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 컴퍼니. 하라 고이치. p263
“결국, 회사가 없기 때문이겠죠”
회사 근무의 양식미
“아니요, 사업을 일으키는 그런 거창한 게 아니라, 놀이말입니다. 회사놀이요.”
회사 이념?
꿈속의 이상. 오로지 꿈속의 이상을 끊임없이 추구해나가는 회사
고지식. 언제나 고지식하게 우리 고령자의 성실함을 소중하게 여기는 회사
도외시. 채산도, 효율도, 야심도 욕망도, 승리도 영예도, 면목도 체면도, 온갖 번뇌와 얽매임을 일단 도외시한다.
“찻집이 아니야, 찻집 주소로 되어 있는 ‘주식회사 놀이’에 츨근하는 거야.”
“잘 들어라. 이건 진지한 이야기야. 그날 우리는 결심했다. 이렇게 되면 이 회사놀이를 우리 동년배들이 모두 참가할 수 있는 일대 무브먼트로 키워보지 않겠냐고.”
“그러니까 그게 잘못 알고 있는 거라니까. 어머님이 말씀하시는 자유라는 건 마음대로 놀러 다니고 싶다는 의미만은 아니야. 그 말 뒤에는, 어머님 자신도 깨닫지 못하신 것 같지만, 나도 사회와 관계를 맺고 싶다는 마음도 들어 있는 거라고.”
돈과 물건을 눈앞에 두고 장사를 하던 시절과는 달리 디지털화가 이루어진 오늘날에는 컴퓨터에 입출력된 숫자나 문자가 실제로 존재하는 돈이나 물건과 직결된 거라 믿고 거래는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은다. 그러한 시대의 전환이 가짜와 진짜의 경계선을 없애고 있다.
“그래서 모두 가짜라는 사실도 잊고 진지하게 열중할 수 있는 거군요.”
모조 회사 프렌차이즈화
“고령자는 도구가 아니야. 네가 지금 득의양양하게 설명한 사업 계획은 분명 젊은 사람들의 세계관으로 보면 획지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너희에게는 획기적일지 모르지만 잘 생각해봐라. 그건 단순히 우리 고령자를 먹잇감으로 삼는 사업에 불과한 거야. 넌 아버지에게 고령자를 먹잇감으로 삼는 사업의 앞잡이가 되라고 하고 있는 거야. 왜 그건 깨닫지 못하는 거냐?”
말하자면 고령자인 모조 사원들에게서 어떻게 해서 돈을 뽑아 낼 것인가, 하는 수탈 노하우를 파는 비즈니스에 불과하다.
“네가 말하는 사업은 고령자가, 고령자의 손으로, 고령자의 즐거움을 위해 용돈을 내서 하는 일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거야. 넌 애당초 우리 고령자가 어떤 심정으로 모조 회사를 시작했는지 제대로 생각이나 해본 적이 있느냐?”
“역시 그렇죠? 요즘 기업이 아무리 애를 써봤자 고령자는 좀처럼 꿈쩍도 하지 않아요. 그걸 봐도 그만큼 많은 고령자를 움직였다는 건 어지간히 마음에 와 닿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필사적이든 뭐든 용남이 될 줄 아냐! 필사적이면 고령자의 마음을 짓밟아도 된다는 말이냐!”
전용차?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런 걸 타게 되면 모처럼의 통근하는 즐거움이 사라져버리는 않는가. 어, 벌써 낙엽이 흩날리는 계절이 되었던가. 그런 감회에 젖어들어 또각또각 굽 소리를 울리며 천천히 걸어간다.
세상에는 한번 잃고 나서야 비로소 고마움을 깨닫는 것이 있다. 자신에게 있어 그것은 바로 회사였다.
“쉽게 말하지 마. 그러지 못하니까 문제잖아.”
“그런 거야 다른 방법을 생각하면 되잖아. 그게 지금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이것이야말로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려운 것의 전형이어서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진짜로 만들어드리지그러니?”
모조 회사는 사람, 물건, 돈, 정보라는 사륜 중 사람과 정보라는 이륜만을 회전함으로써 진짜 회사를 시뮬레이션하고 있다. 그러니까 거꾸로 말하자면 거기에 물건과 돈을 더하면 당장에라도 진짜 회사가 된다는 뜻이다.
현실은 어렵기 때문. 그 어려운 부분은 힘도 끈기도 야심도 아직 한창 왕성한 젊은 세대가 맡으면 되지 않을까. 노련한 이륜과 쾌활한 이륜이 합체한다면 완전히 새로운 진짜 사륜구동 회사가 탄생하지 않을까.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시니어 고용 네트워크 탄생. 혁신적인 고령자 복지로도 이어진다.
오늘날 고령자의 문제를 생각하는 것은 젊은 세대를 포함한 사회 전체를 생각하는 일과 같다.
“어수룩하게 하자.”
“…어수룩한 방식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는 걸 명심해라.”
“결국 돈이 얽히면 이렇게 되고 마는군.”
“아무튼 쉽게 말하자면, 사업이라는 것의 본질 자체가 남을 앞지르거나 남에게 뒤처지거나, 누군가를 이용하거나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그런 요소가 있는 건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그게 ‘꿈속의 이상’, ‘고지식함’, ‘도외시’라는 이념에 담겨 있었는데, 그게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군.”
모조 회사 휴업.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다. 그들과는 몇 년씩 만나지 못한 것도 아닌데 너나 할 것 없이 이상하게 폭삭 늙어 있었다.
“…그 아이디어 자체는 지금이라도 충분히 통용된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자금을 댈 예정이던 사람이 이미 도주했는데 이제 와서 그게…”
“그런 거에 의존하니까 실패한 걸 거다. 처음부터 자금도 있고, 모조 회사 네트워크도 있고, 사무실도 있고, 인재도 있어. 난 그런 부족함 없는 조건에서 시작하려고 한 것 자체가 실패였다고 생각해…”
사업의 아이디어 자체는 아직도 살아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이제부터라도 실현하지 못할 것도 없다.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이 말 기억하시죠?”
#역자 후기
‘블랙 유머’, 사람을 웃기면서도 인간존재의 불안 및 불확실성을 날카롭게 풍자한 것
그냥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일 터인데, 왜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걱정이 앞서는지 모르겠다.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고령화 문제,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놀이’ 장치가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마저 드니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갈 곳’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작품 안에서의 ‘회사 놀이’라는 아이디어는 일종의 실버 창업인데, 이는 고령화사회의 문제점을 암시함과 동시에 해결 대안 같은 것으로 작가가 제시한 셈이니 참 작가란 앞서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