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서둘러라. 가게야마 도모아키. 223쪽
천천히 서둘러라? 검소한 풍요? 얼핏보면 모순된 단어의 조합? 새로운 상상력! 생각하는 법을 바꾸자.
festina lente. 천천히 서둘러라.
‘급할수록 돌아가라’. 한시라도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다면 차라리 눈앞의 일이나 발밑의 일을 하나하나 주의 깊게 추진하는 편이 좋다. 이렇게 하면 오히려 더 빨리 원하는 결과에 다다를 수 있다. 인류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속담이다.
스피드를 다투는 단거리 100미터 수영 준결승 직전 코치의 조언? “용기를 갖고 천천히 가라.”
200미터를 수영할 때처럼 팔을 젖는 횟수를 줄여서 ‘전신을 이용해 천천히 수영하는’ 전략으로 결승에 임하게 했다. 코치의 조언대로 정말 천천히 갔더니 세계에서 가장 빨리 결승점에 도착했다고 한다.
경제란 본래? ‘경세제민’,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함’이라는 의미다…그것이 언젠가부터 ‘비즈니스(business)’라는 말로 대체됐다.
bisig와 ness가 합쳐진 말. bisig는 ‘바쁘다’는 뜻을 지닌 영어의 옛말.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과 비용으로, 최대한 효율적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해 돈을 버는 것이 비즈니스. ‘경제’는 비즈니스’라는 단어를 경유해 어느새 ‘돈벌이’의 의미로까지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돈이 유일한 가치인 양 경제와 사회가 돌아가면 갖가지 문제가 생긴다. 매출과 이익 증대만을 쫓아 사람을 이용가치로만 판단하는 부작용이 일어나고, 자연이 파괴되며, 커뮤니티가 쇠퇴하고, 문화는 소비되는 대상이 되고 만다. 금전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소중한 가치들이 사라져가는 상황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제부터 이야기할 내용은 어쩌면 논의를 지나치게 단순화했다고 비판받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매사의 본질은 뜻밖에도 단순할 때가 많다.
“이게 생호두야. 산지가 아니면 절대 맛볼 수 없다고.”
세계 최대 호두 산지인 캘리포니아, 이곳과 완전히 다른 수확 과정. ‘진동수확기(tree shaker)’라는 집채만 한 기계 사용, 또 집채만 한 청소기 같은 기계로 휘이익 빨아들이며 그러모은다.
집채만 한 바이스와 청소기, 그리고 드라이어. 탁탁, 휘이익, 위잉.
캘리포니아산 호두는 1킬로그램에 1,000엔 정도, 국산 호두는 1킬로그램에 3,000엔이나. 그들과 우리의 경영 효율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면 “그래서 일본 농업은 가망이 없어” “그러니까 일본 농업은 국제경쟁력이 없는 거야” “이제 농업을 집약화하고, 효율성을 높일 때야”라고 말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가을에 토우미 시에서 매우 풍요롭고 행복감이 가득한 시간을 경험한다. 커다란 자연의 순환에 둘러싸인 편안함과 수확의 기쁨, 소소한 세상 사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는 효율을 추구하다 보면 금방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섬세한 것이다.
그럼 우리는 농업생산성을 키우는 데 주력해야 할까…내 생각은 반대다. 키워야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이며 행복감이다. 경제는 본래 그러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까.
묘목 상태에서 열매 수확하기까지 5~10년, 매년 가지치기 작업..노력은 나날이 거듭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과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거쳐, 껍질 있는 호두는 카페 테이블에 오른다.
우리가 지불하는 대가 저편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실감한다면 결코 2,000엔이라는 가격이 비싸다고는 느끼지 않을 것이다.
더욱 복잡한 가치를 나누다
일반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참가자를 상정한 시장에서는 복잡한 가치를 교환하기가 힘들다. 대다수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화폐 같은 금전적 가치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정 다수의 고객
쿠루미도 커피에는 하루에 대략 120명 내외의 손님이 방문한다(특정 다수의 기준? 50명 이상!)
우리는 호두마을에 직접 수확을 도우러 가서, 마을을 발전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분들의 모습을 두 눈으로 봤기에 가격 너머에 있는 가치를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다른 지역의 호두는 이제 비교 검토할 대상이 아니며, 토우미 시의 호두가 둘도 없는 존재라는 생각마저 든다.
다시 말해 특정 다수 사이에서 복잡한 가치를 나눌 수 있게 하려면 일반적으로 몸을 부대끼는 등의 직접적이면서 밀도가 촘촘한 커뮤니케이션이 반드시 필요하다…하지만 현실에서는 소매업이야말로 자본집약적으로 변해가는 실정…그 속에서 어떻게 ‘가격만이 아닌 가치’를 전할 수 있을까.
카페를 경영하면서 터득한 비결 하나는 가치 전달 방식의 전환이다.
‘마을의 정취를 지킨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한 식재료’ 등 아무리 좋은 메시지라도 그것을 문자 정보로 전달하면 받는 쪽은 아무래도 이성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게 된다. 이런 식의 메시시를 통해 한층 더 높은 가치를 받아 들일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차라리 ‘맛있다’, ‘기분이 좋다’, ‘즐겁다’는 가치가 가게 입구에서부터 느껴지게…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카페란 엔터테인먼트 사업이다(농사는 ‘즐거운’ 예술이다!)…카페의 특성상 특정 다수 사이에서 복잡한 가치를 나눌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카페처럼 ‘만드는 일’과 ‘전달하는 일’이 일체화된 사업에서는 손님과 물리적으로 ‘얼굴 보이는’ 관계를 쌓을 수 있다는 점이 큰 강점이다…특정 다수를 형성하는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take로 시작할까? give로 시작할까?
포인트 카드가 과연 필요할까
쿠루미도 커피에서는 이러한 마케팅은 하지 않는다.
가게에 방문한 손님의 ‘소비자적 인격’을 자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적 인격이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 많은 것을 얻으려는 인격을 일컫는다. 요컨대 ‘이득이 되는 쇼핑’을 원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성향이다.
중요한 것은 구매자가 그런 마음이라면 판매자 쪽도 마찬가지라는 것. 가게 입장에서는 투자 비용을 줄이려고 한다.
요컨대 손님과 가게가 저마다 자신들의 이득을 최대화하려는 교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take가 아닌 give로
가게를 창업하는 동기는 대부분 ‘take’. 이때 자신들이 무엇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가가 중요하다.
쿠루미도 커피 시작한 동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교류할 수 있는 ‘동네 사랑방’을 만들고 싶어서…결국 동기는 ‘give’다.
공짜 호두 무한 제공?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는 걸까…이는 ‘주는 것’을 체감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손님에게 ‘선물’을 받는경험을 맛보게 해주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건전한 부채감을 자극하라
사람에게는 좋은 선물을 받았을 때, 받은 것 이상으로 좋은 것을 답례하고 싶어 하는 인격이 있다. ‘수증자(선물을 받은 사람)적인 인격’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세상에 소비자적인 사람과 수증자적인 사람이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양쪽 인격이 모두 존재, 때와 상황에 따라 제각기 다른 인격이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가게가 손님 마음속에 잠들어 있는 인격 중에 어느 쪽 스위치를 누르느냐가 중요하다.
건전한 부채감. 좋은 것을 받은 사람은 다음에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호두가 줄어드는 속도는 우리의 작업 태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 give하는 적게 줄어들지만, 소비자적인 인격을 자극하는 상황이라면 상대방은 ‘같은 돈을 내는 바에야 최대한 많은 것을 손에 넣자’라고 생각, 테이블에 놓인 호두는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교환을 등가로 하지 않는다
건전한 부채감. 다음 콘서트에 또 오고 싶어지는 동기 유발하거나 입소문 등으로 이어진다. 정가보다 500엔을 더 지불하면 그러한 기분은 그때그때 정산. 결국 손님은 가게에 부채가 없는 상태가 된다!
교환을 등가로 해서는 안 된다.
교환을 등가로 하지 않아야 교환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진다(부등가 교환의 순환?!)
팁? ‘나는 빚지고 있지 않다’는 증명. 되레 교환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중 하나가 교환을 등가로 하지 않는 방법이다.
경제는 어떻게 성장하는 것일까
“가게야마 씨, 경제가 어떻게 성장하는지, 저 알 거 같아요.”
“제가 가게야마 씨에게 뭔가 선물을 했다고 해봐요. 그런데 가게야마 씨가 그 선물을 받고 기분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렇다면 받은 것보다 좀 더 좋은 것을 답례하고 싶을 테고, 분명히 답례하겠죠.”
“..다시 또 제가 좀 더 좋은 걸로 답례…이렇게 계속해서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보면 경제는 점점 성장해가겠죠.” (선물의 경제학!)
이러한 주는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면 가게를 둘러싼 교환의 총량은 커질 것이다.
‘give에서 시작되는 교환’이라는 말은 내가 일부러 만든 것이 아니다. 1924년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인 마르셀 모스는 『증여론』을 통해 미개사회와 고대사회를 분석, 물물교환 같은 경제적 거래 뿐만 아니라, 의례, 군사 활동, 혼인 제례와 같은 모든 사회문화 활동이 증여에 대한 반대급부 형태의 교환으로 성립된다고 말했다. 그것은 또한 현대 인간 사회의 저변을 이루는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전체적인 급부는 받은 선물에 대한 답례를 해야 하는 의무를 포함하고 있다…그는 ‘주기’, ‘받기’, ‘답례하기’는 인간 사회에 깊이 뿌리 박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당연히 해야만 하는 것’으로 생활 모든 부분에 관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돈 외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는 방법
이자는 커피로 내겠습니다
‘쿠루미도 채권’ 발행. 한 구좌당 5만 엔, 10명이 총 120만 엔 출자. 그리고 이자는 커피로 지불하기로 했다. 정기적으로 커피 선물(원두 등)을 보내드린다.
높은 운용이율. 은행이라면 예금주와, 회사라면 주주와 맺은 약속 때문. 매출과 이익을 올리고 맡은 돈을 불려서 돌려주겠다고 한 약속. 이처럼 돈을 불리겠다는 약속은 구슬을 엮듯 줄줄이 성립된다. 여기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다. 벤처투자…실은 투자한 기업의 경영자도 개인적으로는 다른 가치를 밀어제치면서까지 그 일을 간절히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너나 할 것 없이 ‘매출과 이익의 성장’을 위해 일하게 되는 것이다.(수단과 목적이 뒤바뀐다!)
“돈이 불어나는 것과, 불어나지 않는 것 중에 어느 쪽이 좋습니까?” 십중팔구 전자가 좋다 대답. 그 밖에 다른 선택지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가치에 공헌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생각을 돌릴 수 있다면 다른 선택도 가능할 텐데 말이다.
자본주의 메커니즘. 세계 어디에서나 코카콜라를 마실 수 있는 것은 왜 일까? 주주들은 전년보다 더 많은 매출과 이익의 성장을 요구.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자본주의 시스템. 시스템 전체로 창출해내는 경제적인 가치를 최대화하는 것, 경제적인 이득을 최대화하는 것이 목적…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개개인의 의사나 주관은 부차적인 곳으로 내밀린다는 사실이다.
왜 역 앞에는 체인점만 들어설까
시스템의 역학을 알면 도심지 역 앞이 체인점 일색으로 변하는 상황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모두가 납득할 만한 선택지로서 ‘수익의 최대화’가 타협안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장 원리 아래에서 개인이 하는 가게가 체인점에 비해 더 비싼 임대료를 지불할 수 있을 리 없다.
“체인점 일색인 역 앞과 개성 넘치는 가게가 즐비한 역 앞 중 어느 쪽이 좋습니까?” 십중팔구 후자라고 답. 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의 요구에 따라 대부분 실현되지 못한다. 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어느 역 앞이나 똑같은 체인점으로 도배되는 것이다.
소중한 것은 돈 뿐인가
GDP의 크기만으로 사회의 풍요로움을 가늠할 수는 없다.
지금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다원적인 가치를 섣부르게 다루고 있다.
특정 다수의 개인이 직접 거래하는 일
다원적인 가치를 취급하는 시스템 디자인의 힌트가 뮤직 시큐리티즈에서 시도한 펀드 속에 숨겨져 있다.
‘특정 다수’, ‘개인’, ‘직접’이 키워드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특정 다수’. 금전적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것까지 망라해 ‘특정인들에게 소중한 가치’를 취급할 수 있다.
잘 보이지 않는 ‘큰 시스템’ 속에 돈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그것을 활용할 수 있다면 풍요로움과 안도감이 돌아올 것. 이러한 작은 시스템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세계 제3위 경제 대국에 살면서도 어째서인지 행복감을 느끼기 힘든 이 나라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지 않을까.
교환의 원칙을 바꾸다
take의 동기로, give의 동기로도 행할 수 있는 교환 관계? 전자를 ‘서로 이용하는 관계‘, 후자를 ‘서로 지원하는 관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가게를 개업한 이래, 줄곧 손님과 서로 지원하는 관계를 맺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전혀 관심도 없으면서 연락하는 사람들. ‘이용’하는 관계로 되받아칠 밖에. 요컨대 ‘돈’이다. “얼마를 지불하면 됩니다”라고 응대하는 것. 사실 이러한 거래는 좀 피곤한 데다 돈 이외에 별반 도움 되는 일이 없어서 웬만해서는 거절하고 있다.
주위를 돌아보면 가게 안에서는 물론이고 어디에서나 세상 대부분의 거래가 서로 이용하는 관계로 메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서로 이용하는 관계가 우리의 일상을 서서히 잠식한다
take. 손님이나 고객을 ‘수단’이 된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take의 대상. 이용하는 상대가 되는 것.
지원과 희생은 다르다
‘지원하는 일’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는 일’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상대방을 지원하는 자세는 꼬리에 꼬리를 물듯 이어져 상대방의 지원하는 자세를 끌어내기 때문에 틀림없이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뿌린대로 거둔다!)
‘society’ 번역? ‘인제교류‘라는 말이 후보에 있었다고 한다.
사회란 구성원들 간의 관계와 교환의 집합체인 것이다. 우리가 가계에서 18만 번의 관계를 서로 맺은 것처럼 이 세상에는 매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관계 맺음과 교환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것들이 축적되면 하나의 사회가 만들어진다.
지역통화. NHK 프로그램 『엔데의 유언:근원에서부터 돈을 묻다』
“빵가게에서 빵을 사며 지불하는 돈과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자본으로서의 돈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돈이다”, “돈도 노화해야 한다”
지역화폐. 코코분지. 분지의 특징은 뒷면에 메시지를 적을 수 있다는 점.
7개의 말풍선이 있어서, 거기에 한마디 써서 상대방에게 건넬 수 있다. “맛있었어요!”. “감사해요!”, “도움이 됐어요!” 등 고마움을 표현한 말이 가득하다.
분지(지역화폐)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많이 사용되는 메시지 카드인 셈이다.
자동판매기화되는 사회. 누구에게 감사해야 좋을지도 모르게 하는 것.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타인이 일을 한 덕분에 유지되고 있다.
어쩌면 우리와 주고받은 교환이 손님으로 하여금 다음에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무언가 ‘주는 마음’을 자아내게 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경제란 일과 가치의 교환의 연속이라 순환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게 일과 가치는 마을을 돌고 돈다. 하나하나 교환하는 자세가 달라지면 경제의 모습도 크게 변할 것이다. 주는 일의 유통량이 증가하는 것을 경제 성장이라 부르면 어떨까, 제안하고 싶다.
사람을 지원하는 조직 만들기
신입직원에게. “가게를 활용해 무엇을 표현해보고 싶나요?” (구성원을 지원하려는 가게,회사!)
10퍼센트든 20퍼센트는 일과 시간 중에 여백을 갖는 것은 자기 나름의, 자기에게만 있는 ‘싹’을 틔우는 데 꼭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회사, 경영자, 직원이 서로 이용하는(take) 관계가 아닌 서로 지원하는(give) 관계가 되도록. 회사보다 개개인의 인생이 우선이다.
사람에게 일을 주는 것. 만든 사람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
가계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 저편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존재감이 있기를 바란다.
내 바람은 ‘사람에게 일을 주는 것’이다.
특정인에게 안성맞춤인 일을 맡기고, 그 사람을 잃으면 그 일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경영학 책에서는 거꾸로 배웠다. ‘일에 사람을 붙인다’라고 말이다. 가령 ‘이 일은 A밖에 할 수 없다’라는 식이 돼버리면 경영이 불안해진다.(거꾸로 경영학!)
‘일에 사람을 붙이는 것’을 추구, 사람은 점점 대체 가능한 존재로 전락. ‘내가 없어져도 아무도 곤란해지지 않는다’며 자신의 존재 의의 자체에 대해 의심을 떨치기 어려워진다.
열쇠는 조직 내부와 외부, 양쪽에 걸쳐 교환의 원칙을 take에서 give로 바꾸는 것에 있다.
마음 문제. 관리와 통제의 행동 양식은 사람도 사물과 똑같은 방법으로 다루고, 효율적으로 노동력을 발휘시키는 것만을 강요한다. 사람에게 마음이 있어서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리 기술이 발달한 것이다.
‘나’가 ‘우리’가 된다
이제 매사의 출발점을 ‘나’로 설정해보자.
지금 나는 니시코쿠분지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단지 니시코쿠분지라는 무언가 추상적인 존재에 대해 애착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지극히 구체적인 ‘나’들의 집합체로서, 그리고 그들을 존재하게 하는 총체로서 이 지역에 애착을 느낀다.
경제활동은 관계성을 파괴하는가
가게와 지역사회의 관계는 식물과 땅의 관계와 비슷하다. 식물(가게)이 자라기 위해서는 두말할 나위 없이 땅(지역사회)이 필요하다
서로가 서로를 지원(give)하며 그 결과 생산되는 풍요로움을 서로 나눈다. 서로 지원을 받아 성장해가는 관계. 하지만 정신 차리고 냉정하게 돌아보면 지역에서 ‘생산’은 자취를 감추고 ‘소비’ 일색이 되며, 가게를 통해 맺었던 개인과 개인의 관계도 사라진다. 생활에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는 대기업 사업자에게 의존하게 되고, 사람들은 더욱더 돈에 혈안이 되어간다.
친구와 동업…오로지 사업의 성공만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그 친구가 ‘이용가치’에만 눈길이 가고..그러다 보면 한 사람은 회사를 떠나고, 더 이상 둘 사이에 예전 같은 우정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경제활동이 결국 관계성을 파괴한다고 생각했으나 꼭 그런 것은 아니였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교환이 거듭되면 관계성이 파괴된다. 그것은 농사를 지을 때 비료나 농약을 과다하게 살포해서 토양을 파괴하는 일과 마찬가지다.
반면에 서로가 서로를 지원하는 교환이 거듭되면 관계성이 커진다. 가게를 계속하는 것이 회사, 나아가 지역의 관계성을 키우고, 그 관계성에 의해 가게도 성장할 수 있다.
카페를 이용한 대화의 장을…토론의 장
‘지원의 화법’? 토론 시간을 기분 좋게 만들기 위해, 나는 모임을 시작할 때 두 가지 당부의 말을 전한다. ‘말하기보다 들을 것’과 ‘다름을 즐길 것’
‘설득의 화법’.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고, 상대방을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에 역점.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기술로 자신의 견해를 펼치는 사람이 높게 평가받는다.
타인과 더불어 자유롭게 산다
큰 자유를 위한 긍정적인 관계를 실현하는 데는 역시 비결이 있다. 바로 지원의 화법이다. 말하기보다 충분히 듣고 다름을 즐길 것.
‘타인과 함께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얼핏 모순된 말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20세기라는 자유의 시대를 거쳐 가까스로 당도한, 인류 역사상 거의 선례를 찾을 수 없는 사분면이라고 생각한다. 도전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다. (천천히 서둘러라, 검소한 풍요,..)
카페는 ‘제3의 공간’.
‘private common’. ‘나’와 ‘당신’이 뜻밖의 만남을 가지고 서로 겹쳐지는 영역을 만들면서 서로를 이끌어주는, 그러한 가능성의 공간에 새로운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시간은 적일까, 아니면 내 편일까
“쿠루미도 커피를 50년 가는 가게로 만들고 싶습니다.”
걸작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책의 우주』
고전이 만들어질 수 없는 시대? 그리 생각하면 요즘 시대의 작품들은 불행하다. 책을 예로 들자면 하루에 200권이나 되는 신간 발행, 베스트셀러가 되더라도 기껏해야 몇 달이나 몇 년. 요즘 작품들은 걸잘이 되기 위해 필요한 독자층과 호흡을 나눌 여유가 없으며, 잇달아 소비되고 사라지는 숙명과 마주해야 한다. 과연 요즘 시대에 발간된 책 중에 50년, 100년 후에도 꾸준히 읽힐 책이 얼마나 있을까 따져보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장수 브랜드 상품이 나올 수 없는 시대. 과자업계에 장수 브랜드가 탄생하기 어렵게 된 시기와 편의점이 세상에 막대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기가 맞물린다. 편의점에서는 POS(판매시점 정보관리) 시스템을 활용해 인기 상품과 비인기 상품을 발 빠르게 체크. 일정 기간 판매가 신통치 않으면 진열대에서 바로 빠지게 마련. 인기 상품으로 주목받은 것일지라도 신상품에 밀리게 되고, 판매가 주춤하면 역시 진열대에서 밀려난다.
즉 어떤 상품을 막론하고 시간과의 싸움을 강요당하고 있다. 사람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일찍이 장수 브랜드가 지위를 확립하기까지는 긴 시간과 더불어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상호작용이 있었을 것이다.(이제는 그런 시간이 불가능한 시대!)
걸작을 잃음으로써 우리가 잃는 것. 서점도 편의점처럼 되어가고 있다.
첫 번째로는 역사를 잃게 된다.
두 번째로는 걸작이 창출해내는 파급효과을 잃게 된다.
세 번째로는 작품의 질을 잃게 된다.
마지막으로 시간을 초월한 것만이 낼 수 있는 맛을 잃게 된다(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박노해)
비즈니스는 시간과의 싸움
일의 정체는 시간이다
우리가 제공하는 것은 커피나 케이크 같은 컨텐츠가 아니라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손님들이 카페에서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우리 나름대로의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었다. 우선 우리가 시간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모든 일의 정체가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기계가 일하는 시간이 아니라 사람이 일하는 시간(억지로 시켜서 일한 시간은 포함되지 않는다)이다. 우리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은 직감적으로..느끼게 된다.
가급적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돈으로 해결하지 않는다.
서로 각자 맡은 바 역할을 다하고, 다른 사람이 일할 기회를 만드는 것도 경제의 중요한 측면이며, 그러한 분업 덕택에 각자의 일을 깊이 연구할 수 있는 것이다.(효율만이 분업의 목적이 아니다)
사랑받기까지 필요한 시간
시간과 정성을 들여 일을 제대로. 그 일을 기꺼이 받아준 분을 언제까지나 곁에서 지지해줄 것. 이는 시간과 싸우는 것이 아닌, 시간과 함께 있는 사람이 하는 일.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시간은 자기편이 된다.
요즘 시대는 불행하다. 세상이 편의점처럼 변화하고, 작품으로 성장해나갈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으며, 받는 쪽과 주고받는 호흡에 가치를 두지 않는 환경에서는 사람들 마음속에 애착심이 자라날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이 하는 일은 잇달아 소비된다.
이익의 정의를 바꾸다
성과=이익/(투하자본x시간)
나는 이 수식 자체를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다만 이 수식의 쓰임새를 두 가지 관점에서 바꿔보면 어떨까 제안하고 싶다. 하나는 분자에 있는 이익의 정의를 바꿀 것. 또 하나는 분자를 목적으로 하지 말고 분모를 목적으로 삼을 것.
이익이란 무엇일까?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익은 곧 돈이다. 하지만 세상의 ‘소중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비단 돈뿐만은 아닐 것이다.
또한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이익이라고 할 수 있을지 물음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소중한 사람들의 이익은 자신에게도 소중하기 마련이다.
서로가 지속 가능한 수준에서 구입 가격을 맞추어가고, 단지 돈이 아닌 지원과 응원을 서로에게 보내는 관계가 형성됐다.
덧붙이자면 금전 이외의 이익도 존재하며,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으로 여기는 것은 특정 다수 관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만약 범위를 넓혀 사회 전반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다면 어떻게 해야 상대방의 이익이 될지 상상하기 힘들어지고, 무엇을 소중히 여길 것인가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어렵다.(작은 것이 아름답다!)
어떤 일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천천히 서둘러라)
take가 비즈니스의 동기가 되는 구도가 이 수식에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것을 역전시켜 보면 어떨까. give를 목적과 동기로 삼는 것이다…요컨대 주는 것을 일의 목적으로 삼아 보자는 것이다.
그것은 받는 사람 마음속에 건전한 부채감을 남긴다. 아울러 그것에 보답하려는, 또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이 직간접적으로 만드는 사람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시간과 돈(분모)을 한없이 들여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느긋한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고, 또 유익한 일로 이어진다고도 볼 수 없다. 의미 있는 시간과 수고를 들여야 한다…그렇게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며 기량을 갈고닦아서 시간과 돈과 맞설 수 있다면 생각보다 목적지에 빨리 다다를 수 있다.
GDP를 성장시키는 상식 밖의 방법
‘시간을 들일 것, 수고를 들일 것, 주는 일을 할 것’을 끝까지 추구해나가면 아마 GDP를 성장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이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금전적인 가치와 GDP를 성장시킬 목적으로 일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그렇게 할수록 사람이 하는 일은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가 되고 경제 성장은 멀어진다. 실제로 어느새 일본의 1인당 GDP는 세계 24위로 뚝 떨어졌다.
이제는 방식을 바꿀 때가 됐다.
돈을 위해 일하는 것, 돈을 위한 경제는 그만두고 돈 이외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깨달아야 한다.
경제 본연의 모습은 돈 이외의 가치를 망라한 ‘가치의 총화’를 키우는 데 기여하는 것은 물론, 구성원 각자의 가능성을 이끌어내고, 일의 내실을 높여서 긴 안목으로 볼 때 세상의 금전적인 가치 그 자체도 높여주지 않을까.(비즈니스가 아닌 ‘경세제민’ 본래의 뜻으로 돌아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