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님 웨일즈·김산. p505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추천의 글_『아리랑』과 나_리영희
나와 님 웨일즈의 『아리랑(Song of Arirang』과의 만남은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60년 봄이었다. 훗날 장지락으로 본명이 밝혀진 주인공, ‘어느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생애에 관한 기록을 처음 읽으면서 받은 감동은 그 후 나의 삶의 방향과 내용에 지울 수 없는 크고 깊은 흔적을 남겼다.
이 나라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던 지난 30년의 지적·사상적 암흑 속에서 가끔 『아리랑』을 펼치는 것은 나에게 큰 위안이었다. 모색하다 지치고 좌절 때문에 실의했을 때는 ‘김산’을 찾았다. 그는 내가 감히 미칠 수 없는 높은 곳에서 나에게 빛이 되어 주고 힘이 되어 주곤 했다.
8 내 나이 30세. 6·25 전쟁, 7년간의 소모적인 군대 복역을 강요당하고 나와, 남들보다 뒤늦게 의식의 눈을 뜨이기 시작한 청년이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면서 해답을 찾아 헤매던 때였다.
‘김산’의 삶이 바로 내가 찾고 있던 물음에 대한 답변이었다. 『아리랑』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과 감동은 3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무슨 표현의 수단과 방법으로도 다 그릴 수가 없다.
나는 이 책의 감격을 도저히 독점할 수가 없었다. 마음과 사상이 통하는, 지금은 모두 60대를 넘은 벗들의 손에서 손으로 나의 『아리랑』은 전달되고 읽혔다.
17 김산에 대해 설명할 때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현대인’의 정신과 ‘현대인’의 심리를 소유한 사람이라고.
19 특히 김산은 추종자가 아니라 천부적 지도자의 자질을 타고난 진보적 사고의 소유자로서 유망하고 훌륭한 모범적 인물이었다.
20 그는 말했다.
“내 인생에서 오직 한 가지를 제외하고 나는 모든 것에서 패배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승리했다.”
21 김산은 일본경찰의 기록에서 보이는 ‘혼합된 마르크시즘’ 혹은 1920~30년대의 동양이 겪은 상황 그래서 시대가 낳은 순교자였다.
26 내가 그를 만난 것은 옌안에서였다. 그곳에 머물러 있던 1937년 초여름 어느날, 나는 루쉰 도서관에서 영문책자를 빌려간 사람들의 명단을 훑어보고 있었다. 불과 이러저러한 몇 권의 책만이 대출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한 사람의 이름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 사람은 여름 내내 모든 종류의 책과 잡지를 수십 권씩이나 빌려가고 있었다….”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29 “중국에서는 맑은 강물이나 시냇물을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조선사람들은 강에서 투신자살할 수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답니다. 중국의 강들은 그러기엔 너무 더럽지요.”
35 일본은 화려하기는 하지만 그림엽서류의 디자인처럼 약간은 인공적이다. 반면에 조선은 순수하고 자연적이다.
43 여기 있는 이 사람은 중국과 조선의 현대사를 주조해낸 저 수많은 대비극의 타오르는 불덩이속에서 단련되고 형성된 사나이였다. 또한 단련된 의지와 결의의 강철 같은 도구뿐만 아니라 감각과 지각을 갖춘 정적(情的)인 존재로서 시련 속에서 나타난 사나이였다.
47 그의 삶의 이야기는 전 극동의 변화무쌍한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새롭고도 싱싱한 해석이었다.
무엇보다 희귀한 것은 그가 이 모든 다양한 체험들을 모조리 경험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경험을 뛰어난 설화의 정신과 형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현대는 사람들의 정신이 시험받고 있는 시대이다. 우리는 백 년을 단 하룻만에 파악해야 한다. 역사는 뇌세포의 진동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48 김산은 우리 시대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리고, 가장 추악하고, 가장 혼란스러운 대변동 속으로 내던져진 한 명의 민감한 지식인이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상주의적인 시인이요, 작가였다…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했지만 또한 변화와 진보를 확신하였다.
그는 객관적인 사실의 주인공이었지 주관적인 언어의 노예가 아니었다. 육체는 빵으로 살찌지만 정신은 기아와 고통으로 살찐다.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에 의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어야만 비로소 지식인은 행동하고 결정할 수 있게 된다. 김산은 이 점을 극복하였으며, 그래서 지식인적 패배주의라는 질병에 희생되지 않았던 것이다.
49 놀라운 기억력과 뛰어난 이야기 감각. 몇 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암호로 일기를 써왔던 것이다.
50 그의 이야기를 읽기 쉬운 영어로 고칠 필요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필자의 해석을 가하지 않고 김산 자신이 말한 대로 썼다.
그러므로 이 책의 장점은 이 책의 역사적이면서도 자서전적인 가치이다.
52 “내 젊은 시절? 틀림없이 저는 이제 겨우 서른두 살밖에 안되었지요. 하지만 저는 내 젊음을 어디에선가 잃어버렸답니다.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56 나에게 젊은 시절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마도 조선이란 나라가 자기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춘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60 조선에는 민요가 하나 있다. 그것은 고통 받는 민중들의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옛 노래다.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선율에는 슬픔을 담고 있듯이, 이것도 슬픈 노래다.
61 청년 반역자들. 이런 젊은이 중의 한 명이 옥중에서 노래를 한 곡 만들어서는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천천히 아리랑고개를 올라가면서 이 노래를 불었다. 이 노래가 민중에게 알려진 뒤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이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의 즐거움과 슬픔에 이별을 고하게 되었다.
이 애끓는 노래가 조선의 모든 감옥에서 메아리쳤다.
이윽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최후의 권리는 누구도 감히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아리랑’은 이 나라의 비극의 상징이 되었다. 이 노래의 내용은 끊임없이 어려움을 뛰어넘고 또 뛰어넘더라도 결국에 가서는 죽음만 남게 될 뿐이라고 하는 의미를 있다. 이 노래은 죽음의 노래이지 삶의 노래가 아니다. 그러나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수많은 죽음 가운데서 승리가 태어날 수도 있다.
63 내 짧은 인생살이 가운데서도 나는 조선이 아리랑 고개를 몇 고개나 올라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때마다 꼭대기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로지 죽음뿐이었다.
67 이렇게도 많은 억압과 고통을 감내하기에는 조선은 너무도 작은 나라이다. 하지만 아직 종말은 오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도 최후의 희생이 마침내 승리를 가져오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다.
내 인생에서 행복했던 기억은 하나도 없다.
72 어른들 간에 단발문제로 논란이 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문제가 마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 듯이 보였다. 상투를 잘라버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한테 배척받는 존재였다…단발을 했다는 것은 그들이 독립협회 회원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85 우리 조선인은 모두가 이상주의자인데. 이상주의는 역사를 창조한다.
96 법에 의하면 살인죄에 대해서만 사형을 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놈들은 사람들을 체포하는 대신에 거리에서 학살하였던 것이다. 이 얼마나 뛰어난 일본인 특유의 전문수법인가!
99 사이토 총독은 정책을 바꿔 평화적 통치방침을 세우고 대중운동을 막기 위해 우익을 이용하려고 노력하였다.
100 1919년 이후에는 조선자본자의 힘이 재인식되어 사이토 총독은 봉건분자 대신에 우익자본가들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 정책은 우익을 민족운동에서 멋들어지게 분리시켰다.
117 조선총독부는 농촌의 쌀값을 낮게 묶어두어 커다란 이익을 남김으로써 간접적으로 민중들을 약탈했다.
120 나는 계급적인 증오, 민족적 증오, 개인적 증오, 국가 간의 증오를 수없이 봤다. 너무나 많이 봤기 때문에 나에게는 잔인함이 더는 도덕적 가치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승리에 자극되었고 패배로 각성하였다. 그러나 승리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잔혹성은 긍정한다. 잔혹성을 띠지 않는 어떤 역사적 변혁이 일어난다면 커다란 감명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름다운 꿈에 지나지 않는다. 오래 전에 나는 청년시절의 유토피아적 환상을 깡그리 떨쳐내버렸다.
123 압록강을 건너서…이 실패로 마음이 언짢아서 나는 홀로 700리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 여행은 한 달 이상이나 걸렸다.
182 나는 인간의 욕망과 필요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물의 경우 욕망과 필요는 동일하지만 인간은 자기의 욕망과 필요를 서로 일치시킬 수 없다.
184 나는 혁명 사업을 하면서 살아가야지 여자나 돌보며 살 수는 없다. 1923년, 나는 결코 결혼하지 않을 것이며 연애의 희생물이 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였다.
190 비록 달성하려는 방법은 달랐지만, 모든 조선인들은 오로지 두 가지를 열망하고 있었다. 독립과 민주주의. 실제로 그것은 오직 한 가지만을 원하는 것이었다. 자유.
197 톨스토이. 그는 언제나 해결책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정직했기 때문에 자기를 둘러싼 현실이 아직 해결의 타당성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아래서 해결책을 만들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198 톨스토이는 모든 인간의 평등을 믿었다. 그리고 인간에 관한 모든 문제와 인간의 역사발전의 특질을 논하고 있다. 나는 그의 『인생독본』을 제일 좋아해서 4권으로 된 일본어 번역본을 읽고 또 읽었다. 내가 주머니에 넣고 다닌 책이 그 책이다.
219 수많은 군중들이 형장까지 따라갔지만 울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이렇게 잔혹한 나라에서는 살 수가 없어. 절대로, 절대로, 못 살아. 이들은 사람도 아니야.”
236 코뮌 집회에서 채택된 강령은 다음과 같다
노동자를 위하여
-하루 8시간 노동, 노동법, 실업보험, 노동조건 개선.
농민과 병사를 위하여
-토지, 그 보장으로서 모든 지주토지의 재분배.
빈민을 위하여
-충분한 식량으 보장
여성을 위하여
-남성과 동일한 임금과 동일한 법적 지위의 보장.
289 거의 반 년 동안을 산 속에서 아무런 바람막이도 없이 잠을 잤고, 깊은 물속을 행군했다. 거의 밤마다 비가 내려서 잠잘 때면 풀잎에 맺혀 있는 물방울로 몸이 흠뻑 젖었다. 비를 막을 것이라곤 삿갓 하나밖에 없었고 갈아 입을 옷도 없었다. 그 당시 하이루펑 생활로 받은 타격을 원래대로 회복하지 못했고, 그 이후 건강이 계속 좋지 못했다. 심지어는 말라리아까지도 1929년에야 겨우 떨어졌다.
346 처음에는 서로의 장점만을 보았지만, 차후에는 일체의 단점이 드러났던 것이다.
367 “조선에서 아주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죽음과 패배의 노래입니다. ‘아리랑’이지요.”
375 여섯 차례의 ‘물고문’. 그 당시는 모르고 있었지만 폐가 망가졌기 때문에 폐결핵도 걸렸다.
397 너무나 진리에 가까운 질문을 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그런 질문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버릴 것이다. 자신에게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기가 틀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나름의 신념과 오류를 지닌 채 행복하게 죽어가도록 내버려두어라. 근본적인 질문으로 타인의 영혼을 괴롭히지 말라. 자기가 원하는 문제에 대해 자기 나름의 해답을 찾도록 내버려두어라.
399 나는 잭 런던(Jack London)의 저서들을 다시 읽었다…그 사람은 내가 알고 있는 미국 작가 중 유일하게 보편적 경험이란 형태를 가지고 프롤레타리아적 해석을 제시한 인물이다…노동자에 관한 그의 이야기는 어느 나라의 경우에도 그대로 들어 맞는다. 그는 가난과 힘든 투쟁의 의미를 알고 있으며 사람들의 성격을 이해하고 있다.
424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시키지 못한다. 수단과 목적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단은 목적에 의해 유기적으로 창출되는 것이다.
425 지도자의 타락은 우리의 목적을 파기해버릴 것이다. 변절과 음모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설령 우리의 사업이 달성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정직하게 죽는 편이 더 낫다.
426 지도부는 반드시 정직하고 솔직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추종자뿐만이 아니라 그 자신까지도 파멸된다.
464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나 자신에 대하여-승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계속 전진할 수 있다는 자신을 얻는 데는 이 하나의 작은 승리만으로도 충분하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경험했던 비극과 실패는 나를 파멸시킨 것이 아니라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역사의 의지를 알 사람은 누구일까?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폭력을 뒤엎지 않으면 안 되는 피억압자들뿐이다. 패배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사람, 일체의 새로운 세계를 최후의 전투에서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뿐이다.
억압은 고통이요, 고통은 의식이다. 의식은 운동을 의미한다.
인간은 그 자체가 다시 태어날 수 있으려면 수백만이란 사람이 죽어야 하고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고통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이 객관적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유혈과 죽음의 광경, 그리고 어리석음과 실패의 광경은 더 이상 미래에 대한 나의 통찰력을 가로막지 않는다.
465 중요한 것은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민중과의 계급관계를 유지하는 것. 왜냐하면 민중의 의지는 역사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민중은 깊고 어두우며 행동에 들어가지 전까지는 단 한 마디로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는 소곤거리는 소리와 침묵의 웅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개개인과 집단들은 큰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그리하여 그 때문에 혼란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진실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되는 것이지 큰소리로 이야기되는 것이 아니다.
민중들이 이 작은 목소리를 들을 때, 그들은 손에 총을 잡는다. 마을 노파 한 사람의 긴박한 속삭임만으로도 충분하다.
466 우리 시대 최고의 위대한 민주주의적 대중지도자는 대중을 쫓아가서 앞으로 밀 뿐 대중을 밧줄로 잡아끌지는 않는다.
467 도덕적 용기야말로 혁명 윤리의 정수인 것이다…깨진 돌이나 가장 연한 점토만 가지고 절대로 돌비석을 만들 수가 없다. 살아 있는 인간과 강한 정신이 있어야만 비로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요.
469 대중운동에서 나타나는 변덕스러운 변화는 대중의 판단이 올바르다는 증거인 것이다. 대중들은 변화를 진정으로 반영하는데, 이 변화야말로 진리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즉 변증법적인 것이지 기계적인 것이 아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올바른 평가에 도달하는 과정인 것이다.
사람은 오로지 경험을 통하여 비로소 올바른 판단을 배우고 올바른 판단에 도달한다.
471 거짓을 배우지 않는 자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의 교과서는 잉크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피와 고통으로 쓰여진 것이다. 사람들을 죽음과 실패로 이끌기는 쉽다. 그러나 승리로 이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481 전혀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인간 드라마. 바로 이것이 이 책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