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막힌 이야기 기막힌 글쓰기. 최수묵. p278
‘글쓰기 책에는 헛소리가 많다!’-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글쓰기 책 대부분이 글의 본질을 다루기보다는 ‘쓰기’라는 기교와 기술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질을 외면한 채 ‘쓰기’에만 집중한 시중의 글쓰기 책은, 킹의 눈에 대부분이 헛소리로 비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글은 곧 사람이다!’
글의 본질은 결국 사람 그 자체다. 글은 사람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투영해야지, 현란한 어휘나 기교를 보여주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새로운 뉴스 장르? ‘내러티브narrative’
정보량은 증가했지만 그것을 소화할 능력은 40년 전과 비교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 결과 과도한 정보 제공이 되레 집중력을 떨어뜨렸고 독자들은 뉴스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동안 뉴스가 지향해온 ‘빨리 빨리’와 ‘대량의 정보전달’ 전략이 독자를 피곤하게 만든 것이다. 독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정보의 파편이 아니었다.
「샌디에이고 유니언 트리뷴」은 선수들의 발언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았다. 곳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듯 슬로비디오처럼 현장을 묘사하는 데 집중. 냄새와 색깔 등 오감까지 느낄 수 있도록 세밀하게 묘사해 독자들로 하여금’ 지옥’이란 어떤 곳인지를 실감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정보가 아니라 이야기를 해준 것이다.
이제는 뉴스도 이야기다
9·11테러 발생 다음날 「뉴욕타임즈」는 의외의 형식으로 뉴스를 선보였다. 1면 톱기사를 정보가 아닌, 이야기로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향후 뉴스의 중심이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정보에 치중하느라 이야기를 문학에게 넘겨주었던 신문이 그 이야기를 돌려받는 순간이었다.
「뉴욕타임즈」가 톱기사를 이야기로 풀어간 데는 이유가 있다…속도에서 전파매체에 뒤져 있는 신문으로서는 정보 이상의 뭔가를 전해야 했다…정보로 이길 수 없다면 이야기로 승부를 걸어야 했다.
결국 인물의 본질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언어뿐 아니라 비언어적인 측면까지 자세히 전해야 한다.
외모 정보를 전할 때도 ‘해설’하지 말고 직접 보여줘야 한다.
“그는 키가 2미터다”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그는 문을 들어설 때마다 항상 허리를 숙인다”라고 쓰는 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자세다. 전자는 수치 계량적인 표현이지만, 후자는 ‘보여주는’ 관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독자가 특정한 장면을 연상할 수 있도록 인물과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이 내러티브의 비결이다.
이야기에는 독자가 참여할 ‘생각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중간에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있어야 하고, 때로는 소설가가 말하려는 바와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것은 화면을 정신없이 따라가야 하는 TV와는 차별되는 활자매체만의 장점이다.
외형과 정보보다는 사람과 가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작은 식당 할머니 이야기. 전통적인 뉴스 기준에서 본다면 한 단짜리 기사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이순 해고’의 현실은 모든 직장인들에게 마음의 상처다. 시골식당의 구조조정은 정보로서는 가치가 없을지 모르지만 감동이 있는 ‘이야기’의 소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모티프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치열한 문제의식이 나은 축적물이라고 보는 게 마땅하다. 평소 고민하고 관심을 쏟지 않았다면 영감이란 것 자체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독자의 공감을 얻으려면 이야기에 도덕적 가치와 휴머니티를 담아야 한다. 정보를 재빨리 입수해 신속하게 보도하는 것은 ‘비즈니스맨’의 보고서지, 이야기가 아니다.
자연을 의인화하면 인간 중심일 때와는 전혀 다른 관점의 가치 있는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관찰부터 시작하라
모티프를 이야기로 발전시키는 첫 단계는 관찰이다.
놀부가 주인공이라며?
평면적 인간과 입체적 인간
한 길 사람 속 들여다보기
인물 발굴이 내러티브의 절반이다
이야기를 읽는 것은 지혜를 얻기 위해서다
형용사를 버리고 동사로 전하라
상상할 수 있도록 묘사하라
말과 행동으로 묘사하라
인물 평가는 독자의 몫이다
누가 이야기할 것인가
의문과 긴장이라는 변수
이야기를 구성하는 이유는 하나. 독자의 관심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단히 붙잡기 위해서다.
결말부터 생각하라
결말을 정하지 않는 것은 ‘왜 글을 쓰는지’를 알지 못하고 글을 쓰는 것과 다름없다.
리드와 엔드
독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뒤 그 호기심을 이야기의 끝까지 견인해야 한다
디테일이 우리를 주제로 인도한다
책을 읽으면서 지식과 지혜를 얻는 것도 즐겁지만,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고 냄새 맡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큰 즐거움이다. 오감의 즐거움을 빼면 인생은 오히려 삭막해진다.
산을 옮겨라. 이야기에는 현장이 있어야 하고 인물은 그 안에서 살아 움직여야 한다.
오감으로 현장 살리기. 글을 잘 쓰려면 앞서 ‘분명하고 구체적인 이미지’를 관찰하고 묘사하는 훈련부터 해야 한다.
활자는 사실 영상이 갖지 못한 상상 유발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TV와 같은 영상물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영상의 흐름을 눈으로 정신없이 따라가야 하는 게 영상 매체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장면이 순식간에 바뀌기 때문에 상상력을 발휘할 새가 없다. TV를 ‘바보상자’라고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현장의 디테일은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이야기의 제1원칙에 따라 묘사해야 한다.
위선과 거짓을 벗겨내는 일은 작고 사소한 디테일에서 출발해야 한다.(정치의 본질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다듬기
헤밍웨이도 44번 고쳐 썼다? “확실한 단어를 쓰기 위해…”
글은 취중진담이 아니라 재고(再考)와 재고의 과학이다.
과감하게 삭제하라
글의 경제학? 불필요한 단어를 없애고, 문장의 군더더기를 없애야 한다
내가 알면, 독자도 안다?(지식의 저주)
글을 쓸 때 자주 빠지는 오류.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발견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
뉴스에 주관을 담지 말라? 문제는 ‘의견’과 ‘의미’를 구별하지 못할 때 생긴다!
글쓰기 비법이란? 없다!
우선, 글이란 쓰는 것보다 준비하는 데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둘째, 정보나 수치만 나열하지 말고, 그 뒤에 숨은 이야기를 발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항상 ‘왜why?’와 ‘그래서 어쨌다는 건데so what?’이라는 두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대답할 줄 알아야 한다.
셋째, 글의 형식은 최대한 예술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
넷째, 글 쓰는 궁극적인 목표를 사람의 완성에 두어야 한다. 글을 멋을 부리는 데만 치중하지 말고 스스로를 완성하는 데 목표를 두자는 뜻이다.
끌리는 글에는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