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밥상. 글 이상권·사진 이영균. p272
#들어가는 말
우리네 조상들의 살과 노래가 되었던 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오늘처럼 들풀로 음식을 해먹었던 그런 이야기가 담긴 책을 내고 싶습니다…봄에 나는 풀들은 다 먹는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저 들이나 산에 깔린 풀들이 다 우리 조상님들의 살이 되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후세에 남는 책이 될 것 같아요.”
우리는 옛날 조상들이 해먹었던 그대로 재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조상들은 거의 모든 풀의 성질을 알고 있었고 그런 풀들을 어떤 때, 어떻게 해서 먹어야 하는지를 알았다. 그것을 하루아침에 알게 된 지혜가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서 전해져 내려온 야생초밥상에 대한 역사다. 그런 것들을 알아여만 새로운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소박한 밥상의 풍요
보릿국/ 소리쟁이국/ 넘나물국(원추리)/ 점나도나물국/ 해당화색반/ 광대나물/ 뚝새풀/ 조팝나무/ 별꽃
보리: 어린 순을 캐 먹는다. 우유의 55배, 시금치의 18배 정도의 칼륨이 들어 있다.
말만 그 지역 음식이라고 하지 막상 가서 보면 다들 옛날 음식이 아니라 요즘 음식이더라
요즘 건강식이라고 하는 것들은 죄다 우리 가난한 시절에 먹었던 음식들이다.
보리순이 얼마나 고마운 풀이었는지 알겠어. 그 추운 계절에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채소이자 나물이었잖아?
소리쟁이. “그렇죠. 저도 이런 맛이 날 줄은 몰랐어요. 이런 걸 왜 안 먹는지 모르겠어요. 이거요, 그냥 맹물에다 넣고 끓인 거예요. 된장 외에는 아무것도 안 넣었어요. 그래도 이런 맛이 나니까 대단하지요.”
이 들풀이 가장 맛들어 있는 시기는 겨울의 끝자락이다. 소리쟁이는 쑥보다 먼저 캐는 나물이다.
원추리. 정월 대보름날 호호 불면서 먹었던 넘나물국
“진짜 달아, 우리 할매는 원추리를 봄 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셨어. 그만큼 맛있어.”
이파리가 넓적하다 하여 ‘넓나물’ 혹은 ‘넘나물’이라고 부른다. 모든 봄나물이 그렇듯이 원추리도 때를 놓치면 먹을 수가 없다.
점나도나물. 식물에 ‘점’자가 붙어 있으면 ‘작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작은나물’이라는 뜻입니다.
해당화색반. 세상에서 가장 특별했던 생일밥
꽃이 예뻐서 옛날 사람들이 꽃밥을 해먹었다. 비타민C가 다량 함유되어 있다.
광대나물
매화나무. 나무는 늙었어도 꽃향기는 청춘이었다. 그건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그만의 황홀한 능력이었다.
겨울이나 봄풀은 독이 없어. 특히 겨울풀은 없어. 벌레가 없으니까…예로부터 겨울을 난 풀은 산삼보다 더 좋다고 했어. 그만큼 건강한 풀이라는 뜻이지…그렇게 건강한 것을 먹어야 사람도 건강하지. 요새 하우스에서 나는 채소들하고는 비교를 할 수가 없어. 이건 약이야.
사방에 흔하니까 욕심 부려 많이 뜯어놓을 필요도 없고,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뜯어다 먹으면 된다네. 들나물이란 고런 재미로 뜯어먹는 것이지. 먹고 싶을 때마다 싱싱한 것들을 언제든지 뜯어다 먹을 수 있는 재미!
뚝새풀. 초여름이면 스스로 시들어버린다. 그 무렵이 논농사가 시작되는데, 뚝새풀은 땅을 비옥하게 하는 퇴비가 된다.
저는 이 풀맛이 참 좋네요. 이처럼 자연 그대로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 몇 가지나 될까요?
그 작은 씨앗에서 시작한 생은 여름과 가을, 그 몇 개월 만에 자기보다 수십만 배나 큰 우주를 만들어낸다. 그것이야말로 기적이다.
새팥, 지부자밥(댑싸리), 옥매듭밥(매듭풀), 쇠무릎, 피죽, 뱀밥나물,뱀밥밥(쇠뜨기), 무릇곰
#추억과 함께 먹는 야생의 맛
민물김, 황새냉이, 메꽃, 마름, 구기자
#글을 갈무리하며
우리 집 뒷산은 밤마다 다른 세상으로 바뀐다….이건 기적이야, 하는 말 외에는 그 어떤 표현도 허락하지 않는 비밀스럽고 환상적인 축제에 취해서 흐느적거리면서 마음이 서글퍼졌다.
하지만 밭주인이 제초제로 밭 주위에서 더불어 살던 야생초들을 초토화시키면서 반딧불이는 신음하기 시작했다…무릇, 쇠무릎, 마, 구슬봉이, 왕씀바귀, 좁쌀풀, 나도나물, 별꽃 같은 야생초들은 가혹한 제초제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졌다. 악착같이로 소문난 바랭이들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지렁이, 참개구리, 두꺼비, 청개구리들도 볼 수가 없었다. 반딧불이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반딧불이는 종말을 맞이한 줄 알았다. 그런데 3년 전부터 우리 집 뒤쪽 숲에서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눈물이 나도록 기뻤지만 이곳이 그들의 마지막 터전이라는 생각을 하자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서글퍼지면서 미안해졌다. 그 숲 위쪽의 산허리는 이미 다 잘려나갔고, 옆쪽에도 집을 지으려고 벌써 3년째 공사 중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들에세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우리 집 뒤에는 약5백 평 가량의 밭이 있는데 땅주인은 그곳에다 나무를 심어놓고 방치하였다. 그러자 수백 가지 야생초들이 날아들어 철마다 새로운 얼굴을 선보이면서 살아간다. 야생초가 살아 있기에 반딧불이도 살 수가 있었다. 야생초들이 살아 있었기에 내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곤충들이 살고 있으며, 또한 그 곤충을 먹고 수백 가지의 생명체들이 살게 된다는 이 뻔한 진실을 다시금 곱씹게 되었다. 인간도 그 수백 가지의 생명체 중에 하나라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이 글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들에서 아무런 말없이 살아가는 야생초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 세상의 신비로운 판타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