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작품 읽기.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p325
좋은 교사가 되고 싶어 좋은 수업을 고민하는 자리에 우리는 ‘책’을 두었다. 좋은 작품을 찾아 건네주려는 노력이 교사의 수업 기술이나 아이들의 성적을 당장 바꾸지는 못했다. 하지만 분명 아이들은 변해 갔고, 교실도 바뀌어 갔다.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라 합니다. 사상이 애정으로 성숙하기까지의 여정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여정이 남아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신영복
온전한 작품이 실리지 못한다. 쪼개진 건 작품만이 아니다!
그나마도 국어 교과 내용 영역의 갈래에 따라 더 잘게 쪼개진 형태로 실려 있다…쪼개진 건 작품만이 아니다. 쪼개진 과목, 쪼개진 영역, 쪼개진 성취 기준, 쪼개진 단원, 쪼개진 차시 등 효율성과 유용성이라는 측면에서 교육을 나누기에만 바빴다. 그것은 벽돌 한 장 한 장을 잘 쌓다 보면 집이 완성될 수 있다는 기능주의적인 관점이다.
삽화 수준을 전락. 판형 무시…그나마 온전하게 실려 있다고 하는 그림책의 경우에도 ‘온전하다’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일부가 잘리면서 제목이 바뀌었다? “제목을 보고 식충 식물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올 줄 몰랐어요.”
이렇게 교과서가 온전치 못하니 ‘온전함’을 갖춘 것을 찾아서 건네야 하는 것은 교사의 몫이 되었다.
국어 교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미술 교과서에 실려 있는 사진만으로는 실제 작품의 크기를 짐작조차 할 수 없으며, 고유의 질감도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감상 수업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애당초 작품이 던지는 질문으로까지 확산되지 못하고, 각자의 삶과 연결하지도 못한 채 작품을 겉핥기로 읽고 마는 셈이다. 적극적인 읽기는 이를 뛰어넘는다. 작품이 던지는 질문을 탐색하고 ‘나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과 연결한다.
‘온작품읽기’는 온전한 작품을 적극적으로 읽는 것이며, 이를 통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바라보며 함께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성장을 지향하는 교육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교사들이 자꾸 모여야 한다. 모여서 어린이 책을 읽고, 이야기판을 벌여야 한다.
활동 != 제대로 읽기
학습지를 받아 들면, 생생하게 느낌을 나누던 아이들이 이야기를 멈추고 학습지의 문제를 해결하기 바빴다. 작품을 이야하는 데 도움을 두려 만든 학습지가 오히려 아이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를 글자 속에 가두고 만 셈이다. 책 만들기 활동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만드는 동안 작품에서 만났던 감동이나 생각은 사라지고, 예쁘고 아름답게 만드는 활동만 남았다.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교과서 내려놓기. 교사들에게 온작품읽기의 가장 큰 걸림돌은 교과서를 내려놓지 못하는 학교 풍토였다.
한 권의 책을 쪼개어 읽고 활동하는 동안 그 책에서 문학적 감동은커녕 즐거움도 찾기 힘든 아이들에게는 힘든 시간이 될 수도 있음을 교사는 생각해야 한다.
글자 없는 그림책? 어떻게 읽어 주어아 하나 어려워하는 교사들이 꽤나 많다. 그림 상황만 간단하게 짚어 주며 휙휙 넘긴 후 ‘끝’하고 책을 덮어야 하는 건지 난감하다. 반면 아이들은 글 없는 그림책을 참 좋아한다. 글이 없으니 얽매이는 부분 없이 오랫동안 그림을 보고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슴에서 발로 이어지는 여행
꿈꾸는 교실
꿈꾸는 학교
꿈꾸는 마을과 세상
학교가 끝나면 산이는 마을 도서관에 간다. 마을 도서관은 작은 집처럼…교실과 학교만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을 품은 가정과 마을도 함께 변화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좀 더 나은 세상이 되리라 기대할 수 있다…하지만 이러한 낙관이 얼마나 큰 냉소로 돌아올 것인지 잘 알고 있다…실패가 두려워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설사 우리 도서관에 한 명의 아이가 오더라도, 그 한 명의 인생이 풍성하게 자라도록 도와주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다.
천천히 더디게 가더라도 한 발 한 발 끊임없이 내딛는 일 자체가 소중하다.
“문학은 써먹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을 한다면 도대체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문학은 배고픈 거지를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학은 그 배고픈 거지가 있다는 것을 추문으로 만들고, 그래서 인간을 억누르는 억압의 정체를 뚜렷하게 보여 준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기만을 날카롭게 고발한다.”라고 말했던 김현의 말이 아직도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