임없이 헌신하고 참여하며 그것을 의심하는 일종의 의식에 의존하는 행위 그 자체입니다.
지식인의 화폐인 “효율적인 의사소통 수단들”
35 지식인의 결속과 노력이 집중되어야 하는 곳은 바로 정치의 영역이다.
독립적 예술가와 지식인은 진정 살아 있는 것들을 진부하게 만들어 결국 생명력을 잃게 하는 것에 저항하고 싸울 수 있도록 무장된 얼마 남지 않은 인물이다. 이제 신선한 자각이라 현대의 의사소통 수단들이 판에 박힌 시각과 지식으로 우리를 장악하는 동안 그러한 진부한 시각과 지식을 끊임없이 폭로하고 깨부수는 능력을 포함한다.

국가와 전통으로부터의 거리두기
지식인은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고 잊혀지거나 무시되는 약자들의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권력을 가진 이들의 편에 설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진부한 표현들, 판에 박힌 은유들, 게으른 글쓰기는 “부패한 언어”의 사례 정치적 언어. 거짓말을 진실인양 들리게 만드는.
지적 망명: 추방자와 주변인들
망명자적인 지식인의 역할은 관습의 논리에 따르지 않고 대담무쌍한 행위에, 변화를 표상하는 일에, 멈추지 않고 전진해가는 일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이주민이나 추방자가 아니더라도, 여러 장벽들을 무릅쓰고 상상하며 탐구하는, 그리하여 언제나 중심화된 권위로부터 벗어나 주변을 향해 사고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이를 통해 관습적이거나 안정적인 것을 넘어서 이전에는 결코 가닿아 보지 못했던 마음속에서 늘 상실하게 되는 것들을 살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추어와 전문가
지식인은 권위나 권력과 맺는 관계 또한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권위를 지식인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그것을 얻어내기 위해 간청하는 전문가적 태도로 대해야 할까요? 아니면,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는 아마추어적 양심을 가지고 대해야 할까요?
재기발랄한 프랑스의 지식인 레지 드브레. 독특한 위치. 그 관계는 결코 정적이지 않으며, 언제나 변화하고 발전하며 종종 놀라울 정도의 복잡성을 보입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듯이 냉소주의자는 모든 것의 가격을 알아도 가치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지식인을 위협하는 것? 끔찍한 상업주의가 아니라, 내가 전문가주의라고 부르는 태도입니다…이런 전문가주의적 지식인의 활동은 큰 논란을 일으키지 않고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패러다임이나 한계 밖으로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신의 상품 가치를 키웁니다. 무엇보다 자신을 내세울 만한 존재로, 결국 논쟁적이지 않고 정치적이지 않은 “객관적” 존재로 만드는 것입니다.(비겁한 객관주의자)
아마추어란 이윤이나 보상에 의해 움직이는 욕구가 아니라, 전문성에 묶이는 것을 거부하고 직업적 제약을 극복하여 이념과 가치를 살피면서 여러 경계와 장벽을 가로지느는 연결점들을 만들어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일에 대한 애정과 충족될 수 없는 관심에 의해 추동되는 욕구입니다.
내가 보기에 전문화에 빠지는 것은 그것이 결국 자신의 전공이라면서 남이 하라는 대로 하는 나태함입니다.
모든 교육 체제에 존재하는 일종의 보편화된 도구적 압력
아마추어. 그것은 문자 그대로 이익이나 이기심, 편협한 전문화의 요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되는 행위인 것입니다.
오늘날 지식인은 아마추어가 되어야 합니다.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다
내 생각에 가장 비난받아 마땅한 지식인의 사고 습관은, 옳은 일인 줄 할지만 선택하기는 어려운 원칙적 입장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책임을 회피하는 습성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누구도, 심지어 가장 위대한 자유정신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완벽하게 독립적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나는 지식인이 상대적 독립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전문가로서의 태도보다는 아마추어로서의 태도를 갖추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습니다.
유급 자문가가 되어줄 것을 요청받았습니다…정치적 언어와 개념적 틀에 갇히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모두 거절했습니다.
의견 제시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비타협적 정신이야말로 세속적 지식인이 지켜야할 핵심 덕목입니다.
전문가…책임 있는 주류로 남는 것…이러한 사고 습관은 지식인을 타락시킵니다.
지식인은 산이나 연단에 올라 높은 자리에서 열변을 토하지 않습니다….지식인의 목소리는 고독하지만 그 목소리가 대중 운동의 현실, 민중의 열망, 공유된 이상에 대한 공동의 추구와 자유롭게 연관될 때에만 공명을 이루어냅니다.
언제난 실패하는 신들
극좌에서 극우로의 움직임은 하나의 신에서 다른 신으로 옮겨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신들은 언제나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어떤 지식인? 제국주의와 파시즘 사이에서 우리는 항상 제국주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모두를 충분히 거부할 수 있으며 사실상 둘 모두를 거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글을 출판하는 순간 당신은 정치적 세계로 들어가 것이 됩니다. 따라서 정치적인 것이 싫다면 글을 쓰거나 공적으로 발언해서는 안 됩니다.(조지 오웰, 글쓰기는 정치적인 행위다!)
지식인의 표상은 가난한 이들의,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의, 대변되지 못하는 이들의, 힘없는 이들의 표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이드는 현대 사회에서의 지식인으로서의 자의식과 사명감이 없이 지식인이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핵심적 이유를 ‘전문자주의’에서 찾는다. 그가 문제 삼는 “전문가주의적 지식인의 활동은 큰 논란을 일으키지 않고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패러다임이나 한계 밖으로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신의 상품 가치를 높이는 것”, “무엇보다 자신을 내세울 만한 존재로, 결국 논쟁적이지 않고 정치적이지 않은 객관적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결국 사이드는 이 책에서 지식인들에게 ‘아마추어주의’를 요구한다.
아마추어주의가 미숙한 개념의 사용이나 엄밀하지 못한 사고를 용인하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점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이윤이나 보상에 의해 움직이는 욕구가 아니라, 전문성에 묶이는 것을 거부하고 직업적 제약을 극복하여 이념과 가치를 살피면서 여러 경계와 장벽을 가로지르는 연결점들을 만들어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일에 대한 애정과 충족될 수 없는 관심에 의해 추동되는 요구”를 가리킨다.(아마추어주의? 애정과 관심)
망명? 일상화된 삶의 이력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망명은 언제나 주변화되는 것을 뜻하며, 지식인으로서 수행하는 일은 미리 정해지 행로를 밟아갈 수 없다는 이유에서 결정되는 것이어야 함을 의미합니다…그것은 독특한 즐거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