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바가바드 기타. 한혜정. p241
우리의 삶이 요가가 된다면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지만
바다는 넘치지 않고 고요한 것처럼
욕망을 내면의 바다로 끌어들이는 사람은
평안을 누린다. [2:70]
#생활 속의 길잡이 『바가바드 기타』
교육학 전공자가 힌두교 경전인 『기타』에 관한 박사 논문을 쓴다는 것은 그 당시에도 지금도 흔한 일은 아니다…기나긴 우여곡절 끝에 박사 논문을 받게 되었고 그 이후에도 나는 『기타』의 메시지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처음보다 『기타』의 메시지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고 그것이 살아가는 데에 얼마나 유익한지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이해한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렇게 책으로 출판하는 용기도 가지게 되었다.
#『바가바드 기타』의 이해를 위한 안내
#전체 메시지
#전쟁의 비유. 전쟁 같은 인간의 삶
아르주나가 당면한 상황은 군인의 의무와 가족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도덕적 딜레마의 상황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선과 악의 싸움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 해설서에서는 『기타』의 전쟁 배경을 무엇보다 ‘인간의 삶 그 자체’, 즉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것 그 자체’로 해석한다.
인간은 자신의 선택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든 것이 결정된 상태로 세상에 태어난다.
각 개인은 어떤 국가, 지역, 가정에 태어날지에 대하여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으며, 외모, 건강, 성향 등 신체적 조건에 대해서도 선택권이 없다. 나이가 들어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으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척 드물고 오히려 온갖 억압과 부조리를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힘을 얻어 살아가지만,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의 부담을 감수해야 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모든 것이 결정된 촘촘한 관계망 속에서 한순간도 자유롭지 못하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이처럼 인간은 언제 끝날지 모를 전쟁 같은 삶 속에 구속되어 각자의 위치와 상황에서 전쟁을 치르듯 살고 있다. 대부분의 인간은 전쟁 같은 삶 속에서 아무런 의식 없이 묵묵히 견디며 살아가지만, 어느 순간 그러한 삶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서서 ‘왜 이런 전쟁이 일어났지? 왜 이런 전쟁을 치러야 하지? 전쟁의 득과 실은 무엇이지? 나는 왜 이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거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자신의 삶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서서 전쟁 같은 삶에 대해 이런저런 의문을 가지고 나의 삶에서 일어나 일,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스스로 가능한 이유를 찾으려는 순간 인간은 절망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인간이 이해할 만한 이유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절망의 순간에서 인간은 삶에 대한 의욕을 모두 내려놓기도 한다. (속지 않는 자가 방황한다-자크 라캉)
『기타』에서 아르주나가 친족과의 전쟁을 앞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은, 이처럼 인간이 전쟁 같은 삶 속에 지쳐 자신의 삶에 대한 어떤 합리적 이유나 설명을 구하고자 할 때 부딪히는 절망적인 순간을 군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면 자신의 혈육을 죽일 수밖에 없는 극도의 감정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 같은 삶을 대하는 자세.
키리슈나는 친족과의 전쟁에 직면하여 절망하는 아르주나에게 ‘힘을 다해 나가서 싸우라!’고 명령한다. 우리의 삶에서 이것을 말 그대로 구속적이고 불합리하며 잔인하기까지 한 삶을 포기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헤쳐나가라는 것을 의미한다…키리슈나는 전쟁에서 있는 힘을 다해 싸우되 왜 전쟁에 참여하여 싸워야 하는지, 싸우려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산자를 위해서도/ 죽은 자를 위해서도 슬퍼하지 않는다/ 그대와 나와 여기 모여 있는 왕들은/ 항상 존재하고 있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자기가 누군가를 죽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누군가를 자기가 죽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둘 다 무지한 사람이다/ 죽는 것도 죽임을 당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너는 태어난 적고 없으며 죽지도 않는다/ 너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자기가 태어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으며/ 죽지도 않는 영원한 존재임을 깨달은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크리슈나가 아르주나에게 전쟁에 나가서 싸우라고 하는 것은 결국 전쟁 같은 삶에 대항하여 싸우되, 우리의 마음이 지어내는 ‘허상’과 맞서 싸워 이겨서 삶의 ‘실제 모습’, 즉 ‘진상’을 보라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에서 이기기 어려운 이유
아르주나여/ 불이 연기에 가려지고/ 거울이 먼지에 가려지며/ 태아가 자궁에 가려져 있듯이/ 참된 지혜는 이러한 욕망과 분노에 가려져 있다.
사람들은 현상에 미혹되어 그 배후에 그것을 초월하여 있는 불멸의 나를 알지 못한다. [7:12~13]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
우리에게 있는 것은 허상인 현재의 삶, 그것뿐이다. 그것이 없다면 진상인 삶도 없으며 진상에 도달하는 것은 오로지 허상을 통해서이다. 허상이 없다면 진상도 없는 것이므로 허상인 삶 그 자체는 매우 중요하며 그것을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기타』는 허상인 실제의 삶이 무가치하며 그것을 떠나 다른 방법으로 진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상에 도달하는 방법은 오로지 허상인 삶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크리슈나는 주어진 삶을 가치 있게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다만, 여기에서 무엇보다 강조되어야 할 것은 어떤 경우에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고 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행위를 하되 행위의 결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행하라는 것인데, 이것이 곧 카르마 요가(행위의 요가)의 의미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의 길과 행위의 길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이 둘을 동일한 것으로 본다/ 어느 한 길을 통해서든 목표에 도달한 사람은/ 다른 길을 통해서도 똑같은 경지에 이르기 때문이다
자유를 쟁취한 사람의 모습을 『기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으며/ 세상 또한 이런 사람을 흔들지 못한다/ 기쁨, 경쟁심, 두려움, 열망에서 멀리 벗어난 사람/ 이런 사람은 나에게 사랑스러운 존재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행하는 순수한 사람/ 무슨 일을 하든지 일에 얽매이지 않고/ 욕망에서 벗어나 행하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비난과 칭찬을 동일하게 여기며 침묵하며/ 어떤 상황에도 만족하는 사람/ 거주체에 대한 집착 없이 마음이 확고부동한 사람/ 나는 언제 어디서나 나만을 바라보는 이런 사람을 사랑한다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행위의 결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행하며, 자신의 마음이나 인식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자신의 마음이 지어낸 것에 불과하므로 그 자체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자. 내가 사는 지금의 삶은 허상이며 진상이 아니라는 것을 믿고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 『기타』의 메시지다. 그리고 이것의 가치는 오직 삶 속에서의 실천을 통해서만 체험될 수 있다.
#생활 속의 『기타』 메시지
인간의 삶은 시작도 끝도 없는 전쟁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이유도 없다!
무엇을 하든지, 무엇을 먹든지/ 무엇을 바치든지, 무엇을 베풀든지, 무슨 고행을 하든지/ 그 모든 것이 나에게 바치는 제물이 되도록 하라
그러면 그대는 행위의 결과에서 벗어나리라/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포기를 통하여/ 완전한 자유를 얻고 나에게 온다
존재의 본질은 변하는 성질이며 신의 본질은 정신이다.
욕망과 분노와 탐욕은 스스로를 파멸의 지옥으로 던져 넣는 세 가지 문이다
#현대인에게 『바가바드 기타』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기타』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면 무엇이 좋으냐는 질문에는 『기타』는 ‘고통과 기쁨에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모든 것을 평등하게 바라보며 원수와 친구, 존경과 멸시를 하나로 보고 추위와 더위, 즐거움과 괴로움, 비난과 칭찬을 같게 여기는 확고부동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경지’로 설명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 경지에서의 좋은 점은 경험하지 못했다.(여여如如?)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 전체가 허상이라는 것은 인간으로서 믿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생각 중에 허상이 많다는 것은 일상적으로 쉽게 경험할 수 있다…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생각을 의도적으로 집중해야 하는 경우는 예외이지만 가만히 있어도 여기저기에서 흘러드는 생각들을 의도적으로 멈추는 노력은 삶을 덜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 ‘혹시나 이렇지 않을까?’라는 고민 탓에 걱정이나 두려움이 몰려오기도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러한 고민은 부질없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짐작일 뿐이며 실제는 우리의 짐작이나 생각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별도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왜곡된 인식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조건이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살아가면서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왜곡된 인식에서 벗어나 조금씩 맑은 인식을 가질 수 있다고 대답하고 있다. 『기타』는 바로 그 노력의 방법을 말하고 있다.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홀연히 드는 생각을 멈추는 습관만으로도 삶이 덜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은 나는 『기타』를 통해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