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1. 한홍구. p309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역사를 보는 자신의 눈을
네 말도 옳고, 내 말도 옳고.
황희 정승 이야기.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서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이 살아온, 그리고 살고 있는 세계는 상충하는 이해의 충돌과정이었고, 그것을 기록한 역사 서술이나 사료는 대개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해관계에서 어느 한쪽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서술이나 기록이었습니다…처녀가 애를 배도 할말이 있고, 핑게 없는 무덤은 없는 처지에 당사자들의 주장만 들을 경우 그들의 주장은 다 그럴듯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 자기의 입장을 정당화할 뿐.
똑같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말하는 사람의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너무나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린다는 점을 예리하게 보야주는 영화 한 편? 『라쇼몽』!
어느 누구도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임을…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주장들이 실상은 잘 포장된 거짓일 수 있다는 점을 나름대로 잘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문제는 관점과 기준입니다. 일어난 일은 분명 하나입니다.
자기 눈으로 세상과 역사를 보고, 또 자신의 판단까지도 의심해보는 자세.
역사를 산다는 것
‘역사’ 하니, 문익환 목사님의 시가 생각납니다. 역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산다는 것이라는 말씀 말입니다.
역사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승리의 짜릿한 감격은 없었다
우리 손으로 자주적인 근대화에 실패하고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휘둘리며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지적하는 것은 우리 역사가 피동적으로 전개되었다고 단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민족의 해방과 근대적 민족국가의 건설을 위해 우리는 참으로 끈질기게 주체적 노력을 기울여왔으나 불행히 승리하지 못한 것이다. 단 한번 승리, 어떤 민중가요가 노래하는 그 단 한번 승리의 짜릿한 감격을 아직 맛보지 못했다는 것이다.(촛불혁명의 위대한 승리!)
단 한번도 왕의 목을 치지 못한…유산된 혁명
이 바쁜 생활은 개인들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정신없이 숨가쁘게 살아온 역사의 반영일 것이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우리가 숨고를 겨를을 주지 않고 우리의 주체적 역량보다 한 발 앞서 전개되었다. 조선 후기 이래의 자생적인 근대화의 싹을 제대로 피지도 못한 채 제국주의의 침략에 짓밟혔다…우리는 해방마저 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분단을 당했다.
이렇듯 숨가쁘게 근대로 끌려들어오는 와중에 우리는 중요한 통과의례를 치르지 못했다. 왕의 목을 치지 못하고, 다시 말해서 시민혁명을 이루지 못하고 제국주의적 근대에 편입된 것이다.
시민혁명을 거치지 못하고 제국주의적 근대에 편입되었다는 것은 전근대의 부정적 요소들이 고스란히 다음 시대에 살아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전 시대를 정리하지 못한 불행은 비단 시민혁명의 결여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않은 채 건설되었다. 청산 못한 정도가 아니라 친일파를 척결하려던 반민특위가 오히려 친일경찰의 공격을 받아 해산당했고, 친일잔재 청산을 부르짖던 소장파 의원들은 남로당 프락치로 몰려 투옥되었다. 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당했다. 모두 1949년 6월의 뜨거운 여름에 일어난 일이다. 이 세 가지 사건은 친일파 청산을 외치던 민족세력들이 오히려 친일파에 청산당한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개인주의의 결여, 국가주의의 과잉
시민혁명의 결여는 이 땅에 개인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을 없애버렸다. 제국주의와 맞서 싸우기 위해 집단으로서의 민족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민족해방운동에서도 개인주의가 설 자리는 없었다…정당한 개인주의의 결여는 우리 사회에 국가주의적 사고방식이 횡행하도록 길을 터주었다.
시민 없는 시민사회
한 시대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다음 시대로 바쁘게 이동한 결과, 잔재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거대한 전시대의 부정적 유산이 다음 단계에 그대로 살아남아 있다. 근대와 전근대의 이 기괴한 공존이 한국적 근대의 특징이다.
“친일파 문제는 한국사회의 원죄이다. 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한국사회는 발전할 수도 없고 존재하기도 어려운 그런 난제이다. 민족분단의 문제가 여기서 비롯되었고 경제종속의 문제가 여기서 시작되었다. 군사독재가 친일파의 사생아이고 사회혼란이 그 결과물이다.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어떤 문제이건 친일파와 관련이 없는 것은 없다…실로 오늘 나타나는 우리 사회의 모든 병폐는 모두가 친일파가 저지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태극기는 정말 민족의 상징인가
외세에 의한 탄생과 파란만장한 역사
마건충이 도안…일본서 첫 게양
독재권력이 노린 것은 태극기와 애국가를 통해 사람들을 길들이려는 것이었다. 태극기와 애국가에 대한 경배를 통해 그 뒤에 숨은 독재자에게 조건반사적으로 복종하게끔 만드는 것, 그것이 국민의례가 넘처나던 시기에 독재자들이 노린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인가_단일민족 신화의 허상
단군할아버지 한 분의 조상? 극단적 민족주의와 부계 혈통주의가 결합된 아주 난폭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단군 할아버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계산상 2의 100승을 넘는 그야말로 천문학적 숫자의 조상을 갖는다
‘장군의 아들’, 신화는 없다_황당한, 그러나 미워하기 힘든…
우리는 무덤 위에 서 있다
유족들은 호소한다. 학살의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부디 이 땅의 풀 한 포기 함부로 밟지 말아 달라고.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는 가족들을 가진 이들에게는 온 국토가 그들의 무덤이라고. 온 국토에 학살의 흔적이 널려 있고, 현대사의 거의 모든 사건이 학살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어디로 도망칠 수 있을까?
1970년대의 학교와 사회생활에서의 규제분위기는 40여 년 전 만주국의 사회분위기를 빼다놓은 것이다.
똑같은 논리, 똑같은 수법…역사는 반복되는가?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민간인 학살. 죽이는 모든 방법이 동원된 한국전쟁
한국사회에 오랜 기간 군사독재가 유지되고, 군사독재가 물러난 뒤에도 반공주의, 보신주의가 횡행하는 것은 다 학살의 무덤 위에 한국사회가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생존방식, ‘편가르기’
한국전쟁 이후 우리 사회에서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 또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 빨갱이, 공산주의자라는 등의 딱지를 붙이는 것은 너무나 일상화되어 있다.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있음에도 이 나쁜 버릇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민주화의 진전과 시민사회의 성장에 따라 수구세력들의 위기감이 진전되면서 이 나쁜 버릇이 오히려 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참된 보수’를 아십니까_’똥’과 ‘된장’만큼이나 다른 수구와 보수의 차이
보수주의자들은 ‘뿌리 없는 것’에 대한 깊은 혐오를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 보수파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바로 뿌리 없음이며, 전통적 보수주의와의 단절이다.
“이대로”는 수구파의 구호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의 덕목인 도덕성, 일관성, 책임감, 지혜 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가당치 않는’ 족속들이다.
누군가가 ‘좌우대립’을 부추기고 있다.해방 직후에 그런 역할을 한 자들이 친일파였다. 민족 대 반민족의 대립구도가 지속된다면 친일파들이 정치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필사적으로 노력…좌우대립의 구도로 바꾸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반미감정 좀 가지면 어때?
맥아더가 은인이라고?_남의 나라 장수 동상이 서 있는 나라
“왜군이 얼레빗이라면 명군은 참빗”
맥아더 해임은 실로 천만다행
만주폭격 주장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었다. 원자폭탄 26곳에 투하. 이런 위험한 발상을 한 맥아더를 해임한 것은 한반도를 위해서나 세계 평화를 위해서나 천만다행인 조치였다.
주한미군, 뻔뻔할 자격 있다?_사실상의 치외법권, SOFA의 역사
주한미군 주둔비. 쥐꼬리만한 대북지원과 비교하면 ‘퍼주기’도 이런 퍼주기가 없다. 게다가 미국의 무기강매는 ‘퍼가기’ 수준이다.
반미의 원조는 친일파였다_후천성 반미결핍증의 웃기는 역사
병영국가 대한민국
국민개병제는 빈민개병제?
상아탑은 병역비리탑?_병역기피의 사회사
병역특례의 절정, 석사장교. 병역특례 제도가 특권층을 위한 수단으로 쓰인 것은 전두환 집권 이후 석사장교 제도가 도입되면서 절정에 달했다…이 제도는 전두환·노태우 두 군사독재자의 아들들이 혜택을 본 뒤 1990년 대학원 입학자들을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