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사상 깊이읽기 3. 씨알·생명·평화 .김영호. 711쪽
사회(교육•언론•사회윤리)
교육은 사람(교사·정치가)이 아닌 하늘(생명·씨알)이 하는 것
교육의 원리는 무엇인가. 우선 교육은 인위와 강제보다는 하늘, 자연, 생명에서 나온 씨알처럼 사람을 기르고 가꾸는 것
슬기롭고 밝은 지혜가 거기 스스로 있습니다. 씨알을 만들어내는 농부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늘, 곧 자연만이 만들어냅니다. 교육은 씨알만이 한다는 말을 이런의미에서 한 것입니다.
교육이 잘못되는 것은 그 풍토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할 일은 그 풍토를 고르는 데 있습니다…풍토라는 다른 것은 다른 것 아니고 교육이 될 수 있도록 사회조건을 만들자는 말인데, 그 밑에는 스스로 제 할 것을 아는 대생명이 꽉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들어 있습니다. 사실 그것 없이는 교육은 아니 딥니다. 천지 자연에 농사는 해먹을 수 있게 조건이 주어져 있습니다. 햇빛과 물과 바람과 흙과 씨입니다. 그것은 사람은 못 만듭니다….
한마디로 우리 교육이 못쓰게 된 것은 그 절대의 진(眞), 절대의 선(善), 절대의 미(美)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975)
교육을 하는 주체는 교사가 아니고 하늘, 생명 자체 또는 ‘보이는 하늘’인 씨알이다. 그래서 이름을 붙인다면 ‘씨알 교육’이다.
#교육의 네 가지 법칙-자존·성장·혁명·대행
주문받은 제품을 양산하는 학교공장. 정치와 경제제도의 영향으로 학교는 이제 상품을 양산하는 공장으로 전락했다.
교육은 사제간에 성립되는 정의(情意)의 활동으로서 되는 것이다…지금은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다. 있는 것은 학교뿐이다. 그리하여 학교의 직원, 좀 더 분명히 말하면 학교라는 공장의 지식 소매의 고용인은 있지만 스승이 아니요, 학교의 졸업생, 다시 말하면 생산제품은 있지만 제자는 없는 것이다….학교라는 한 조직체, 한 제도, 한 괴물이 있어 교사와 학생을 잡아먹고 만 것이다.
사람이 도대체 인생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근본 태도의 결정 없이, 위에서 말한 지혜 없이 살 수 있느냐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무시할 수 없는 진리를 무시했기 때문에, 지혜는 버리고 지식만 찾았기 때문에 오늘의 암담이 온 것입니다. 이 학문, 잘못된 학문입니다.(1961)
이제 인생과 자연을 합한 전체 우주를 볼 때 거기는 싸움이 아니고 대립이 아니고 큰 조화, 깊은 감동이 있는 것을 봅니다. 이제 철학은 하나됨이 철학일 것입니다.
그것이 절망 전체를 살리는 진리일 것입니다. 현대는 학문이 매우 전문적으로 발달하는 때이므로 공부하는 사람의 생각이 부분적인 고찰에 붙잡혀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지혜는 전체에만 있습니다…상식은 부분적인 연구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전체적인 종합을 하는 데서, 인생을 조감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혹은 통찰이라 해도 좋고 혹은 달관이라 해도 좋습니다.
상식의 요점은 남의 인격 존중입니다. 곧 사랑입니다. 그것이 정말 종교입니다. 종교의 신앙이 아주 깊다면서도 상식이 아주 부족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광신입니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입니다…현대 사상의 큰 잘못은 분석만을 할 줄 알고 종합·통일을 못하는 데 있습니다. 기계는 발달했으나, 그 기계가 차륜 속에 사람까지 차고 들어갔으므로 인간은 없어져버렸습니다.
현상은 많으나 뜻은 하나입니다. 몸의 지체는 여럿이나 인격은 하나입니다. 학문 연구를 하면서도 철학·종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인간미가 없습니다.
군자불기. 참 사람은 그릇이 되려 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어디에나 쓰이는 데가 있어야 사람이지, 뜻을 잃고 쓰이기만 힘쓰면 짐승이요, 기계입니다. ‘인재배양’ ‘유위한 인물주의’의 교육처럼 사람을 못쓰게 만든 것은 없습니다. 역리적인 말이지만, 쓰면 못쓰게 됩니다. 아무 데도 쓸 수 없는 사람이야말로 참말 꼭 있어여 하는 사람입니다.
한 가지 전공으로 한 군데만 쓰이게 만드는 교육은 ‘어디에나 쓰이는’ 바탕을 만드는 (인격) 교육이 아니다. ‘그릇’을 만드는 기능교육으로는 사회적 인격을 양성할 수 없다.
상아탑은 현실을 도피하여 자기만의 세계에 몰입하는 곳이 아니고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는 파사현정의 길과 진리를 탐구하는 도량이다.
교육철학이 다룰 주제. 교육에는 자율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율성의 근거는 세속적인 가치나 인간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 그래서 교육이 신성하다는 것이다. 자율성이 가능한 것은 하늘이(신성,불성처럼) 인간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인내천!)…어린 새싹(학생)도 가만 놔두면 저절로 자라난다. 정치가 ‘하늘’을 대치하여 간섭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교육에서 정치 간섭이 가장 큰 문제이다. 또한 교육의 목표는 단순히 지식과 기술의 습득이라기보다 ‘자아의 개조, 민족의 개조’ 문명의 구원’이라야 한다(1973)
“가다가 어느 때는 엉뚱한 일을 할 줄 알아야 젊은이지, 엉뚱한 일을 할 줄 모르는 건 젊은이가 못 된다.”(1984)
인생대학. 나는 백묵가루와 책좀이 있는 대학에는 못 갔지만 그 대신 밧줄과 고랑과 철창으로 된 대학에 가본 일이 있다. 이른바 인생대학이라는 곳이다…안과 밖은 서로 반대가 되는 법이라 사실 대학은 감옥이요, 감옥은 대학이다. 이 세상 대학에서는 지식은 점점 늘어가나 사람의 참 바탈은 갈수록 줄고 병신이 되고 없어지는 곳이요, 감옥에서는 집을 빼앗기고 살이 빠지고 징역살이를 하나 속은 점점 깊어지고 넓어가고 높아가는 곳이다. 다만, 생각이 있는 자에게는 말이다.(1959)
지식은 현상에 대한 부분적인 정보인 반면, 지혜는 현상 이면의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전체적인 통찰과 깨달음에서 나온다.
#올곧은(대바른) 언론과 정직한 지식인이 있어야
정치, 경제가 중요한 것은 국민, 민중의 삶을 당장의 현실 속에서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왜곡·굴절되고 횡포를 자행하지 않도록 비판·저항하는 사회적 도구나 장치가 필요한데, 일상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함석헌은 무엇보다 언론을 꼽는다.
경제의 구렁, 정치의 독사는 굉장히 복잡·교활한 조직 기술이기 때문에 생각 없이는 보고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민중에게는 반드시 날카롭고, 또 깊이, 물건과 일을 분석·비판하는 정직하고도 찬찬한 학자가 있어야 하고, 중간에 서서 돼가는 일과 생각을 잘 보도해주는 민첩하고도 대바른 언론인이 있어야 한다.
불매운동으로 망하게 해야 할 신문들
정부가 강도의 소굴이 되고, 학교·교회·극장·방송국이 다 강도의 앞잡이가 되더라도 신문만 살아 있으면 걱정이 없습니다.
오늘의 종교는 신문입니다. 신문이 민중을 깨우고 일으키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그들이 민중의 눈을 쥐고 입을 쥐고 손발을 쥐고 있으면서 그것을 아니합니다…
이 나라에 신문은 없다. 있는 것은 광고지지, 씨알의 피와 땀과 혼을 살살 뽑아대는 갈대통이지, 그들의 눈이 되고 귀가 되고 콧구멍이 되는 신문이 아니다.
평등관의 근거는 무엇인가. 먼저 자연의 질서 속에서 찾을 수 있다…거기에 높고 낮고는 없습니다. 귀천이 없습니다. 그러한 것이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다 정치하는 사람이 만들어낸 말입니다.
정신·영, 생명·생태
생명에는 나와 남이 업습니다.
나, 너는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자연에는 나 너 없습니다. 그저 하나입니다.
사람이 생각하게 된 것은
자연을 반항하고 업신여기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것을 더 깊이 알아 더 깊고 큰 무한한
자연에 이르기 위해서입니다.
자연보호….근대화는 기어코 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만 마음이 급해서 그 결과로 오는 자연파괴에 대한 경고는 묵살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자연은 산 것인데 그것을 죽은 것으로 알았습니다.
자연은 생명이다. 생명이므로 살아 있다. 그것을 잊고 있기 때문에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산 생명’,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수식한다. 근대화라는 이유로 생명과 자연의 파괴를 댓가로 지불할 수 없다.
자연은 산 것입니다. 살아 있는 전체입니다. 그는 우리 어머니요, 우리 스승입니다. 이 생명을 내놓고는 말씀을 들을 길도 없고, 우리 꺠달은 것을 닦아볼 터전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호 정도 가지고는 보호가 되지 않습니다. 배워야 합니다.
서양 생각에 우주는 생명이 일어나지 않는 죽은 우주입니다. 하지만 옛날 동양사상으로는 우주를 살아 있는 것으로 여겼어요.
그런데 슬프게도 지금은 생각 없는 사람, 이사야의 말을 빈다면, 어린아이가 세상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오늘날 민족의 장래를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교육에 근본적 대개혁을 단행해야 할 것이고, 그런 새 교육을 하려면 이때까지 죽은 줄로 알고 멸시했던 자연에 대해 눈을 고쳐뜨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은 모든 문제가 결국 폭력에 의해서만 해결되고 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찍이 자랑했던 인간이 개인에도 단체에도 세계에서도, 문제의 해결은 결국 실력에 있다고 믿어버리게 된 것은 인간으로서는 큰 수치입니다….악이 무엇입니까? 생명 죽이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 우주에서 가장 귀한 것은 생명입니다. 우리가 우주선을 만들어 달나라에 가보면서도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것은 거기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람처럼 조급하고 못 참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른바 문명 때문에 그렇게 됐습니다. 옛날 사람은…문명의 이기란 것 없이 오로지 자기의 정신 하나를 믿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자연에서 배운 것이 많았고, 그것이 전통으로 내려와 우리로 사람이 되게 하는 지혜가 됐습니다.
#물질·향락에 함몰된 정산의 오염부터 제거해야
도시시대의 가장 큰 두통거리는 요즘 점점 높아가는 이른바 오염 문제입니다. 두통 정도가 아니라 인류 전체, 인류만 아니라 생명 전체의 존망이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문명이란, 한마디로해서 편리입니다. 정신문명, 물질문명 하지만, 엄정한 의미에서 정신문명이란 없습니다.
그 모든 문명의 결국은 뭐냐 하면 편하자는 것입니다. 노력에서 해방, 병에서 해방, 거리와 시간의 단축, 시청각을 통한 매스컴 오락, 다 편하고 재미보자는 것입니다. 생물로서의 인간에는 생물의 법칙에 의해 자연히 일과 즐거움이 자동적으로 조화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함으로써 일은 아니하고, 혹은 될수록 적게 하고 즐거움만 맛보려는 데서 가지가지의 문명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본래의 대조화를 깨뜨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오염 문제는 그렇게 해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 당하는 문제는 그 잘못에 대한 자연의 복수입니다. 정신의 오염을 씻지 않는 한, 기술로 오염 문제를 아무리 해결하려 해도 아니 될 것입니다.(1978)
그것들은 궁극적인 가치인 정신과 ‘뜻’과는 거리가 멀다. 그 즐거움은 표피적인 즐거움이 될 뿐이다. 공해는 그러한 착각에 대한 자연의 복수다.
그러므로 오염문제 해결의 열쇠는 정신 순화이다. 이 글을 쓴지 한 세대도 더 지난 지금의 상황은 달라졌는가…전체적으로 도시화의 심화, 4대강의 수로화, 원자력 의존, 도로 과잉 건설, 신도시 개발 등 토건사업 집중 정책으로 인한 실제적이고 잠재적인 환경파괴가 심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함석헌의 경고는 더욱 더 유효하다.
인간의 세 가지 성역-원자핵•생식세포•뇌세포
생명과 생태와 관련하여 함석헌은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 금기 사항을 지적했다.
어느 한계에 가면 알지 못하고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은 것인데, 그것까지 본 거 있다, 말하자면 자기 에미, 에비의 하체를 들춰본 모양으로 그렇게 된 데가 있다.
정신. 원자탄보다 강한 것이 나와야 핵문제 해결.
원자탄보다 강한 것이 무엇이냐? 정신입니다. 원자탄 밑에 이 세계가 진동하고 죽어버리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분열되기 때문. 원자탄의 폭격으로 분열되는 것이 아니라 통일을 잃고 분열된 세계이기 때문에 폭격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이 문명의 무더기 속에서는 나오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낡은 것입니다.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여기서 구원이 되려면 새것이 나와야 합니다. 원자탄보다는 더 강한 절대적으로 강한 원리에 의한 새 통일이 서야만 됩니다. 그럼 절대적으로 강한 원리는 무엇이냐? 정신입니다.(1950)
전체가 뭔지 역사가 뭔지 모르고, 도덕·윤리·종교를 무시하고 호기심만에서 하는 예술도 없고, 호기심만에서 하는 과학도 있을 수 없단 말이야. 그런데 거기서 해발이라 그래. 교회와 사회제도에서 해방이 된 거는 좋지만, 도덕 자체, 진화 자체, 우주적 하나인 전체 자체에서 해방이 될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자연을 그렇게 업신여겨 봤는데 자연이란 그런 게 아니고, 죽은 게 아니고 산 거라 그 말이오.
영국의 L.P. 작스라는 사람이 쓴 『살아 있는 우주』
제1차 세계대전이란 게 뭐냐. 이 우주가 살아 있는 우주인데 이걸 죽은 우주인 줄 알고 정복이요 개척이요 이러다가 우주가 복수를 해서 지금 이러는 거다 하는 거요. 그 사람이 living universe라고 했어.
근본적으로 서양적인 문명이 잘못됐다. 동양의 특색은 역시 자연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는 데 있소. 문명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자연의 대조화, 그것을 무시하고서는 안 된다는 것이 지켜지 않으면 아니 되는 대계명이오. 그러니까 씨알이라는 것이 땅에서 떨어져가지고서야 되겠어요? 현대 인류는 지구에서 떨어진 사람들이니까 그런 의미로 하면 씨알 사상의 근본이 역시 거기, 자연에 있는 거지요.(1976)
이 문명의 결점은 먹고 놀기만 하려 하고 알려고 하지 않으며, 알아도 눈에 뵈고 귀에 들리고 만져지는 것만을 하고 그 밑에 깊이 들어 있는 것을 알려 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