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설흔. p217
백봉선부
“제목대로라면 흰 봉선화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겠소? 그럼 한번 읊어 보리까? 으흠, 하지만 흰색이라 붉게 물들이지 못하기에 여인들이 잡풀이나 마찬가지로 여겨 손으로 따지않고 비단 치마를 돌려 가 버리나니, 수풀 속을 집 삼고 나비를 맞아 홀로 즐려 따스한 바람 맞으며 제 수명재로 사는구나… 이 뜻인즉 흰 봉선화 따위 세상에 하나 쓸모는 없어도 제멋대로 살더라 이 말 아니겠소? 한마디로 실없는 소리지요. 흰 봉선화는 무슨 개뿔, 과부보다 새색시,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봉선화라면 붉어야 마땅하지.
「백봉선부」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의 말 그대로였다. 이옥은 늘 한미하고 쓸모없는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 모든 이들이 붉은 봉선화에 시선을 줄 때 그 혼자만이 흰 봉선화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크고 화려한 것을 침 마르게 칭찬하는 사이 그는 깨진 벼루며 소박한 종이에 처박힐 듯 깊이 몰두하곤 했다.
“죄가 없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일세. 그러니 억울해하면 지는 것일세.”
임금은 나를 이옥의 무리로 점찍었던 것이다. 간사한 글로 세상을 홀리고 미혹한다는 낙인이 찍혀 있던 그 이옥의 무리. 비웃고 따돌림을 당하는 그 참담한 무리. 그물을 쳐 놓고 걸리기만을 기다리던 임금.
임금이 문제 삼은 것은 그의 문체였다. 과거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연습용으로 쓴 글에 패관소품에나 어울리는 문체를 썼다는 이유 때문이었다.(호학의 군주 정조의 문체반정)
임금은 고문의 신봉자이기도 했다. 글이라면 모름지기 인의예지를 다뤄야하고 그 형식은 당과 송의 것이어야 했다. 사상은 공맹과 주자, 형식은 두보, 이백, 한유의 것이어야 했다. 허무맹랑하고 낯간지러운 사건이 이어지는 소설과 별 가치도 없는 것들을 대단한 것인양 다루는 이른바 소품류 문장들의 유행은 임금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달라진 건 내 마음가짐이었다.
“아이들을 좀 가르쳐 보세요.”
귀가 번쩍 뜨였다. 부령에서 제대로 된 글 스승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학문에 관심이 있어도 흐지부지 세월을 보내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러다 보면 그들이 갈 길이란 뻔했다. 온 힘을 다해 무력을 닦아 사냥꾼이 되거나 아전에게 빌붙어 조그마한 이득이라도 취하는 자가 되는 것.
#작가의 말
이옥의 삶은 극적인 삶이었습니다. 자신이 쓴 글 하나 때문에 평생 고초를 당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