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 김구.p322
#이 책을 읽는 분에게
애초에 이 글을 쓸 생각을 한 것은 내가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 되어서 내 몸에 죽음이 언제 닥칠는지 모르는 위험한 일을 시작할 때에 당시 본국에 들어와 있던 어린 두 아들에게 내가 지낸 일을 알리자는 동기에서였다. 이렇게 유서 대신으로 쓴 것이 이 책의 상권이다.
그리고 하권은 윤봉길 의사 사건 이후에 중일전쟁의 결과로 우리 독립운동의 기지와 기회를 잃어 목숨을 던질 곳이 없어 살아남아서 다시 오는 기회를 기다리게 되었으나 그때에는 내 나이 벌써 칠십을 바라보아 앞날이 많지 아니하므로 주로 미주와 하와이에 있는 동포를 염두에 두고 민족 운동에 대한 나의 경륜과 소회를 고려하고 쓴 것이다. 이것 역시 유서라 할 것이다.
나는 내가 살아 고국에 돌아와서 이 책을 출판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아니하였다. 나는 완전한 우리의 독립 국가가 선 뒤에 이것이 지나간 이야기로 동포들의 눈에 비치기릴 원하였다. 그런데 행이라 할까 불행이라 할까, 아직 독립의 일은 이루지 못하고 내 죽지 못한 생명만이 남아서 고국에 돌아와 이 책을 동포의 앞에 내어놓게 되니 실로 감개가 무량하다.
끝에 붙인 「나의 소원」한 편은 내가 우리 민족에게 하고 싶은 말의 요령을 적은 것이다. 무릇 한 나라가 서서 한 민족이 국민 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기초가 되는 철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국민의 사상이 통일되지 못하여 더러는 이 나라의 철학에 쏠리고 더러는 저 민족의 철학에 끌리어 사상의 독립, 정신의 독립을 유지하지 못하고 남을 의지하고 저희끼리 추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현상으로 보면 더러는 로크의 철학을 믿으니 이는 워싱턴을 서울로 옮기는 자들이요, 또 더러는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의 철학을 믿으니 이들은 모스크바를 우리의 서울로 삼자는 사람들이다.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우리의 서울은 될 수 없는 것이요, 또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만일 그것을 주장하는 자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예전 동경을 우리 서울로 하자는 자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서울은 오직 우리의 서울이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하여야 한다. 이것을 깨닫는 날이 우리 동포가 진실로 독립 정신을 가지는 날이요, 참으로 독립하는 날이다.
##상권
#우리 집 내력과 내 어릴 적
내가 도를 들어러 온 뜻을 고하니 그는 쾌히 동학의 내력과 도리의 요령을 설명하였다. 이 도는 용담 최제우 선생께서 천명하신 것이나, 그 어른은 이미 순교하셨고 지금은 그 조카님 최해월 선생이 대도주가 되셔서 포교를 하신다는 것이며, 이 도의 종지로 말하면 말세의 간사한 인류로 하여금 개과천선하여서 새 백성이 되어가지고 장래에 진주(眞主:참 임금)를 뫼시어 계룡산에 새 나라를 세우는 것이라 하는 것 등을 말하였다. 나는 한 번 들으매 심히 환히 심이 발하였다. 내 상호가 나쁜 것을 깨닫고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맹세한 나에게는 하느님을 몸에 모시고 하늘도를 행하는 것이 가장 요긴한 일일 뿐더러 상놈인 한이 골수에 사무친 나로서는 동학의 평등주의가 더할 수 없이 고마웠고, 또 이씨의 운수가 다하였으니 새 나라를 세운다는 말도 해주의 과거에서 본 바와 같이 정치의 부패함에 실망한 나에게는 적절하게 들리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동학에 입도한 나는 열심히 공부를 하는 동시에 포덕에 힘을 썼다. 아버지께서도 입도하셨다. 이때의 형폄으로 말하면 양반은 동학에 오는 이가 적고 나와 같은 상놈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내가 입도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연비(포덕하여 얻는 신자)가 수백 명에 달하였다. 이렇게 하여 내 이름이 널리 소문이 나서 도를 물으러 찾아오는 이도 있고 내게 대한 무근지설을 전파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대가 동학을 하여보니 무슨 조화가 나던가?”
“악을 짓지 말고 선을 행하는 것이 이 도의 조화이니라.”
동네에 쑥 들어서니 이 집에서도 저 집에서도
“지기금지(至氣今至) 원위대강(願爲大降) 시천주(侍天主) 조화정(造化定) 영세불망(永世不忘) 만사지(萬事知)”
지극한 기운이 이제 이르렀으니라는 말은, 지극한 허령이 창창하여 일에 간섭하지 않음이 없고 일에 명령하지 않음이 없으며, 모양이 있는 것 같으나 형상하기 어렵고, 들리는 것 같지만 보기는 어려우니 이것은 또한 혼원한 기운이로다. 하늘의 지극한 기운이 내가 되었다는 뜻이로다.
우리 일행이 해월 선생 앞에 있을 때 보고가 들어왔다. 전라고 고부에서 전봉준이가 벌써 군사를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뒤이어 또 후보가 들어왔다. 어떤 고을 원이 도유(동학 도를 닦는 선비)의 전 가족을 잡아 가두고 가산을 강탈하였다는 것이었다. 이 보고를 들으신 선생은 진노하는 낯빛을 띠고 순 경상도 사투리로,
“호랑이가 몰려들어 오면 가만히 앉아 죽을까, 참나무 몽둥이라도 들고 나서서 싸우지”
하시니 선생의 이 말씀이 곧 동원령이었다.
#기구한 젊은 때
#방랑의 길
#민족에 내놓은 몸
##하권
나는 왜 『백범일지』를 썼던고?
내가 젊어서 붓대를 던지고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제 힘도 재주도 헤아리지 아니하고 성패와 영욕도 돌아봄 없이 분투하기 30여 년, 그리고 명의만이라도 임시정부를 지키기 10여 년에 이루어놓은 일은 하나도 없이 내 나이는 60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에 나는 침체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하여 미주와 하와이에 있는 동포들에게 편지로 독립운동의 위기를 말하여 돈의 후원을 얻어가지고 열혈남자를 물색하여 암살과 파괴의 테러 운동을 계획한 것이었다.
#3·1운동의 상해
내가 맡은 경무국의 임무는 기성 국가에서 하는 보통 경찰 행정이 아니요, 왜의 정탐의 활동을 방지하고 독립운동자가 왜에게 투항하는 것을 감시하며 왜의 마수가 어느 방면으로 들어오는가를 감시하는 데 있었다.
레닌의 독립자금 지원? 이동휘는 한형권이 돈을 가지고 떠났다는 기별을 받자 국무원에는 알리지 아니라고 또 몰래 비서장이요, 자기의 심복인 김립을 시베리아로 마중 보내어 그 돈을 임시정부에 내놓지 않고 직접 자기 손에 받으려 하였으나, 김립은 또 제 속이 따로 있어서 그 돈으로 우선 자기 가족을 위하여 북간도에 토지를 매수하고 상해에 돌아와서도 비밀히 숨어서 광동 여자를 첩으로 들이고 호화롭게 향략 생활을 시작하였다. 임시정부는 이동휘에게 그 죄를 물으니 그는 국무총리를 사임하고 러시아로 도망하여 버렸다.
#기적장강만리풍
##나의 소원
#민족 국가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치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 나라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 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근래에 우리 동포 중에는 우리 나라를 어느 큰 이웃 나라의 연방에 편입하기를 소원하는 자가 있다 하니, 나는 그 말을 차마 믿으려 아니하거니와 만일 진실로 그러한 자가 있다 하면, 그는 제정신을 잃은 미친놈이라고밖에 볼 길이 없다.
나는 공자, 석가, 예수의 도를 배웠고 그들을 성인으로 숭배하거니와, 그들이 합하여 세운 천당, 극락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아닐진댄 우리 민족을 그 나라로 끌고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다.
#정치 이념
나의 정치 이념은 한 마디로 표시하면 자유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는 자유의 나라라야 한다.
자유란 무엇인가. 절대로 각 개인이 제멋대로 사는 것을 자유라 하면, 이것은 나라가 생기기 전이나 저 레닌의 말 모양으로 나라가 소멸된 뒤에나 있을 일이다.
나는 우리 나라가 독재의 나라가 되지를 원치 아니한다. 독재의 나라에서는 정권에 참여하는 계급 하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국민은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다.
모든 계급 독재 중에도 가장 무서운 것은 철학을 기초로 한 계급 독재다. 수백 년 동안 이조 조선에 행하여 온 계급 독재는 유교, 그 중에서도 주자학파의 철학을 기초로 한 것이어서 다만 정치에 있어서만 독재가 아니라 사상·학문·사회생활·가정생활·개인생활까지도 규정하는 독재였었다. 이 독재 정치의 밑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는 소멸되고 원기는 마멸된 것이었다. 주자학 이외의 학문은 발달하지 못하니 이 영향은 예술, 경제, 산업에까지 미쳤다.
우리 나라가 망하고 민력이 쇠작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실로 여기에 있었다. 왜 그런고 하면 국민의 머리 속에 아무리 좋은 사랑과 경륜이 생기더라도 그가 직권 계급의 사람이 아닌 이상, 또 그것이 사문난적(교리에 어긋나는 언동으로 유교를 어지럽히는 사람)이라는 범주 밖에 나지 않는 이상, 세상에 발표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싹이 트려다가 눌려죽는 새 사상, 싹도 트지 못하고 밟혀버린 경륜이 얼마나 많았을까. 언론의 자유가 어떻게나 중요한 것임을 통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오직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만 진보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의 나라에서만 인류의 가장 크고 가장 높은 문화가 발생할 것이다.
모든 생물에는 다 환경에 순응하여 저를 보존하는 본능이 있으므로 가장 좋은 길은 가만히 두는 길이다. 작은 꾀로 자주 건드리면 이익보다는 해가 많다. 개인 생활에 너무 잘게 간섭하는 것은 결코 좋은 정치가 아니다.(교육도!!)
국민성을 보존하는 것이나 수정하고 향상하는 것이 문화와 교육의 힘이요, 산업의 방향도 문화와 교육으로 결정됨이 큰 까닭이다. 교육이란 결코 생활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기초가 되는 것은 우주와 인생과 정치에 대한 철학이다. 어떠한 철학의 기초 위에 어떠한 생활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곧 국민 교육이다. 그러므로 좋은 민주주의의 정치는 좋은 교육에서 시작될 것이다. 건전한 철학의 기초 위에 서지 아니한 지식과 기술의 교육은 그 개인과 그를 포함한 국가에 해가 된다. 인류 전체로 보아도 그러하다.
#내가 원하는 우리 나라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다.
최고 문화 건설의 사명을 달한 민족은 일언이폐지하면 모두 성인(聖人)을 만드는 데 있다. 대한 사람이라면 간 데마다 신용을 받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
민족의 행복은 결코 계급 투쟁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개인의 행복이 이기심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계급 투쟁은 끝없는 계급 투쟁을 낳아서 국토에 피가 마를 날이 없고 내가 이기심으로 남을 해하면 천하가 이기심으로 나를 해할 것이니 이것은 조금 얻고 많이 빼앗기는 법이다.
나는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우리 나라의 젊은 남녀가 다 이 마음을 가질진대 아니 이루어지고 어찌하랴…
나는 천하의 교육자와 남녀 학도들이 한번 크게 마음을 고쳐먹기를 빌지 아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