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의 관광지화. 도시를 제외한 지자체의 생존 방법은 어떻게 하면 도시 사람들을 많이 유인해서 이곳에서 돈을 쓰고 가게 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체험마을’…바야흐로 농촌은 농사가 아닌 관광으로 생명연장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예산은 ‘집중화’라는 특징이 있다. ‘돈을 뿌린 모양’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소형·중형·대형 자치단체장들은 업적의 시각화를 선호한다.
예산이 투입된 전국의 모든 마을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나와 연관된 두 마을의 경우 4년 동안 각각 20억 원 정도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그리고 시골 정서, 마을 공동체 같은 개념은 붕괴되었다. 물론 강바닥에 버려진 액수와 비교할 수 없는 작은 돈이겠지만. ‘필요’에 부응한 예산 투입이었다면 마을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해졌을 것이다.
발전이라는 용어와 행복이라는 용어는 평행선. 뭔가 발상의 전환을 필요로 했다. 이를테면 ‘맨땅에 헤딩’할 수 있는 정신 같은 것 말이다.
‘독립영화’에서 ‘독립’의 개념적 핵심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다…뭔가를 만들고 싶은데 간섭도 받기 싫다면 저예산 영화가 아니라 무예산 영화라도 시작하는 것이다.
#시작
일을 시작한 의미는 당연히 아름답지만 과정과 마무리가 엉망이면 그 일 자체의 진정성을 신뢰하기 힘들다. 좋은 의미를 인식하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1000명 단위 새로운 조합이 전국적으로 1000개, 100만명이다. 중앙으로 거대화된 100만 명이 아닌, 수평적인 힘을 가진 1000명이 모인 1000개의 조합.
핵심은 거대해지지 않는 것이다. 거대해지면 끝장이다.
“삼성을 이기기 위해 삼성을 닮아간다”? 작은 힘을 단결하는 방식이 옳다. 그래서 작제, 여럿이, 하나가 망해도 999개는 영향을 받지 않는, 누군가 잘난 놈이 권력과 운영을 독점하려면 즉각 해임시킬 수 있는 시스템. 갑오년 어느 날 밤에 만들었다는, 밥그릇을 중앙에 두고 너와 내가 높고 낮음이 없이 이름 석자 사방팔방으로 나열했다던 그 시스템, 그 정신, 그런 조직, 그런 일을 상상했다.
‘맨땅에 펀드’는 농사를 짓는 일이 아니라 농사를 짓고 팔아치우는 전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첫 파종
소보다 비싼 소똥
단순히 유기농산물을드시기 위해 ‘맨땅에 펀드’에 투자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농산물이 아닌 ‘작은 마을’과 ‘못난 나무들’ 그리고 ‘이야기와 말씀들’에게 투자하는 바보 같은 펀드입니다.
밥은 생존을 위한 필수 항목임에도 불구하고 그 밥을 만드는 사람들과 밥 자체는 찬밥 신세입니다.
여성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직거래로 위장한 유기농과 무농약 농산물을 구입해 먹고 있습니다. 정직하고 착한 농부들은 온라인에서조차 소비자들에게 직접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당하고 있습니다. 오직 싼 가격에 농산물을 생산할 것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이 방법 말고 뭐가 가능해?”
나처럼 입으로 농사짓는 사람들은 멀칭비닐 결사반대.
계좌 당 30만원 100개. 말도 안 되는 펀드에 투자하려는 경제관념 없는 100명의 투자자 모으는 일은 쉽지 않다. 투자설명서에서 펀드의 위험성을 노골적이고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었다.
모든 광고의 목적은 동일하다. 물건을 파는 것. 나 역시 기획한 물건을 잘 팔기 위해서 ‘우리 제품’의 문제점을 강조한 방법을 사용했을 뿐이다. 반대로, 당신들은 세상의 그 많은 물건들이 모두 제 잘났다고 하는 그 소리들을 믿어요? 제 정신으로?
지방정부 관심에 대해 우리는 관심이 없다. 예산이 마을을 망쳤다. ‘그냥 우리 이대로 사랑하게 해달라!’
카메라도 농기구, 스마트폰도 농기구. 더 이상 농사를 짓는 기술만으로는 수익을 보장할 수 없다…우리는 이 감을 모두 판매했다. 한 박스가 나오건 1000박스가 나오건 이미 판매 완료한 것이다. 감 농사의 달인들은 이 감나무 밭보다 훨씬 탁월한 나무를 가꾸고 좋은 열매를 수화해왔지만 항상 판매를 하는 일이 더 힘들었다. 이것은 일종의 코미디다. 이제는 카메라도 농기구고 스마트폰도 농기구다.
결국 그 이미지를 버무려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도 농기구다.
구체적인 것이란? 기획 인력이 아닌 실행 인력! ‘이런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보다는 ‘이런 것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예산을 노린 기획안들뿐이다.
텃밭에 적합한 땅으로 바꾸는 데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방법은? 사람 발자국 소리를 자구 들려주는 수밖에. 이런 과학적인 수단 이외에는 도무지 방법이 없다. ‘맨땅에 펀드’니까 하는 짓이다.
#첫 김매기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농사가 힘든 이유 중 하나는 ‘그때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웹디자인이나 인쇄물을 며칠 지연되면 뭐 어쩌겠는가?…농사는 정말 그 시기를 놓치면 그것으로 모든 게임이 끝이다.
무경운? 풀은 누가 다 매냐고오!..풀은 베어서 작물 아래 고이 모셔둔다. 그렇게 몇 년 하면 땅이 바삭하고 폭신해지는 것이다. 풀뿌리가 땅속 깊이 들어갈수록 땅이 깊은 호흡을 한다. 미생물과 박테리아가 서식할 조건이기도 하다.
지리산닷컴이라는 무형의 기획력만으로는 시선을 끌 수는 있겠지만 지속적인 운영은 힘들다. 물론 최적은 조합은 엄니들이 우리를 믿고 따라올 만큼의 ‘돈’을 보장하는 방법이다.
이 땅을 포함해서 운조루에 속한 땅 전체를 더 본격적인 ‘맨땅에 펀드’ 농지로 확대하고 싶다. 그러면 대략 5500평 정도…문제는 어떻게 마을과 같이 갈 것인가 하는 방법론이다.
‘맨땅에 펀드’는 특정 사이트의 수익 사업이 아니다. 결국은 예산 지원이나 관의 개입 없이 하나의 마을이 운영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한 아주 턱없는 출발이다. 그래서 2013년에 마을은 그것을 실감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2013년이 중요하고 2012년은 거름으로 소용될 것이다. 우리는 2012년에 스스로 똥이 되어야 한다.
운영해보니. 무모한 펀드다…나는 다른 것을 얻는다. 스토리를 얻는다. 펀드 1년의 기록을 책으로 내고 그 초판 인세 정도가 나의 1년 인건비가 될 것이다.
‘맨땅에 펀드’ 운용 승패의 절반은 인건비에 있다.
‘맨땅의 펀드’의 핵심적인 두 가지 특징? 소비자가 생산자, 품목, 가격에 대한 선택 또는 결정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과 주 단위 펀드 중계를 통해 함께 생산한다는 동질감을 유지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구매를 결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다. 필요와 가격. ‘맨땅에 펀드’는 이 두 가지 구매 요건 중 무엇 하나도 충족시킬 수 없는 상품이다.
이런 성격의 30만 원짜리 상품을 100개 팔아야 했다. 그래서 채책한 전략이 “이래도 살래?”라는 방식이었다. 우리가 가진 모든 문제점을 좀 더 과장하고 희화화하는 것이다…모든 단점을 숨기지 않고 설명했으니 상품 구매의 책임을 온전히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는 것이다.
‘맨땅의 펀드’가 생산하고자 했던 것은 농산물이 아니라 이야기였다. 생산하고자 했던 이야기의 내용이 시골 마을이고 농사고 농부였던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유기농산물이나 무농약 같은 것에 주요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골에서 7년 정도 살아보니 한국 농업 문제를 풀어나갈 중심 과제는 직거래를 중심으로 한 유통이지 농산물 생산방식이 아니었다.
농협은 수매라는 제도를 통해서 1년에 두 번 정도 농민들이 목돈을 만질 수 있게 한다. 이 모든 것은 시골 경제를 움직이게 하는 헤게모니의 핵심이다. 그래서 ‘맨땅의 펀드’가 마을 사람들을 위한 월급제 일자리를 만들고 직접 수매를 실행한다는 것은 하나의 혁명이다.
시골에서 정책 지원의 결과물은 피부에 와닿지 않거나 낭비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 원인은 간단하다. 지원금의 탄생은 마을과 영농조합법인의 ‘니즈’가 동기가 아니다. ‘그런 돈’이 마련되어 있어 ‘니즈’가 탄생한다. 그리고 눈먼 돈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시스템 밖에 존재하고 싶다.
‘맨땅에 펀드’는 결국 자본으로부터, 예산으로부터의 독립을 염두에 둔 실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