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흙 속에 있다. 이영문. p272
이영문 씨는 극히 제한된 범위 안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분이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사물을 바라보는 지각이 남달리 뛰어난 분이다.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고, 남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들을 수 있고,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일을 생각해 낼 수 있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사실 인류문화는 그런 사람들의 손으로 형성된 것이고, 그 때문에 그들은 존경을 받는다.(바로 본다)
어떤 이유를 붙이더라도 이영문 씨는 농업인이다. 남달리 큰 포부와 비전을 가진 농업인이다…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조화로운 생존이 그가 표방하는 농업관이다…그의 농업에서는 올챙이 한 마리, 거미 한 마리, 무당벌레 한 마리가 예사로운 존재가 아니며, 그는 피는 피대로 나락은 나락대로 제각기 그 몫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농사일을 하는 분이다.
겨울 새벽…누군가는 겨울 들판을 보고 잠들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고 믿는 것은 자연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단단하게 얼어붙은 땅을 향해 가만히 귀 기울이면 저 땅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왕성한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듯 비어 있지만, 잠들어 있는 듯 미동조차 없지만, 사실 겨울 들판은 한여름 뙤약볕이 풀어놓은 싱싱한 푸르름보다 더욱 왕성한 생명력으로 살아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땅에 존재하는 수백, 수천의 미생물들이 먹고 자고 싸고 뒹굴며 끊임없이 흙을 갈아엎으며, 새로운 씨앗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겨울은 한철 농사가 끝나는 때이지만, 자연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출발인 셈입니다.
좋은 농부는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겸허하게 자연을 지키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농부는 이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숨줄인 ‘쌀’을 생산하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연을 섬기고, 쌀을 소중하게 여기는 농심(農心)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자연농법을 시작하면서, 농부가 혼자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땅속에 살아 있는 수많은 미생물과 깨끗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무당벌레, 거미, 개구리들과 함께 평화롭게 농사지으며 온 나라에 풍년가가 울려퍼지는 태평성대를 이루어 보자는 뜻에서 ‘태평농법’이라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흙속에 있다
#미생물이 써레질하는 땅
해질녘 붉은 노을이 깔린 들판으로 나가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새파랗게 물이 오른 벼이삭도 노을도 먹빛 어둠에 점차 젖어들기 시작하는 시간이면, 내 귀에는 저 깊은 땅속에서 왕성하게 살아 움직이는 수많은 생명의 외침이 들리는 것만 같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보잘것없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무한한 생명력을 지니고 끊임없이 생산해 내는 그치지 않는 힘이 있음을 그 순간에 더욱 가까이 느끼게 된다.
그런데 너무나 안타깝게도 현대 도시문명의 눈부신 발달은 사람들을 점점 흙에서 멀리 떼어놓고 있다. ‘하루종일 걸어도 흙밟을 일이 없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마치 자랑처럼 내뱉는다. 겹겹이 깔린 아스팔트와 밑창이 두꺼운 신발은 흙과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다. 그러니 자연 현대인들이 점점 황폐한 토양에서 웃자란 벼이삭처럼 모가지만 길어지고 연약하기 이를데없어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꼴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애초부터 우리 땅에 맞는 경운기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땅은 아예 갈아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화학비료가 땅심을 망쳐놓지 않은 건강한 논에서는 수천, 수만의 미생물이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땅을 갈아엎고 있다. 인간이 손으로 써레질을 하는 것보다 더 부드럽게 물빠짐도 잘되고, 충분한 산소가 흘러다닐 수 있는 최적의 환경으로 써레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걱정 마이소. 내 논에는 내가 안해도 일꾼들이 득시들득시글 합니더.”
#흙은 지하수의 여과망
“서울은 공기오염도 심하고 산성비 농도도 진해 토양이 무척 거칠어져 있습니더…약수라는 게 결국은 지하수인데 깨끗할 리가 없지예. 만일 수질 검사에서 이상이 없었다면 제대로 검사를 안했던 거라요.”
“허허…따로 공부를 할 게 뭐 있습니꺼…흙을 사랑하고 가꾸다 보면 그 자연이 다 가르쳐주는데예. 농사짓는 게 그저 씨뿌리고 거두는 게 전부가 아니지예.
자연의 이치를 알아야 제대로 된 농사도 지을 수 있는 겁니더.
내땅이 무엇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고, 내 작물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자연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고 노력하면 저절로 알게 되는 거라예…작물을 재배하는 기술을 알기 전에 먼저 땅과 자연의 이치를 알려도 노력해야 합니더….”
귀농 가이드? 쌀농사를 지으시오/ 자연의 이치를 먼저 알려고 노력하시오/ 흙을 가꾸고 사랑하려는 마음을 가지시오.
그런데 보이는 곳의 오염에는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흙에 대해서만은 둔감하기 이를 데 없다. 흙의 오염은 물이나 공기의 오염과는 달리 치유가 매우 힘들다고 한다. 토양이 만들어지는 속도는 매우 느려서 1cm 두께가 만들어지는 데 무려 수십년에서 수백년까지 걸린다고 한다.
과다한 비료사용, 흙의 오염으로
#텃밭의 지혜
나는 이 텃밭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이곳에서는 경제적인 작물 재배의 전형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작은 밭에서 여러가지 작물들을 한꺼번에 재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응용하느냐에 따라서 다작의 무한한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논에서는 3모작, 밭에서는 6모작이 가능하다. 서로 융합하고 어울리는 작물들로 돌려심기를 하면 된다.
달력을 보고 농사를 짓는 게 아니었던 우리 선조들? 모두 자연의 순리에 따른 것이다.
이때 명심해야 할 것은 수확하지 않은 것, 즉 부산물은 밭에 그대로 두어서 다음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밑거름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얄궂게 땅이 준 것을 모조리 다 약탈하듯 가져가서 토양이 피폐해지도록 만들지 않으려는 마음은 곧 자연을 농업의 동반자로 여기는 마음이다.
이렇게 돌려심기를 하는 작부체계 속에서는 자생초가 생존하기 힘들기 때문에 잡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6모작은 생각하면 할수록 과학적인 작부체계라는 생각에 절로 무릎을 치게 된다.
어떻게 우리 소비자들한테 ‘생명의 밥’이면서 동시에 ‘정신의 밥’이라는 것을 설득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무척 어려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간단명료한 해법이 있다. 나처럼 자연농법을 하는 분들은 오래전부터 우리 쌀의 경쟁력을 염두에 두고 계속 주장해 왔던 일이다.
백마디 표어나 구호보다도 우선은 값을 내려야 한다.
쌀값을 내리려면 농사에 소요되는 비용, 즉 농비가 줄어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각종 화학비료에 기대어 농사를 짓는 화학농업으로는 농비를 줄일 수 없다. 비료값, 농약값을 들이지 않고 자연의 힘을 빌려 농사를 지으면 당연히 농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농업정책은 단순히 농업의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것만이 아니라, 농민의 생존과 생활력 유지를 함께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 섣부른 기업농 제도는 농민들의 생존 근거를 급속하게 빼앗아갈 우려가 있다.
규모화와 효율화? 문제는 기존의 소농구조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농촌이 살려면 더욱 작은 구조, 작은 단위로 흩어져서 가족농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만 살 수 있다’고. 그게 지금 우리 농촌이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이다.
도시 자본에게 농토를 빼앗길 수 있는 기업농 제도가 아니라 직접 생산자인 농민들이 작은 단위로 흩어져서 다시 협업농으로 모이는 제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건강한 논은 거미들의 천국
독한 제초제를 뿌려서 자생초 한 포기 없이 벼들만 나란히 서있는 논은 멀리서 보기에는 너무나 잘 정돈되고 깨끗해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윤기없이 시들해진 이파리가 생명력을 잃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농약을 쳐야 농사가 된다’고 생각하는 관습에 젖어 있는 사람들 눈에는 거미줄이 얼기설기 쳐져 있고, 풀과 벼가 함께 어우려져 있는 논이 게으른 농부가 지은 실패한 농사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무엇이 깨끗한 들판인가. 잡초 한 포기 없이, 거미줄도 없는 그런 논이 깨끗한 들판인가. 그런 논을 만들기 위해서 농약 한 방울이라도 더 치자는 운동인가. 책상머리에서 펜으로 농정을 만들어내는 분들 머리에서 나온 말이니, 참 웃기는 일이다…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건강한 들판’이다.
#일본 농기계에 저당잡힌 우리 땅
#진짜 토종, 가짜 토종
신토불이를 하려면 끝까지 해야 한다. 무조건 우리 땅에서 자랐다고 신토불이라고 떠받들 수야 없지 않은가…수입 사료를 먹여서 살찌운 한우 고기를 신토불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매미소리가 시원한 냇가에서
시골길을 걸으면 애써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온몸으로 젖어들듯 갖가지 정겨운 소리가 들려온다.
#공생의 법칙
멀고 먼 길을 돌아왔지만, 깨달음의 지점에 이르고 보니 사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방법이 아니었다…원래부터,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선조들이 사용해 왔던 자연 그대로의 농법이었던 것이다.
“풀을 깔아주면 그 아래 잡초 싹이 말라버려. 그리 기본적인 것도 모르나.”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이 세상에 농약으로 없애야 할 해충도 없고, 제초제로 싹을 죽여야 하는 자생초도 없다…우리는 그동안 인간의 ‘입’만 염두에 두고 농사를 짓는 이기적인 농법을 추구하면서 자연을 망쳐온 것이다.
##식물은 밤을 느끼며 자란다
#무궁화와 버드나무
무궁화는 우리 나라꽃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무궁화 꽃길도, 무궁화 축제도 없다…말만 나라꽃이지, 어디에서도 나라꽃다운 대접을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하다.
무궁화가 수난을 겪기 시작한 것은 1919년 3·1운동 직후부터다. 일제는 태극기와 무궁화를 말살하기 위해 모든 학교와 관공서에 심어져 있는 무궁화를 뿌리째 뽑아버렸다. 현재는 30년생 이상 된 것은 전국을 통틀어 120여 그루에 불과하다.
무궁화를 버드나무와 짝을 이루어 논가에 심어놓으면, 해충을 잡아먹는 천척들에게 서식처와 먹이를 제공해 주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물가와 논가에 버드나무를 많이 심었다. 버드나무는 육식충인 무당벌레의 서식지이다.
#자운영 피는 뜻은
자연농법에서 가장 좋은 거름은 그 논에서 수확하고 남은 부산물을 그대로 썩도록 남겨두는 것
#사쿠라 대신 배꽃 만발한 국도를
문제는 발상의 전환. 낡고 구태의연한 관습만 답습하려는 자세가 농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농사의 고정관념을 깨자
#자연의 소리를 듣는 옛 농부의 마음으로
#적게 먹는 즐거움을 누리자
과식에서 소식으로, 음식에 대한 탐심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양식으로, 혀끝의 달콤함과 위장을 채우는 포만감이 아니라 생명을 소중히 받아 모시는 감사와 기쁨으로 바뀌어야 한다.
‘적게 먹자’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먹을 거리를 소중하게 여기자’는 것이다.
밥 한 톨, 푸성귀 한 잎속에 담겨 있는 자연의 에너지의 무게를 절감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밥을 먹는다면 결코 함부로 환경을 해치는 일들은 하지 못할 것이다.
#땅심을 죽이는 외제 유기농법
#건강한 먹을거리는 소비자가 만든다
좋은 농산물을 잘 알고 고르는 판단력이 있어야 생산자들도 소비자들을 무서워하고 함부로 장난을 치지 못한다…그거 겉보기에 좋은 것을 고르기 때문에..사람이 먹어서는 안될 화학약품을 마구 사용하는 것이다.
큰 배추는 수분이 많기 때문에 영양가는 적고, 맛도 덜하다. 그 수분은 소금에 절여놓으면 대부분 빠져나가 버리고 작은 배추와 거의 비슷한 무게만 남게된다. 그러니 속이 실할 리가 없다.
건강한 먹을 거리를 지키고 만드는 소비자가 되려면 첫째로 눈으로 먹지 말아야 한다.
가격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큰 것을 좋아하지 말아야 한다.
소비자들이 농업의 감시자가 되어 건강한 먹을 거리를 생산하도록 자꾸 생산자들에게 압력을 가하면서, 스스로도 집에서부터 작은 환경운동을 실천해 나가면 오염되어 있는 땅과 물을 조금씩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을 가꾸고 사람을 살리는 태평농법
#농사는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를 깨우치는 일
#농기계 개발에서 자연농으로
#과학농업은 ‘화학농법’
#건강한 벼는 쓰러지지 않는다
#밭에는 6모작, 논에는 3모작
태평농법은 다수확 농법이며 생산비가 훨씬 적게 든다/ 제초작업이 필요없다/ 노동력이 아주 적게 든다/ 농기계, 농약, 화학비료가 거의 필요치 않다/ 관행에 비해 노동력이 6분의 1이면 충분, 농지를 6배 늘려 경작할 수 있다.
#자연이 살아야 사람도 산다
##농촌으로 돌아오고 싶은 사람들에게
#농사를 알기 전에 자연을 이해하라
#농촌은 도피처가 아니다
#근본은 쌀농사부터
귀농안내서, 어떤 작물을 재배할까, 전망이 있을까, 큰 이윤이 있을까,…한마디로 거품이고 환상이다.
유기농업을 ‘환금성’에 역점을 두고 시행한다면 그것은 소비자들을 우롱하고 자신을 속이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해가 져야 방에 들어가는 촌로들
#농업 투기꾼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
대규모화와 효율화, 그야말로 탁상공론.
가족농을 중심으로 모여서 함께하는 협업농의 형태가 아니라면 도시 자본의 농촌 유입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이고, 가족농의 소중한 전통은 지속되어야 한다. 농업이 대규모화하면 필연적으로 이윤 추구에 집착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농민들은 몰락하고, 대기업 자본이 농업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내 아이들에게 물려줄 유산
##우리 농업정책에 대하여
#누가 농촌을 빚더미에 올려놓았는가
이제 농촌에서는 땀으로 농사을 짓지 않는다. 빚으로 농사를 짓고, 기 빚갚을 걱정에 흘러내리는 눈물로 농사를 짓고 있다.
#농업 교과서는 왜 개정판이 없을까
지금 우리 농촌에서는 비닐이 없으면 농사를 짓지 못한다는 이상한 고정관념이 지배하고 있다. 하기는 이것도 애초에 ‘과학’이라는 미명하에 농업을 지도했던 이들이 퍼뜨려놓은 잘못된 관행 중 한 가지이다…밭에서 비닐만 거두어버려도 농비를 훨씬 절약하고 좋은 농산물을 생산해 낼 수 있다.
#호미자루밖에 못 만드는 농업기술
#쌀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농업은 상당히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다…근본적인 문제…도대체 이땅에서 농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삶의 삶의 존폐 위기를 느끼게 하는 문제이다.
우리의 농업을 파탄으로 몰아넣은 일차적인 잘못이 비현실적인 농업제도와 정책에 있음은 거듭 강조해 왔다. 농업의 희생을 전제로 한 농산물 저가정책과 수입 개방 농정이란 이미 정책이라 부르기에도 낯뜨거운 일이 되었다.
흙은 모든 생명, 만물의 근원이다.
흙이 온전하게 살아 있음으로 만물은 비로소 생명을 얻고 살찌워 나가는 것이다. 밥이 되는 쌀은 그 흙이 사랑하고 품어내는 진주 같은 존재이다. 농사는 흙을 가꾸고 돌보면서 생명을 틔워내는 일이다. 땅을 죽이고 그 살과 피를 갉아먹는 약탈농법, 살생농법에서 생명을 지키고 살리는 자연주의 농법으로 돌아오지 않는 한 오늘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