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세계사라는 장르 자체가 서양인들이 만든 것. 인류사에 대해 체계적으로 기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전체적인 비중으로 보았을 때 서양 이야기가 훨씬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죠. 특히 근대 이후의 역사는 철저하게 서양인 관점에서 쓰였답니다. 그런 세계사 교육과정이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됐고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모든 세계사 서적이 같은 방식을 따르죠. 그래서 세계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어요.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통념은 선과 악의 전쟁, 즉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이 악의 제국인 독일 같은 주축국을 막았다는 생각이 가장 강합니다…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본질 자체가 열강의 기득권 다툼이자 제국주의의 모순이 폭발한 것. 그 결과 전 지구적 제국주의가 붕괴되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국제 조약이란 무엇인가
냉전 후 전 세계가 신자유주의에 기초해서 운영되면 WTO(세계무역기구), FTA(자유무역협정) 등 어머어마한 국제 조약을 맺는 것이 그저 단순한 상황 변화가 아니라는 점을,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들의 주요 전략임을 이제는 명확이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독재정권의 역사 속에서도 미국의 기준은 ‘냉전에서 승리하는 것이었다’고 봐도 무방해요. 냉전이라는 국제 질서 아래 동맹국이 반공주의적 태도를 보이면 독재정권일지라도 지지하는 무책임한 행태를 반복합니다.
역사는 언제나 새롭게 해석되어야 가치를 지닙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현대사 역시 우리의 현대사를 이해함에 앞서서 새롭게 숙고되어야 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지식은 통념이 되고, 통념은 더 깊은 성찰로 나아가는 데 방해물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많이 안다’는 것으로 자부심을 느끼고, 역사적 사건에 대해 쉽게 이러쿵저러쿵 평가를 합니다. 그런데 사실 ‘평가’라는 것 역시 대부분 기존의 학문적 평가를 그대로 옮기는 경우가 많고 무엇보다 특정 단체의 연구 결과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하지만 연구는 계속 진행되면 어느 순간 우리의 통념과 배치되는 사실이 나타나곤 한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어디까지나 극우 파시즘 세력과의 전쟁이었으며, 따라서 패전국에 관한 재판이나 강화조약 역시 극우 파시즘과 관련된 부분만 처리하겠다는 입장인 겁니다.
사실 영국, 프랑스 같은 연합국은 대표적인 제국주의 국가이며 가장 많은 식민지를 보유한 나라들입니다…따라서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다고 하더라도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처벌하고 교정할 입장이 전혀 아니었던 거죠.
뉘른베르크 대재판을 보면서 칭찬하고, 도쿄 대재판을 보면서 아쉬워할 수는 있지만,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재판이나 강화조약은 기본적으로 식민지를 살았던 우리 입장, 피압박 민족 입장에서는 모든 면에서 위선적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통을 당한 자, 치열하게 싸운 자 그리고 승리한 자가 각기 다른 세상이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현대 세계입니다.
기술발전, 공장화, 테일러…이제 자율적 노동은 근본적으로 사라지죠.
결국 노동의 역전 현상이 일어나요. 노동 과정을 과학화했기 때문에 과학에 의거해서 노동 조건이 재조직되며, 작업 공구의 디자인부터 조명·난방·화장실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설이 관리됩니다.
결국 산업화 혁명 이후 기계가 중심인 공장에서 사람조차 기계가 되는 새로운 시스템이 탄생한 것입니다.
한반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던 거죠. 맥아더가 이끄는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일본을 개혁하기 위해 수천명의 전문가를 양성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전범을 처단하고, 평화헌법을 만들고, 각종 사회개혁을 추진했어요. 하지만 한반도는 기껏해야 일본의 식민지 정도로 이해하거나 심지어 ‘일본제국의 일부로서 우리(미국)의 적’이라는 인식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그리고 군인 특유의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와 극우적인 정서가 당시의 정치 상황에 매우 중대한 걸림돌이 됩니다.
여하간 상황은 단숨에 좌익과 우익의 세력 대결로 변화합니다. 무엇보다 친일파에게는 더없이 유리한 환경입니다. 반소반공 분위기에 편승하면 ‘비록’ 친일의 과오가 있더라도 민족주의가가 될 수 있고 애국자가 될 수 있는 분위기였으니까요. 중요한 사실은 이 부분을 미군군정은 물론 우익조차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친일파 처단에 관해 신중함을 강조하며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고, 경찰·관료 세력과의 제휴를 통해 사실상 친일파와의 연계망을 적극적으로 구축했어요.
돌아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과정입니다. 전쟁은 3년간 치열하게 치러졌고 무수한 사람이 죽었지만, 사실상 휴전선은 이전의 38선과 거의 차이가 없고 남한과 북한은 모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남한 지역을 3개월간 지배한 북한은 숱한 선전작업과 인민재판, 학살 등을 저지르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으며 비슷한 기간 북한을 지배한 남한 역시 같은 실패를 반복했을 뿐입니다.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모든 전선에서 사용된 총탄이나 화약보다 더 많은 양이 한반도에 투하된 전쟁이었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향한 극단적인 증오심, 민간인 학살을 비롯한 어머어마한 민족적 상처만 남긴 채 그저 봉합되고 만 것입니다.
참으로 기묘한 모습이죠. 서구 정당사가 가치지향적인 성격을 띠며 좌우로 나뉜 데 반해 한국전쟁 이후 본격화된 대한민국의 정당사는 시작부터 ‘이승만 추종 정당’과 그다지 도덕적이지 못한 ‘기득권 보수 정당’의 대립 구조로 발전…개혁적이고 진보적이거나 도덕적으로 우월한 변혁 세력의 공간이 사실상 전무했다는 점이 특기할 모습이에요….기초부터 무너진 나라, 민주공화정을 표방한 나라에서 그나마 민주공화정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장기 투쟁이 이제 비로소 시작된 것입니다.
이승만이 신경 쓴 것은 청년과 학생만이 아니었답니다…비공식적이며 비정상적인 징발체제가 일상화된다는 것은 그만큼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있다는 말. 당시 국회 속기록을 보면 심지어 경찰서장의 요정 출입비로까지 사용됐다는 사례가 지적되기도 하니까요. 이후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괴롭힐 일상적인 부정부패는 이미 이 시기부터 깊숙이 문화화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세계사적 역동성이 사실상 1960년대 대한민국과는 무관했다는 점입니다.
베트남전쟁. 당시 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들먹이며 분개하는 진보적인 정서. 그리고 곧장 이야기는 옳고 그름, 좋고 나쁨으로 갈라져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둘러싼 격한 감정 대립으로 나아갑니다. 감정의 울림이 커질수록 통념만이 확대 재생산될 뿐이죠. 그만큼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깊은 지식, 지식을 바탕으로 한 이성과 합리성의 확대, 풍요로운 성찰이나 상상력하곤 멀어지게 되고요.
더구나 감정은 ‘세대의 진보’를 막아요. 역사는 결국 새로운 사람들이 태어나고 자라야 변화하거든요. 어찌 되었건 한 세대가 끝나고 다음 세대로 넘어가야 과거와 무관한 사람들이 이것저것 새로운 이야기를 펼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성을 감정이 대체하고, 지식이 감정에 휘둘릴 때 사람들은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서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고,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결국 과거에 대한 ‘재인식’, 즉 기성세대의 경험과 감정과 편견을 뛰어넘는 과감한 모험이 필요합니다.
1960년대의 현실은 참으로 기묘해요. 공산주의와 싸워서 승리하려는 의지와 가난을 극복하려는 욕망이 뒤섞여 있고, 주어진 기회라는 것은 옳고 그름을 따져서는 안 되는 것이고, 그런데도 목숨을 걸고 얻어내야만 하는 것이었죠. 그때 우리의 먹고살이는 이 수준에서, 이 방식으로 시작됐고 도덕과 윤리, 사회 정의 같은 고상한 것들은 시작부터 파산 상태였습니다. 특히 ‘정신적인 것’, ‘가치 있는 것’을 간과함으로써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는 많은 것을 얻음과 동시에 엄청나게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결국 앞선 수십 년이 현재를 규정합니다. 역사를 산다는 것은 결국 앞선 세대의 간절한 노력 또는 무책임한 방관을 후대 사람으로서 책임져야 한다는 걸 의미해요.
철학은 인간의 주체성을 주제로 하고 심리학은 자존감을 중요시하지만, 결국 역사학을 통해 발견하는 세계에서 인간은 그보다 훨씬 모호하고 당혹스러운 ‘집단’입니다. 개인은 사회의 보호를 통해 존재하고, 주체성이란 기껏해야 부분에 불과하며, 각자의 감성 따윈 어느 시절에도 기억할 필요 없는 편린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미래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면밀히 살펴보아야…현재 자본주의가 가진 한계가 너무나 명확하기도 하고,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 식의 패배주의적 발상에 빠져버릴 때 정말로 인간의 삶을 비참해지니까요.
보다 정교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근대화라는 것은 ‘인간의 이성’과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시작한 건데, 20세기 들어와서 인류 역사는 ‘진보’라는 미명하에 잔혹해도 너무나 잔혹했기 때문입니다.
마오주의. 중요한 사실은 그가 이전의 혁명 공식에 전혀 의존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마오쩌둥의 독특한 사상의 핵심적 측면은 ‘인간의 의지’를 강조한다는 점이에요. 일종의 ‘주관주의’죠. 마오쩌둥이 배격했던 것 중 하나가 ‘교조주의’예요. 공식에 근거해서 사고하는 나태한 태도 말입니다.
무엇보다 막강한 대중문화와 소비사회의 성장 그리고 외환위기 이후의 물질주의는 ‘한때의 대학문화’ 자체를 없애버리고 맙니다. 너무나 빠른 속도로 시대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만 것입니다.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 동아시아의 21세기, 대한민국의 21세기는 전혀 다른 요구 가운데 펼쳐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