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하여. 수전 손택. p284
“사진의 등장과 더불어 이제는 이미지의 생태학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2004년 12월 28일, 수전 손택은 뉴욕의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기념 암센터에서 골수성 백혈병으로 이 세상을 등졌다. “거짓 이미지와 뒤틀린 진실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사상의 자유를 수호해 왔다.”는 독일출판협회의 헌사에 걸맞은 삶이었다. 돌이켜보면 수전 손택은 당대의 유명 시사지 『파르티잔 리뷰』에 「지금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1966)를 발표하며 뒤틀린 진실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거짓 이미지’와의 싸움은 이 책 『사진에 관하여』(1977)와 더불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제 손택은 타인의 고통을 일종의 유흥거리로 뒤바꿔 버리는 이미지의 본성을 다룬 『타인의 고통』(2003)과 미군의 아부그라이브 포로수용소 학대 사건을 담은 사진을 비판한 에세이 「타인의 고문에 대하여」를 남긴 채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니 현실을 가리는 ‘거짓 이미지’와의 싸움은 아직 살아 있는 우리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게 된 셈이다.
사진이 도덕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는 그에 상응하는 정치의식이 존재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정치가 없다면, 역사를 수놓은 살육 현장을 담은 사진일지라도 고작 비현실적이거나 정서를 혼란시키는 야비한 물건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17 플라톤의 동굴에 갇혀 지내던 우리의 상황, 우리의 세계를 뒤바꿔버린 것은 바로 이처럼 만족할 줄 모르는 사진의 시선이다.
18 사진을 수집한다는 것은 세계를 수집하는 것이다.
39 움직이는 이미지보다는 사진이 기억하기 훨씬 쉽다
베트남 전쟁 당시 전쟁의 만행을 수백 시간 보여준 텔레비전보다 훨씬 더 반전 여론을 들끓게 만들었던 것은 아마도 1972년 세계 모든 신문의 제1면을 장식했던 사진, 즉 미군의 네이팜탄에 맞은 뒤 두 팔을 벌린 채 고통으로 울부짖으며 도로로 뛰어나오던 어느 벌거벗은 남베트남 어린아이의 정면 사진이었을 것이다.
41 베트남 전쟁은 야만적인 식민전쟁으로..그러나 이와는 달리, 한국 전쟁은 자유 진영이 소련과 중국에 맞서 벌이는 투쟁의 일부로 받아들여졌고, 이런 특성을 감안할 때 무제한적으로 화력을 퍼붓는 미군의 잔인함을 사진에 담는다는 것은 부적절한 행위라고 여겨졌다.
한 사건이 어떤 의미를 갖게 되더라도, 정확히 말해서 사진으로 찍을 만한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인가가 되더라도, 그 사건으로 만들어 주는 결정적인 요소는 이데올로기이다.
사진이 도덕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는 그에 상응하는 정치 의식이 존재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정치가 없다면, 역사를 수놓은 살육 현장을 담은 사진일지라도 고작 비현실적이거나 정서를 혼란시키는 야비한 물건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42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줄 때 사진을 충격을 줄 수 있다. 불행히도 이런 도박은 여전히 성행 중인데, 무서운 이미지를 퍼뜨리는 것이 그 방법 중의 하나이다.
46 카메라가 기록해 놓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세상을 알게 되리라, 사진이 함축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이해한다’는 것은 이와 정반대의 일이다. 이해라는 것은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지 않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즉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48 사람들은 경험한다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으로 자꾸 축소하려 한다. 결국 오늘날에는 경험한다는 것이 그 경함을 사진으로 찍는다는 것과 똑같아져 버렸다.
19세기의 가장 논리적인 유미주의자였던 말라르메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결국 책에 씌여지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도 모든 것들이 결국 사진에 찍히기 위해 존재하게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