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을 보라. 프리드리히 니체. p194
나의 제자들이여, 나는 이제 홀로 가려 한다! 너희도 각각 홀로 길을 떠나라!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다.
나를 떠나가거라. 그리고 차라투스트라에 맞서라! 더 바람직한 것은: 그를 부끄러워하라! 그가 너희를 속였을지도 모른다.
영원히 제자로만 머문다면 그것은 스승에 대한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다.
너희는 나를 숭배한다: 하지만 어느 날 너희의 숭배가 무너지게 된다면 어찌하겠는가? 신상에 깔려 목숩을 잃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
너희는 차라투스트라를 믿는다고 말하는가? 하지만 차라투스트라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너희는 나의 신도다. 하지만 신도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너희는 너희 자신을 아직도 찾지 않고 있었다: 그때 너희는 나를 발견했다.
모든 신도들은 다 그렇게 한다: 그러므로 신앙이란 하나같이 공허한 것이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명한다: 나를 버리고 너희 스스로를 찾아라: 그리고 너희 모두가 나를 부인할 때 비로소 나는 너희에게 다시 돌아오리라….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신’, ‘영혼불멸’, ‘구원’, ‘피안’과 같은 시끄러운 개념들은 내가 주목하지도 시간을 투자하지도 않았던 개념들이다. 심지어는 어린 시절에도 그랬다-내가 충분히 어린아이답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무신론을 결코 결과로 이해하지 않는다. 더욱이 사건으로 이해하지도 않는다: 나에게 무신론은 본능으로부터 이해되는 자명한 사실이다. 나는 조잡한 대답에는 만족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호기심이 많고 너무 의문이 많으며 너무 오만하다. 신이란 하나의 조잡한 대답이며, 우리 사상가들의 미각에는 맞지 않는다-그것은 본질적으로는 우리에게 조잡한 금지를 내리는 것일 뿐이다: 너희들은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 경우에는 모든 독서가 휴양에 속한다. 따라서 독서는 나를 나 자신에게서 떠나게 하고 낯선 학문들과 영혼들 사이에서 산책하는 것. 독서는 나를 그야말로 나의 진지함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휴양이다.
내 머리에 못을 박는 대신에-내 핵심을 찌르기 위해서는 모든 ‘가치를 전도하는 것’외에는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그래서 나는 좀 더 나은 설명을 시도할 것이다.-결국 어느 누구도 책을 포함한 모든 사물로부터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는 없다.
체험을 통한 진입로를 알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들을 귀도 없다…그 책이 새로운 일련의 경험에 대한 최최의 서술인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러한 경우에는 전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청각적 착각이 있을 것이다.
즐겁고도 가장 열광적이면서도 무모해 보이는 삶에 대한 긍정은 최고의 통찰일 뿐만 아니라 진리와 학문에 의해 가장 엄격하게 확인되고 유지되는 가장 심오한 통찰이다. 존재하는 것에서 버릴 것은 하나도 없으며, 없어도 좋은 것은 하나도 없다…이 점을 파악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용기를 위해서는 넘쳐 나는 힘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용기가 과감히 전진해 나갈 수 있는 바로 그만큼, 바로 그 힘의 정도만큼 진리에 다가가기 때문이다. 강자에게 인식과 실재에 대한 긍정이 필연적이듯이, 약함에 고무되어 있는 약자에게는 실재에 대한 비겁과 실재로부터의 도피가-‘이상’이-필연적이다…인식은 약자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내 과제는 인류가 최고의 자기 성찰을 하게 되는 순간이 위대한 정오를 준비하는 것이다…이 과제는 인류가 스스로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고 인류는 전혀 신적으로 지배되지 않으며, 오히려 가장 신성한 가치 개념들 밑에는 부정 본능, 부패 본능, 그리고 데카당스 본능이 유혹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통찰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된다. 도덕적 가치가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에 도덕적 가치의 기원이라는 문제는 내게 가장 중요한 문제다.
#나는 왜 하나의 운명인가
모든 가치의 전도: 이것이 인류 최고의 자기 성찰 행위에 대한 나의 정식이다. 이것은 내 육신이 되고 내 천재성이 되었다. 내 운명은 내가 최초의 현명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내 운명은 내가 나 자신을 수천 년 동안의 거짓에 맞서는 대립자로 인식하기를 원한다…나는 진리를 최초로 발견했다. 왜냐하면 최초로 거짓을 거짓으로 지각했기 때문이다-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내 천재성은 내 콧속에 있다…나는 전에 아무도 나만큼 반대하지 못했을 정도로 반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정적 정신의 소유자와는 반대에 있다. 나는 이제까지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복음의 전달자다. 나는 이제까지고 표현해 줄 만한 개념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고귀한 과제들을 알고 있다: 희망은 비로소 나와 함께 다시 일어나기 시작한다. 나는 이러한 모든 점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숙명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현혹,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무능력, 그리고 자기 파괴가 심지어는 가치의 표시가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의무’로, ‘성스러움’으로, 그리고 ‘신적인 것’으로 되는 것이다! 결국-이것이 가장 끔찍한 일이다-선한 인간이라는 개념은 허약한 자, 병든 자, 실패한 자, 자기 스스로 고통스러워하는 자, 즉 몰락해야만 하는 모든 것의 편을 든다-,여기서 선택의 법칙은 작동하지 않는다. 이상은 긍지를 갖는 성공한 인간, 긍정하는 인간, 미래를 확신하고 보증하는 인간에 대한 반대에서 나왔다-이러한 인간은 악한 인간으로 불린다…그리고 이 모든 것이 도덕으로서 믿어져 왔다!-미신을 타파하라!
나를 이해했는가? – 디오니소스 대 십자가에 못 박힌 자.
#해설
『이 사람을 보라』는 니체가 1888년 10월 15일 마흔네 번째 생일을 맞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쓰기 시작한 자신의 ‘철학적 자서전’이다. 이 자서전은 우선 11월 4일 초고의 형태로 완성되었고, 그 후 니체가 정신적 붕괴로 쓰러지기 직전인 1889년 1월 초까지 계속해서 보완되고 수정되었다.
『이 사람을 보라』는 니체가 자신의 생애와 작품, 그리고 자신의 철학을 스스로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는 자서전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니체가 쓴 니체철학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니체에 관해서나 니체의 작품들에 관해서나 또는 니체 철학에 대해서 기본적인 윤곽을 파악하고자 한다면, 그 어떤 입문서보다 이 책을 읽는 것이 좋다. 길지 않은 분량 속에 니체의 생애, 작품, 그리고 철학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핵심들이 잘 요약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