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가설. 프란시스 크릭. p296
의식. 내 머릿속에 있는 ‘나’란?
과학은 의식의 문제를 해명할 수 있을까?
#서문
놀라운 가설이란 바로 ‘여러분’, 당신의 즐거움, 슬픔, 소중한 기억, 포부, 자신의 개성에 대한 인식, 자유의지 이 모든 것들이 실제로는 신경세포의 거대한 집합 또는 그 신경세포들과 연관된 분자들의 작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루이스 캐롤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앨리스라면 이렇게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당신들은 뉴런 덩어리에 불과해요.”
이 가설은 오늘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생소한 것이어서 ‘놀라운’ 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하다.
우리의 과학적 믿음은 사람의 마음이-즉 우리의 두뇌작용-신경세포(그리고 다른 세포들)와 신경세포에 결합되어 있는 분자들의 상호작용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놀랍게 들릴 것이다. 아무리 많은 신경세포 사이에서 아무리 복잡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나라는 존재가 한 덩어리의 신경세포의 복잡한 움직임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울 것이다.
진화는 깔끔한 솜씨를 가진 설계사는 아니다. 프랑스의 분자 생물학자 프란시스 제이콥이 이야기했듯이, ‘진화는 서툰 땜쟁이’이다. 그 땜쟁이는 이미 거기에 존재하는 것을 토대로, 일련의 작은 단계들을 거쳐 구조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진화는 편의주의자다. 만약 새로운 장치가 작동하면, 그것이 아무리 괴상한 방식이라도 진화는 그 장치를 계속 밀고 나가는 방향으로 시도를 계속한다.
대부분의 두뇌활동은 ‘창발적emergent’이다.
두뇌 할동은 개별적인 뉴런처럼 독립된 부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개별적인 뉴런은 실제로는 말 못 하는 벙어리에 불과하다. 절로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여러 가지 행동은 수많은 뉴런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창발성?1+1>2)
창발성의 과학적 의미란 전체가 부분들의 단순한 산술적인 합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각각의 부분들의 특성과 움직임 ‘더하기’ 그 부분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기초화학에서 간단한 보기를 들면 벤젠과 같은 유기 화합물을 들 수 있다….벤젠 분자가 갖고 있는 성질은 모든 면에서 12개의 구성 원자가 가지고 있는 특성의 산술적인 합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우리는 벤젠을 이루고 있는 부분들의 상호작용을 이해할 수 있다면, 벤젠의 광선 흡수나 화학반응 같은 특성을 계산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상호작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자역학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뇌의 작동 원리 하나하나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뇌의 주요 부분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을 통해 뇌 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감각과 움직임의 일반적인 특성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의식의 일반적인 성질
어떤 분야에서든 가장 낯선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탐구하라-존 아키발트 휠러
의식. 흔히 사람들은 심리학자와 신경과학자들이 의식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오늘날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 주제 중 상당 부분이 의식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음에도 그 문제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더구나 대부분의 신경과학자들은 아예 그 문제를 무시하고 있다.
19세기에는 의식이 기억과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제임스는 프랑스인 샤를 리제가 1884년에 했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했다.
“1백분의 1초 동안 고통을 당하는 것은 전혀 고통을 당하지 않는 것과 엄연히 다르다. 만약 1백분의 1초 동안만 지속되고, 그 이후에 어떤 반향이나 기억도 남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리 아프고 강렬한 고통이라고 기꺼이 참아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의식의 문제를 일반적인 철학적 주장에 의해 해결하려는 시도는 어떤 가능성도 기대할 수 없다고 믿었다. 필요한 것은 이 문제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실험의 제안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일련의 가설적인 이론적 개념들이 필요했다.
#자유의지에 대하여
자유의지? …이러한 결정은 실질적인 원인은 매우 분명하거나 또는 결정론적일 수 있지만 카오스적이다. 다시 말해서 미세한 요동으로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결과가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마치 의지Will가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