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안건모. p310
#버스 운전사와 글쓰기_홍세화
여전히 그이의 일상은 이전의 그것과 달라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상의 주인인 그이의 생각과 세상을 보는 시각의 변화는 요소요소에서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왔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 변화의 시작을 가능하게 한 것은 책을 통해서 만나게 된 글이었겠지만, 그 변화를 차분하고 진솔하게 진행할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자신을 정직하게 드러낸 글쓰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삶을 바꾸는 글쓰기!)
#한국 사람들의 참모습_미야우치 마사요시, 일본 도쿄 시내버스 운전사
같이 동해운수에서 운전대를 잡은 기사가 된 듯. 착각하면서 읽었다. 내게 힘이 되어 주는 믿음직한 ‘동지’가 일하는 동해운수에서…
안건모 씨의 글은 직장에서 보게 되는 일들을 단순히 묘사하고 비판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자신들, 곧 노동자라는 신념으로 일관되어 있으며 일하는 사람이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관점에서 사회와 사람을 보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고 그런 관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머리말
나이 마흔 무렵에야 ‘열심히 일만 하는 근로자’에서 ‘이 세상 주인 노동자’로 삶을 바꾸었습니다.
책이 제 삶을 바꿨습니다.
『쿠바와 카스트로』라는 만화책을 가장 먼저 보았습니다. ‘세상 사는 게 왜 이렇게 답답하고 힘들까. 내가 못나서 그럴 거야. 못 배운 게 죄지.’ 이렇게 막연하게 생각하며 살다가 그 만화책을 한 권 보니 깜깜한 굴속에서 빠져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시내버스, 알고나 탑시다
잘라 말하지만 서울역 가는 버스들이 그 지하 차도를 2차로만 타고 다니면 그곳은 교통마비가 일어날 곳이다. 하지만 경찰들이 교통 소통에 관심이 있나? 딱지만 떼면 되지. 그러니 우리 운전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딱지를 떼면서 1차로를 탈 수밖에 없다. 법을 어겨서 걸린 게 아니라 재수 없어 걸린 거라고 분통을 터뜨리면서.
#꼬마손님
“서울역은 왜 가는 거야?”
“엄마가 식당에서 일해요.”
“엄마가 일하는 데로 오라 그랬어? 집에서 기다리지.”
“집에 아무도 없어요.”
서울역으로 가면서 아이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아빠는 집에 늦게 들어오고, 집에는 자기 혼자 있다고 했다. 아무도 없이 집에서 혼자 있다가 엄마 올 때쯤 같이 오려고 가는 거라고 한다. 가슴이 싸해지고 콧등이 시큰해진다.
내가 어릴 적에 우리 부모님도 맞벌이를 했다….학교 갔다 돌아오면 집에는 늘 아무도 없었다. 반겨 주는 엄마가 없는 빈집처럼 쓸쓸한 일이 있을까….저 아이도 그렇다. 이제 일곱 살, 아직 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혼자 엄마를 찾아간다고 서울역으로 가고 있으니…
화요기…책 한 페이지…TV 드라마 속 ‘재미’에 빠져 현실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아이들…
#버스 식당 아주머니
삶이란 곧 싸움이다
#사업주도 파업하네
‘요금 인상한다고 서비스 좋아지나? 난폭 운전에 배차 시간도 엉망인데 버스가 파업한다니 참을 수 없다.’ ‘요금이 올라야만 서비스 개선하다는 소리 좀 그만두자. 어차피 개선되지도 않을 거 시민들 목숨을 담보로 파업하지 말라.’….어떤 말을 들어도 우리 버스 기사를 싸잡아 욕하는 말들이다. 우리 기사들은 억울하다. 우리가 스스로 파업을 하고 그렇게 욕을 먹어도 참기 힘들 텐데, 사업주와 정부, 어용조합이 짜고 파업을 하는데 왜 힘 없는 우리 기사들만 욕을 먹어야 하는가.
돈을 줄 수밖에 없게 되자 회사는 꼬라지가 났는지 이 아무개 씨를 삥땅으로 형사 고소했다. 검찰은 이 아무개 씨를 기소했지만 법원은 벌금 20만 원을 물라고 판결했다. 그래 20만 원만 물면 되는데, 그놈들은 그걸 협박해서 천만 원이나 되는 돈을 떼어먹으려고 억지를 쓴 것이다. 그게 사업주들 속성이다.
나는 왕따다. 집에서나 동에네서나 직장에서도 왕따다. 명절 때나 제사 때 집에서 친적들이 모이면 나는 대화에 끼지 못한다. 세상을 보는 눈이 나랑 달라 대화가 되지 않는다.
지난 2003년은 WTO 각료회의 저지 투쟁으로 이경해 동지가 자결했고, 손배가압류, 부당노동행위, 비정규직 차별, 이런 거 때문에 여섯 명이나 되는 노동자들이 죽음으로 항거한 해였다. 온 나라의 노동자 농민들이 들고 일어서야 했기에, 짱돌 하나 집어던지지 못하는 나였지만 ‘대가리 수’라도 채워야 된다고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왜 어릴 때부터 밑바닥 노동자로서 자란 형제들이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지…
#짜고 치는 고스톱
내 입이 마르고 닳도록 또 한번 얘기를 해야 되겠다. 시내버스 파업 얘기인데 지나간 얘기라고 건성으로 잃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 테니까.
지난 4월4일, 시내버스가 파업을 한다고 했다가 극적 타령, 아니 극적 타결을 했단다. 새벽 4시가 타결 시한이라고 했는데 3시40분에 아슬아슬(?)하게 극적 타결이 됐단다. 웃기는 짬뽕들.
#주민독서실
내가 속고 살았나?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태백산맥』을 보고, 『남미의 혁명가 체 게바라』, 『찢겨진 산하』, 『거꾸로 읽는 세계사』, 『노동의 새벽』,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처럼 이제는 제목이 거부감을 주는 책들만 골라 밤을 새고, 버스 운전을 하면서 보았다.
세상에, 이렇게 감쪽같이 속고 살았다니.
#시내버스를 정년까지_제7회 전태일문학상(1997)
시내버스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자본가의 이윤은 노동자의 잉여노동을 착취한다’는 논리는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시내버스 사업주들이 하는 꼴을 보면 금방 ‘아, 이런 거구나’하고 이해할 수 있다.
운전기사들이 모자란다고 한다. 다 헛소리다. 10년 전 단체협약이 그대로 내려오고 있다. 아니 오히려 거꾸로 나빠지고 10년 전 운행 횟수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근무시간을 늘어나고 월급은 적어 생활하기가 어렵다. 운행 시간이 빡빡해 쉴 시간이 없다. 손님들은 버스기사들이 본래 성질이 나빠 난폭하게 운전한다고 한다. ‘본래’는 아니지만 ‘난폭’은 사실이다. 그렇게 안 하면 살벌한 시내버스 회사에서 버틸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버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기사가 딸릴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