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주는 봉사
옛이야기나 동화 이야기를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나 눈을 감고 잠시 명상을 하는데 한 가지 말씀이 주문처럼 떠올랐습니다. 히틀러 독재에 맞서 싸웠던 본회퍼 목사가 한 말입니다. 본회퍼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봉사가 무엇이냐고 묻고는 ‘들어주는 봉사’라고 대답하였어요.
나에게 들어주는 봉사 해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그 사람은 절대 절망하지 않지요. 요즘 세상이 참 힘들다고 하는데, 들어주는 봉사 해주는 사람은 아마도 그 어떤 집단에서도 소외되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은 들어주는 봉사 해주는 사람 곁으로 모일 테니까요.
아이들은 아직 문장의 맛을 즐기면서 작품을 읽기는 어렵습니다.
아이들의 몸은 아직도 듣는 말문학에 익숙하지요. 문장의 맛을 즐긴가는 것, 문체의 맛을 즐긴다는 건 어른들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동문학은 듣는 문학의 기운이 강합니다. 아이들 몸의 기운은 비록 글은 깨우쳐서 읽는 문학 시기로 들어와 있다하더라도 아직 듣는 문학 시기의 말문학 전통이 강한 이야기를 더욱 편하게 즐기는 거지요.
말문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 있고 그걸 들어주는 ‘듣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들어주는 봉사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말문학은 존재할 수 있고 또 생명을 잃지 않고 이어갈 수 있지요. 그래서 동화나 옛이야기는 들어주는 봉사 해주는 사람들이 주인입니다. 왕입니다. 그들을 잘 섬겨야지요.
옛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순하다고 합니다. 옛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 순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남을 위해 들어주는 봉사하는 마음의 씨앗이 몸에 심어져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 애는 너무 책을 안 읽어요. 어떻게 하면 책을 좀 읽힐 수 있을까요?”
나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아이들이 책을 즐겨 읽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듣는 문학 시기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답을 합니다.
아무리 큰 아이라도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면 그 아이는 아마 듣는 문학 시기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을 겁니다.
“달님 안녕”
아이는 달이 무언지도 모르면서, 안녕이란 말이 무언지도 모르면서 그림책을 가져옵니다.
말에는 아주 큰 주술적인 힘이 있습니다.
엄마가 소리 내서 책을 읽을 때 엄마의 말 속에는 엄마가 느끼는 감정(말의 에너지)이 다 들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엄마가 소리 내서 “달님 안녕”하고 읽어주면 그 말은 아이의 마음속 우주에 출렁거리는 심리 에너지를 불어일으키는 것이지요.
옛이야기는 귀로 듣는 문학. 그래서 말로 소리 내서 읽어야 하는 것. 들려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신화나 민담은 꼭 소리 내서 읽어야 맛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소리 내서 읽고 듣고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목숨들이 자신을 부르는지 알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지요.
옛날 사람들은 옛이야기를 들려줄 때 문을 열어 놓으라고 하였습니다. 문을 열어 놓으면 조상신들이 방으로 들어오는 거지요. 조상신들이 다 방에 들어오면 그때 이야기를 시작하는 겁니다.
동화의 어머니는 옛이야기입니다.
옛이야기는 내 몸에서 태어나고 있는 현장의 문학
옛이야기는 지금도 우리 몸에서 태어나고 있는 현장의 문학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눈 찔린 동생」 이야기는 지금도 내 몸에서 태어나고 있습니다. 저 이야기는 오늘 내 삶의 문제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옛이야기를 읽고 나면 마음속 우주가 한번 출렁이는 심리 에너지의 파동은 느낀다고 말하는 겁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분명 꿈을 통해서 생겨났을 겁니다.
그 꿈이 오늘 우리 내면의 심리를 그대로 드러내고 반영하고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옛이야기는 지금 우리 몸속에서 태어나고 있고 또한 우리 내면 심리를 비추어주는 거울이 된다는 말을 하는 거지요.
옛이야기 공부는 꿈을 적어보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옛이야기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 몇 가지를 깰 필요가 있습니다…’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내 삶의 이야기.
마음속 우주와 마음 밖 우주
동화를 제대로 즐기려면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의식과 무의식, 외부현실과 내면 현실을 이어주는 동화
옛이야기는 마음 밖 우주와 마음 속 우주를 넘나드는 대단한 희망의 문학이자 구원의 문학.
『학교에 간 사자』 비현실적인 이야기? 그 사자는 바로 작은 여자아이 마음에서 나온 것!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 같은 사람도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 있는 세계가 바로 판타지의 세계라고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마음 밖과 마음속 공간에 벽이 없어 그냥 왔다 갔다 하며 살아갑니다. 다시 말하면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늘 하나로 산다는 거지요.
몸 따로 마음 따로 될 때 사람은 괴로운 거지요. 물론 몸 따로 마음 따로 있으면서 과학적으로 세상을 분석하는 이성의 힘은 강해져서 근대 문명을 만들어내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 몸과 마음이 분뢰되어 그냥 그렇게 서러 떨어져 살게 되면서 정신적으로는 힘든 생활을 하게 되기도 한 겁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몸과 마음이 분리된 이차원의 세계에만 너무 갇혀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소통이 되지 못할 때 몸은 몸대로 힘들고 마음은 마음대로 힘이 들게 되는 것이지요.
왜곡된 근대 교육을 받은 어른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만 현실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화 공부를 하고 나면 이런 편견은 깨지지요. 아이를 기르는 어른들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마음속 우주도 하나의 엄연한 현실이란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산책, 걷기 명상? 마음 밖에서 마음속 우주를 향해 걷고 있는 것.
여행자는 마음 밖 우주 경치 구경만을 하러 다니는 사람은 아닐 겁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진리를 찾아서 마음속 우주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입니다. 이게 바로 탁발승의 본질이지요.
단 하나의 참된 지혜는 인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그 지혜는 위대한 고독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고통을 통해서만 그 지혜에 도달할 수 있다. 궁핍과 고통을 통해서만 우리의 마음은 그 감추어진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신의 가면 1 원시사회』
고난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 여행(고민, 명상, 기도)을 합니다.
이건 일종의 본능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마음속 여행을 떠나면서 저 옛이야기 속 눈 찔린 동생처럼 빛이 되는 승냥이와 같은 정령을 만나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거지요. 이게 중요합니다.
내면 속에 온갖 빛이 되는 정령들이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정령과 교감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자기 존중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스스로 절망하지 않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 있는 존재
억지로 하는 건 오래 할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재미없으면 하지 말래도 합니다. 공부가 어렵다? 선생님이 재미있게 가르치지 않아서…모든 과목이 다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그래서 선생님은 이야기꾼의 자질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이야기꾼이 먼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분야에 재미를 느끼고 감동을 하면 자연스럽게 자기 존중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이런 자기 존중감은 또 타자에 대한 신뢰로 발전해 가는 거지요.
괴물들과 놀게 하라
놀이는 영원을 소유한 사람의 것. 영원은 노는 사람의 것. 놀이 정신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마음 공부 스승들은 삶은 유머러스한 한 판의 놀이라고 말합니다.
게으름이 영웅 이야기의 본질
옛날 일반 백성들은 오로지 근면을 덕으로 삼고 살아야 했다는 겁니다. 이런 근면을 강요받던 시대의 사람들의 무의식에서 자연스럽게 이제는 좀 쉬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생겨났겠지요.
어린이는 미래의 영웅들입니다. 몸에 영양을 주는 밥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신에 영양을 주는 문학 예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가 되었습니다. 옛이야기는 아이들 정신에 주는 밥입니다. 옛이야기밥을 맛있게 먹고 자란 아이들이 미래를 가꿔가는 훌륭한 영웅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