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설계. 뉴 사이언티스트 기획. 마크 뷰캐넌 외. p301
어쨌거나 우연은 물리법칙에서 가장 근본적인 과정인 듯 보인다.
세상만물의 작동방식을 깊숙이 파고들다 보면 결국에는 양자론과 만나게 된다. 양자론은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지극히 작은 것들의 세계를 기술하는 이론이다. 원자, 전자, 양성자 모두 양자물리학의 법칙을 따른다. 그리고 이 법칙들은 여러 모로 ‘무법 상태’처럼 보인다. 양자론의 심장부로 들어가면 그곳에는 원인도, 결과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보어는 아주 현명하게 대응했다. 그는 왜 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훈수를 두느냐고 아인슈타인을 질책했다. 그가 옳았다. 우리는 당연히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어야 한다고 여기지만, 그런 직관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존재 자체가 크나큰 행운
빅뱅에서 인류의 탄생으로 이어진 우연한 사건들
무작위로 일어난 이런저런 변화들이 당신을 이 우주에서 둘도 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인류의 진화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진화는 신기한 우연으로 가득한 놀라운 여정이다.
생명의 알고리즘
DNA는 유전자의 데이터뱅크이고, 유전자야말로 맞춤형 단백질을 만들어내고 또 그 단백질을 통해 다른 생체분자를 간접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지침인 것이다. 생명은 슈퍼컴퓨터 같은 정보처리시스템이다. 말하자면 조직화된 복잡성의 한 특별한 형태라는 의미다. 따라서 진정한 미스터리는 살아 있는 세포의 하드웨어적 구성요소가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정보 내용물, 즉 소프트웨어다.
유전암호만큼 생명의 컴퓨팅 솜씨를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종의 기원. 하지만 다윈이 선택한 책 제목에는 역설이 담겨 있다. 그의 책은 실제 새로운 종의 탄생을 촉발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세상이 이런 기막힌 우연이! 우리는 우연을 좋아해서 서로 뒤엉켜 일어나는 온갖 사건에 의미를 부여한다. 통계학적으로 보면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는 것인데 말이다. 이것은 원초적인 반응인 듯싶다. 사람들은 의미가 없는 사건에서 항상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전통적인 통계학적 접근방식에서는 뭉쳐서 발생하지 않는 다른 많은 요소들을 암묵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표본공간의 일부를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확률에 관한 우리의 직관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우리 뇌에 있는 특정 감지 시스템은 오직 일어나는 사건만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운 좋은 사람이라 느끼는가?…여기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듯 행운은 당신이 무작위로 일어난 사건으로부터 이득을 뽑아낼 준비가 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자신의 행운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패턴을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낸다…우리는 여전히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는 과정이 마치 질서가 있거나, 무작위적이거나 이 둘 중 하나뿐인 것처럼 얘기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힘들다. 날씨는 진정 무작위적인 현상일까? 아니면 어떤 패턴이 있을까?
운이 좋다는 사람들은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삶을 편안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새로운 경험을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등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포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신이 주사위 놀이를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질문을 ‘어떻게’대신 ‘왜’로 바꿔보자?
이제 일부 물리학자들은 양자세계에 나타나는 무작위성이 어떤 목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만약 이들이 옳다면 양자적 불확실성을 불러오는 결과는 우리 세상에 카오스와 무질서를 집어넣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신은 그것을 이용해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우주의 모든 영역들을 자신의 계획대로 모순 없이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길을 잃어보는 것도 좋아. 이제 책을 마무리하기에 앞서 간곡하게 부탁할 것이 있다. 부디 우리의 삶에서 모든 불확실성을 근절하려 들지 말자. GPS에서 책 추천에 이르기까지 여러 기술이 등장해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정확하고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있지만 그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행복은 운에 맡기고 도전해보는 데서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구글지도 네비게이션, 옵션에 ‘가장 모험적인 길’이라는 옵션이 추가되지는 않을까?
우리의 일상 기술에 우연이라는 요소를 살짝 첨가한다면, 정신없이 효율성만 추구하다가 놓쳐버린 무언가가 다시 눈에 들어올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대부분의 대중서적에 등장하는 핵심적인 줄거리예요. 주인공이 뜻하지 않은 것을 마주쳤는데, 그것이 마법의 존재였고, 그때부터 거친 모험의 세계로 떠나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이런 판타지를 꿈꿔요.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 판타지를 우리의 현실로 다시 되찾아올 수 있을까요?” (미하엘 엔데, 『끝없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