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한 학교. 시미즈 미츠루. p286
덴마크라고 하면 안데르센과 그의 동화만 있는 게 아닙니다…덴마크는 니콜라이 프레데릭 세버린 그룬트비와 ‘폴케호이스콜레’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룬트비는 덴마크에 유례가 없는, 세계적 수준의 교육자. 폴케호이스콜레운동을 통해 ‘성인교육의 아버지’로.
그룬트비가 남긴 불멸의 유산의 뚜렷한 예, 덴마크 754개의 찬송가 중 271개 노래의 가사가 그가 쓴 것.
이 책이 여러분에게 학교와 교육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 나의 희망입니다.
물질적인 것에서부터 문화적인 것까지를 포함한 ‘풍요’라는 개념과, 그것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변화시키지 않고서, 과연 오늘날 세계의 경제적 및 생태적 위기를 극복한 가능성을 우리가 가질 수 있을까요. ‘풍요’의 개념에 대한 우리의 태도 변화에는 학교 개념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도 당연히 포함됩니다.-오베 코스고르(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협회 회장)
폴케호이스콜레? 150년 전 덴마크에서 시작된 자유학교(free school). 그 말의 뜻은 ‘민중(국민)의 대학’. 현재 덴마크에 100여개, 세계 전역에도 보급. 17세 이상이면 누구라도 이곳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특색으로는 시험이 없고, 졸업해도 자격증을 주지 않고, 기숙사에서 교사와 학생 전원이 공동생활을 하면서 배우고, 커리큘럼은 자유롭고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는 사립학교라는 점입니다.
이 책은…폴케호이스콜레의 정신인 ‘대화와 상호작용’ 밑에서 쓰여졌습니다.
##삶을 위한 학교_덴마크 ‘폴크호이스콜레’와 그룬트비
#트빈스쿨_풍차발전과 ‘여행하는 폴케호이스콜레’
세계 최대 규모의 풍차 발전기? “이 풍차는 덴마크에도 원전이 도입되게 되자 그것에 반대하고, 또 지역에서 에너지 자립을 이루기 위해서 전문가도 아닌 트빈스쿨 교사와 학생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낸 것이다.”
생산과 생활, 기술이 전부 하나가 되는 일종의 코뮌(공동체)과 같은 학교의 형태
억압과 관리가 없는 해방된 사회를 지향하는 대안운동의 실천으로, 교실 하나를 빌려서 자그마하게 시작되었다.
강의보다는 대화와 실천이 우선시, 삶의 불가사의와 신비를 배우면서 자립정신을 체득하는 전통은,….그 자체가 대안적인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시험은 전혀 없고, 책보다 대화를 중심으로 삶 그 자체를 배우고 사회성을 배양하는 데 특징이 있다…그래서 ‘자유학교’, ‘삶을 위한 학교’라고도 불린다.
전부 사립학교들로서, 정부의 지원은 받지만 간섭은 일절 받지 않는다. 과목은 정해진 것이 없이 자유롭다.
트빈의 힘의 상징, 풍차발전.
50미터 대형 발전용 풍차의 건설. 도합 10만 명이 참여하여 수작업으로 높이 50미터, 날개 직경 54미터, 최대출력 2,000킬로와트, 당시로서는 세계 최대의 발전용 풍차를 건설했다.
결국 거의 전부 비전문가들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웃던 전문가나 매스컴들도 풍차가 점점 형태를 갖추어가는 것을 보고 관심을. 민중의 네트워크 확장, 덴마크 전역에서 학생들과 청년들이 매주 적어도 500명씩 돕겠다고 찾아왔다.
(풍차 기술과 같은) 이런 기술은 경험에서 축적된 구체적인 지식이 토대가 되어야 하므로, 자본을 아무리 많이 투입해도 탁상공론 계산에 의존하는 대기업이나 행정 당국의 방식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국민 여론에 의해 결국 1985년, 덴마크정부로부터 원전 건설을 인가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나오게 된다. 트빈 풍차는 폴케호이스콜레운동이 덴마크사회에서 갖는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폴케호이스콜레의 생활
근대스포츠 완성? 경쟁과 약육강식의 원리가 스포츠분야까지 지배.
본래 몸을 움직이는 것은 누구에게나 즐겁고 마음이 해방되는 일이어야 하는데, 체육이나 스포츠의 목적이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가 되고, 이기고 지는 승부가 되고, 사람의 잠재적인 운동능력을 가능한 한 끌어내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이렇게 해서 각종 경기 개최, 서열이 생겨나 가장 높은 위치를 올림픽이 차지.
메달을 거의 따지 못하는 나라? 메달을 따기 위해서가 아닌 마음과 몸의 건강과 활력을 목적으로 한 체육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폴케호이스콜레의 조직과 내용
이곳에서는 무엇이든 대화를 통해서 진행하도록 정해져 있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일이 복잡해지기도 한다.
#폴케오프뤼스닝
폴케오프뤼스닝(민중의 사회적 자각)? 그룬트비는 ‘교육(uddannelse)’이라는 단어는 훈련을 뜻하며, 원숭이에 대해서라면 몰라도 사람에 대해서 사용할 말이 아니라고 하면서 그 사용을 기피했다. 그래서 덴마크에서는 국민교육을 ‘폴케오프뤼스닝(folkeoplysning)’이라고 한다.
오늘날 덴마크의 아이들처럼 다른 아이들과 노는 아이들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오랜 농업국 덴마크이기 때문인지 모두 땅에 대한 애정이 깊어 보였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덴마크에선 장관들조차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농사 경험이 있다고 한다.
티볼리공원? 디즈니랜드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디즈니랜드와는 근본적으로 개념이 다르다. 한마디로 ‘인간적인 규모’의 공원. 온갖 기술을 동원한 자극적인 탈것은 전혀 없다. 과도한 충격으로 눈을 홀리고, 신기한 탈 것에 돈을 쓰게 하고, 터무니없는 가격의 먹을 것을 파는 곳이 아니다.
일본 티볼리공원 건립? 상품을 팔아먹고 이벤트를 열어 얼마나 많는 사람들을 끌어모을까 골목하는 일본의 리조트업자들이 티볼리공원의 철학을 과연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룬트비의 생애와 사상
“폴케호이스콜레를 이해하는 데는 우선 무엇보다 그룬트비에 대해서 알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안데르센이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잘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그들의 작업이 처음부터 국제적인 내용의 것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덴마크인에게는 그룬트비 쪽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책에 있는 글보다 살아 있는 말.
시험 폐지와 삶의 개발. 삶을 위한 학교라면 거기에 자격이나 시험, 이수 단위 등이 들어갈 여지는 없다.
#폴케호이스콜레와 크리스텐 콜
농사꾼 차림의 소크라테스.
#폴케호이스콜레운동의 확산_덴마크 농민혁명
“그러나 우리는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되찾을 수 있습니다….” -『덴마크 이야기』
#세계 최초로 풍차발전을 실용화한 인물 포울 라 코우르
#폴케호이스콜레와 세계
#나의 IPC체험기
“지금 뭘 하며 지내니? 무슨 공부를 하고 있어?”
“딱히 하는 건 아무 것도 없어. 가끔 엄마와 함께 영어와 미술 수업을 들어. 그러곤 방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교정을 산책하기도 해. 그런데 어쨌든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인생공부가 돼.”
#덴마크의 프리스콜레와 애프터스콜레
좋은 학교에 아이를 보낸다고 해서 그것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결국 어른들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아이를 마치 공장처럼 만들어낸다는 사실에는 변함없다. 그것보다는 학교교육을 하나의 시민운동으로 보고, 사회와 연계하여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뭔가를 만들어내고, 자신들도 포함한 사회를 변화시켜나가는 방향으로 끌고 간다면 재미있지 않을까. 즉 자유로운 학교에서 무럭무럭 자란 젊은이들이, 세상에 어설프게 아부하지 않고 그들의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는 생산, 소비 그리고 생활의 터전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일본의 폴케호이스콜레
‘살아있는 언어’를 ‘살아있는 귀’로
그룬트비가 제창한 ‘살아있는 언어’란, 그것을 말하는 사람의 뜨거운 마음이 때와 장소를 만나 숨결을 토하게 된 언어를 의미한다. 제아무리 마음을 담은 말이라도 때와 장소의 가세가 없이는 헛돌고 만다.
살아있는 귀? 말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듣는 사람의 귀는 ‘살아있는 귀’가 되기도 하고 ‘죽은 귀’가 되기도 한다. 만일 내가 위압적으로 강요하듯 말하면 아무리 ‘살아있는 언어’라도 듣고 있는 학생에게는 거북스러운 말로밖에는 안 들릴 것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선생님’이란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희망을 키우다. 마지막으로 우리 학교가 농업을 토대로 하고 있는 것의 의미를 설명하고자 한다.
농업의 육체노동은 인간의 온갖 근육을 총동원하게 만든다. 악력과 다릿심은 그때까지 의존해왔던 자동차나 편리한 것들과 적당히 거리를 두게 해준다. 이렇게 젊은이들이 공상이 아니라 실제 몸을 진솔한 잣대로 삼음으로써, 마침내 사물의 허와 실을 구분할 수 있는 힘을 키워낼 수 있게 된다.
#그 순간 바람이 불었다-‘바람의 교실’
이 학교는 교사(敎舍)도 없도 교사도 없습니다. 하물며 시험도 교과서도 없습니다. 그래도 학교입니다.
우리 교실에는 벽이 없기 때문에, 꽃향기도 새들의 노랫소리도 바람소리마저 전해져 옵니다. 천장은 그 어떤 거인도 닿지 않을 하늘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비도 내립니다. 일단 강사가 있지만 모두가 선생님이기도 하고 학생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원숭이도 소도 아니기 때문에, 가르침이니 교육이니 하는 것은 생각지도 않습니다. 요컨대 당신이 만들어가는 학교이고, 당신 자신의 ‘나의 학교’입니다.
또 이 학교는 농(農)학교입니다. 하지만 농업학교와도 다르고 농민의 학교와도 다릅니다.
논을 만드는가 하면 밭도 만들고, 가끔 바다에도 나가도 산에도 나가 배웁니다….때로는 어부에게 배워 김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농학교였지만 나중에는 어떤 학교가 될지 모릅니다. 다만 다시 한번 ‘농사’를 재평가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보고자 합니다.-‘바람의 교실’ 선전 문구
이즈미의 농업을 생각하는 모임.
“행동할 때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 생각할 때는 지구 차원에서”
지구환경을 파괴하려는 듯 무서운 기세로 농업은 공업화되어갔다, 유기농업 자체도 생산과 유통의 합리화와 상품의 차별화에 휘말려, 농업은 단순히 농산물 생산에만 열을 올리는 농민들의 모임으로 변모하였다. 실제로는 모든 생물이 생산자이자 소비자임에도 불구하고, 실체 없는 소비자라는 망령에 놀아나다 안전과 신선이라는 상품가치에만 휘둘리는 농민이 증가하였다. 모든 생물이 식생활을 통애 농업과 지역과 지구 그리고 자유롭게 행도하는 자신을 형성해가지 않으면 안되는데….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단순한 분류의 관계에서 그것은 결코 형성되지 않는다. 도시와 농촌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농민과 소비자만이 아니라, 좀더 풍요로운 정신성과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며 살아있는 생물의 집합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농공(農工)을 교환한 결과 가난하지만 소박한 행복을 버리고 그 대신 풍요롭지만 황폐한 세계를 손에 넣고 말았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 해도 단 1그램의 흙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하물며 막대한 경제력이 있다 한들 소박한 행복을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물도 공기도 빛도 흙도, 그 어느 것 하나 사람의 손으로 만들 수 없다는 인식에서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