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 경제학. 케이트 레이워스. p335
누가 경제학자가 되고 싶어하는가
인류의 미래를 염려. 세상을 바꿔보기로 결심. 경제학자가 되는 게 세상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었다. 위안은 21세기가 원하는 경제학자가 되겠다는 열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위안은 곧 좌절했다. 경제학 이론이, 그리고 그 이론을 증명하는 수학이 어처구니없게도 협소한 전제와 가정 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강의실에서는 금융 시스템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배웠어요. 그런데 실제 금융 시장은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죠.
21세기의 도전
이 모든 일을 겪으면서 나는 경제학을 그만둘 수 없다는 사실을 자명하게 깨달았다. 왜냐면 경제학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을 결정하고, 그토록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고방식마저 결정하고 말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다시 경제학으로 돌아가 경제학을 아예 뒤집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오랫동안 굳건하게 확립된 경제학 이론들을 버리고 그 자리에 인류의 장기 목표를 세우고 새롭게 경제학을 시작하면 어떨까? 그리고 그 목적을 이뤄줄 경제작 사고방식을 만들어나간다면? 나는 그 목적들을 나타내려고 그림을 그렸다. 참으로 한심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도넛처럼 생겼다. 가운데 구멍이 뚫린 미국식 도넛 말이다.
도넛의 본질: 사회적 기초란 모든 이가 반드시 누려야 할 최소 수준의 안녕이며, 지구의 생태적 한계는 누구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다. 이 사이 공간이 만인이 안전하고 정의롭게 살아가는 곳이다.
낡은 경제학 교과서는 무시했다…새로운 경제적 사고방식을 추적했다…이 책은 그 여정에서 발견한 핵심 지혜와 통찰을 한데 모은 것이다.
경제학과 1학년 1학기에 이렇게 대안적인 사고법과 통찰을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인류는 지금 엄중한 도전에 직면했다. 이는 상당 부분 우리가 부여잡고 있는 낡아빠진 경제적 사고의 잘못된 상징과 맹점에서 비롯됐다.
옛날 틀을 논박해 무너뜨리려면 설득력 있는 대안 틀을 만들어내야 한다. 참으로 역설적이지만, 지배적인 틀을 논박만 하는 건 결과적으로 오히려 그것을 더욱 강화시킬 뿐이다. 그리고 사상들이 벌이는 전투에서 대안적인 틀을 제공하지 못하면 승리는 고사하고 아예 전장에 발을 들여놓을 수도 없다고 했다.
진보파에게 절실한 건 두 단어짜리 문구다.
간명한 단어 두 개로 자기들의 관점을 압축하고 상대방에 맞서야 한다.(세금 덜어주기tax relief 대신 조세 정의tax justice!!!)
많은 이가 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생각했지만 한 번도 그려내지 못한 생각들을 이 도넛 그림이 가시화해주었다고 전했다.
21세기 경제학자처럼 생각하는 일곱 가지 방법
이제는 우리 정신에 남아 있는 경제학의 모든 낙서를 지워버릴 때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필요와 시대에 기여하는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한다.
1. 목표를 바꿔라(GDP->도넛)
진보의 척도는 GDP? 이는 소득과 부의 극단적인 불평등, 그리고 이에 따른 전례 없는 생명 파괴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21세기에는 더 큰 목표가 필요하다. 생명을 유지하게 해주는 지구의 한계 안에서 모든 개개인의 인간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목표 말이다.
2. 큰 그림을 보라(자기완결적 시장->사회와 자연에 묻어든 경제)
‘경제순환모델’이라는 지극히 제한된 그림. 여러 한계로 시장의 효율성, 국가의 무능함, 가정 경제의 의미에 대한 무시, 공유재Commons의 비극 등을 이야기하는 신자유주의 서사. 이제 경제의 그림을 새로 그릴 때다. 새로운 그림은 새로운 서사를 불러온다.
3. 인간 본성을 피어나게 하라(합리적 경제인,이콘->사회 적응형 인간)
경제인의 초상화? 자기 이익에 몰두하고 고립, 계산적이고 취향도 고정된 ‘합리적 경제인’.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이보다 훨씬 풍부하다. 새로운 초상화의 밑그림에서 우리는 사회적이고, 상호 의존적이며, 정확하게 계산하기보다 근삿값에 근거해 행동하고, 신봉하는 가치도 유동적이고, 우리가 속한 생명 세계에 의존하는 존재다.
4.시스템의 지혜를 배워라(기계적 균형->동학적 복합성)
수요 공급 곡선이야말로 모든 경제학과 학생들이 제일 처음 배우는 다이아그램, 이는 기계적 균형이라는 19세기의 잘못된 메타포에 뿌리를 둔 것이다. 경제의 역동성을 이해하는 데 더 지혜로운 출발점은 단순한 되먹임 회로feedback loop 한 쌍으로 요약할 수 있다.
5. 분배를 설계하라(경제가 성장하면 부자가 된다->분배적 경제 설계)
불평등은 경제 논리에서 필연적인 게 아니라 설계 오류로 인한 결과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6.재생하라(경제가 성장하면 환경도 정화된다?->재생적 경제 설계)
오염은 일시적? 경제 성장이 이뤄지면 종국에는 다 깨끗해진다는 소리를 다시 한 번 속삭인다. 하지만 이런 법칙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7.성장에 대한 맹신을 버려라(지상 과제로서의 경제성장->경제 성장에 대한 맹신 보류)
주류 경제학은 경제 성장을 지상 명령으로 보지만 자연에서는 그 어떤 것도 영원히 성장하지 않는다.
21세기 경제학자처럼 생각하는 일곱 가지 방법에서 구체적인 경제적 처방이나 제도적 해법 따위가 바로 나오지 않는다…그러나 나는 이 방법이 21세기가 요구하는 경제학에 근본적으로 다른 사고방식을 마련하는 초석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68 ‘균형으로 피어나는 삶’
어떤 문화권에서는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균형으로 피어나는 삶’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는 곳도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균형이 전부라고 했다. 마오리의 문화에서는 안녕 개념을 영적인 안녕, 생태적 안녕, 친족의 안녕, 경제적 안녕 이라는 네 가지 상호 연관된 결합으로 본다. 안데스 문화에서 ‘좋은 삶’이란 공동체 안에서 타인, 자연과 더불어 삶을 충만하게 영위하는 것을 뜻한다.
73 우리는 도넛 안에서 살 수 있을까.
경제학자 팀 잭슨Tim Jackson이 아주 훌륭하게 표현했듯이, 우리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에게 그리 오래가지 않을 인상을 심어주려고 필요하지도 않는 물건을 사고, 갖고 있지도 않은 돈을 쓰도록 계속 설득당하’는 상태다.
둥지를 차지한 뻐꾸기? GDP 성장이라는 뻐꾸기는 대공황, 세계대전, 냉전시대, 경쟁 시대에 급부상했고 지난 70년간 경제학의 사유를 지배해왔다.
82 큰 그림을 보라. 문제는 이 그림에 그려지지 않는 것들이다. 시스템 이론 사상가인 존 스터만에 따르면 ‘한 모델의 가장 중요한 가정들은 그 모델을 이루는 방정식 안에 있지 않고 방정식 밖에, 기록된 문서가 아니라 기록되지 않는 곳에, 또 컴퓨터 화면의 여러 변수에 있지 않고 그 변수들을 에워싼 빈 공간에 있다’.(잘못된 가정과 전제라면 결론이 옳을 수 없다!)
115 우리의 자화상. 합리적 경제인은 주류 경제학 이론의 핵심에 자리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인간이 나타났는지는 교과서에서 깨끗하게 지워졌다. 이 초상화는 개념과 방정식으로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인간을 그리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존재여야 한다.
혼자 살아가고, 손에 쥔 건 돈뿐이며, 머릿 속은 온통 계산뿐인데다, 마음속에는 오로지 자기밖에 없는 존재.
계산적 사고에서 근삿값 사고로. 1950년대 이후 허버트 사이먼은 동료 경제학자들과 달리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합리성이란 심각하게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이후 행동경제학으로 발전)
150 완전히 해롭게 우리 자신과 다시 만나자.
그런데 그때마다 항상 나오는 세 가지 이미지가 있었다. 공동체로서의 인간,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인간, 그리고 서로 의지하는 곡예사로서의 인간 이미지였다.
156 엔지니어의 철모도 벗어버리자. 철모 대신 정원사의 장갑을 낄 때다.
177성공한 자가 또 성공한다. 불평등의 동학.
그런 불평등은 뒤쳐진 이들이 더 많이 혁신하고 노력하도록 자극한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세계는 본질적으로 불균형하고 또 강화시키는 되먹임 회로가 실로 강력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부유한 자들에겐 더 부유해지는 선순환 고리가, 가난한 이들은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 고리가 작동.
경제학자들은 엔지니어에서 정원사로 업종을 바꿔야 한다. 스패너와 컴파스를 버리고 정원사의 장갑과 전지가위를 집어들 때다.
190 윤리적이 되자. 경제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복잡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의미 있는 결과를 하나 더 얻게 된다. 경제 정책 입안에서 윤리가 차지하는 위치에 관한 것이다…복잡계 시스템에 개입할 때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불확실성과 다른 사람의 삶과 목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책임이 결합된 직종이라면 비단 의학만이 아니더라도항상 윤리가 핵심에 있을 수밖에 없다.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아놀드 슈워제네거.
그런데 우연찮게도 이 구호는 20세기 후반을 지배한 경제철학을 간명하게 요약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나라든 더 평등하면서도 더 부유한 사회가 되려면 먼저 극도의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하지만 경제에 관한 한 이 구호는 아무 증거도 없는 잘못된 신앙이었다.
경제 성장이 불평등을 줄여주기를 기다리지 말라.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대신 분배를 설계하는 경제를 만들라.
기업의 주된 임무를 다시 규정하라. (주주이익의 극대화?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삶을 만들자!)
이제는 모두가 경제학자다
우리의 도넛 경제학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비전을 제시한다.
21세기의 과제가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생명의 망 속에서 모두 함께 번영하는 경제를 만들어내는 것. 그리하여 우리 모두 도넛의 안전하고도 정의로운 공간 안에서 균형을 이루며 삶을 꽃피우는 것이다.
성채를 무너뜨리자.
꿈쩍 않는 대학들? 낡은 사고방식으로 지켜가고 있는 기득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