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슴을 후려치는 매천 황현의 한 구절?
我曹文字終安用(아조문자종안용)
나 같이 글만 하는 선비는 끝내 뭔 짝에 쓸 것인가?
절명시 한 구절?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난식자인)
아 참으로 이세상에서 지식인 노릇하기 어렵구나
카메라만 들고 격동의 독립운동 현장으로
EBS “도올이 본 한국독립운동사” 10부작 다큐멘타리
이탈리아의 역사철학자 베네데토 그로체가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그가 그 말을 어떤 맥락에서 했든지간 나는 현대사의 확고한 시점이 없는 사상가는 역사를 바라볼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독립운동사』 10부작. 나는 고대장 덕분에 진정한 철학자가 되었고 역사가가 되었다. 인생의 진로는 자율발 타율반이다.
나의 성서연구를 중단시킨 MBC충북의 기획.
동방인들의 순자연(스스로 그러한 대로 따라간다)? 그냥 시세에 순응한다는 뜻이 아니고 카이로스 즉 타이밍을 잘 타서 행동한다는 뜻일 것이다.
때가 되면 일을 할 수 있게 되고. 때가 차지 않으면 될 일도 되지 않는다…뜻을 얻지 못하면 세상과아랑곳없이 홀로 자기 길을 가는 것이다.
복음서는 기본적으로 픽션이다. 역사성을 결하고 있다.
나는 예수와의 만남을 통해 나의 서양 탐색에 종지부를 찍고 싶어했다.
‘직지심경’으로 부르지 못하고 있다? 그 사연인즉…참으로 어리석은 주장.
기독교인들이 불교를 찍어누르려는 생각에서 자기들 경전만이 “성경”이고 『직지심경』과 같은 책은 “경”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그런데 이것은 참으로 가소로운 무지의 소치이다.
『직지심체요절』을 『직지심경』이라 부르지 못할 이유는 아무데도 그 근거가 없다.
“직지심경!” 그 얼마나 간결하고 아름답고 포괄적이며 권위 있는 말인가! 한국인들은 왜 그토록 자기 민족문화유산을 가급적이면 폄하하고 싶어 안달복달인가?
“바로그겁니다. 그런 밀씀을 해주셔야 합니다…”
위화도회군이라는 비굴한 역사회전
우리가 중국의 속국인 듯한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은 이성계의 위화도회군 쿠데타사건 이후로 과도하게 조선왕조를 스스로 비하시키고, 제후국으로서의 모든 프로토콜을 엄수하게 된 이후의 사태이다.조선왕조의 성립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비극적인 사건이다.
알면 괴롭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나의 죄업이란 진실을 너무 많이 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알아도 너무 정밀하고 정확하게 안다는 데 있다. 알면 괴롭다. 알기 때문에 남이 보지 못하는 측면이 너무 많이 보이고 또 그것을 종합해보면 우리 상식의 터무니없는 오류에 대해 분노가 치밀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눈감고 살기에는 너무도 억울한 것들이다. 세밀하게 안다는 것만으로 세계가 새롭게 보이지 않는다. 세밀하게 아는 것과 동시에 반드시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마이크로와 매크로는 반드시 동시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 그대로?
역사라는 것은 본시 기술의 역사라기보다는 왜곡의 역사이다. 역사에는 분명한 사실이라는 게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사실이라는 것은 연대사적인 사건 정도가 있을 뿐. 그러한 사건을 아무리 나열해도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역사를 운운하는 의미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에서 말하는 모든 “사실事實”들은 인간의 해석을 거친 “사실史實”일 뿐이며,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은 이미 “사관Interpretation”의 소산이다.
현대사의 왜곡, 고대사의 왜곡
지금 여순민중항쟁을 운운하는데 내가 이렇게 옛 사로에 대하여 장광성을 늘어놓고 있는 것은 “역사의 왜곡”이라는 주제에 대해 보다 본질적이고도 폭넓은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왜곡”하며는 우리는 곧바로 일본식민사학자들의 조선사왜곡만을 생각하게 마련이지만, 『고려사』의 고려왜곡은 식민사학자들의 농간을 뛰어넘는 왜곡일 수도 있다.
조선왕조의 “사대”관념은 개국 초기부터 확고하게 자리잡은 “국시”였다. 그것은 이승만이, 그리고 박정희가 반공을 국시로 삼은 것과 대차가 없다…반공의 본질은 “미국에 대한 사대”를 의마하는 것이요,
슬픈 제주
우리 민족 전체의 슬픈 이야기의 압축판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사람들은 내가 박식해서 다 해결하는 줄로 알지만, 일단 주제가 선정되면 단시간에 얼마나 많은, 태산 같이 쌓이는 자료를 독파하고 또 사고를 집약하고, 또 신선한 관점을 제출해야 하는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단지 그 스트레스가 “창조적이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다”는 이유 때문에 견디는 것이다.
강연? 말의 콘서트? 나는 현존하지 않는 언어를 그 자리에서 창조해서 멜로디가 아닌 논리와 느낌으로 청중을 압도해야 되네. 그런데 우리나라 TV강연장에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피디가 없어.
둘 다 중립적인 “사건”으로 불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제주 4·3이든 여순사건이든 반드시 “민중항쟁”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심으로 고백합니다. 저는 이 사건에 가려진 진실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우리 모두가 이 사건을 잘 알지 못합니다…우리는 여순을 말할 것이 아니라, 세계를 말해야 하고, 인간을 말해야 하고,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제주4·3은 여순민중항쟁을 통해 알려졌다.
해방정국의 이해
힘의 공백. 모든 이념의 각축장.
해방이라는 공백, 제국주의시대에서 냉전질서시대로!
“해방”이라는 사건은 20세기 인류사가 제국주의시대에서 냉전주의시대로 중추적 전환을 일으키는 핵심 포인트에서 일어난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해방의 주체가 38선을 중심으로 각각 미국과 소련이 되면 당연히 독립투사들은 아웃사이더로 밀리게 된다…그런데 이 단순한 사실을 그 어느 누구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당대를 산 사람들에게 이러한 통관은 허락되지 어려운 난제들이었다.
인민위원회.
“인민”은 공산당의 언어가 아니다. 개념의 오염, 인식론적 편견.
“보통사람위원회”였을 뿐. 이 인민위원회를 빨갱이들로 규정한 것은 한민당의 수구꼴통들이었다.
조선 반만년의 역사에 보기 힘든 민중자치의 찬란한 개화였다.
동학혁명의 농민군이 설치했던 집강소 조직의 자치기구의 현대사적 재현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단채 신채호의 일갈.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다! 이완용이는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이놈은 아직 우리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먹은 놈이다!”
진실로 이승만은 “거룩한 사기꾼”이다.
전혀 자기 마음에 없는 이야기를 방편에 따라 마구 뇌까리는 데 아무런 죄의식이 없다…이런 인간에게 누구든 걸리기만 하면 당할 수밖에 없다. 이런 거룩한 사기꾼을 민족의 지도자로 모시게 된 그 민족의 장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었다.
여운형의 실책, 조선인민공화국의 창설. 해방된 나라가 있을 수 없는 군정통치!
백범의 최대 오류? 완강한 반탁
신탁통치란? 너무도 복잡한 복선과 오해. 좌익과 우익의 연원. 잘못된 관념(신탁통치->찬성->나쁜놈->좌익->공산주의자)
“신탁”이라는 말이 “식민통치”를 연상케 하는 느낌? 실제의 의미는 “후견”의 뜻이었다!
신탁통치는 좋은 것이다!
동아일보 오보! 실상을 완전히 전환시켜 국민들에게 반소·반공의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에서 선동적으로 1면에 등장시킨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동아일보가 한민당의 기관지였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한민당은 누가 언제 만든 것인가? 여러분들은 해방정국에서 “좃됐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나의 말을 기억할 것이다…와! 미국이 온다! 새로운 희망이 생기기 시작. 야! 이제 움추리고만 있을 수 없다. 본시 서양파들이었기 때문..그야말로 모래밭에서 죽어가고 있는 물고기에게 물을 부어 연못을 만들어주는 것과 똑같았다.
이러한 시대배경을 모르면 제주4·3과 여순민중항쟁을 이해할 수 없다. 제주도의 인민위원회는 철저히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합리적 태도를 견지했던 것이다.(남한 (이승만) 단독정부 반대!)
제주4·3
제주는 슬픈 섬이다.
탐라? “탐”의 섬의 옛말, 섬나라, 즉 섬으로된 왕국이라는 뜻
제주목사, 대부분이 날강도
당오백. 제주에는 1만 8천 신들이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일상의 삶 모든 구석구석 신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모든 종교의 가장 진화된 원형이며, 인간의 종교의식이 지향하는 가장 숭고한 형태이다. 종교의 진실한 모습은 본래 제도나 권위에 얽매이지 않은 다신론의 개방태이다. 우리가 말하는 유일신론이란 인간세의 정치권력의 탐욕스런 진화에 수반되는 종교의식의 퇴화, 그 악폐일 뿐이다.
천주교는 반성하라! 교폐와 세폐
“외국 신부놈들 믿을 놈들 못 된다. 조선인의 각성에 근본적인 관심이 없다”라고 생각하고 독립투쟁에 전념키로 한 안중근 의사
“제주도인민위원회는 모든 면에서 제주도에서의 유일한 당이었고 유일한 정부였다.”-미군정 정보요원 그랜트 미드
북국민학교 3·1절 기념 제주도대회. 3만명. 이런 숫자는 자발적 참여가 아니면 동원이라는 수단으로는 불가능한 규모. 당시 제주인민들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는지 쉽게 이해가 간다. 새나라, 새세상, 새질서를 꿈꾸었던 사람들, 환희와 희망 속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에게 들이닥친 미군정이라는 전혀 이질적인 외재적 통치체계는 그들에게 절망감만 안겨주었던 것이다.
역사는 사실의 나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가 우리 실존에 어떤 의미체로 등장하지 않으면 그것은 역사가 아니다. 역사가 된다는 것은 이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순민중항쟁”의 본질을 조선민중이 정확하게 깨달아,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매국노의 단독정부 아래서 미국의 지휘 하에 한국민족을학살하는 한국군대가 되지 말라”
독자들의 무지는 곧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가 나의 무지를 깨우쳐가는 과정이 곧 독자들이 무지를 깨우쳐가는 역정이었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는 명실을 갖춘 “군대”라는 것이 없었다. “국군”이 있으려면 먼저 “국國”이 있어야 되는데, 1948년 8월 15일 이전까지 우리나라에는 “국”이 없었다.
여순민중항쟁
군사영어학교. 광복군 20명, 만주군 20명, 일본군 20명의 입학정원. 그런데 광복군은 우리를 떄려답던 만주군·일본군새끼들과 한자리에서 어떻게 공부하느냐고 입학을 거부했다. 광복군이나 임정파들은 이렇게 매사에서 시대에 뒤지는 일만 했다. 군사영어학교는 육군사관학교의 전신, 이곳 출신들이 한국군대의 주류를 이루었다. 백선엽, 이형근, 정일권, 김종오,민기식,장창국 등이 모두 영어학교 출신이다.
여순민중항쟁은 결코 군인들의 항명이 아니다. 항명은 항명이되 항명이 아니다. 다시말해 동일한 사건사태가 반란으로도, 항명으로도, 민중의거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 해석의 차이는 인식의 차이이며, 그 인식의 변화를 가능케 하려면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시각의 변화는 근인과 동시에 모든 원인을 밝혀야만 달성케 되는 것이다.(알아야 한다!)
삼복삼파, 여수의 고난의 역사! 복현 파현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 포괄적으로 역사를 이해하게 되면 완벽하게 단절된 우연이라는 것은 성립하기 어렵다.
이순신. 우리역사의 기적? 우리민족의 행운은 여수 지역의 하부구조와 여수 인민의 축적된 기술력, 그리고 제주인민의 지혜를 배제하고서는 설명이 될 길이 없다.
사실 내가 이 원고를 쓰게 된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여순민중항쟁을 널리 알려서 “여순민중항쟁특별법”을 국회에 통과시킴으로써 여순민중항쟁으로 당한 사람들을 신원해주기 위한 것이다.
이 책은 사상이 아니라 운동이다. 이 책은 역사서술이 아니라 우리 의식에 던져지는 방할이다. 가치를 추구하는 자라면 이 책을 읽은 후 얻는 깨달음을 만세 만민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여수 14연대의 해프닝을 가능케 한 모든 원인과 근인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해는 인식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인식은 반드시 인식론적 회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인식론적 회전이 없이는 역사에서 새로운 발견이라는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착종된 모든 사건들이 여수 14연대의 10월 19일 해프닝을 필연적 사실로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나는 농촌을 돌아보았는데 그들로부터 여름에 경찰들의 공출할당량이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농가로 찾아가 농민들에게 쌀을 내놓으라고 강요한다는 말을 들었다. 쌀을 내놓지 못하면 경찰은 그들에게 수갑을 채워 경찰서로 데려가 음식도 주지 않고 하루종일 가두어둔다고 한다.”(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p206)
제주4·3과 여순민중항쟁은 남로당의 정치공작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민중에게 절실한 것은 오직 “쌀’이지 공산이념이 아니었다.
제주토벌출동거부병사위원회
“토벌”이라는 것은 “진압”보다도 더 심각한 단계의 작전. “무조건 살상”을 전제로 한다. 제주인민을 토벌하기 위하여 출동하라는 것을 거부했다는 것. “거부”는 “항명”이 아니다…”조선사람의 아들로서 조선동포를 학살하는 것을 거부하고 조선인민의 복지를 위하여 우리는 일어섰다.”
이 말에도 일체의 이념적인 색채가 들어있지 않다. 단지 군인으로서 군인이 지켜야 할 도리만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몰랐다. 우리는 너무 조용했다.
우리는 그것을 민중항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공권력에 대한 공포감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불신감만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