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이만교. p384
프롤로그_글쓰기와 꿈
꿈꾸는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무엇인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미미하게라도 자신이 꿈꾸는 방향으로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의식뿐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 전체로 꿈꾸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 삶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자신의 내면세계 전체로 변화를 꿈꾸는데 어떻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변화는 당연히, 반드시,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것도 현실에서 가능한 가장 빠른 속도로 일어나게 되어 있다.
알고 보면 인간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또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자신이라 주변 사람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 일인지를 알지 못하는 존재다.
이렇듯, 표면적으로 내세운 의식적 꿈과 실질적으로 욕망하는 자신의 무의식적 꿈은 전혀 딴판일 수도 있다.
이렇게 의식적 꿈과 무의식적 욕망이 불일치한다면, 이것은 마치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와 같다. 쉽게 그 목표가 성취될 리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수시로 자기 자신이 의식적으로 표방하는 꿈과 무의식적으로 욕망하는 실질적 내용이 같은지 다른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속고 속이는 기만을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여기며 살게 된다.
성철, 몽중일여
성철은 동정일여, 몽중일여, 숙면일여가 되어야 실제 견성이란다.
동정일여, 몽중일여, 숙면일여를 해야만 그제야 우리는 의식과 무의식이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직과 자유의 시인, 김수영
도덕적 정직과 실질적 정직
실질적 정직과 산문적 글쓰기.
살아 있는 글쓰기 또한 실질적 정직을 통해서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글쓰기의 기본은 산문이다. 산문이란, 말 그대로, 풀어헤치는 방식의 글이다. 살면서 겪은 일에 대해 정확하게 풀어서 서술하고자 한 결과물이 산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관습적으로 넘어가는 문제들, 대충 뭉뚱그려 생각하는 문제들, 혹은 순간적인 긴장·불편·짜증·통증 정도로 여기며 스쳐 지나가는 문제들, 혹은 두렵거나 난해하거나 복잡해서 마주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언어로 촘촘히 풀어헤침으로써 그 문제들, 그 감정과 감각들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을 발견하고, 그것이 징후하고 예언하는 바를 찾아내는 언어행위가 산문적 글쓰기이다.
실질적 정직은 이러한 산문적 글쓰기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동력이다.
실질적 정직의 자세를 유지하면, 특별히 공부나 지식이 대단치 않더라고 그리고 경험이나 재능이 유별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정말이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포즈만 취하고 있다. 말로는 글을 쓰고 싶다고 하고, 또 실제로 의식적으로도 글을 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의 무의식 깊은 곳에서 글은 한낱 명분이거나 핑게일 뿐, 정작은 다른 욕심을 취하고 싶어 한다.
산속 선승처럼 스스로 점검해 보자. 문학을 하고 싶다면서, 정작은 문학적 관심보다는 다른 문제들에 신경을 뺏기는 자기 기만의 생활에 빠져 살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과연 정말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하루의 계획표를 짜고 있는가. 모니터와 마주쳐야 하는 외로움으로부터 조금이라고 회피해 보려고 쓸데없이 오랜 웹서핑으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비록 중요하지만 그러나 글쓰기보다는 덜 중요한 어떤 모임에 굳이 참석하여 하루를 낭비하지는 않았는가. 전철을 타고 혼자서 독서를 하며 갈 수 있는 시간에 괜히 조금 더 편하다는 이유로 친구 차를 얻어 타고는 말상대 해주느라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는가.
꿈과 현실은 다를 수는 있지만 분리될 수는 없다.
가령 사진작가를 꿈꾸는 샐러리맨이 있다면…..그가 만약 한 번의 전시회로 만족한다면 그는 ‘한 번의 전시회로 만족하는 사진작가’를 꿈꾼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거기서 그대로 멈출 수 있겠는가.
물론 현실적인 여러 가지 이유와 사정이 발목을 잡는다. 최소한의 사회활동, 집안 형편과 경제적 현실, 체력적 한계 등과 같은 어쩔 수 없는 사정들로 인해 더 이상은 어쩔 수가 없다고 포기하고 싶어지곤 한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 사람은 ‘현실의 어쩔 수 없는 여러 사정이 발목을 잡으며 포기할’, 그야말로 더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 틀림없다. 정말로 무엇인가를 꿈꾸는 사람은 말 그대로 꿈이라도 꾸지 않을 수 없다. 현실적 형편이 허락하지 않을 경우, 하다못해 꿈속에서라도 그 무엇인가를 하는 꿈을 꾸게 된다. 꿈은 말 그대로 꿈이어서 현실 조건에 얽매여 멈추지 않는 법이다. 멈추는 법을 모른다. 오늘 그려 보는 내일의 자기 모습은 그 모습 그대로 자신이 바라는 미래상이겠지만,
그러나 오늘의 내 모습은 어제의 내가 실제로 바란 그 모습이다.
글쓰기란 무엇인가
글쓰기란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글쓰기의 입구, 씨앗 문장과 씨앗 도서
독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읽다 지루하면 접어라
밑줄의 빈도와 공명의 강도
운명적인 단 한 권의 책
독서의 가치와 독서량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음을 여실히 보여 주는 대표적 일례가 바로 전태일이다. 『전태일 평전』에 의하면 그는 거의 책을 읽지 못한 듯하다….전태일이 다른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인생을 살기까지 읽은 책은 고작 이 책(근로기준법 해설서), 한문투성이 법률해설서 한 권뿐이다. 책 읽는 권수나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전태일은 우리에게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언치와 언어적 감수성
대부분이 언치다
일상언어와 출판언어
주인공 및 화자 되기
글쓰기 과정은 연극 혹은 연기의 일종이다. 주인공이 어린아이일 때는 어린아이의 정서로 이야기해야 한다. 고양이일 때는 고양이의 감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표현한 내용과 해석한 내용은 다를 수 있다
표현한 내용과 표현된 내용이 같아야 한다
다수언어와 창작언어
소수언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기성언어와 주류문법으로부터 벗어나거나 가로지르거나 비틀거나 전복하면서 새롭게 변형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기만의 낯설고도 새로운 감각, 사유, 상상의 문장 즉 창작언어를 만들어야한다. 글쓰기 영역에 있어서는, 스스로 창작언어를 구사할 때만이 진정한 소수자이다.
감수성이 무디어지면 다수언어가 된다
상투적 문장과 평이한 기록문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해야 할 개인과 사회를 위한 첫번째 운동은 일체의 다수언어(관습어·관용구·상투구·유행어·빈번히 사용되는 언어)로부터 이탈하는, 새롭고 정확하고 독특한 언어문법으로부터 출발하는 일이다. ‘낯설게 하기’란 이러한 운동의 형식적 측면을 일컫는 말이다. 오염된 언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문학언어는 ‘낯설게 하기’의 문법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낯설게 하기’의 실질적이고도 일차적인 뜻은 사회적으로 오염되지 않은, ‘보다 정확한 언어와 의미를 구사하기’일 것이다.
기성작가들의 창작언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읽는 사람을 이따금 웃겨 주는 책이다…그리고 정말로 내가 감동하는 책은, 다 읽고 나면 그 작가의 친한 친구가 되어 전화를 걸고 싶을 때 언제나 걸 수 있게 된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하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셀리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의 서두 부분에 나오는 구절이다. 인용된 구절을 읽어 보면 누구나 쉽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이처럼 적절하고도 멋진 표현을 우리의 감정을 새롭고 즐겁게 일깨운다.
구현적 글쓰기
글쓰기는 단순한 경험적 기록이나 재현적 글쓰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나 주제에 걸맞게 재배치되고 생략 혹은 강조되면서, 심지어 허구적 사실을 추가하면서, 새롭게 구현되는 창의적 과정이다. 작가는 경험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한 내용이나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에 맞게끔 취사선택하고 심지어는 그에 걸맞은 새로운 상상을 만들어 내야 한다.
스토리는 시간의 연속에 따라 정리된 사건의 서술
플롯은 역시 사건의 서술이지만 인과관계를 강조하는 서술
단계별 글쓰기
산문화
산문은, 운율과 압축미를 중시하는 운문과는 반대로, 풀어쓰는 글이다. 하이쿠나 짧은 아포리즘, 시구와 같은 운문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내용을 다루려면, 산문적 글쓰기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특히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는 운문조차도 곧잘 산문화된다. 우리나라 근대시인 중에서 가장 산문정신이 강렬했던 시인으로 단연 김수염을 꼽을 수 있다.
산문이란, 일상 너머 진실을 주시·성찰하여 풀어쓰는 글이다. 단지 운문에 반하는 개념이어서, 따로 익혀야 할 장르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통념적 수준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유나 상상력을 담은 문장이 펼쳐지는 순간, 산문쓰기는 가능해진다.
낯설게 하기와 정직하게 하기
에필로그_본질적 감수성
우리의 글쓰기 역시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늦은 것일 수 없다. 다가올 대해에 대해서는, 지금 읽고 쓰고 성찰하는 우리 각자의 행동이 언제나 가장 빠른 길이다. “모든 행동은 그것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늦지 않습니다. 언제나 후회만이 늦을 뿐, 행동은 결코 늦지 않습니다.”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첫번째 행동은 아마 꿈을 꾸는 것이리라. 그리고 가장 빠른 첫걸음은 이제 읽고 쓰고 생각하는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리라.
개인적이면서 사무사한 글쓰기
“모든 행동은 그것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늦지 않습니다. 언제나 후회만이 늦을 뿐, 행동은 결코 늦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