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집 앞 풍경 하나. 가뭄에 목말라서 물 찾아 왔다가 높은 보를 올라오지 못하고 오락가락만 하는 꽃뱀(유혈목이). 사다리 삼아 올라오라고 달맞이 풀막대기를 하나 놓아 주고 온다.
일찌감치 핸들을 위로 돌려 늘티로 아침 자전거 산책을 나선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니 아침일찍 여기저기 농부님들이 하늘을 대신해 밭에 물을 뿌려주고 있다.
늘티, 장암2리 동네 이름 간판이 왠지 동네에 비해 너무 작은 것 같기도 한데,
조금 더 올라가다 보니
커다란 윗늘티 동네 간판이 기세등등하다.
늘재, 늘티고개를 힘겹게 오르니 여기저기 세워진 비석들이 많다.
동방에 떠오르는 태양 백두대간 줄기찬 기상이 한반도를 이루고 그 중심부 청화산 정기 고여 삼파수가 흐르고 우복 고을에 당이 있어 천지신명이시어 간절히 고하오니…
낙동강, 한강, 금강이 발원지이자 백두대간 영지인 늘고개란 내용의 비문들이 서로 다른 비석으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청화산 등산로도 새로 생겨난 듯
오랜 세월의 흔적은 성황당에서나 조금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백두대간 성황당 유래비
백두대간의 정기받은 늘재에 당이 있으니 백두대간 성황당이다. 이 당은 원래 탑의 신앙과 산신신앙을 혼성한 서낭신앙에서 유래하여 신라 고구려때는 횡액질병을 막고 길손의 무사여행을 기원하는 소박한 민간 토속이었고 조선에 이르러 동제로 발전하여 오다가 잦은 국란을 당하면서 국태 민안을 위해 성황신을 백신의 장으로 모시고 관민이 신봉하는 전통 신당이므로 그 위치가 환경유적과 사실(史實)이 찬연하다. 이를 개관하면 이 늘재는 낙한 양대강의 분수령이다. 강의 원류따라 개통된 도로는 동남으로 영호남 서북으로 충청도와 서울로 통하는 장정의 기점이며 고대에 라제의 국경으로 각축지대라 견훤산성이 축성되었고 근세에는 정기룡 장군의 임란전첩지가 용화동에 있으며 세조대왕께서 백관과 함께 노니신 문장대와 용화 온천을 비롯하여 고승과 명장이 수련한 유적이 있다. 특히, 한말 경술국치 후에 의사들이 창의하고 만세운동이 전개될 때 통로가 되고 쉼터이며 도정의 대장 이강년 선생의 묘소가 지척에 있다.
늘티고개 바로 너머의 의병대장 이강년 장군 묘소입구비.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인가 본다. 올해 그나마 조금 알게 된 우복동의 역사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탁트인 풍광이 힘겹게 고개를 오르느나 흘렸던 땀방울을 시원스레 식혀준다.
잘 익은 호두알이 탐스럽다.
부지런한 농부님들 아침 풍경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