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도, 쉬지도 말라. – 괴테
글은 글 쓰는 이의 손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생각의 표현에서 인식론적 도구로 변해 버린다. 새로운 곳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그의 흥미를 끈다. 그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단어들을 펼쳐 놓고 온갖 각도에서 바라본다. 그러면 이전에 쓴 글이 또렷하지 않고 서투르게 보인다. 과정은 아무것도 아니다. 지나온 발자취는 지워라. 길은 작품이 아니다. 무성하게 풀이 자라 글 쓰는 이가 지나온 길이 사라져 버렸길 바란다. 그가 흘려놓고 온 빵부스러기를 새들이 이미 먹어 버렸길 바란다. 그가 그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뒤돌아보지 않길 바란다.
한 줄의 단어는 망치다.
글 쓰는 이는 집의 모든 벽에 망치질을 한다. 온 벽을 가볍게 두드린다. 여러 해 동안 이런 일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무슨 소리가 들릴지 알게 된다. 어떤 벽은 다른 것을 떠받치고 있는 벽이다. 그 벽은 움직이면 안 된다. 그 벽이 가만히 있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어떤 벽은 없어져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는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불행히도 다른 것을 떠받치고 있는 벽을 없애야 하는 경우가 있다. 어쩔 수가 없다. 딱 한 가지 해결책밖에 없다. 그에게는 끔찍하겠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 벽을 쓰러뜨리고 재빨리 몸을 피해야 한다.
“젊음은 달에 닿을 다리를 지을 재료를 모은다. 아니면 지구 위에 궁전이나 사원을 지을 재료를 모은다. 그러나 마침내 중년이 된 남자는 결국 그것으로 나무 헛간을 짓기로 결정한다.” – 헨리 데이비스 소로
글로 쓰인 단어는 무기력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보다 생생한 삶을 선호한다. 생생한 삶은 피를 돌게 하고 좋은 냄새가 난다. 글은 가장 미묘한 감각들(상상력의 시각, 상상력의 청각)과 도덕적 인식, 지성에만 호소한다. 글 쓰는 이가 하는 일, 그를 흥분시키고 즐겁게 해주는 이런 글쓰기는 다른 사람에게는거의 들리지 않는다. 독자는 시끄러운 생생한 삶의 소리부터 글의 미묘한 가상의 소리에 이르기까지 그 소리에 귀를 맞춰야 한다. 그러나 책을 집어드는 보통 독자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다.
그는 어둠 속에서 할 일을 하며 꾸준히 오른다. 끝에 도달하며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햇빛이 그에게 쏟아진다. 밝고 광활한 광경에 그는 놀란다. 끝에 있다는 사실을 그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쓰면서 작가는 두 가지 문제를 풀어야 한다. 책이 완성될 수 있을까? 내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모든 책은 내적인 불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처음 흥분이 가라앉자마자 그것을 발견한다. 그 문제는 구조적인 것이다. 해결이 불가능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쓴다. 그는 어려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고 다른 장점을 강화시킨다. 그는 외팔보로 공중 높이 서사 전체를 세운다.
글 쓰는 것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매번 즉시 그것을 모두 써 버리고, 뿜어내고, 이용하고, 없애 버리라. 책의 나중 부분이나 다른 책을 위해 좋아 보이는 것을 남겨두지 말라. 나중에 더 좋은 곳을 위해 뭔가를 남겨두려는 충동은 그것을 지금 다 써먹으라는 신호다. 나중에는 더 많은 것이, 더 좋은 것이 나타날 것이다. 이것들은 샘물처럼 뒤에서부터, 아래로부터 가득 차오를 것이다…아낌없이 공짜로 푹푹 나눠주지 않으면 결국 본인에게도 손해다. 나중에 금고를 열어보면 재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삶은 진짜 싸움이다.-윌리엄 제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