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수업. 한동일. p289
16 라틴어는 지금도 우리 생활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유비쿼터스, 비전, 아우디, 에쿠스, 아쿠아, 스텔라 등과 같이 익숙한 말들 모두 라틴어이거나 라틴어에서 온 말들입니다. 대학이나 기업이 표방하는 모토 중에도 라틴어로 된 것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라틴어로 말한 것은 무엇이든 고상해 보인다’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Non tam praeclarum est uscire Latinum qual turpe mescere.
논 탐 프래클라품 에스트 쉬레 라티눔 쾀 투르페 네쉬레.
라틴어를 모르는 것이 추하지 않은 만큼 라틴어를 아는 것도 고상하지 않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저술가로 라틴어의 대가로 불리는 키케로가 한 말입니다. 그는 더 나아가 ‘지긋지긋한 라틴 문학’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라틴어가 공용어였던 로마 제국에서 조차 이 언어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모르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이나 편견은 그때에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라틴어는 문법이 굉장히 복잡합니다. 명령법, 부정법, 분사, 동명사, 목적분사를 빼 대략의 능통태만 해도 60여 가지가 넘습니다. 동사의 다양한 어미변화는 물론이고 수동태의 어미변화는 더 복잡해요.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고 공부의 가시적인 성과를 보기도 전에 이미 질려버립니다. 하지만 이 고비들을 잘 넘기고 복잡한 문법 체계를 익히고 나면 확실히 공부하는 훈력이 됩니다. 어렵고 미묘한 문제와 마주해도 별로 힘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신기한 일이죠? 오래 해보면 깨닫게 되겠지만 라틴어 공부는 평범한 두되를 공부에 최적화된 두뇌로 활성화시키고 사고체계를 넓혀줍니다.
22 학생들은 이 강의를 단순히 라틴어 수업이 아니라 ‘종합 인문 수업’에 가깝게 느꼈던 겁니다. 강의에서 라틴어뿐만 아니라 라틴어를 모어로 가진 많은 나라들의 역사, 문화, 법 등을 비롯해 그로부터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을 총체적으로 다루다보니 그렇게…
27 언어 공부를 비롯해서 대학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양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틀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학문을 하는 틀이자 인간과 세상을 보는 틀을 세우는 것이죠.
73 특히 라틴어로 성적을 매기는 표현을 주지할 필요가 있습니다.(긍정적 평가어!)
Summa cum laude 최우등/ Magna cum laude 우수/ Cum laude 우등/ Bene 좋음(잘했음)
81 대학은 취업을 위해 졸업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스스로에 대해 들여다보고 더 나아가 진리를 탐구하며, 자기 삶을 사랑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어야 합니다. 학생들도 대학 생활 동안 맹목적으로 어떤 목표를 세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우선해야 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세심하게 관찰해야 하죠. 봄철의 아지랑이가 무심히 길을 걸을 때는 보지지 않고 멈춰 서서 유심히 관찰해야 보이듯이, 내 마음속의 아지랑이도 스스로를 유심히 들여다봐야 볼 수 있는 것이죠.
83 그런데 겸손한 사람이 공부를 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겸손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실패의 경험에 대해 지나치게 좌절하거나 비관하기 쉽습니다. 이것은 ‘실패한 나’가 ‘나’의 전부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건 자기 자신을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일종의 자만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한 번의 실패는 나의 수많은 부분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것 때문에 쉽게 좌절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또 다른 ‘나’의 여집합들의 가능성을 볼 수 있어야 해요.
88 ‘하비투스’라는 말처럼 매일의 습관으로 쌓인 공부가 그 사람의 미래가 됩니다.
217 나는 욕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218 스피노자는 욕망에 대해 선하다거나 악하다고 단정하기에 앞서 욕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어요. 이제까지 사람들은 욕망에 대해 비난하기만 했지 정작 누구도 인간의 정서와 욕망에 대해 제대로 규명한 적은 없었던 겁니다. 스피노자는 욕망을 대할 때 전통적인 견해와 달리 기하학적 방식으로 다가갑니다. 욕망은 단순히 심리적 현상도 아니며, 종교적·도덕적 차원에서 단죄되어야 할 것도 아니라는 것이죠. 그에게 욕망이란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하지도 않습니다.
그에게 욕망이란 모든 자연 만물이 따르는 동일한 자연법칙에서 생겨난 것에 불과합니다.
242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은 타인의 방법이 아니라 나의 방법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243 Verumtamen oportet me hoodie et cars et sequenti die ambulare.
사실은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의 길을 잃지 않고 잘 가고 있습니까?
그 길을 걸으며 무엇을 생각합니까?
그 길 위에서 지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