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해고하다. 명인. p207
#자본주의를 해고하다니_엄기호
귀농이 아니다. 회사와 학교를 자신들이 해고하고 제 삶답게 살겠다고 시골로 내려간 것이라고 한다.
자본주의를 해고하다니, 너무 재밌다.
그러고 보니 자본주의는 언제나 우리를 철들지 못하고 자본에 의지하고 살아 가며 사람도, 시간도, 지리도 읽지 못하는 철부지로 만들어 버리지 않는가? 아, 시골에서 자라 몸으로 언젠가 딸기 ‘철’이고 참외 ‘철’인지를 바람의 온도로 알던 내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철’, 그 ‘철’을 저자와 그의 가족이 다시 되찾는 ‘철 드는 이야기’다.
11 “저는 귀농이 ‘대안’이라고 생각해서 시골로 이사 온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만들어 가는 데 있어 ‘다른 상상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힘부로 ‘이것이 대안이다’라고 말하는 선동을 ‘대안은 없다’는 선동만큼이나 신뢰하지 않는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 혹은 원래부터 주어졌던 자연스러운 것들이 ‘골고루 나누어지게’ 하기 위해 연구하고 발명하는, 그런 게 과학기술이었으면 좋겠다.
13 언제나 내가 무엇인가를 누릴 땐, 그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농민들의 삶에 무지하고 무관심한 도시 사람들에게 자주 화가 나지만, 도시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생태주의자들에게도 화가 날 때가 많다. 결국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꾸만 지워 버리니까.
그런 의미에서 ‘개인의 탈주’와 ‘구조의 변혁’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음을 우리 부부가 도시를 떠나 ‘다른 삶’을 살아보고자 선택한 것은 그것이 대안이어서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선택이 ‘다른 상상력’의 바탕과 토대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19 ‘남들도 다 그렇게 살겠지…’하는 생각도 별로…나름 삶의 의미를 찾아보겠다고 없는 시간과 에너지를 더 쪼개서 쓰다 보니 우리의 생활은 그만큼 더 ‘소비’로 대체되었다.
20 우리는 결국 자본주의 체제가 약속하는 장밋빛 미래의 유혹에 속지 않았지만, 살아남으려면 속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가르치고 싶은 삶과 보여 줄 수 있는 삶은 얼마나 다른가
우리는 우리의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우리의 현재를 낱낱이 대면하게 되었다. ‘우리는 행복한가?’ 따위의 질문은 사치였다. 대신 우리는 ‘이게 사는 건가?’ 묻곤 했다. 이런 의심이 떠오르자 둘 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끊임없이 질문이 이어졌다. 그래서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는 대개 질문으로 끝나곤 했다.
22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으면 안 될 꼭 필요한 것은 대개 ‘짓는다’라고 표현하더라. 농사도 짓고, 밥도 짓고, 옷도 짓고, 집도 짓고…
24 결국 우리는 직장을 ‘해고’했고, 아이들은 학교를 ‘해고’했다.
27 돈 안 되는 이런 노동은 우리가 지금까지 해 왔던 노동과 어떻게 다른가? 이 노동은 왜, 언제부터, 대체 누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하거나 해도 그만이고 안 하면 더 좋은 부차적인 노동이 되었나? 서울에서 노동하며 떠올렸던 질문들에, 우리는 이제 ‘다른 노동’으로 답하며 살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의 ‘몸’으로 삶과 노동에 관한 또다른 질문들을 떠올리며 살게 될 것이다.
32 “이 집은 아무래도 농약 안 치고 이것저것 심어 백화점 맹글어놀 거 아니겄어? 집 앞 밭은 동네사람들 다 지나다이면서 잔소리 해싸서 못 한당께. 풀 뽑아라, 농약 쳐라 간섭해싸믄 골치아퍼부러. 좀 심들어도 동네사람 눈에 안 띄는 곳이 낫제.” 속 깊게 우리 생각을 해 주시는 집주인 내외에게 감동하고 있는데, 허걱~ 이 동네 밭은 한 단지에 700평 이하는 없단다.
34 “도시사람들은 몽땅 철부지들이여. 자네들도 그동안 도시에서 철이라곤 모르고 살았을 텡께. 올해는 그저 철이나 배워. 급할 것 하나투 읎어.”
36 게으르게 살자고 시골에 온 인간들이 게으른 게 무서워 저도 모르게 일을 만들어 하는 꼴이라니. 참, 너무 오래 노예로 살았던가, 싶다.
43 시골에 온 후 우리에겐 먹는 일이 몽땅 공부다
46 ‘철’ 따라 먹는 것과 아무 때나 먹는 것의 차이? 시장에서 돈 주고 사다 먹는 것과 자연이 주는 대로 먹는 것은 여러 모로 큰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는 물론, ‘철’따라 먹는 것과 아무 때나 먹는 거다.
제철 먹을거리 달력? 그때 그때 달라요!
48 농사 월력 프로젝트는 꽝으로? 그때그때 달라요. “몸으로 겪어 이제 알았으면 됐어”
정작 필요한 건 엑셀 파일에 합리적으로 정리해 놓은 월별 먹거리가 아니라 오늘 해가 떴는지 안 떴는지,…하늘을 보고 사는 거다….날씨와 물때가 맞을 때를 기다리는 것. 철은 그렇게 그냥 기다리는 거더라.
55 “불과 2년 전인데, 대체 서울에선 이맘때쯤 뭘 먹고 살았지? 왜 난 오늘도 내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요리를 하게 되는 거지?”
59 시장에서 사다 먹지 않고 자연이 주는 대로 먹는 것은 한마디로 식생활 ‘문화’ 자체를 바꾸게 되는 일이다.
62 “농민들이 농사짓기도 쎄가 빠지는데, 언제까지 도시 것들 치다꺼리나 해 주며 살아야 한당가?”
도시사람들이 배추가 아니라 절임 배추를 사고, 제철꾸러미 사업을 하든 생협 활동을 하든 생산자 중심이 아니라 점점 더 소비자 중심으로만 모든 일이 진행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나왔던 말이다.
75 생협이니 뭐니 유기농은 따져 가면 먹어도 농민들의 현실은 나 몰라라 하는 윤리적 소비자들에게, 옆 사람의 담배연기엔 질색을 하면서 핵발전소나 송전탑을 짓는 일은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제 몸이 상하거나 말거나 화학농에 기계농에 일년 열두 달 뼈빠지게 일하고도 대개 빚더미에 눌려 사는 농민들의 현실을 생각하면, 농촌과 농민을 버리다시피 한 이 나라에서 이유야 어쨌든 여전히 땅을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시 볼 수밖에.
82 누구에게 선물할 일이 생기면 ‘무엇을 살까’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까’ 고심하다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전학가는 친구에겐 종이접기로 여덟 시간이나 걸려 만든 축구공을, 생신을 맞은 할머니에겐 친구에게 얻은 구슬로 만든 비즈 반지를,…만들어 주던 우리 아이들.
90 도시의 투기꾼에게 시세보다 높은 땅값으로? 그런 곳은 반드시 마을사람들의 인심이 사납다.
95 농사가 됐든 내 손으로 거두는 게 많아지면서 집에 대한 생각은 또 여러 모로 달라진다. 양옥집은 무척 불편하다…나는 그제서야 농사가 기본인 시골집의 정주간이 왜 마루 바깥에 있고 신발을 신고 드나들게 지어졌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 꼴랑 손바닥만 한 밭이라도 농사를 짓는 삶과 짓지 않는 삶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정말 천지 차이더라니.
101 읍내 아파트로 이사. 가만히 생각해보면 좀 어이가 없다. 칠을 하거나 꾸미지 않은 채 쓰다가 낡아서 그렇지 아이들이 원목으로 공들여 만든 책꽂이보다 그깟 MDF에 시트지나 붙여놓은 책장이 더 거실에 잘 어울린단 말인가? 그런데, 확실히 아파트에서 그게 더 깔끔해 보인다(영혼없는 신도시의 말쑥함이란!-정기용)
125 오로지 몸으로 살 때만 경험으로 배울 수 있는 지혜는 더이상 우리에게 없다. 과학은 오로지 시험지에 정답을 맞히기 위해서 필요할 뿐.
아무리 인문학 열풍이 불어도 사람의 무늬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매우 드물다. 사람과 마주 있어도 첨단 기계에 코를 박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돕고 기대야 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일엔 매우 무능하다.
130 면 단위 마을에서 다른 면 단위로 움직여야 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시간 맞춰 다니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길은 사라지고 도로의 시대로)
131 시골에 와서야 책은 공공재여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고, 그 후론 읽고 싶은 책이 있거나 없거나 부러 신간 도서 목록을 챙겨가며 희망도서 신청을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 건 매우 큰 부조다.
단순히 학비 등이 들지 않는다는 뜻에서만이 아니라 유행 따라 필요한 게 생기는 아이들이 아닌 것이 그 이유다.
145 지금껏 살면서 단 한 번도 ‘비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내 노동력의 대가를 계산해 본 적이 없는 탓이다…우리는 얼마나 뼛속 깊이 자본주의적인가.
149 시골살이의 참맛을 누리고 살기 위해서는 역시 얼마나 돈을 버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돈을 적게 쓰고 살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우리는 먹고 먹히는 세상이 아니라 서로 먹고 먹이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매우 어렵고도 기대되는 숙제다.
163 녹비작물처럼? 애초에 거름이 되기 위해 태어났대도 그리 나쁘진 않은 생이겠구나…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거름은커녕 남의 희생을 갉아먹으면서 살고 있진 않을까. 나는 과연 누군가를 먹이며 살고 있을까.
170 노동의 가치를 논할 때 어디서든 흔히 주고받는 질문이 있다. “거북선은 누가 만들었나요?” 교육을 시작하기 전에는 당연히 “이순신”이라고 대답했을 법한 학생들도 교육이 진행되면서 다투어 “노동자요.”라고 대답한다.
171 총파업 현장의 구호들. “해고는 살인이다” “최저임금 1만 원”…어쩌면 그건 그냥 자본자가 권력을 향해서만 들이대는 구호가 아닐까? 우리 자신에게는 결코 아니고 말이다. ‘돈보다 생명’, ‘돈보다 건강’, ‘돈보다 여가’, ‘돈보다 이웃’, ‘돈보다 자연’…노동 현장에 이런 구호들이 넘쳐날 때에야 우리가 비로소 세상을 멈출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 아이들의 삶도 ‘시험보다 놀이’, ‘시험보다 경험’, ‘시험보다 친구’, ‘시험보다 진짜 공부’로 가득찰 테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172
183 “엄마, 대체 왜 학교는 공부를 못 하게 해?”
185 아이들이 크는 것을 지켜본다는 건, 끊임없는 기다림과의 싸움인 것 같다.
189 때때로 나는 잔소리를 퍼붓는 것으로 내 불안을 감추지 못했는데 당연히 그때마다 아이랑 다투게 되었다.
191 “꿈이 꼭 있어야 돼? 엄마는 초등학교 때 지금 하고 있는 교육 활동가가 꿈이었어?” 아이 앞에서 나는 창피해서 몸둘 바를 몰랐다….정작 내가 놓지 말고 살아야 할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다.
192 “엄마, 또 앞서간다. 항상 나보다 딱 한 발짝만 뒤에 있으랬지?”
꿈을 꿀 시간도 주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물어대은 “꿈이 뭐냐?”는 질문은 아이들에게 폭력적이다.
우리 부부가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꿈꾸는 것은 바로 아이들의 자립이다.
195 우리 부부는 우리 아이들의 남다른 선택에 대해 불안하지 않냐고 다른 부모들이 물을 때마다 되묻곤 한다. “남들과 똑같이 키우면 자신의 미래가 안 불안한가요?”
우리가 기댈 것은 금언처럼 새기는 단 하나의 진실밖에 없다.
“자식은 부모가 바라거나 가르치는 대로가 아니라, 부모의 옆모습을 보고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