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학교. 기무라 아키노리+이시카와 다쿠지. p179
기적의 사과.
“당신은 어째서 포기하지 않는 겁니까?”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낼 것 같아서 입 밖으로 말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 “밭일이 재미있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오히려 사과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재미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떄의 저는 바짝 말라가는 사과밭의 병증을 살펴보느라, 마치 들쥐처럼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사과나무를, 그리고 자연을 정명으로 마주하고 있었으니까요…저는 정말 당시에 그렇게 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가능하면 밖으로 나가 발밑의 흙에 주목해보세요. 그 흙을 두 손으로 살짝 집어 들고는, 살펴보고 만져보면서 느껴보세요. 그 흙이야말로 저의 학교였습니다. 그 흙이 저에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흙 속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 인간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신비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비밀을 지금부터 여러분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흙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나요?
숲의 흙은 바로 낙엽이 모습을 바꾼 것입니다. 아니, 낙엽뿐만이 아니라. 버섯이나 곰팡이류 식물들, 다양한 풀도 그곳에서 자라고 있고, 곤충이나 지렁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미생물까지, 제가 파낸 마른 잎 속에 모두 섞여있었습니다.
마른 잎 저 밑바닥에 있는 흙은 정말 너무나 폭신폭신하고 말랑말랑 부드러우면서, 코를 자극하는 독특한 냄새를 풍기는데,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하고 깨끗한 냄새입니다. 그 냄새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저는 슈퍼마켓 장바구니에 그 흙을 가득 채워넣고 그 냄새가 날아가지 않도록 입구를 꼭 동여맨 후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밭의 흙과 냄새를 비교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마 비교해볼 것까지고 없었습니다. 저의 과수원 흙은 그런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으니까요. 도서관에서 조사해본 결과, 산에서 맡았던 흙냄새의 근원은 아무래도 방선균이라는 박테리아의 일종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결혼에 도달했습니다…
흙이란 결국 거기에 살고 있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활동에 의해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한 줌의 흙 속에는 몇 마리의 미생물이 있나요?
예전에 어느 대학 교수가 저에게 ‘한 줌의 흙 속에는 지구의 인구보다 더 많은 박테리아가 들어 있다’고 가르쳐 준 적이 있습니다…상상도 할 수 없는 양입니다.
그 작은 생물들에게 있어서, 한 줌의 흙은 그 자체로 훌륭하게 자신들이 사는 세상이면서 또한 우주인 것입니다.
#흙은 더럽고 지저분하다?
저는 흙을 지저분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일본의 농업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과 동시에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급속히 멀어지기 시작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여러분들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혹시 자신의 발로 흙을 밟아본 게 언제쯤인지 기억할 수 있나요?
#좋은 흙과 나쁜 흙을 구별하는 법
‘그때, 그날 밤, 신기한 달밤’의 발밑의 푹신푹신한 흙.‘아! 흙에도 냄새가 있구나’
좋은 흙은 대체 어떤 흙인지 되물으면 참 대답하기 곤란? 좋은 흙은 냄새가 다르다
좋은 퇴비 만들기. 자주 뒤집어, 바닥까지 공기(산소)를 주입시키는 작업을 자주 해준다. 산소를 좋아하는 호기성균, 완전 분해가 끝난 퇴비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잡초는 언제부터 방해물 취급을 받았을까요?
제초제 사용하기 전 말(소)의 먹이 풀베기, 동시에 김매기. 자연의 순리에 맞는 일.
농기계 사용. 논두렁 연료(가축먹이) 대신 석유 사용. 에너지 효율 면에서 생각해보면, 아마 논두렁 잡초를 말에게 먹이는 편이 그것보다는 훨씬 더 이익일 겁니다…그런 의미에서 잡초는 궁극의 바이오연료라고 말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군요.
농기계 사용. 논두렁 제초제 뿌리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 풀은 그때부터 그냥 방해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사과나무를 지키는 신, 미생물
자연재배, 자연치유력, 잡초가 자라고 흙이 살아있는, 자연생태계를 부활시킨 결과. 살아 있는 흙? 흙 속의 미생물 활동.
#흙의 온도를 측정하는 이유
산의 흙과 밭의 흙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온도입니다. 산의 흙은 파도 파도 계속 따뜻했습니다…산의 흙이 따뜻한 것은 미생물의 활동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생명황동, 그런 의미에서 보면 흙도 살아있다고 생각해도 무방. 그렇게 생각하면 흙의 온도를 재는 것은 바로 흙의 생명을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산민들레는 왜 밭의 민들레보다 큰가요?
확연한 뿌리의 차이. 비료보다 좋은 미생물 활동. 답은 잡초.
새로운 재배방침? ‘비료를 주지 않는다. 풀도 베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만은 제가 스스로 경험해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었던, 그런 종류의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농업에 관한 기존의 상식이 몸과 마음에 완전히 베어있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들도 간단하게 저의 몸과 마음에 침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그 지점에 이르고서야 겨우 드디어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비료의 3요소. 진소, 인산, 칼륨의 양을 실제로 조사해보니, 산의 흙에는 반드시 이 모든 영양분이 다 포함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만일 비료의 양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로 비옥하다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산의 흙이나 저의 밭의 흙은 그만큼 비옥하지 않다는 의미가 됩니다.
#비료는 식물의 성장에 꼭 필요한가?
비료가 꼭 필요한가? 그렇다면 산의 나무들은…대체 비료라는 게 뭘까요? 자연의 초목은 비료 따위는 단 한 줌도 주지 않아도 저렇게 건강하고 무성하게 자라는 데 말입니다…지금은 이런 사실을 어릴 때부터 정말 단 한 번도 신기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정말 놀랍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품고 기르는 어머니, 흙
흙은 인간의 먹이를 생산하는 모체입니다.
저는 흙의 풍요로움은 비료에서 기인하는 게 아니라, 흙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생물과 식물과의 관계에서 결정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식물에게 있어서 흙 속의 미생물이란 우리 인간으로 치면 위내세균이나 장내세균과 같은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흙 속 세균이 흙이 갖고 있지 못한 영양을 보충해주고 식물의 성장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다
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토양세균의 존재를 무시하고 단순히 토양을 분석하여 이 토지는 질소분이 많다거나, 인산분이 적다거나,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런 흙이 가진 힘은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양분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김매기를 하지 않으면 밭의 풀은 어떻게 변하나요?
정글을 기대? 여전히 저의 밭에서 나는 풀들의 종류와 양은 많은 편이지만 이제 정글은 아닙니다. 풀들이 이만큼이나 변했는데 흙 속의 세균의 양상은 또 얼마나 크게 변했을까요.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저는 지금도 가슴이 설렙니다.
#밭에 콩을 심는 이유
질소고정, 뿌리혹박테리아. 사과가 건강을 되찾으면서 반대로 콩의 뿌리에 붙어있던 뿌리혹박테리아가 줄기 시작. 5년이 되던 해, 거의 붙어있지 않았습니다…자연은 쓸데없는 짓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후에 단 한 번도 다시 콩을 뿌린 적이 없습니다. 그걸로 충분하니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흙 밑의 세상을 보는 방법
물론 보는 방법이 따로 있습니다. 흙을 파서 온도는 재는 것도 그 방법 중 하나.
하지만 좀 더 간단하고 명료하게 흙 속 미생물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풀입니다.
공생관계. 그곳에서 자라고 있는 풀들의 차이는 그곳에서 서식하고 있는 흙 속 세균의 차이이기도 한 것입니다.
#흙의 성격을 파악한다는 것
흙의 개성을 잘 파악하여 그 토지에 잘 맞는 작물을 심는다면 적어도 농약이나 비료 사용량을 지금보다 훨씬 더 줄일 수 있습니다.
흙의 성격은 장소에 따라 전부 다릅니다. 저는 그 차이를 파악하는 것이 현명한 농업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농약이나 화학비료가 널리 사용되면서, 그런 것들을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저는 기나긴 세월동안 맺어온 농부와 흙의 끈끈한 연대감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바로 농약이나 화학비료가 등장한 이후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벌레의 마음을 읽는 방법
자신의 눈과 손이 농약과 비료를 대신, 손으로 직접 잡는 수밖에. 벌레의 마음? ‘이런 날씨라면 언제쯤 어디에 어떤 알을 낳겠구나’
#자연은 게으름뱅이?
‘자연은 쓸데없는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벌레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귀여운 얼굴의 해충? 초식동물인 셈. 무시무시한 괴수의 얼굴? 익충은 육식동물, 맹수에 속합니다.
#적을 만들지 않는 농업
생태계란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그물망처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시스템입니다. 생명 전체의 움직입니다.
#영양이 남아도니까 벌레가 꼬이는 것
진딧물은 여분의 영양분을 먹으러 오는 것.
#대초원과 박테리아
‘연작장해’의 원인? 제초제 사용 잡초를 없애다 보면, 토양세균도 단일균만 계속 늘어나게 되어 연작장해를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보통 연작장해가 일어나면 약을 사용해 토양소독을 실시. 이것은 흙을 흙으로 보지 않는 요즘의 농업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소독, 독을 없앤다, ‘살균’이라는 뜻. 좋은 균도 나쁜 균 모든 박테리아가 몽땅 죽어버립니다. 일시적으로 연작장해는 사라집니다. 하지만 3년 정도 지나면 다시 발생!
하지만 저처럼 비료를 주지 않는 밭에서는 지금까지 몇 년 동안 같은 작물을 심어도 연작장해가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밭에 여러 가지 잡초가 자라고 있기 때문. 다종다양한 풀이 자라고 있으면 흙 속 미생물이 단일화되지 않습니다.
연작장해는 병이 아닙니다.흙 속 미생물 층이 단일화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잎맥과 가지의 관계
가지치기는 잎맥 모양에 따라. 잎맥의 형태는 수목 각각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표현해주고 있었습니다.
#벌레는 손으로 잡자
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 식초 200배 이상 희석해서 사용. 농도가 높으면 잎이 타버립니다.
#자연을 ‘거꾸로’ 보자
머리는 흙 속의 뿌리라는 상상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자연을 보는 법이 바뀔지도 모릅니다.
거칠게 갈 면 흙 속에 공기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 공기가 많을수록 호기성균이 증가.
뿌리 끝을 생각하면 밭을 거칠게 하는 것이 좋은 게 당연하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싹이 나기 전에 나오는 것
콩을 심으면 가장 먼저 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싹이 아니라 뿌리.
자연재배하면 성장이 더디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지상 부분만 보고 있기 때문. 벼의 성장이 늦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땅 밑의 뿌리를 먼저 뻗기 때문입니다…이 지하세계에 자리한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사실은 더 중요합니다.
#자연의 시간을 산다는 것
언젠가 한 번은 깊은 숲 속에서 풀이나 나무에 햇빛이 어떻게 비치는가를 관찰하면서 하루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아침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계속 보고 또 본 결과 알게 된 것은, 어떤 풀도 하루 중 한 번은 어디에선가 햇빛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잡초가 자라야 흙 속 세균이 늘어나는 데 유리합니다. 게다가 풀은 자연적인 에어컨 역할을 해주기도 하지요…나무의 뿌리 끝도 시원한 편이 더 기분 좋은 건 당연합니다.
뭐, 제 생각이 맞는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면 아무튼 벌레나 풀들을 관찰하면서 그런 것들을 하염없이 생각하는 시간은 저에게 굉장히 소중한 시간입니다. 가끔은 시계 보는 것을 잊고 자연의 시간을 살아보는 것도 필요하답니다. 왜냐하면 인간도 자연의 일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