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밥이다. 김경집. p638
개똥철학? 생활에 직접적인 보탬이 되지 못하는 난해한 말들..우리 시대에 철학은 정말 개똥철학에 불과한가.
철학이야말로 자신을 주체적으로 만드는 지적 통찰이고 반성이다. 철학이 없는 대통령, 철학이 없는 대기업 총수에 우리는 얼마나 절망했던가.
그러나 철학이 빈곤하면, 사람도 삶도 개똥이 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자주 잊는다.
철학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질문 속에 이미 답의 반은 들어있다.
무엇보다 질문은 누가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고 따라서 질문 자체가 이미 주체적이다. 철학은 사유를 통해 주체적 자아를 발견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질문은 철학의 핵심 요소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 최초의 철학자였다!
소크라테스의 대화? 그가 선택한 방법은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강요하거나 가르치려 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자각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철학의 힘이다. 철학의 본질은 나와 세상의 문제를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절대주의. 플라톤에게 진리한 변하지 않고 보편적이고 객관적이고 필연적인 것이어야 했다. 그것을 이데아로 그려냈다. 이데아는 결코 물질 속에 있거나 물질의 속성을 가져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물질은 필연적으로 변화하고 궁극에는 소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오로지 플라톤만을 정통한 철학과 신학의 바탕으로 삼았다. 이게 플라톤이 서양문화를 오랫동안 지배할 수 있었던 힘의 실체였다.
상대적으로 플라톤의 제자였고, 이데아론에 맞서 개체론을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초기 교회에 의해 ‘이방인의 철학자’라는 낙인이 찍혀…철처하게 억압받았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금서로 제한되어 몰래 읽다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문제의 책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었다. 오직 플라톤만이 유럽의 중세를 장악한 ‘유일한’ 철학자였다.
의심. 그 자체가 도전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짧은 문장 하나는 그렇게 ‘중세를 상대로 한 결별통보’가 되었다. 기도로 얻은 것도, 은총으로 얻은 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바로 ‘생각하는 나’에 의해 얻어진 진실이다. 교회의 권위가 개입할 수 없는 인식의 출발이었다. 그게 바로 확실성이다.
이렇게 데카르트에 의해 근대의 싹이 텄다. 근대정신의 독립선언과 같은 이 선언으로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근대 및 현대 정신의 바탕이 마련되었다. 이 사유의 혁명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바라 나 자신이 이끈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의 혁명은 현실의 혁명으로 이어진다
통일왕국의 통치철학을 잡다한 이설을 택할 수는 없었다.
유럽은 종교로, 중국에서는 사상이 그런 역학을 했다. 그러나 하나의 학설로 통합되었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다른 학설에 대한 불관용 혹은 탄압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직시하자.
그러므로 중국은 공자가 지배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상의 사상통제가 작동하고 있었다. 사문난적의 오명을 뒤집어 쓸 학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1978년 가리타니 고진은 마르크스의 『자본론』 을 재해석해, 현대에서는 노동운동을 소비운동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했다. 당시에는 낯선 주장이었지만, 지금에 이르러 소비자 불매운동은 자본의 횡포에 맞서는 중요한 사회 변화 방식으로 공감을 얻고 있다.
#철학하라!
철학은 관념이 아니라 실천적 삶의 방식이다.
인문학은 ‘비빔밥’이어야 한다
우리의 교육은 문학 따로 역사 따로, ‘따로 국밥 시리즈’다. 그러나 인문학은 ‘비빔밥’이어야 한다. 그런데 제 밥이 뭔지도 모르는 판이나 문학은 문학대로 역사는 역사대로 ‘쓸쓸한 인문학의 공동묘지’에 나랗니 누워 신세 한탄만 하고 있다.
살아 있는 역사를 위하여.
역사학자 한홍구는 우리가 가까이 있는 역사를 외면하거나 왜곡하거나 혹은 무지해서 벌어지는 참담한 현실을 비판한다.
2008년 호주제가 폐지될 때까지 호주젶폐지운동(가족법개정운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지만 해결 방향을 쉽게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보수언론에서는 어째서 미풍양속을 없애려느냐고 연일 떠들어댔다. 그러자 한국현대사를 전공한 한홍구는 호주제는 일제가 만든 제도인데 그게 어째서 미풍양속이냐고 따졌다. 시민단체들도 역사적 배경을 잘 몰라서 엉거주춤하고 있던 참에 그의 일갈은 대립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데에 일조했다.
요즘 경제학을 주도하는 건 수학이다. 오로지 수학적으로 정교한 이론을 만드는 데에만 열중한다. 그런 수학이 경제학에서 맡는 역할은 주로 다양한 파생금융상품의 개발이다. 모든 것을 수학적 계산과 확률로 마른 수건 쥐어짜듯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내기 위해 금융 시장 바닥을 훑는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한 건 그런 수학자들이고 그 수학자들을 고용해서 이익을 얻으려는 주주들이다.
경제학을 수학자들이 쥐고 흔드는 순간 경세제민으로서의 경제학을 사라진다. 거기에는 인간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화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
세계화는 탐욕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지은이는 그 탐욕보다 심각하고 위험한 것은 우리들의 무지라고 지적한다.
좋은 수필은 좋은 친구처럼 가까이 두고 마음이 움직일 때마다 꺼내 읽으면서 삶의 향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어 좋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더라도, 그냥 불쑥 아무 장이나 펼쳐 읽어도 너그러운 반성과 살가운 희망을 만날 수 있다. 문장이 미려하지 않아도, 지식이 넘치지 않아도, 정서가 풍요롭지 않아도, 거기에는 사람의 향기가 있고 샘물같이 솟아나는 삶의 진정성이 담뿍 담겨 있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이 인식미를 토대로 한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는 한 추상화를 이해한다는 것을 정말 어려울 수밖에 없다.
표현미의 시대가 ‘화가의 눈’, 즉 그리는 사람을 주체로 세웠다면 인식미의 시대는 ‘관람자의 눈’으로 해석하면서 모든 개인이 각자 주체가 되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관람자의 눈이 여전히 화가의 눈을 따라야 한다는 강박과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현대미술을 어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미적 판단의 기준은 ‘재현’이 아니라 ‘표현’을 바뀌었다. 표현미의 시대가 온 것이다. 동시에 미적 판단이 객관에서 주관으로 변모했다. 이제는 ‘그리는 사람’이 주체가 된 것이다.
표현미에 가장 충실했던 그림들이 바로 ‘인상파 미술’이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이 인상파 미술을 대하는 눈길은 싸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의 미적 판단 기준은 여전히 재현미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티베트의 지혜』 -소걀 린포체
삶에서 진짜 중요한 일은 사소한 모습으로 찾아온다는 그의 메시지는 그대로 생활철학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외국에서는 <바이엘>이니 <체르니>니 하는 교재가 희귀도서란다. 그럴 법도 한 게 이전 세기에 사용하던 교본이고 현대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미국 대학교의 한 음악대학 도서관에는 유리 전시관에 보관돼 있단다…그런데 우리에게는 거의 유일한 교재였고, 21세기에도 여전히 주류가 되어 아이들이 이것으로 연습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즐거움이 덜 한 건 당연할 것이다. 기본기가 탄탄하게 마련되는 부수적인 결과는 얻겠지만.
국악을 가르칠 음악 교사가 없다? 서양음악을 전공한 이들이 대부분 교사인 까닭에 음악 시간에 국악을 가르치더라도 제 맛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하게 가르치지 못하고 그저 구색 맞추기에 급급한 형편이다.
정치는 삶이다
논어의 <자로>편을 보면 초나라 대부 섭공이 정치가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가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정치의 궁극적 목표가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데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강조한 셈이다.
정치는 어렵다. 복잡하게 얽힌 사회적 양상을 해소해야 하고, 이념과 가치에 대한 다양성을 포괄해야 하며,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능가할 수 있는 제도나 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등 거의 불가능한 지향들이 우리의 삶 도처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불가능의 예술)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시작된 것은 열등한 환경 덕분(?)이다…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는 곳이 스파르타다. 스파르타가 끝내 군사 국가의 형태를 포기하지 못한 것은 그리스에서 보기 드물게 드넓은 평야 지대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리적 조건과 경제적 요인 때문에 스파르타는 군사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었다.
고대나 중세에는 일반 대중이 권력에 저항할 힘이 없었다. 체념과 순응만이 전부였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근대 정치적 사유는 더 이상 그런 일방적 권력의 가치의 위험성을 용납하지 않았다.
잠수함 속의 토끼? 잠수함에서는 남은 산소의 양을 측정할 수 없어서 토끼를 태웠다. 산소 결핍에 예민하게 느끼는 토끼가 반응하면 수면 위로 올라가야 했다. 게오르규는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시인을 일컬어 ‘잠수함 속의 토끼’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이때 시인은 지식인으로 혹은 정치인으로 치환해도 무방하다. 사회적 불의를 경고하고 맞서 싸워야 할 사회적 의무를 지닌 사람들이다. 그러나 정의라는 관점에서 볼 때 토끼는 바로 사회적 약자들이다. 약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사회는 불의를 묵인하는 사회다.
처음에 그들은 공산주의자를 잡으러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유태인을 잡으러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다
그런데 이제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좌파’와 ‘우파’라는 용어는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소집된 국민회의에서 의장석에서 볼 때 오른쪽은 왕당파가 앉고 왼쪽은 공화파가 앉은 데서 유래했다. 공화파가 장악한 1792년 국민공회에서도 왼쪽에 급진파인 자코뱅파가 오른쪽에 보수적인 지롱드파가 그리고 가운데에 중간파인 마레당이 앉았다.
환경 생태를 다루는 포스터나 브로슈어에도 초록색이 가장 많이 쓰인다. ‘녹색’운운하는 조직이나 용어들이 점증하는 것도 같은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 초록색은 다른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바로 돈의 색깔이다. 달러나 만 원권 지폐의 색깔.
이미 환경은 돈이라는 걸 체감하기 시작했다. 탄소배출권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쓰레기 종량제도 큰 비용은 아니지만 분명히 경제적 관련을 맺고 있다.
#에필로그_나에게 인문학이란
인문학은 레고다
인문학은 흐르는 강물이다. 흐르지 않고 고인 물은 썩는다
인문학은 요리가 아니라 요리법이다
인문학으로 사고를 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