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선발 이야기. 백기완. 281쪽
나는 이 버선발 이야기에서 처음으로 니나(민중)를 알았다.
이어서 니나의 새름(정서)와 갈마(역사), 그리고 그것을 이끈 싸움과 든메(사상)와 하제(희망)를 깨우치면서 내 잔뼈가 굵어왔음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다.
이 이야기는 아마도 니나 이야기로는 온이(인류)의 갈마에서 처음일 것 같다. 그러니 입때껏 여러분이 익혔던 앎이나 생각 같은 것을 얼짬(잠깐)만 접어두고 그냥 맨 사람으로 읽어주시면 어떨까요.
이 이야기엔 한자어와 영어를 한마디도 안 쓴 까닭이 있다.
그 옛날 글을 모르던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 니나들은 제 뜻을 내둘(표현)할 때 먼 나라 사람들의 낱말을 썼을까. 마땅쇠(결코) 안 썼으니 나도 그 뜻을 따른 것뿐이니 우리 낱말이라 어렵다고만 하지 마시고 찬찬히 한 글자 한 글자 빈 땅에 콩을 심듯 새겨서 읽어주시면 어떨까요.
“엄마, 나도 하제(내일) 아침부터는 엄마를 따라가 엄마 일을 거들면 안 돼? 응? 엄마.”
응 그거 영차영차 어기영차 그건 풀벌레들이 가을을 우는 것이 아니구 가을을 지고 이고 끌고 가는 소리야. 왜 그런 줄 알아? 그 가을을 지고 다그쳐오는 매서운 겨울을 뚫어야 하거든.
참말로 달구름(세월) 한술(한번) 빠르구나.
발(백) 한 발(백 년) 짠(천) 한(만), 한이란 이것저것 다 모였다는 뜻
우리 늘매가 자네 때문에 그 죽음의 머슴살이로부터 한축(일단) 날래(해방)를 찾기는 찾았다네. 하지만 이제부터 우리 늘매는 한살매(일생) 꽁꽁 숨어서 살아야만 한다 그 말일세. 또 어쩌다가 장가를 들어 애를 낳게 되면 그 어린것들도 숨어서 살아야 하니 그게 어째서 참짜 날래냔 말일세.
그런데 이 소갈머리 야싸한(어리석게 모자란) 할미가 내 늘매부터 살려내라고 했으니…그건 내 늘매만 살릴 수만 있다면 사람이 사람을 부려먹는 이 사람 못 살 고얀 틀거리는 그냥 내버려두어도 괜찮다는 것이었으니 자네한테 앵긴 내 다부부터가 어리석은 잘못이 아니면 그 무엇이었겠나.
할머니, 거 사람이 사람을 갖다가서 내 거라고 하게 되면 그 내 거라는 거, 그건 썅이로구 무엇인가요. 어째서 사람이 사람을 갖다가서 내 거라고 하는 거냐구요. 사람이라는 게 저네 집 아궁이에 처넣을 땔깜도 아닌데.
거 내거라는 거, 그거 말인가. 그 내 거라는 걸 똘똘히 꼬집으면 말일세. 그게 바로 거짓이라는 것이라네. 모든 거짓의 뿌리요, 모든 거짓의 알짜(실체)지.
그 내 거라는 게 거짓이라니요.
내 거란 곧 거짓이요, 거짓은 썩물(썩음,부패)이요, 그리하여 그것은 곧 막심(폭력)이요, 따라서 그 막심은 바로 사갈(죄)이라 할 수 있다네. 그런데도 그걸 정말 모른다고?
이봐 젊은이, 우리가 먹고 입고 자고 그러는 것이 모두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모두 일나(노동)에서 나오는 거 아니겠나. 그런데 정작 뼈 빠지게 일을 하는 일래(일꾼)들은 되 굶주리고 헐벗어 죽는 거, 그게 바로 거짓이 아니면 뭐이겠나. 자, 보잔 말일세. 남의 것을 빼앗은 놈들은 죄다 떵떵 치며 잘살다가 제 핏줄한테 물려줘 그 내 것을 아주마루(영원히) 누리는 거, 그게 바로 거짓이 아니면 그럼 그 무엇이 거짓이겠나 이 말일세.
그것을 틀거리(체제)로 만들었다는 걸 알아야 한다네. 우리가 다 같이 똑같은 사람이면서 사람으로 살 수가 없는 이 벌개(잘못된 세상)라는 게 그것이요, 그것을 한 묶음으로 다스리는 나라라는 게 그것이요, 그 나라를 한 오큼으로 거머쥔 쥘락(권력)이 그것이요, 이 벌개에 세울(도덕)이라는 것도 있지 않나. 남을 속이지 마라, 남의 것을 훔치지 마라, 남을 헐뜯지 말라는 세울 말일세. 그게 어찌 보면 말은 그럴듯하지.
하지만 그 세울을 알고 보면 그거야말로 말짱 거짓이라네.
모뽀리(합창)
이 땅에는 새로운 낱말이 하나 태어나게 되었다. 모뽀리(합창)다. 짐승과 풀나무, 갖은 벌레, 떠가는 구름과 바람, 거기다가 뿔대 돋힌 사람들까지 다 함께 하나가 되어 다 함께 부르는 목숨의 노래를 일러 모뽀리, 그래 온 것이다.
씨갈이(농사)를 해보면 씨갈이를 죽어라고 해도 밥을 굶게 되고, 씨갈이 같은 그런 어려운 일은 요만큼도 안 하고 빈둥빈둥 놀아도 밥을 굶는 건 매한가지라는 걸 알게 된다네. 그러니까 땀을 흘려 일을 해보면 일나(노동)가 밥을 먹여주는 건 아니라네. 따라서 참된 일나란 무언 줄 알가서? 일을 하면 밥은 거뜬히 먹을 수도 있지만 짜배기(진짜)로는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을 죄 살리고, 사람 사는 곳도 살리도, 나아가 사람 사는 이 누룸(자연)도 살리는 거, 그게 참짜 일나라는 걸 깨닫게 된다니까.
사람이라는 껍질 속에 참사람
우리 사람들이 놀아나는 거짓이란 바로 이런저런 끔찍한 사갈이다. 그러니 사람이 참된 사람이고자 할 것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 것이었다고 보아야 한다네.
바위틈 샘물의 고마움
그런데 그 샘은 말일세, 자네의 그 욱타는 목만 시원하게 적셔주는 게 아니라네….메마른 땅을 흠뻑 적셔주는 고마운 일도 한다네. 이를테면 죽은 땅, 죽음 목숨을 살려놓는다니까. 때문에 자네가 참말로 넋살(정신) 차려 똑똑히 알아야 할 게 있는데 그게 참말로 무엇인 줄 아느냐구.
한마디로 딱 한마디로 그건 메말라 죽은 땅을 그야말로 피땀으로 살려는 놓았지만서도 그 땅을 갖다가서 끝까지 내 거, 내 것이라고 하질 않는다는 걸세.
그 샘이 그 메마른 땅의 알범(주인)일 수가 있는데도 그것을 내 땅이라고 하질 않는다니까. 그 어엿한 뜻을 뭐라고 하는 줄 아느냐구, 모르겠다고? 녀석 같으니라구, 바로 그걸 다슬 그런다니까.
그러니까 이 다슬이란 무엇이겠나. 어느 깨우친 이가 일러준 엄청 거룩한 말따구인 줄 아는가. 어림 쪽푼어치도 없는 소리! 아니란 말일세. 시키는 대로 일을 하고 주는 대로 먹으면서도 죽어라 하고 끌려만 다니는 안타까운 일꾼들, 이른바 니나(민중)들의 피눈물이 깨우친 된깔(본질)이요, 그 든메(사상). 그러니까 다슬이란 땀이 깨우친 다락(경지), 우리 온이(인류)의 참든메요, 나아가 사람이 짐승과 갈라서는 갈림턱이라네. 때문에 이 다슬을 알아야 끊임없이 사람으로 거듭날 수가 있다 그 말이지.
그런데 사람들은 어째서 그 다슬이란 낱말을 전혀 알지도 못하고 더 나아가 그 낱말대로 살지도 못하고 있는 겁니까?
여보게, 그걸 말이라고 내뱉나. 시키는 대로 땀 흘려 일만 하는 사람들, 그야말로 다슬로 사는 자네와 나 같은 사람들마저 그 다슬의 참뜻을 깨우치질 못해서 그런 거지 딴 거겠나.
그러니까 제 말씀은 우리 사람이라는 것들이 어찌해서 그 다슬을 쏙팍으로(철저하게) 깨우치질 못했느냐 그 말입니다.
그야 뻔하지. 사람이라는 것들, 이를테면 우리 같은 머슴 놈들까지 너도나도 그 내 거라는 것에 홀까닥 홀리게 되는 바람에 주눅 들어서 그렇기도 하고, 또 한켠으로는 그 내 거라는 거짓은 아까도 말했지만 바로 썩물, 다시 말해 저도 썩고 남도 썩혀 그 썩음이 막심(폭력)이 되어 마침내 우리가 사는 이 얄곳을 사그리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라네. 그래서 어떻게 되었더냐. 바로 그 내 거가 사람으로 살 수가 없는 이 얄곳의 알범(주인)이 되어버리고, 사람은 그 내 거의 머슴이 되고 있는 게 오늘이라네.
노나메기라니요. 그건 또 뭔 뜻의 낱말인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너만 목숨이 있더냐. 이 땅별(지구), 이 온이(인류)가 다 제 목숨이 있고 이 누룸(자연)도 제 목숨이 있으니 다 같이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거, 그게 바로 노나메기라네.
그러니까 노나메기란 우리 사람의 참짜 꿈인 바랄이요, 온이의 하제(희망)이라네, 알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