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문장. 장하늘. p268
#그믐달_나도향
나는 그믐달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달은 너무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가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버리는 초승달은,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가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와 같은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에 둥근 달은 모든 영화와 숭배를 받는 여왕 같은 달이지만,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와 같은 달이다.
초승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마는,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한등에 정든 임 그리워 잠 못 들어 하는 분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잡는 무슨 한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달을 보아주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는 고요한 꿈나라에서 평화롭게 잠든 세상을 저주하며, 눈에는 머리를 풀어뜨리고 우는 청상과수와 같은 달이다. 내 눈에는 초승달 빛은 따뜻한 황금빛에 날카로운 쇳소리가 나는 듯하고, 보름달은 쳐다보면 하얀 얼굴이 언제든지 웃는 듯 하지마는, 그믐달은 공중에 번듯하는 비수와 같이 푸른빛이 있어 보인다.
내가 한 있는 사람이 되어서 그러한지는 모르지만, 내가 그 달은 많이 보고 또 보기를 원하지마는, 그 달은 한 있는 사람만 보아주는 것이 아니라, 늦게 돌아가는 술주정꾼과 노름하다 오줌 누러 나온 사람도, 어떤 때는 도둑놈도 보는 것이다.
어떻든지, 그믐달은 가장 정 있는 사람이 보거나 또는 가장 한 있는 사람이 보아주고, 또 가장 무정한 사람이 보는 동시에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많이 보아준다.
내가 만일 여자로 태어날 수 있다 하면, 그믐달 같은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서정적·묘사적·구체적 서술. ‘읽힐 글’의 세 조건을 갖춘 수필이라는 얘기다.
#미운 간호부_주요섭
어제 S병원 전염병실에서 본 일이다.
A라는 소녀, 7·8세밖에 안 된 귀여눈 소녀가 죽어 나갔다. 적리로 하루에 집에서 앓고, 그 다음 날 하루는 병원에서 앓고, 그 다음 날 오후에는 시체실로 떠메여 나갔다. 밤낮 사흘을 지키고 앉아 있었던 어머니는 아기가 운명하는 것을 보고, 죽은 애 아버지를 부르러 집에 다녀왔다.
그동안 죽은 애는 이미 시체실로 옮겨가 있었다.
부모는 간호부더러 시체실을 알려달라고 청하였다.
“시체실은 쇠 다 채우고 아무도 없으니까, 가보실 필요가 없어요”하고 간호부는 톡 쏘아 말하였다. 퍽 싫증 난 듯한 목소리였다.
“아니 그 애를 혼자 두고 방에 쇠를 채워요?” 하고 묻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떨리었다.
“죽은 애 혼자 두면 어때요?” 하고 다시 톡 쏘는 간호부의 목소리는 얼음같이 싸늘하였다.
이야기는 간단히 이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 몸서리처짐을 금할 수가 없었다. ‘죽은 애를 혼자 둔들 어쩌리!’ 사실인즉 그렇다. 그러나 그것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심정! 이 숭고한 감정에 동정할 줄 모르는 간호부가 나는 미웠다. 그렇게까지도 간호부는 기계화되었는가? 나는 문명한 기계보다도 야만한 인생을 더 사랑한다. 과학상에서 볼 떄, 죽은 애를 혼자 두는 것이 조금도 틀릴 것이 없다. 그러나 어머니로서 볼 때는… 더 써서 무엇하랴!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동정할 줄 모르는 간호부! 그의 그 과학적 냉정이 나는 몹시도 미웠다. 과학 문명이 앞으로 더욱 발달되어 인류 전체가 모두다 ‘냉정한 과학자’가 되어버리는 날이 이른다면… 나는 그것을 상상한하기에도 소름이 끼친다.
정情! 그것은 인류 최고의 과학을 초월하는 생生의 향기다.
크게 세 가지 특징으로 쪼크릴 수 있다. 첫째, 단순한 주제와 화제, 둘째, 간결한 표현과 서술, 셋째, 명쾌한 구성과 필자의 태도.
‘문제는 경제다’는 속설을 생각한다. ‘헤밍웨이의 표현의 3원칙’을 생각한다. ‘들릴듯이’(audible), ‘보이듯이’(visible), ‘만져디듯이’(tangible). 이게 바로 하드보일드 문체의 보람이겠다.
평균 23자의 컬럼문! 좁다란 손바닥 공간에서 금을 캐어내어야 하는, 문장 쪼크리기의 표본을 본다.
#책_이태준
“인류가 자연으로부터 선물로 받지 않고, 인간의 정신으로 창조해 낸 수많은 세계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 헤르만 헤세의 말이다.
#’좋은 문장’은 그 사람에게서 배어나는 향기다_한승원
단문은 어떤 효과가 있는가. 속도감이 있다. 그림에서의 점묘처럼 사람을 긴장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대신 밀도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의 불만은 부사와 형용사가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비유법의 묘미를 터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형상화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표현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것이 불필요한 형용사나 부사를 남발하게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것을 비유법을 동원함으로써 극복하기 시작했다.
‘그는 두려워서 벌벌 떨었다’의 경우네 ‘그는 높새바람에 산파래 떨 듯했다’는 투로 써보았다. 묘사적인 서술을 통해 단조로움과 건조함을 극복해 갔다.
문장이란, 문자로써 이루어진 영혼의 전달이다.
표현이 최소일수록, 내용은 최대가 된다.
하나의 문장, 그것은 그 작가의 텃밭에서 피어나는 한 떨기 꽃이다.
#아적 독서록_윤오영
이제 내 독서의 의의를 묻는다면, 첫째, 자아발전이요, 둘째, 사색의 소재요, 셋째, 곡소의 광장이다. 다시 말하면 곧 내 생의 파악이요, 내 생의 방편일 뿐이다. 모든 것은 내가 있음으로 해서 있다. 그러므로 나보다 더 가깝고 친한 것은 없다. 나를 스스로 아끼고 소중히 하고 사랑하는 까닭이다…
작가란 다른 사람이 삶에서 놓치는 것들-못 보거나, 안 보거나, 지나치거나, 관과한-중에서 삶의 비밀이나 비의悲意, 인생의 촉수觸手를 포착해 올리는 사람일 것이다.
속도의 물결에 앞장서면 승리자이고, 이탈하면 낙오자가 된다.
그러나 인간은 시간의 속도 위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고 있는 줄타기 곡예사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만든 문화와 문명이 속도에게 고삐를 되잡히고 있는 형국이다. 한없이 달리는 속도의 등 위에서 인간은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내릴 엄두를 못 낸다. 낙오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일 것이다.
파우스트의 외침을 한번 들어보자.
“잠깐 초침이 떨어졌다!”
시간이 멈춘 것이다. 정지의 순간, 그는 비로소 영혼의 자유를 얻는다. 시간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속도는 불가항력인가? 아니다. 두려움에 대한 또 하나의 집단의식일 뿐이다. ‘빠름’은 실용주의의 키워드에 지나지 않는다. 21세기가 진정 창조적 시대가 되려면 ‘느림’의 키워드도 존중되어야 한다. 유속이 빠른 강물엔 고기가 살기 어렵다…
#지은이의 말
‘문장’. 그것은 ‘생각을 틀(型)로 짜 보이는 하나의 건축물’이다. 그 집이 잘 지어졌음을 판단하는 주체는 지은 목수가 아니라 들어가 사는 사람 자신이다.
문장 안에 들어가 보금자리를 틀고, 방의 배치(단락), 광선의 조응(문체), 통풍(문맥)을 잘 드레질하여 보시라. 글심(문장력)이 팔팔결 달라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