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성석제. p370
자전거는 호모 파베르, 도구를 만드는 존재인 인류가 발명한 것 중 최고의 도구다. 경제적이고 건강에 도움이 되고 인간적이고 자연친화적이며 아름답다. 자전거를 발명한 사람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자전거는 투명인간의 역사, 실생활에도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
굳이 안 해도 될 일을 왜 하느냐고. 많이 배우고 잘 살았다고 산골에서 화전 일구고 숯이나 팔며 살아온 자기들을 우습게 하는 게 아니냐고. 남편이 동네 아이들에게 공짜로 글을 가르쳐주겠다고 해도 동네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공부를 해봐야 화전을 일구거나 숯 굽는 데 쓸 일이 없다고.
-여보, 나는 아침에는 낚시하고 오후에는 사냥을 하고 저녁에는 소를 몰아오고 저녁을 먹은 뒤에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가고 싶소. 하지만 나는 나일 뿐, 사냥꾼도 되지 않고 어부도 되지 않고 목동도, 사회에 불평불만을 털어놓는 것을 일삼는 사람도 되지 않을 거요. 내 아이들과 손자들, 그 아이들의 후손까지 모두 그렇게 자유롭고 자율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싶소.
천한 인간이나 무식한 부자는 한술 밥을 오래 씹지 않지만 농부는 들어간 피땀과 노고를 생각하기 때문에 열번은 씹는다. 선비는 서른번을 씹으며 벼슬아치라면 어릴 때부터 쉰번은 씹어야 숭고한 자리에 이를 수 있다. 밥을 오래 씹을수록 건강해지고 생각이 많이지고 인격이 닦이고 존경을 받게 된다.
-사람은 한달을 굶어도 살 수 있지만 물이 없이는 일주일도 못견딘다. 옛적부터 현명한 어른들이 물만 먹고도 살아오셨으니 그것을 백비탕(白沸湯)이라 하느니라, 신라시대 화랑이나 법사는 호랑이에게 물려갔다 돌아온 사람에네 백비탕을 만들어 먹임으로써 정신을 차리게 했다. 만드는 것은 아주 쉽다. 차갑고 깨끗한 샘물을 준비한 뒤 숯불에 물을 팔팔 끓여 달인다. 그 물 삼분의 이를 그릇에 담소 찬 샘물 삼분의 일을 부어 두가지 다른 성질의 물이 섞이기를 기다렸다가 밥 한끼를 먹을 시간 동안 천천히 마시면 된다. 백비탕은 머리를 맑게 하고 잠을 깨우며 허기와 갈증을 면하게 한다. 하루 한번씩 십년을 꾸준히 마시면 석사, 박사보다도 똑똑해질 수 있다.
가을이 왔다. 신품종으로 보급된 키 작은 통일벼가 베어진 논을 가로질러 학교에 갔다. 일반 벼보다 일찍 수화하는 통일벼는 밥맛이 없었다. 벼 줄기는 끈기가 없고 짧아 새끼를 꼬는 데도 지붕을 이는 데도 쓸모가 없어 고작 아궁이에 연료로나 쓸 수 있었다…그런데도 통일벼만 수매를 해주고 농협에서 통일벼를 심는 농가에만 대출을 해준다고 하니 통일벼를 심을 수밖에 없었다. 산골짜기에 있는 우리 동네 논은 물이 차서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개발된 통일벼 품종은 제대로 자라지 않았다. 통일벼 심은 논에 들일 화학비료와 농약 또한 비싸서 살 수도 없었다. 결국 통일벼를 심지 않아서 정부의 지원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
-민주주의가 뭔지 이제야 알 것 같네.
-정말 회의를 해보니까 말 많으면 공산당이라고 하는 게 민주주의를 못하게 하려고 만들어낸 말이라는 걸 알겠어요. 백성이 입도 벙끗 못하게 하고 시키는 대로만 하게 하는 게 진짜 독재고 철의 장막 같은 거죠.
#작가의 말
현실의 쓰나미는 소설이 세상을 향해 세워둔 둑을 너무도 쉽게 넘어들아왔다. 아니, 그 둑이 원래 그렇게 낮고 허술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만들었다.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 함께 느끼고 있다고,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써서 보여줄 뿐.
이 소설의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한 이후 깨달은 것은 이것이다.
압축성장 시대의 ‘사회’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고뇌와 좌절이 실물 크기로 어우려져 있다. 한국소설의 새 지평이 열리는 장면에 입회한 것 같은 뿌듯함을 느낀다. -염무웅, 문학평론가
그가 어린 시절을 묘사하는 글을 읽을 때마다 동년배인 내 기억도 새록새록 새로워지는 동시에 그처럼 세밀한 기억력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디지털카메라도 없고 컴퓨터도 없던 60~70년대를 이토록 정교하게 복원해냄은 물론 80~90년대의 시대적 공기를 세밀화처럼 담아낸 그의 솜씨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빈번하게 바뀌는 화자들의 바톤터치도 독자의 주의력을 환기하고 인물에게 풍부한 입체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는 그의 이전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받았다. 평범하고 성실한 일가족이 삼대에 걸쳐 근현대사를 관통하면서 개발중심과 물질만능의 한국사회로부터 어떻게 소외되어왔는지를 읽고 나면 종국에는 어찌할 도리 없는 슬픔과 서늘한 감동이 몰려온다. 한국사회에서 나는, 그리고 당신은 투명인간이 되지 않고 끝까지 버텨낼 자신이 있는지…-임순례, 영화감독
*한줄 후기: 저마다의 삶의 이유가 있고 저마다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이 ‘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사람들 각자의 삶 그 자체가 이유이고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