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이자 가해자였던 사법부.
이 보고서에서 사법부는 피해자로 기록되어 있다…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거듭 확인하게 되겠지만, 국민과의 관계를 놓고 본다면 사법부는 가해자였다.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에도 사법부는 여전히 많은 문제를 지닌 채 거기 그대로 있었다.
역시 우리는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법부」는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우리 사법부가 겪은 고통스러운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과거 사건 진실규명의 대상이 되는 주요 사건들은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이 학살 관련 사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법부에서 확정 판결을 받은 것들이다. 흔히 ‘사법살인‘이라 불리는 인혁당 사건도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고, 수많은 조작간첩 사건도 모두 법원의 판결에 의해 간첩으로 확정되었다. “피고인의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 할 수 없다”라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 대한민국 법정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자백은 증거의 왕으로 군림했다.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사법부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설 때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필자가 책임 집필한 국정원 과거사위의 보고서 「사법편」에 기초하고 있다…국정원 보고서에서는 사법부를 당연히 피해자로 기술했다. 그러나 사법부와 고문조작 사건 피해자들의 관계, 나아가 사법부와 시민의 관계에서 사법부는 분명 가해자였다.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들이 그토록 고문에 대해 호소했건만, 저 높은 법대 위의 재판관들은 끝내 바짓가랑이 한번 걷어보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뒤에 소장 법관들이 스스로 반성했듯이 한국의 사법부는 “판결로 말해야 할 때 침묵했고, 판결로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했던 것”이다.
권력을 불편하게 만든 사법부 1945-1971
박정희의 10월 유신. ‘긴급조치’는 법관의 영장 없이 시민을 체포하여 군법회의에서 멋대로 재판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으니. 사법부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되었다.
유신정권은 이렇게 수십 명의 목을 치며 사법부를 장악해갔다. 유혈이 낭자해진 사법부에서 목이 잘리는 변을 당한 사람과 살아남아 욕을 보아야 했던 사람 중 위로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였을까?
대법원은 민청학련 사건 배후로 조작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들에게 대한 사법살인으로 박정희의 ‘배려’에 화답했다.
사법부의 회한과 오욕의 역사는 제작과 감독은 박정희가 맡았지만 그 시나리오는 사법부의 손으로 직접 쓴 것이다.
사법살인, ‘인혁당 재건위’ 사건. 조작 또 조작
정보부의 입맛대로 사건을 처리해 출세하는 검사들이 나올수록 검찰이라는 조직은 망가져갔다.
잘못된 용기는 넘치되 부끄러움이라고는 모르게 된 검찰은 민주화라는 좋은 환경에서도 건강성을 회복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비서관 뇌물 사건과 안기부의 검찰 길들이기
중형은 판사가 내리고, 생색은 ‘각하’가 내고
연세대생 내란음모 사건과 안보수사조정권
오송회 사건, ‘빨갱이’는 무죄일 수 없다?
‘오송회 사건’은 그 시절의 공안사건이 대부분 그렇듯 참으로 황당한 사건이다…왜 ‘오송’이냐? 소나무 밑에서 다섯 명이 모였기 때문?…이 교사들이 모두 출옥한 뒤 누군가 오송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는데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이제 2인 이상이면 ‘단체’가 되니 반국가단체 만들기 ‘참 쉽죠잉’인 세상이 온 것이다.
정보기관의 간첩조작과 고문, 조정당하는 사법부 1982-1986
검찰, 바보인가 공범인가
필자가 조작간첩 사건을 조사하면서 한없이 절망스러웠던 것은 안기부의 조작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검찰이 그럴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안기부가 넉 달간 공을 들이기는 했어도 서류는 너무 엉성했다…
줄어드는 진짜 간첩, 늘어나는 조작간첩
검찰이 지니는 힘의 원천은 기소독점권에 있다. 그러나 안기부의 손을 거친 사건은 안기부가 기소 여부를 결정했다.
민주화 이후의 사법부, 과거는 청산되었는가? 1988-1997
“몹쓸 짓 많이 했다”라며 고백. 그 시절 누군가는 그 짓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필자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사법연수원장으로 그가 가르친 과목이 ‘법조윤리’였다는 점이다. 법률과 양싱 이외에 안기부의 뜻이 판결을 좌우하던 시절, 법조윤리는 무엇을 해야 했는가?
민주화 이후 검찰개혁은 이루어졌는가?
민주화로 큰 권한을 누리게 된 검찰은 자정기능을 수립하지 못했고, 민주정권은 검찰개혁에도 문민통제에도 모두 실패했다. 그 결과가 오늘의 검찰이 보여주는 추한 모습이다.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시민들의 삶이 ‘아주 조금’ 나아졌다면 ‘아주 많이’ 좋아진 것은 재벌과 검찰이었다.
사법부의 보수화를 보여주는 판결은 노동 관련 사건들, 과거사 관련 사건들, 그리고 정치적 사건 등 크게 세 분야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책에서 기술한 사법부의 회한과 오욕의 역사는 대부분 중앙정보부-안기부를 통해 권력이 부당한 압력을 가해서 빚어진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상황은 이와 다르다. 정권이 압력을 가한 정황도, 또 그런 압력을 가할 필요도 없이 사법부가 알아서 그렇게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