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민주주의와 아나키즘. 하승우. 283쪽
삶의 정치 그리고 살림살이의 재구성을 향해
풀뿌리운동과 풀뿌리 민주주의
보통 풀뿌리민주주의는 작은 공동체나 지역사회에서 실현되는 민주주의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풀뿌리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나 참여민주주의하고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그런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규모의 민주주의’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직접적인 정치 참여나 규모만으로 풀뿌리민주주의를 정의하면, ‘풀뿌리’의 의미가 잘 부각되지 않는다.
풀뿌리민주주의는 단순히 민주주의를 지역 차원으로 확대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풀뿌리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그 근본에서 되짚어보려는 노력이고, 좌와 우라는 이념 스펙트럼도 뛰어넘는 개념이다. 민주주의는 데모스, 곧 민초가 결정권을 행사하는 과정을 보장하는 것이다….풀뿌리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모두 스며들어 있는 기계적인 합리성, 형식화되고 이름뿐인 민주주의에 반대한다.
대의민주주의와 민주주의 개념의 변질
자신의 결정권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대의민주주의는 어떻게 설득할까?
주권은 국가의 영혼이기에, 일단 한번 육체를 벗어나면 구성원들은 더 이상 그 영혼에게서 신호를 받지 못한다. 복종의 목적은 생존이다(Hobbes 1962,167)
언뜻 보면 홉스보다 로크가 훨씬 더 민주적인 것 같지만, 사실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로크는 민주주의와 정치의 초점을 경제로 전환시켰기 때문이다…로크에게 정부 구성의 목적은 홉스하고 다르게 생명의 보존이 아니라 소유, 그중에서도 특히 재산의 보존이었다. 따라서 국가에서도 개인의 독자적인 이해관계, 더 분명하게 말해 소유는 그대로 유지될 뿐 아니라 생명하고 같은 비중으로 국가의 적극적인 보호를 받는다. 중세까지 사회의 그늘에 가려졌다 소유의 존재가 전면에 드러났다.
목숨만큼 소중한 소유권이라는 관념이 로크를 통해 전파된다.
풀뿌리의 정의.
풀뿌리의 정치 공간은 지역사회로 정의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보다는 ‘삶의 공간’이나 ‘생활공간’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Think Globally Act Locally)
풀뿌리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정치의 주체로 여길 때에만 정치는 근본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 따라서 풀뿌리운동은 배제된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배제된 사람들하고 ‘함께’ 사회를 바꾸려 한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선전이나 의식화가 아니라 대화다. 인간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세계를 인식하고 변화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다가올 미래를 예정된 법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은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 놓여 있다.
풀뿌리는 비정치적인 운동이 아니라 매우 정치적인 운동이다…권위적이지 않고 수평적으로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며 결정하는 정치조직, 민중을 정치의 대상으로 소외시키지 않고 주체로 단련시키는 정치조직, 민중이 정치 주체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정치조직을 뜻한다. 무엇보다도 그런 정치조직은 노자의 이런 뜻을 품을 것이다.
“민중에게 가서 민중에게 배워라. 민중과 함께 살고, 민중을 사랑하라. 민중이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하고 민중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들어라. 그러나 최고의 지도자는 모든 일이 끝나고 모든 것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 힘으로 이 일을 해냈다’고 민중 스스로 말하게 할 수 있는 자일지니.”
함석헌 역시 자신을 바꾸고 초월하지 않으면서 혁명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자기 자신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기부정을 못하고 제가 사람인 줄만 알고, 제가 심판자.개혁자.지도작인 의식만 가지고 제가 스스로 죄수요 타락자요 어리석은 자임을 의식 못하는 사람은 혁명 못한다. 혁명은 누구를, 어느 일을 바로잡는 것 아니라 명을 바로 잡는 일, 말씀 곧 정신, 역사를 짓는 전체 그것을 바로잡는 일”이라고 강조했다(함석헌 2001,28)
민주주의의 재구성? 민주주의라는 말이 애초에 민중의 지배를 가리키는데도 풀뿌리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그 민중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여성과 외국인, 청소년이 정치에서 배제됐다면, 근대에도 여성과 빈민, 이주 노동자, 아이들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있다.
민주주의는 보편타당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어떤 완성된 과정이나 단계로 생각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도입하면 곧바로 뭔가가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 아닌가. 정답이 없기 때문에 둥글게 모여 앉아 지혜를 모아보자는 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생활정치와 제도 정치의 연계. 풀뿌리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치의 장은 청와대나 국회, 행정부 같은 제도 정치의 공간보다 일상생활의 공간이다. 생활정치란 단순히 교육이나 보건, 주거 같은 생활의 문제들을 정치적인 의제로 만드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생활정치는 내 삶의 경험이나 의식하고 분리되지 않는 정치 구조를 만드는 것이고, 삶 자체를 정치적으로 재구성한다
풀뿌리민주주의가 강조하는 분권은 그런 점에서 생활정치의 활성화에 맞물려 있다.
일반적으로 대의민주주의 아래에서는 마을 단위나 읍 단위가 실질적인 정책 결정 권한을 갖지 못한다…그런 점에서 삶에 관한 자기 결정권의 회복을 의미하는 분권은 풀뿌리민주주의의 중요한 속성이다.
풀뿌리민주주의가 주장하는 분권은 단체자치만이 아니라 주민자치를 지향한다. 분권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만이 아니라 시민의 자율성과 능동적인 참여를 통해서만 그 의미를 확보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살림살이다. 삶터에서 제아무리 민주주의를 학습하더라도 일터에서 노예처럼 산다면 최소한 자기모순에 빠지거나 자기 자신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일터의 민주주의, 경제민주주의는 정치의 민주화, 사회의 민주화하고 무관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이제 더는 ‘정치를 위한 정치’가 필요하지 않다. 더는 정치만을 위한 공간이 남아 있지도 않다.
함석헌은 꿈틀거림을 강조했다. 겨우내 움추려 있으면서 꿈을 길러 봄이 오면 꿈을 트는 것이 꿈틀거림이라 했다. 그리고 그 ‘꿈틀’이야말로 정말 “무서운 꿈틀”인데, “사나운 겨울바다, 같은 권세 밑에 갇히는 민중의 꿈”이고, “그 꿈이 터지고야 마는 봄이 온다. 삶은 절대이기 때문에 터지고야 만다. 말도 못하고 죽는 민중의 꿈틀거림은 생의 항의다. 삶의 외침이다. 삶의 음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이다. 말씀이다. 역사의 길이다. 내가 이름 없는 민중이라도 민중이기 때문에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함석헌 1979, 20) 풀뿌리민주주의가 지향하는 삶도 그런 삶이다.
내 속에 있는 힘을 길러 자치와 자금의 공동체를 실현하는 삶.
한국풀뿌리 민주주의의 역사와 아나키즘
풀뿌리민주주의는 철학자들의 사유 속에서 나온 개념이 아니다. 풀뿌리민주주의는 기성 권력을 향한 문제 제기이자 배제된 사람들의 현실적인 필요였다. 더는 고개 숙이지 않고 자존감을 되찾아 함께 삶을 도모하겠다는 의지가 풀뿌리민주주의를 부활시켰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대부분의 권력이 일제 총독부의 손에 있었지만 민중의 정치력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졌으며, 이런 생명력은 3·1운동이라는 거대한 사건으로 드러났다.
일제 강점기-풀뿌리운동과 아나키즘의 접속
계와 두레-자치와 자급의 공간
그런 자치와 자급의 힘에 기반을 둔 동학혁명이나 일제 강점기의 각종 의병운동을 겪으면서 일제는 한국 사회 고유의 정치 역량, 특히 농촌 사회의 자치와 자급의 역량을 파괴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여겼다.
일제는 1906년 행정구역을 정비한다는 명목으로 마을의 경계선을 바꾸기 시작했고, 191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행정구역을 통폐합했다…1910년도에 68,819개였던 동리를 1916년도에는 29,383개, 1918년도에 28,277개 동리로 줄임으로써 58.9%의 동리가 폐합되어 전통적인 지방사회의 기저를 흔들어놓게 되었다.
두레민주주의. 동학으로 대표되는 두레민주주의는 “‘위로부터’의 중세적인 제왕적 권력의 견제와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동학의 출현은 이러한 농민공동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농민민주주의의 명료한 이념적 토대를 제공해준 역사적 사건이면서, 위로부터의 전제적인 지배에 대항하여 봉기한 풀뿌리 민중의 직접행동 민주주의를 가능케 한, 종교를 넘어선 정치적 사건”이었다.(이명원2008,112)
3·1운동과 식민 권력의 충돌
3·1운동은 이렇게 국가와 자본에 내몰리고 뿌리 뽑히는 사람들과 공동체들이 벌인 극렬한 저항이었다…자신들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 싸웠다.
대안 이념-아나키즘의 수용 과정과 특징
3·1운동이 실패한 뒤 한국의 민중은 의식과 조직을 단련시킬 수 있는 이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니키즘도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 시기의 아나키즘은 사회주의, 민족주의, 자유주의와 함께 주요한 사상이었고,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정치 운동을 조직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의 이념으로서 아나키즘은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고 있다.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로 번역돼 현실에서 실현 가능하지 않는 공상으로 간주되면서 진지한 관심을 받지 못했다.
톨스토이가 스스로 아나키스트라고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아나키즘하고 생각이 같다고 인정한 뒤 자급하는 농촌 공동체를 이상으로 삼은 점을 생각하면, 손정도 목사나 이용도 목사의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이 지향한 사회주의는 소련식 사회주의보다 아나코-코뮌주의에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꼼꼼히 따지면 사상적인 면에서 동학과 아나키즘은 실제로 여러 가지 유사성이 있다.
자치와 자급에 관한 이런 고민을 아주 특별한 사람이나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만 하지 않았다.
협동조합이야말로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기대를 건 삶의 양식이었다.
해방 이후-풀뿌리운동과 아나키즘의 쇠락
자치와 자급 기반의 파괴
식민지에서 해방된 뒤에도 풀뿌리운동의 정치 역량은 계속 봉쇄됐다. 해방 직후 전국적으로 만들어진 인민위원회는 ‘사회주의’와 ‘좌익’으로 몰려 강제로 해체됐다. 미군정과 이승만 독재 정부는 민중을 분열시켜 지배하려는 일제의 지배 전략을 그대로 받아들여 인민위원회를 빨갱이로 몰았다. 빨갱이로 지목되는 순간 그 사람에게는 말도 행위도 허락되지 않았다.
역설적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미군정은 자신의 ‘통치’를 위해 인민위원회를 강제로 해산해야 했다. 만일 인민위원회가 해산되지 않는다면 한반도에는 두 개의 정치 질서가 존재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커밍스가 지적하듯이 “인민위원회의 종국적 붕괴의 근본 원인은 그들을 상대로 한 미국의 힘(혹은 미국의 승인을 받은 한인의 힘) 때문이었다”(커밍스1986,373)
1970년대에는 무위당 장일순이 유교와 카톨릭, 노장사상과 동학사상을 바탕으로 원주에서 민주화운동을 벌이며 신용협동조합운동, 한살림운동(생활협동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함석헌은 씨알론을 펼치면서 민중적 관점에서 기독교를 재해석하며 대중 중심의 사회운동론을 구성하려 했다.
분권과 연방주의, 고유한 민주주의
연방주의 국가는 반국가가 아니라 비국가의 원리에 기초한 국가다.
다른 사람하고 관계가 끊어진 개인, 타자와 나의 공존을 전제하지 않은 자치나 자립은 불가능하다.
아니키즘은 무정부주의가 아니라 무강권주의다
‘보편적 복지’? 호혜와 다르게 보호나 보장이라는 단어는 어떤 주체가 다른 누군가를 대상으로 삼는 말, 특히 국가가 시민들을 대상화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왜 내가 국가라는 지배 질서가 베푼는 시혜(사실은 내가 낸 세금!)에 매달려야 하는가? 그 속에서 동등한 관계가 맺어질 수 있을까?
도시 빈민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농촌에서 도시로 ‘밀려난’ 사람들이다. ‘자발적’으로 도시를 선택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다른 생계 수단을 찾을 수 없어’ 도시로 밀려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리고 국가가 그런 밀어내기에서 핵심적인 구실을 맡았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런 사람들이 ‘다시’ 국가의 보호나 보장을 받으며 계속 도시에서 불쌍한 사람들로 살아야 할까?
국가 없음이 곧 정부 없음이나 정치 없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국가 없음이 정의 없음이나 평등 없음을 뜻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국가가 없는 상태에서 정의는 더 잘 실현될 수 있다.
그래서 아나키스트들은 ‘법률’이 아니라 ‘관습’이 정의를 보장한다고 믿었다.
왜 작은 공동체들은 실패했나?
세상과 격리된 공동체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지나치게 작은 공동체들은 유지되기 어렵다(연대! 연방주의가 필요하다!)
프루동은 아나키즘의 이념을 연방주의라고 규정했다. 자유로운 도시들의 연합을 꿈꾸고 분권과 연방주의…
이렇게 보면 아나키즘의 정치 구상은 무정부주의가 아니라 연방주의라는 이념으로 구현된다.
연방주의는 생태주의이기도 하다…”자유로운 자연”이 확보되려면 도시들이 탈중심화되어 주변 자연환경에 최적화된 공동체들의 연방으로 바뀌어야 한다.
호혜와 자급의 경제
사회적 연대와 자급을 주장하는 경제 운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힘을 대체하려 했다.
스와라지, 스와데시라. 간디는 마을 스와라지를 “상호 의존적인 완전한 공화국”이라 주장했다.
크로폿킨은 아나키즘 경제의 몇 가지 원칙을 제안했다. 1)노예 노동을 정당화하는 임금 제도의 폐지, 2)사적 소유권의 폐지와 공유 제도의 확대, 3)농촌과 도시의 호혜망의 구성
19세기에 푸르동은 소유란 도둑질이라는 혁명적인 발언으로 유럽을 깜짝 놀라게 했다. 더구나 그때는 유럽에서 울타리 치지(인클로저) 운동이 시작돼 사적 소유권이 확립돼가던 시기였다.
자본주의 논리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축적되는 소유가 없다면 무조건 열심히 일해야 할 필요도 사라진다.
프루동하고는 조금 다르게 크로폿킨은 자본주의의 주요 모순을 임금 제도에서 찾았다. “임금 제도는 토지 및 생산도구의 사유에서 발생한다. 그것이 자본주의 생산 발달의 필수조건이었고 ‘이익 분배’의 형태로 위장하려 하지만 자본주의와 함께 없어질 것이다…”
임금 노동은 인간에게서 자율성과 주체성을 빼앗고 노예 노동을 강요해 자존감을 없앤다.
노동의 가치를 화폐로 평가할 수도 없다.
자본주의에서 생산은 타자(자연, 여성, 아이들)를 고려하지 않으며 타자를 희생시켜야만 가능하다.
크로폿킨은 “자본가들을 만드는 것은 빈곤이다. 만일 빈민의 수가 중세 시기에 아주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면 그것은 국가의 수립에 뒤이어 침략과 전쟁 때문이고. 동양을 착취해서 가져온 부의 증가 때문이다…”
프루동은 작은 마을들의 연합체인 연방주의 사회가 인류의 대안이라 믿었으며, 이런 믿음은 바쿠닌에게 이어졌다.(노자의 소국과민!)
농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각은 산업 노동자를 중요시하는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을 대립하게 만들었다.
공유지와 공유 제도를 없애기 위해 영국에서만 1760년부터 1844년까지 무려 4000건의 법령 제정. 촌락 공동체의 땅은 귀족의 약탈물이 됐고, 의회는 이런 약탈을 정당화했다.
크로폿킨은 독점이 사라지면 인류가 골고루 그 진보의 유산을 나눠가질 수 있다고 믿었다. 낭비되는 노동과 자원을 모든 사람이 필요로 하는 데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지구상의 많은 빈곤이 해결될 수 있다. 생산기술의 발달 덕분에 이미 생산은 충분하기 때문이다.(과잉생산의 원인은 욕심!)
아니키즘의 관점에서 보면 특허권이나 지적 재산권은 터무니없는 폭력이다.
아나키스트들은 도서관과 독서실을 세우고 문학 모임을 조직해 사람들이 다른 사회를 꿈꿀 수 있게 했다.
공유의 원리와 자급의 관점
소유에서 공유로
고병권 『추방과 탈주』 “공유가 국가를 의미할 때, 국가에 의한 배타적 독점을 의미할 때, 그 독점은 사적인 독점의 형태로 쉽게 전환될 수 있다…”(대추리 미군기지)
더구나 국유화는 민중과 민중들이 모인 공동체의 성장을 고려하지 않는다.
국유화는, 민중이 스스로 그 권리를 지키고 확장시킬 기회를 주지 않는다.
공유가 자연스러운 원리로 사회에 자리 잡으려면 협동을 내세운 다양한 사회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져야 한다.
프루동의 인민은행!
상호부조의 감정은 동등한 사람들 속에서 형성되지, 힘의 우열을 전제하는 권력관계에서 형성되지 않는다.
문명사회에서 우리는 부유하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빈곤한가? 대중은 무엇 때문에 고통스럽고 힘들게 일하는가?
농촌 공동체와 길드의 호혜망
공업의 분산과 소공업-농촌과 공업 촌락
크로폿킨은 자급을 전제할 때만 인류의 진보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차야노프, 농업이 농기업의 확대에 자연적인 한계를 만든다
농업 경영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를 가족농으로 보고 협동조합을 통해 농기업이 농산물 가공을 담당하는 차별적 최적화를 주장했다.
크로폿킨은 소공업과 농업이 결함된 전원도시 또는 농촌과 도시의 유기적인 결합이 미래의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집중화는 인간 삶의 자율성을 파괴한다
국가가 공교육을 독점하는 상황을 비판.
아나키스트들은 자유학교를 지향했다.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게 하는 것, 그것이 교육의 중요한 과제였다.
완전을 거부하는 불완전한 사상
노자의 소국과민…묵자의 비공과 겸애의 사상…정여립은 신분과 직업의 차별이 없는 대동사상을 꿈꾸며 대동계를 조직했다.
이런 사상들에 모두 아나키즘이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는 없다. 다만 서로 보살피는 자유로운 삶, 좋은 삶을 기대하는 사상이 인류 역사에 오랫동안 존재해왔다고 말할 수는 있다.(오래된 미래)
하나의 완성된 대안을 찾는다면 아나키즘은 그 길이 아니라. 아니키즘은 ‘완전함’을 추구하지 않으며, 그런 완전한 상을 부정하는 이론이다. 아나키즘을 대표하는 흑색은 다른 모든 색깔을 삼켜버리는 블랙홀의 검은색이 아니라, 다른 모든 색깔을 살아 있게 하는, 그런 다양한 차이들이 모인 덕분에 드러나는 ‘검음’을 추구하다.
“파괴를 향한 충동이 창조적인 충동”? 현실 속에서 모순된 것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면, 아나키즘은 그런 현실 위에서 운동하는 사상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감동적인 경험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아나키즘과 아나키 운동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의 차이? 1 )마르크스주의는 혁명 전략에 관한 이론적, 분석적 담론이 되려 한다 2)아나키즘은 혁명적인 실천에 관한 윤리 담론이 되려 한다.
아나키스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탁월한 혁명가로 등장하리라 믿을 만큼 비현실적이지 않았다.
아나키스들은 추상적인 대의명분이나 정치 전략보다 자신과 공동체의 삶을 돌봐온 오랜 전통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봤다.
관심의 폭을 넓히면서 자연스레 서로 보살필 필요성을 깨닫고, 닫혀 있던 자아의 경계를 넘어 ‘사회적 개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함석헌은 고립된 개인이란 거짓된 것이며 인간의 사회 조직은 “하나 하나의 개체들이 보다 높은 하나를 드러내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미래의 부나 권력을 위해 지금 현재의 행복을 저당 잡히지 않는 사랑, 소유하지 않고 더불어 함께 누리려는 사랑이 아나키즘이다…아나키즘은 생명과 평화를 존중한다.
사람은 누구나 행동하며 살지만, 그 행동이 언제나 자신의 뜻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행동은 그 사람을 성장시킬 밑거름이 되지 못한다.
그레이버는 아나키즘의 직접행동을 자율적인 연대와 네트워킹의 방식이라 본다.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조직들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나키즘이라는 것이다.
푸르동 『노동자 계급이 정치적 능력』
결론_풀뿌리 민주주의와 아니키즘의 합주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풀뿌리민주주의와 아나키즘은 많은 유사성이 있다. 아나키즘의 속성은 다양하지만 적어도 분권과 연방주의, 사적 소유와 노예 노동에서 벗어난 살람살이, 서로 돕고 보살피는 인간 본성에 관한 부분은 큰 논란 없이도 합의가 가능하다….풀뿌리민주주의는 지역화되면서 대안적인 이념의 성격을 잃어가는 현실을 다잡고 다시 근본적인 사회 변화의 대안으로 자신을 제안할 수 있는 기회이고, 아나키즘은 대중운동을 만날 접촉면을 잃은채 담론으로만 논의되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다.
혼자 걸을 수는 없으므로 우리는 함께 걸어야 하고, 풀뿌리민주주의와 아나키즘의 합주도 필요하다.
나는 크게 두 가지의 합주가 한국 사회에 이롭다고 본다. 하나는 연방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살림살이를 위한 협동 운동이다.
왜 연방주의가 대안인가?
한나 아렌트. 우리는 미국의 독립전쟁이나 건국보다 프랑스 혁명을 더 높이 평가하지만, 아렌트는 『혁명론』에서 미국 건국의 가치를 더 높이 산다. 두 나라 모두 혁명이라는 새로운 시작과 과정에서 폭력과 파괴를 경험했지만, 미국은 자유를 지속시킬 수 있는 연방이라는 방법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프랑스 혁명이 빵을 달라고 외치며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을, 동료의 자유가 아니라 결핍 충족을, 자유가 아니라 풍요를 목적으로 삼은 점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혁명가들도 ‘동정’과 ‘연민’이라는 정념에 휩싸여 혁명을 지속시킬 제도를 만드는 데 관심을 쏟지 않았다.
우리의 상식하고 다르게 이미 연방주의는 많은 나라에서 실현되고 있다. 미국, 브라질, 인도, 독일, 스위스, 오스트레일리아, 멕시코,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 벨기에, 이란 등 28개의 연방 국가가 있고, 세계 인구의 약 40퍼센트가 연방 국가에 살고 있다.
지역통화의 지역 바깥에서는 쓸모없거나 가치가 감소하기 때문에 지역 경제를 살찌우는 근본 처방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에 관련된 새로운 상상도 가능하다. 기본소득의 취지는 얼마의 돈을 줄 것이냐가 아니라 개개인이 원하는 바를 찾고 실행할 수 있을 만큼의 자유를 줄 것인가에 있다.
궁극적으로 연방주의는 통일에 대비하는 실험이기도 하다. 남북한의 통일을 준비하는 가장 현실적은 경로이자 이상적인 방법이 연방주의다.
협동이라고 하면 매우 이타적인 도덕성을 떠올리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절반만 맞다. 협동조합은 자립을 위한 협동 조직이다…자립? 혼자서 잘 먹고 잘 살자는 뜻일까? 혼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생각하기 위해 타자를 필요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립이란 거짓일 수 있다. 세상에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현실을 고려할 때 한국 사회는 자립과 협동을 계속 방해할 것이다. 끊임없이 경재을 붙이고 이긴 자에게 모든 것을 몰아주는 사회다.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처럼 자원을 나눠주는 방식이 기본적으로 복불복이다. 까나리 액젓. 내가 먹지 않아 다행이라 안심, 벌칙을 영원히 피할 수 없다.
구체적인 생활상의 욕구를 가진 주민들이 능동적인 시민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거치는 곳 역시 지역사회다.
(기본소득은 권리?!) 아니키즘의 관점으로 따져보면, 모든 사람이 가지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를 하고 있으니 무상은 잘못된 발상이고 각자는 힘든 노동을 강요당하지 않아도 소득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그 길에 끝이 어디 있겠는가. 웃고 울며 갈 수 있는 만큼 가고, 따로오지 못하는 사람 손잡아 주고, 그 속에 대안이 있는 거라 생각한다(여럿이함께 가면 길을 뒤에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