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쇼 하이쿠 선집. 마쓰오 바쇼/류시화. p415
소나무에 대해선 소나무에게 배우고,
대나무에 대해선 대나무에게 배우라.
그대 자신이 미리 가지고 있던 주관적인 생각을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을 대상에 강요하게 되고 배우지 않게 된다.
대상과 하나가 될 때 시는 저절로 흘러나온다.
그 대상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 감추어져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 그 일이 일어난다.
아무리 멋진 단어들로 시를 꾸민다 해도
그대의 느낌이 자연스럽지 않고
대상과 그대 자신이 분리되어 있다면,
그때 그대의 시는 진정한 시가 아니라
단지 주관적인 위조품에 지나지 않는다.
-마쓰오 바쇼
가진 것 하나 / 나의 생은 가벼운 / 조롱박
나비가 못 되었구나 / 가을이 가는데 / 이 애벌레는
소금 절인 도미 / 잇몸도 시리다 / 생선 가게 좌판
방랑에 병들어 / 꿈은 시든 들판을 / 헤매고 돈다
#보이는 것 모두 꽃, 생각하는 것 모두 달
빼어난 하이쿠가 실린 그의 동북 지방 여행기 『오쿠노호소미치(깊은 곳으로 가는 좁은 길)』는 일본을 대표하는 기행문
평이한 언어로 심오한 정신성을 표현한 바쇼는 렌가 連歌(두 사람 이상이 번갈아 한 행씩 읊는 시 놀이)의 첫 구인 홋쿠를 독립시켜 오늘날 우리가 ‘하이쿠’라고 부르는 차원 높은 문학으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그러나 시공간을 초월해 세계 속 독자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또 다른 매력은 그의 삶에 있다.
높은 명성에도 불구하고 바쇼는 생애 마지막까지 고독하고 탈속적인 삶을 추구했다. 인기 있는 하이쿠 지도자이자 유명 작가로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스스로 에도-지금의 도쿄-변두리의 풀로 엮은 오두막 생활을 선택했다.
물질주의적 향락과 유희가 지배하던 시대의 흐름을 거부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문학 정신에 다가간 실천적 행동이었다.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발꿈치가 닳도록’ 몇 차례나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도보 여행을 떠났다. 빈곤한 생활에 자족하며 삶과 문학에 대한 고뇌의 끈을 놓지 않았으며, 외로움을 하이쿠로 승화시켰다.
5·7·5 정형시. 17자로 묘사된 자연과 인생의 허무를 감상하는, 방랑미학의 대표작들
“나의 시는 하로동선 夏爐冬扇(여름의 화로, 겨울의 부채)처럼 쓸모가 없다”
위대한 문학이 그렇듯이 바쇼의 하이쿠는 시대와 장소의 산물이지만 시공간을 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성공의 궤도에 오르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변두리로 은둔. 문하생 리카李下가 파초(바나나 나무) 한 포기를 마당에 선물함으로써 ‘파초암芭焦庵(바쇼안)’으로 불리게 된 오두막은 이름만 낭만적으로 들릴 뿐, 풀로 지붕을 엮은 방 한 칸짜리 초막에 불과했다. 강변의 비옥한 흙에서 파초는 무럭무럭 자랐고, 귀한 이 여러해살이풀을 무척 사랑해 바쇼는 자신의 호를 ‘도세이’에서 ‘바쇼(파초)’로 바꾸었다.
오두막에서 마시는 차 / 나뭇잎 긁어다 주는 / 초겨울 찬 바람
“오두막이 갑자기 일어난 불에 둘러싸였다. 스승은 강에 뛰어들어 거적을 머리에 덮고 가까스로 연기 속에서 살아 남았다. 이것이야말로 덧없는 목숨의 시작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불타는 집’의 진리를 자각하고 집 없이 살기로 결심했다.”-『바쇼옹 종언기』
‘불타는 집’은 『화엄경』에 나오는 가르침이다. 모든 중생이 불타는 집에서 고통받고 있음을 자각하라는 내용이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바쇼의 마음에 ‘일소부재一所不在’, 한 곳에 머물지 않겠다는 생각이 깊이 뿌리내렸다. 이 화재는 바쇼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파초에는 태풍 불고 / 대야에 빗물 소리 / 듣는 밤이여
바쇼는 훗날 『오쿠노호소미치』 여행길에서 경외하는 스승 붓초가 참선 수행을 하던 암자를 방문. 이 암자에 대해 붓초는 ‘가로세로가/ 다섯 자도 못 되는 / 풀로 엮은 암자 / 엮을 것도 없었네 / 비만 없었더라면’하고 와카의 형태로 바쇼에게 들려준 적이 있었다…감동을 받은 바쇼는 붓초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다음의 하이쿠에 담아 암자 기중에 걸어 두었다.
딱다구리도 / 암자만은 쪼지 않는 / 여름 나무숲
가장 널리 알려진 하이쿠. 하이쿠의 일대 혁명이며 “하이쿠의 모든 이해는 바쇼의 이 하이쿠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된다”라고 일컬어지는 대표작?
오래된 연못 / 개구리 뛰어드는 / 물소리
바쇼는 삿갓을 ‘작은 오두막’이라고 여겨, 비바람으로부터 몸을 지켜 주기는 파초암이나 삿갓이나 매한가지라고 말했다.
세상 사람은 / 찾지 못한 꽃이여 / 처마 밑 밤꽃
바쇼 이전의 시인들은 대부분 시와 삶이 별개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바쇼는 시가 곧 삶이었으며, 삶의 결과가 곧 시였다.
시가 자신에게 오게 하기 위해 늘 시적 감정으로 충만한 생활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을 위해서는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꼭 필요한 것 이외의 소유물이나 인간관계, 그리고 안락한 환경에 대한 애착을 시를 가로막는 요소라고 여겼다.
문하생들의 선물에 불평. “다른 것은 제쳐 두고서라도, 여위어 뼈만 앙상한 어깨에 짊어진 짐 때문에 고통스럽다. 단지 몸 하나로 떠나려 했는데, 밤의 추위를 막는 종이옷 한 벌, 무명 홑옷과 비옷, 먹과 붓, 게다가 아무래도 거절하기 힘든 작별의 선물 등을 버릴 수 없어서 결국은 여행길의 번거로운 짐 보따리가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먼 거리를 여행할 수 있는 구름을 부러워한다.
단순한 음식, 최소한의 필수품을 가진 매우 기본적인 삶을 노래하는 하이쿠들이 있다.
가진 것 하나 / 나의 생은 가벼운 / 조롱박
“하이쿠라고 하는 이 길은 자연에 따라 사계절의 변화를 벗으로 삼는 일이다. 보이는 것 모두 꽃 아닌 것 없으며, 생각하는 것 모두 달 아닌 것 없다. 보는 것에서 꽃을 느끼지 않으면 야만인과 다를 바 없고, 마음에 꽃을 생각하지 않으면 새나 짐승과 마찬가지다. 야만인과 새, 짐승의 상태를 벗어나 자연을 따르고,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이쿠라는 것은 인생의 길에서 자라는 풀과 같다.”
그러나 그 ‘인생의 길에서 자라는 풀’에 바쇼만큼 진지했던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그 ‘인생의 풀’에 전심전력을 다했다. 그 열정은 죽음까지도 초월할 정도였다.
바쇼의 하이쿠에는 음악이 담겨 있다.
“바쇼의 하이쿠를 사랑하는 사람이 귀를 열지 않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운율의 아름다움에 무관심하다면 바쇼 하이쿠의 아름다움을 절반 정도밖에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장중한 운율에 도달한 이는 지난 300년 동안 바쇼 한 사람뿐이다. 바쇼의 하이쿠를 사랑하는 사람은 귀를 열어 두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시인의 사명 중 하나는 사물을 재발견하는 일이다.
일상과 관념에 묻혀 버린 사물들을 꺼내 언어의 빛으로 재조명하고, 평범함의 가면에 가려진 특별한 얼굴을 되찾아 주는 일이다. 그래서 그 사물이 지닌 신성한 모습, 나아가 모든 사물이 공통되게 지닌 무상하면서도 영원한 속성을 꺼내 보이는 일이다. 그것이 곧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시인들은 세상 모든 존재의 본질이 시적이라는 사실을 안다.
자세히 보니 / 냉이꽃 피어 있다 / 울타리 옆
바쇼의 하이쿠는 ‘자세히 보아서’ 발견한 일상의 사물들로 넘쳐 난다. 자세히 볼 때 사물들은 빛이 난다. 이것은 옛 시에서 소재를 찾아 언어유희에 치중하던 기존의 하이쿠 문학에 바쇼가 기여한 가장 큰 선물 중 하나이다.
바쇼는 직접 보기 위해 수백 킬로미터의 도보 여행을 떠났으며, 소재나 풍경과 하나가 된 직접적인 경험에서 시가 흘러나왔다.
소금 절인 도미 / 잇몸도 시리다 / 생선 가게 좌판
가식적이고 지적인 시적 언어들을 버림으로써 바쇼는 시문학에 중요한 걸음을 내디뎠다. 일상의 평범한 언어나 시로 쓰기에는 너무 속되다고 여기는 ‘똥’, ‘오줌’ 같은 단어들도 과감히 썼다.
휘파람새가 / 떡에다 똥을 누는 / 툇마루 끝
바쇼는 제자들에게 주는 충고에서 “다 말해 버리면 시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다 말해 주는 시는 시가 가진 고유의 기능을 파괴한다.
오늘날에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포함해 많은 시인들이 자국의 언어로 하이쿠를 쓰고 있다. 이들은 말의 홍수 시대에 자발적으로 말의 절제를 추구하며, 생략과 여백이 있는 짧은 시가 긴 시보다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고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