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언어. 양정철. p234
민주주의로 가는 말과 글의 힘
민주화의 마지막 여정 ‘언어 민주주의’
말과 글은 의식의 반영이다. 말과 글을 통해 그 사회 의식 수준을 알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 우리 언어 안에 담긴 문명성, 양식, 이성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싶었다. 극단적 이념의 시대, 대결과 배타 문화가 자리 잡으면선 ‘공존과 평등의 언어’는 설 땅이 좁아졌다. 극단적 효율의 시대, 경쟁과 속도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배려와 존중의 언어’도 설 땅이 좁아졌다. 우리가 쓰는 말과 글에는 이기적·비인간적·일상적 무례가 꽤나 많다.
노엄 촘스키, 에드워드 사피어, 벤자민 리 워프 같은 언어학 석학들은 “언어가 의식과 사고를 지배한다”고 말했다. 언어가 의식과 사고를 지배한다는 명제에 우리가 동의한다면, 민주주의로 가는 지난한 과정에서 언어 민주화를 이루는 것은 바로 민주주의를 채우는 일이다. 물론 민주주의 틀과 구조와 시스템은 정치와 행정을 통해 바꿔야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생활 속에서 시작한다…우리 생활 속 작은 일, 작은 생각, 작은 언어부터 바꿔야 한다.
민주주의를 고도화시키는 단계? 언어 민주주의?!
평등의 언어
동등한 교환.
예부터 어른들은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가르치셨다. 커서 보니 그 말씀은, 뺘저린 정반대 현실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그래도 희망을 주기 위한 당위의 말씀이었다. 요새 한국은 아이들에게 그런 말하기가 더 두려운 사회가 돼버렸다.
우리가 흔히 여러 직업군을 부르는 표현 자체가 귀천이 있다.
배려의 언어
고성의 나라.
한국은 고성(高聲) 사회다. 목소리가 크다. 정치인도 목소리가 크고, 시위 소리도 크다. 거리도 가게에서 틀어놓은 음악이나 호객 소리로 시끄럽다. 차분해야 할 방송뉴스조차 고성이다. 소리에 온도가 있다면 한국은 뜨겁다. 언어의 높낮이를 따진다면 한국은 높은 음자리, 하이 데시벨 사회다.
더 이상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전당대회 악몽이 있다…워낙 차분한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하는 습관에다 말수도 적지만, 특히 시끄러운 것은 민폐라고 생각하는 분이었다. 정치도 마찬가지였다. 소리를 크게 질러 연설하는 것, 정치인들만의 말잔치 문화가 무슨 공감이 있으며 우리 정치 발전에 어떤 도움이 될지 회의를 품고 있었다.
먹고사는 게 절박하거나 억울함을 호소할 데가 없는 분들 목소리가 큰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나머지 경우는 바뀌어야 한다. 규제를 엄격히 하는 것도 필요하다.
과유불급. 말과 글의 공통 목적은 공감…정치인이나 책임 있는 자리에 오른 분들 그리고 오르려는 분들은 최소한의 연설 능력을 갖추었으면 좋겠다. 좋은 책이 많이 나와 있다. 참조해서라도 공부를 하는 게 필요하다. 핵심은 간결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짧은 몇 마디 연설로 사람을 휘어 잡은 정치인들 사례는 많다. 영국 윈스턴 처칠 전 총리의 한 학교 졸업식 축사가 유명하다. 현장 모습이 상상될 정도로 간명하다.
포기하지 말라.(잠시 침묵) 절대 포기하지 말라. (잠시 침묵)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단한 일이건 작은 일이건, 크건 작건,
명예로움과 분별에 확신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절대로 ‘포기’를 받아들이지 말라.(끝)
적당한 유머. 국민이 여유를 갖게 된다. 무엇보다 평정심을 준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가 구사하는 유머는 국민으로 하여금 심리적 안정감과 용기를 갖게 만든다. 위기 상황이 아니어도, 숨 막히는 대치보다 융통성 있는 유머로 화해하고 조정하는 기술은 정치 품격을 높인다.
마음을 움직이는 말. 먹고 살기 각박한 시기, 무한 경쟁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 언어는 거칠고 무례해졌다. 무심코 쓰는 많은 언어 가운데 다른 사람이나 상대방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표현이 많아졌다.
데이비드 오길비 일화.
“저는 장님입니다. 제발 도와주세요”에서 “참 화창한 날입니다. 하지만 전 볼 수조차 없어요”로.
그냥 지나치던 사람들이 빈 깡통에 동전을 넣기 시작했다.
공존의 언어
간판에 내걸린 ‘학력’.
대한민국은 심각한 학벌주의 사회다. 망국적 학벌주의는 동네 구석구석 우리 삶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있다.
‘서울내과’, ‘서울치과’. 십중팔구는 “저, 서울대 의대 나왔습니다”라는 표시다.
문 대통령의 ‘선플’ 운동 호소.
“배타와 배제의 논리, 타도와 공격의 언어는 진보의 정신일 수 없다. 짧게 경쟁하고 오래 통합해야 야권이 이길 수 있다”
독립의 언어
각하와 여사님.
각하? 일본군 영향을 받은 우리군 내부에서 일정 직위 이상 고위 간부에게 각하라는 호칭을 썼다. 그러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대통령에게만 각하 호칭을 썼다. 군인들의 역사의식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따라서 대통령 뒤에 각하 호칭을 쓰는 것은 존칭이 아니다. 극심하게 격을 낮추는 꼴이다. 우리가 지금 쓰는 ‘대통령’이란 표현은 그 자체로 극존칭이다. 더 존경을 표할 경우 ‘대통령님’이 최상급 예우 호칭이다. 미국에서 ‘Mr. President’보다 더 존경의 표현으로 ‘Mr. President Sir’라고 부르는 것과 비교할 수 있겠다.
점쟁이 말, 유령의 말.
흔하고 가장 심각한 오류는 방송 뉴스 대부분이 수동태라는 점이다.
“…검찰 수사에도 차질이 예상됩니다.”
우리말은 능동형이 기본 구조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주어로 사람을 내세운다. 사람이 주어가 한 될 경우 생물-무생물-구체-추상-개념 순서가 원칙으로 딱 서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형체가 없는 것을 주어로 내세우는 나쁜 습관이 생겼다. 일본어 번역투와 영어 번역투가 우리말을 오염시킨 흔적이다.
피로 회복? 늘 피곤하길 바라지 않는다면, 이 말은 써선 안 된다!
언어독립 ‘8·15’.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독립선언문. ‘~의’ 만큼은 명백한 일본어투여서 아쉽기만 하다.
본래 우리말은 조사 ‘의’를 잘 안 썼다. ‘소유격 조사’가 아예 없었다. 옛글을 봐도 ‘의’를 찾기 힘들다.
조사 ‘의’ 만큼 많이 쓰이는 일본어투는 ‘~에 있어서’다. 이 역시 일본어 후치사를 그대로 직역한 것이다. 그냥 ‘~에’ 혹은 ‘~에서’라고 해도 충분한데 불필요한 일본어투를 쓸 이유가 없다.
‘창씨개명’ 당한 국토는…인사동과 낙원동 사례에서 보듯 ‘행정구역 폐합 정리’ 명분으로 조선 군 97개, 면 1,834개, 리·동 3만 4,233개 이름을 없애거나 다른 명친으로 바꿨다. 이때 숱한 우리 역사적 고유 지명이 사라지고 말았다.
존중의 언어
구호의 나라. 학창 시절 교훈이나 급훈을 여태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너무 숭고한 내용, 실천하기엔 너무 포괄적인 내용, 학교를 떠난 뒤에도 기억하기엔 너무 의례적인 것들. 일제 군국주의 교육제도가 남긴 흔적이다.
중앙 행정기관이 사용하는 전문용어는 정부와 국민, 공무원과 행정 수요자 간에 의사소통을 가로막는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만큼 정부는 국민에게 충성해야 한다. 세상이 진보하는 만큼 정부의 대국민 서비스도 충실해야 한다…따라서 행정용어도 공무원 편의가 아니라 대국민 서비스 용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판결문에 갇힌 말. 말이 어렵기로는 법률용어, 특히 법원 판결문을 따라갈 게 없다. ‘태양’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의 ‘태양’말고 사물이 존재하는 모양이나 형편, 즉 양태를 뜻한다. 오로지 법률용어로만 쓰인다. ‘모습’, ‘상태’같이 쉬운 말은 기대도 안 하지만 ‘양상’ 정도로 순화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쓰는 언어를 공존·평등·배려·존중의 가치로 말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말이 필요없는 게 있다. 애국이다…가사나 말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애국은 무언의 실천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적어도 우리 국민에게 애국을 계몽하듯 강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음 대통령의 조건. 정치 지도자가 어떤 언어를 구사하느냐에 따라 국민을 화나게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희망을 주기도 한다.
“정치인의 말은 본인이 생각한 것 이상의 사회적 파장을 갖게 된다. 국민에게 말할 때는 어는 경우에나 겸손하고 진실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그 말을 듣는다.”
언어의 추억. 저항의 언어,규격화된 언어, 자본의 언어, 권력의 언어, 공감의 언어
지난 세월 나름 투쟁의 언어, 자본의 언어, 권력의 언어를 모두 경험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공감의 언어였다. 이제 나는 권력의 힘, 돈의 힘보다 언어의 힘이 강한 사회를 꿈꾼다.
우리 정치가 언어로 국민과 소통-공감하는 것 말고 다른 수단은 없다. 언어의 힘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저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