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박지원. 박종채. p294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독일에 괴테가, 중국에 소동파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박지원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터이다. 그는 중세기 우리나라 최고의 대문호다. 아니 중세기만이 아니라 근대문학까지 포함시키더라도 박지원을 능가하는 문호는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과정록」이다. ‘과정록’은, 자식이 아버지의 언행과 가르침을 기록한 글이란 뜻이다. 박종채는 4년여 동안 심혈을 기울여 집필…이 책은 중세 전기 문화의 금자탑이라 이를 만하다.
꿈에 붓을 얻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말과 의론이 엄정하셨다. 겉으로 근엄하고 속마음은 그렇지 못한 자나 권력의 부침에 따라 아첨하는 자들을 보면 참지 못하셨으니, 이 때문에 평생 남의 노여움을 사고 비방을 받는 일이 아주 많았다.
세상의 벗사귐은 오로지 권세와 이익만을 쫓았다. 그리하여 여기에 붙었다 저기에 붙었다 하는 세태가 꼴불견이었는데, 아버지는 젊을 때부터 이런 세태를 미워하셨다. 그래서 아홉 편의 전을 지어 세태를 풍자하셨는데, 그 속에는 왕왕 우스갯소리가 들어 있다. 아홉 편의 전에는 각기 시적이 서문을 붙였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마장전. 예덕선생전. 민옹전. 양반전. 김신선전. 광문자전. 우상전. 학문을 팔아먹는 큰 도둑놈전. 봉산학자전
집에서 효도하고 밖에서 웃어른 공경하면
배우지 않았어도 배웠다고 할 만하네.
이 말이 혹 지나칠지 모르지만
위선자를 경계하는 말은 되지.
이에 「봉산학자전」을 쓴다.
아버지 장지 훼손 변고?
“임금님의 분부가 비록 지극히 황감하기는 하나 이미 다른 사람과 원한을 맺은 터에 그곳에다 장사지낸다면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편안하시겠는가?”
하시고는 끝내 그곳에 장사지내지 않으셨다.
자네들이 책을 읽는 데에 부지런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글과 뜻과 이치에 깊이 파고들지 못하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닐세. 평소 과거시험의 글을 익히던 버릇이 종이와 입에서 떠나지 않고 있어. 그것을 벗어나 사색하지 않기 때문이지.(인순고식, 구차미봉)
공을 좋아한다는 자들조차/ 공의 정수를 안 건 아닙니다…좋아한다는 자나 헐뜯는 자나/ 참모습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지요.
“나는 중년 이후 세상 일에 대해 마음이 재처럼 되어 점차 골계를 일삼으며 이름을 숨기고자 하는 뜻이 있었으니, 말세의 풍속이 걷잡을 수없어 더불어 말을 할 만 자가 없었다. 그래서 매양 사람을 대하면 우언과 우스갯소리로 둘러대고 임기응변을 했지만, 마음은 항상 우울하여 즐겁지가 못했다…”
“그대는 평생 독서하셨는데 아는 글자가 몇 자나 되지요?”
“겨우 서른 자 남짓 아는 것 같군요.”
이공은 이 한마디 말로 단박에 아버지와 지기가 되어 이후 자주 찾아왔다.
세상을 경륜하다
“장사치는 4민 가운데 비록 천한 직업이기는 하나 장사치가 없으면 온갖 물건이 유통될 수 없다. 이것이 상업을 폐지할 수 없는 이유다…”
“연암처럼 매서운 기상과 준엄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 만일 우스갯소리를 해대며 적당히 얼버무리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 세상에 위태로움을 면하기 어려웠을 게야.”
원칙 있는 정치를 펼치다
“이는 형벌만 앞세워서는 안된다.”
“형벌로 안되니 어쩌면 좋지?”
아아, 형벌이 혹독하건만 굳게 견뎌 꿈쩍도 않던 자가 단 한마디 타이르시는 말에 깊이 뉘우쳐 눈물을 흘리다니! 참된 학문이 아니라면 어찌 이미 깊이 미혹된 자를 이토록 빨리 깨우쳐서 바른 데로 돌아가게 할 수 있겠는가?
“장계의 내용이 구구하지 못해 간곡하지가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면천군수와 상의하시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면천군수가 이런 글을 잘 짓나요?”
“이 친구가 조정에 올린 글에는 육선공의 유법이 있습니다…지금 사또께서 급히 편지를 넣어 장계를 대신 지어달라고 청하면 조정의 윤허를 받을 수 있을 듯합니다.”
독서법.초. 베껴쓰기
배움은 즐거워야 하는 법! 유머와 해학의 스승
“천고의 옳음과 그름, 정의와 사악함, 음과 양, 흑과 백은 구별하기 어렵지 않으며, 또한 말이 필요없다…다만 세속의 사사로운 이해에 빠져서 우리들이 알지 못할 뿐이다. 이해란 곧 화복이다.”
조부 장간공 묘소, 유씨 측이 일으킨 산변? 유한준이 글을 평해달라, 아버지의 편지 “문장이 참 기이하군요. 그러나 사물의 명칭에 차용이 많고 인용한 글들이 적절치 못하니…” 한준은 이 편지로 인해 아버지에게 앙심을 품게 되었다!
조선의 문장가, 유한준? 아아, 이 얼마나 음험한 자인가! 이 자는 우리 집안과 100대의 원수다.(삿된 심성에서 어찌 좋은 글이 나왔을까)
지계공의 제문
비방은 어찌 그리 많이 받으셨나요?
공의 명성을 떠받들던 자라 해서
공의 ‘속’을 안 건 아니며
공을 비방하던 자들이
공의 ‘겉’을 제대로 본 건 아니지요.
학문은 억지로 기이함을 추구하지 않았고
문장은 억지로 새로움을 좇지 아니했지요.
사실에 충실하니 절로 기이하게 되고
깊은 경지에 나아가니 절로 새롭게 된 것일 뿐.
일상 생활에서 흔히 쓰는 말도
공에게 가면 훌륭한 문장이 되고
웃고 화내고 꾸짖는 속에
진실됨이 담겨 있지요.
법고와 창신을 통일하다
“문장에는 고문과 금문의 구별이 있는 게 아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본 바에 따라 그 형상과 소리를 곡진히 표현하고 그 정경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만 있다면 문장의 도는 그것으로 지극하다.”
옛을 본뜨는(법고) 사람은 그 자취에 구애됨이 병폐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창신) 사람은 법도가 없음이 폐단이다. 진실로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면서도 법도가 있다면 지금의 문장은 옛 문장과 같을 수 있을 것이다.
진실로 이치를 담고 있다면 집안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예삿말도 학교에서 가르칠 만하고, 동요나 속담도 「아아」에 수록할 만하다.
하늘과 땅이 비록 오래되었으나 끊임없이 만물을 낳고, 해와 달이 오래되었으나 그 빛은 저마다 다르다. 또한 천하의 책이 비록 많다고 하나 그 담고 있는 뜻은 저마다 다르다.
“나는 문장을 짓는 데 달리 잘 하는 건 없고 사실을 기술하고 대상을 묘사하는 솜씨가 요새 사람들보다 조금 나을 뿐이다. 요새 사람들이 지은 비지는 대개 판에 박은 듯하여 한 편의 글을 여러 사람에게 써 먹을 수 있다. 그러니 대체 돌아가신 분의 정신과 모습을 어디서 떠올릴 수 있겠느냐?”
“옛사람들의 글이 그 당대야 어찌 난해하고 모호했겠는가?…「춘추」의 전들은 모두 당시의 금문이어서 그때 사람들은 다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후대로 올수록 그 뜻을 점점 알기 어렵게 되어 전•전•주•소 따위가 생겨나게 되었다…만약 남들이 자기 글을 읽고자 할 경우 그때마다 자기개 일일이 주석을 달아주어야 할 지경이라면 이런 글을 대체 얻다 쓰겠는가?”
“요즘 사람들은 당송 8대가의 문장을 배운다 하면서 그 정신과 이치는 터득하지 못하고 거칠게 그 겉모습만 배울 뿐이다…옛사람들은 흉금이 넓고 학문이 깊어 글을 지을 때 유창하며 법도 있고 아담하기만을 구하였을 뿐 작위적으로 안배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문장이 이루어졌다…고문을 배우려는 자는 자연스러움을 구해야 마땅하며, 자기 자신의 언어로부터 문장의 입체적 구성이 생겨나도록 해야지 옛사람의 언어를 표절하여 주어진 틍에 메워넣으려 해서는 안된다. 바로 여기서 글이 난해한가 쉬운가 하는 차이가 생겨나며, 진짜인가 가짜인가가 결정된다. 고정된 하나의 틀로 천만 편의 똑같은 글을 찍어내는 게 바로 오늘의 과문이다.”(오늘의 음악도 마찬가지?)
“남을 아프게 하지도 가렵게 하지도 못하고, 구절마다 범범하고 데면데면하여 우유부단하기만 하다면 이런 글을 대체 얻다 쓰겠는가?”
아버지는 책 읽는 속도가 매우 느려서 하루에 한 권 이상 읽지 못하셨다.
“연암은 책을 매우 더디게 보아서…또 암기 능력도 나보다 조금 못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읽은 글에 대해 이리저리 논하거나..때에는 조금도 빈틈이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공이 책을 느리게 보는 것이 철자하게 읽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군자란 세상일에 있어 먼저 할 바와 나중에 할 바를 알지만, 범속한 사람들은 군자가 무엇을 고심하는지 알지 못하는 법이다.
인순고식, 구차미봉
“천하 만사가 이 여덟 글자로부터 잘못된다.”
“선이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원래 자기 몸에 갖추고 있는 이치거늘…사람이 선을 행하여 복을 받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오직 악을 제거하여 죄를 면할 방도를 생각함이 옳다.”
“군자는, 손자는 안아주지만 자식은 안아주지 않는 법일세.”
“결론 부분의, 말이 전환되는 곳에는 깔끔하고 진중한 글자를 써야 글의 울림이 밝고 조리가 명쾌해진다…”
무릇 저술하는 사람에게는 네 가지 어려움이 있다.
근본이 되는 학문을 갖추기 어렵고/ 공정하고 밝은 안목을 갖추는 게 어려우며/ 자료를 총괄하는 역량을 갖추기 어렵고/ 분명하고 명쾌한 판단력을 갖추는 게 어렵다…저술하는 재주는 참으로 얻기 어렵다 하겠다.
관상, 점, 풍수 따위의 잡술에는 일체 관심을 갖지 않으셨다.
“이런 것들은 남한테 물어볼 게 아니다. 선을 따르면 길하고 악을 따르면 흉하게 될 뿐이다.
관상을 예로 들어보면, 착한 마음이 드러나면 반드시 기쁜 기색을 띠게 되고 악한 마음이 드러나면 반드시 좋지 않은 기색을 띠게 된다…”
“세상 사람들은 풍수에 많이 미혹된다…묘지를 구하는 사람들이 매양 자기 자신의 화복을 먼저 따지는 게 옳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사람이 일을 할 때 화를 두려워하고 복에 유혹된다면 이는 사사로운 뜻이 개재된 것이다. 사사로운 뜻이 개재되면 미혹하게 되나니, 미혹하면서 일을 그르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산과 들에 조상의 뼈를 갖고 다니며 큰 복을 구하는 짓을 어찌 차마 한단 말인가. 하늘이 반드시 미워할텐데 복을 받을 리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