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전기는 가능하다. 하승수. p127
이 책이 이권과 불의로 물든 잘못된 전력시스템을 지속가능하고 정의로운 시스템으로 바꾸는 데 작은 쓸모라도 있기를 소망합니다.
불편한 진실, 눈물과 이권으로 얼룩진 전기
전기 문외한이 전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내가 사는 남한 땅에 원전이 몇 개나. 무려 21개가 가동중. 그 숫자는 곧 23개로 늘어났다.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 70대 농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송전탑, 아니 더 정확하게는 초고압 송전선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발전소에서 소비지까지 전기를 보내기 위해 76만5천 볼크, 34만5천 볼트, 15만4천 볼트 같은 엄청나게 높은 전압의 송전탑이 건설되고 있었고, 그 송전선 때문에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발전소와 송전소를 왜?
밀양을 지나가는 76만5천 볼트의 송전선은 밀양에서 쓰는 전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부산과 울산 사이에 있는 고리-신고리 원전단지에서 나오는 전기를 대구와 경북지역으로 송전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와 한전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그 설명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대구는 그렇게 전기소비량이 많이 증가하는 지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구에서 필요한 전기 정도는 대구 주변에 크지 않은 발전소를 지어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다.
진실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밀양 송전선이 필요한 이유는 발전소, 특히 원전 때문이다. 원전을 한 곳에 몰아서 짓기 때문에 초고압 송전선이 필요한 것이다…한 곳에 발전소를 몰아서 짓다 보니 초고압 송전선이 자꾸 필요해지는 것이다.
실상을 알고 보니, 대한민국의 전력정책은 어처구니없는 수준이었다. 초등학생도 이런 식으로 정책을 펴지는 않을 수준. 전기가 꼭 필요해서 원전을 짓고 송전탑을 짓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 현상을 알고 보니 순서가 거꾸로였다.
문제의 출발점은 원전 같은 대규모 발전소를 많이 짓는 것이다.
그런 발전소들을 많이 짓다 보니 전기를 송전하기 위해 송전선을 많이 짓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기를 누군가가 쓰게 만들어야 하니, 원가 이하로 기업들에게 ‘산업용 전기’를 공급해 왔던 것이다.
“왜 이렇게 하나?” 하는 의문을 갖고 들여다보니, 모든 것이 다 ‘돈’ 때문이었다.
발전소와 송전선 건설을 둘러싸고 엄청난 돈들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돈을 버는 기업들이 있었다. 그들 때문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정책을 반복해 온 것이다.
대한민국 전력정책의 속살을 들여다보다
그들은 토론을 거부했다…그저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불온한 소책자를 내는 이유
그래서 이 소책자를 낸다. 그동안 내가 해 온 주장을 출판물로 정리해서 내려는 것이다.
착한 전기는 가능하다
‘착한 전기’는 다른 사람의 눈물과 고통을 낳지 않는 전기를 말한다.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고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지 않는 전기를 말한다. 핵발전의 위험과 기후변화, 그리고 초고압 송전선의 피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전기를 말한다.
모든 건 이권때문이다
_원전마피아·전력마피아·대기업들의 유착관계
계획 한 줄 들어가면, 7배 뻥튀기하는 장사
땅 짚고 헤엄치는 민자발전
역시 대기업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원전건설
엉터리 수요예측에서 출발하는 전력수급기본계획
남아도는 발전소들
로비가 통할 수밖에 없는 이유
외면할 수 없는 송전탑의 진실
_송전탑은 송전탑을 낳는다
중앙집중식 발전이 초고압 송전선을 낳는다
지역분산형 발전이 대세
비민주적인 절차.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착한 전기는 가능하다
_탈핵-탈석탄화-탈송전탑의 길
대정전과 전력난의 진실
그 많은 전기는 누가 다 썼나?
산업용 전기요금, 얼마나 싸나?
‘착한 전기’를 위한 대안은 간단하다
서울이 전력자급도를 올려야
문제는 정치야
착한 전기를 위한 다섯 가지 대안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이라면 할 일이 있다. 내가 움직이지 않는데, 세상이 변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그렇게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핵발전소들은 언제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상황이다.
많이 알려야 한다. 행동해야 한다…결국 이 문제는 정치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희망의 씨앗을 본다. 밀양과 청도의 할머니들이 희망의 씨앗이다. 이분들 덕분에 나는 이 잘못된 시스템의 본질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대안도 찾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