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길로 접어든 농촌에선 오히려 ‘노인은 살아있는 박물관이다’라는 말도 옛말이 될 날도 머지 않은 듯하다.
‘살아있는 박물관’을 이어갈 후손들이 줄어드니 오랜 전통은 아련한 옛기억속으로 사라져가고만 있다.
지난 상여가 나간지 한 달 남짓 뒤 또다시 꽃상여가 나간다.
지난 꽃상여로 떠나신 ‘요령잡이‘를 대신할 ‘디지털 요령’까지 서둘러 준비해두었지만, 다행히도 목청 좋은 ‘젊은’ 요령잡이가 나타나 꽃상여가 무사히 나간다.
가파른 산길로 거뜬히 오르는 꽃상여를 보니 부러움과 함께 감탄이 절로 나온다는 웃동네 어르신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신참 요령잡이와 함께 꽃상여를 멘 젊은 상여꾼들이 있어 듬직한 마을풍경이 펼쳐지는 꽃상여 가는 날이다.
하지만 꽃상여가 남기고 간 슬픔이 크기만 하다.
말기 암 진단과 함께 갑작스런 죽음으로 살아생전 못다한 효도가 남은 자식들에게도 더없이 큰 슬픔과 안타까움을 남기고 가신 고인의 명복을 함께 빌어본다.
어쩌면 평생을 농촌에서 힘겨운 농삿일을 하며 ‘작은’ 몸이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오로지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로 살아오신 ‘시골어머니들’의 삶에 가장 큰 위로가 죽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잠시 슬픔을 달래본다.
살아서 누리지 못한 편안한 휴식을 비로소 맘껏 누리시며 편히 쉬게 되시었으니…
부디 편히 잠드소서.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마지막까지 인간관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생을 자식들에게 헌신한 이에게 화를 낼 수는 없다.”-한기호, 『나는 어머니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