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 p400
#드레퓌스사건_진실의 승리와 더불어 영원한 이름
에밀졸라. 한 사람의 글이 이처럼 막강한 힘을 떨친 일은 세계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드레퓌스가 결백하다는 사실이 뚜렷이 드러날수록 재심 반대파는 제정신을 잃었다..그야말로 집단발작이라고 할 만했다.
군의 고급장교 집단의 위신과 이익을 지키는 것이 곧 국가보안이라 생각. 군부가 자기 이익을 국가 이익이라고 착각하는 곳에서는 언제나 큰 문제가 일어난다.
#피의 일요일_혁명과 전쟁의 시대가 열리다
전쟁에서 진 나라에서는 혁명이 일어나기 쉽다. 그래서 전쟁과 혁명은 쌍둥이라고도 한다.
“경험은 바보에게도 가장 좋은 학교”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숱하게 만다. 니콜라이 2세와 제정 러시아 귀족들이 바로 그렇다.
#사라예보사건_총알 하나가 세계를 불사르다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인들끼리 벌인 전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온 세계를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스티리아 황태자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나라들까지 전쟁에 뛰어들었다.
제국주의? 산업혁명을 통해 자본주의체제 구축. 급속한 성장. 상품을 다 팔아 치우기에는 땅도 좁고 인구도 너무 적었다. 게다가 대량생산을 뒷받침할 값싼 원료를 나라 안에서 다 구할 수도 없었다…그래서 산업국가의 자본가들은 더 넓은 시장과 더 값싸고 풍부한 원료를 찾아서 나라 밖으로 달려 나갔다.
‘임자 없는 땅’이 남아 잇는 동안에는 그나마 좋았다. 지구 표면을 모조리 정복하고 나자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제 식민지를 넗히려면 이미 다른 나라 군대가 차지하고 있는 곳을 빼앗는 수밖에 없었다. 특히 뒤늦게 산업화를 시작한 독일과 일본은 그런 야심을 가지고 군사력을 기르는 데 열심이었다…남의 것 빼앗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에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보면 제1차 세계대전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인 것이다.
#러시아 10월 혁명_세계를 뒤흔든 붉은 깃발
레닌. 인류 역사에서 혁명이 일어난 일은 숱하게 많았지만 러시아혁명만큼 한 개인의 의지와 인격이 혁명에 뚜렷한 영향을 준 예는 달리 없다고 하겠다.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면서 마르크스가 쓴 책을 모조리 읽어 치웠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경제상황에 대한 정부 통계와 보고서와 논문을 손에 넣는 대로 읽고 정리했다. 레닌은 농민을 깨우쳐서 차르 전제정치와 싸우게 해야 한다는 나로드니키의 주장을 배척했다. 그 대신 노동자계급을 혁명 주체로 본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였다.
민주주의를 하려면 우선 공개토론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모든 직책을 선거로 뽑아야 한다…그러나 혁명활동이 모든 분야에서 비밀을 지켜야 하고 비밀공작을 해야 하는 조직에서 어떻게 민주적으로 일할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누가 출중한 노동자인지 일반대중이 그 정체조차 알 수 없는 판에 어떻게 민주적인 선거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트로츠키는 레닌이 쓴 글을 보고 반한 나머지 시베리아를 탈출해서 런던으로 찾아가 동지가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려운 문제는 그 누구도 사회주의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모른다는 데 있었다. 볼셰비키는 너나없이 마르크스를 스승으로 모셨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연구한 끝에 그 다음에 사회주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보았을 뿐, 어떻게 그 사회를 건설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공동체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역사가 자기 시대에 지운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지고서 몸과 마음을 바치는 자세를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레닌의 평생 동지요 아내였던 크루프스카야가 남편의 장례식장에서 한 말은 곱씹어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
동지 여러분! 나는 요 며칠 동안 블라디미르 일리치의 관 옆에서 그 사람의 일생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내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 사람이 노동자들 모두를, 억압 받는계급 전체를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스스로는 이런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나도 그랬습니다. 이런 엄숙한 시간을 빌려 처음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대공황_’보이지 않는 손’의 파산
자유방임시장은 결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주지 않는다. 그 가운데 오직 돈이 뒷받침하는 것만을 줄 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겨운 호소에는 냉혹하지만, 부자들의 사치스런 요구에는 더없이 고분고분하다.(아시아나 항공기내식 파동, 박삼구? 회장의 따끈따끈한 기내식)
지금 생각하면 우스꽝스럽지만 대공황이 일어나기 전까지 경제학자들은 상품이 너무 많이 생산되어 팔리지 않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믿었다.(합리적 경제인간?이콘은 없다!)
제국주의 정부들은 식민지에 자본주의를 옮겨 심는 데는 열심이었지만, 민주주의는 한 조각도 나누어 주지 않았다.
대공황의 교훈? 대공황과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경기변동은 인간이 이 제도(자본주의)를 마음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대장정_중화인민공화국을 낳은 현대의 신화
국민당 군대에게 미국이 줄 수 있는 것은 물질뿐이었다. 하지만 홍군의 힘은 무기와 군수품이 아니라 그들의 의지와 정신이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종교적인 교의처럼 여기는 사람들은 자기의 맹목과 무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내놓고 점잖지 못한 말을 해야 합니다. “너의 교의는 똥만도 못하다” 개똥은 들판에 거름으로라도 쓸 수 있고 사람 똥은 개가 먹을 수도 있다는 것은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교의라는 것은 들판을 기름지게 할 수도 없고 개를 먹일 수도 없으니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아돌프 히틀러_벌거벗은 현대 자본주의의 얼굴
히틀러가 빈에서 본 것은 “어둡고 가난하며 추잡한” 하층민들의 세계였다.
“거짓말을 하려면 굉장한 거짓말을 하라” “대중은 이해력이 부족하고 잘 잊어버린다” “대중은 지배자를 기다릴 뿐, 자유를 주어도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식의 대중관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의도했든 아니든 히틀러는 케인즈의 가르침을 가장 먼저 이행했다.
#거부하는 팔레스타인_피와 눈물이 흐르는 수난의 땅
시온주의는 민족주의와 같지 않다. 침략적 민족주의
#미완의 혁명 4·19_자유의 비결은 용기일 뿐이다
#베트남 전쟁_골리앗을 구한 현대의 다윗
#검은 이카루스, 말콤X_번영의 뒷골목 할렘의 암울한 미래
미국 건국사는 뒤집어 말하면 인디언 말살사 그 자체다.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또 하루를 빌렸구나”하고 생각한다. 나는 ‘이슬람민족’의 회교도 손에, 또는 어떤 백인 인종차별주의자의 손에, 아니면 백인이 고용한 흑인의 손에 갑자기 죽음을 당할 것이다. 어쨌든 나는 지금 매일 죽은 것처럼 살고 있다…
#일본의 역사왜국_일본제국주의 부활 행진곡
#핵과 인간_해방된 자연의 힘이 인간을 역습하다
20세기 인류사를 뒤흔든 가장 큰 사건은 아마도 러시아혁명과 핵무기 발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인 피해자들은 대부분 아직까지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우리나라 정부가 일본이나 미국 정부에 사죄나 배상을 요구한 일은 한 번도 없다.
이것은 일본군이 중국에서 자행한 양민 학살이나 나치의 유태인 학살과 마찬가지로 끔찍스런 전쟁범죄였지만, 미국 정부는 아무런 도덕적 비난을 받지 않았으며, 미국인은 축배를 들며 승리를 기뻐했다.
#20세기의 종언, 독일의 통일_통일된 나라 분열된 사회
사회주의 몰락과 독일 통일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열린 사회’의 모습이다.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가 몰락한 것은 비효율적인 경제체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안팎에서 나오는 다양한 의견과 비판을 봉쇄하는 ‘닫힌 사회’였기 때문이다. 닫힌 사회는 그 사회의 밑둥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위기가 찾아들기 전까지는 그 위기를 감지하지 못한다…
우리 민족의 통일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북한 공산집단의 적화야욕 망상”도 아니요 “천문학적 통일 비용”도 아니다. 자기와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못하고 이해관계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 대해 귀를 막고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는 사회 분위기와 정치풍토와 법제도야말로 가장 극복하지 어려운 장애물이며, 이런 면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남북한은 닮은 꼴이다. 남북한이 제각기 안으로 열리지 않는다면 하나로 합치는 일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