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와 농업의 사회학. 마이클 캐롤란. p328
먹거리 열풍이 뜨겁다. 하지만 먹거리 열풍의 이면을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먹거리의 개인화 경향이 뚜렷하다. 주로 소비의 측면에서 개인의 취향이나 건강 혹은 웰빙이 강조되고 있다…먹거리보장이나 먹거리 평등권의 중요성이 간과된다. 돈 없는 사람은 굶주리고, 돈 있는 사람은 골라 먹는 현상이 나타나며, 이를 당연시하게 되는 것이다.
먹거리 열풍의 또다른 한계는 탈맥락화다. 사람들은 먹거리의 생산과 유통 과정을 보지 못한다. 그저 마트에 가면 잔뜩 쌓여 있으며, 돈을 내고 사먹기만 하면 된다. 시장에서 사먹은 복숭아가 괴산의 농민들에 의해 생산되었으며, 값싼 미국산 쇠고기는 유전자조작 옥수수 사료로 키워졌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른다. 대형마트가 요구하는 가격을 억지로 맞추기 위해 채소 농가의 속이 얼마나 썩어가는지, 5,000원짜리 커피 값 가운데 제3세계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몫(food dollar) 얼마나 되는지에 관해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먹거리는 최종적으로 식탁에 오르기까지 긴 생애주기를 가진다.
라면의 밀가루(소백분)는 종자회사 몬산토에서 태어나, 미국 아이오와 농부의 밭에서 초국적 농기계회사에서 만든 기계가 뿌려주는 몬산토 농약과 비료를 먹고 자랐을 것이다. 수확된 밀은 열차와 배를 타고 이동해 낯선 땅 한반도에 도착해서 국내 재벌이 운영하는 제분회사에서 밀가루가 되었다. 면으로 재탄생한 밀은 인도네시아에서 수입된 팜유로 튀겨져, 성분을 정확히 알기 어려운 ‘수프’와 함께 예쁜 포장지에 싸여 대형마트의 선반에 올려졌다. 이처럼 길고 복잡한 생애주기를 가진 라면용 밀의 일생은 과학기술, 국가 정책, 무역체계, 식품안정, 노동과정, 임금, 환경, 비만, 건강관리 비용 등 다양한 이슈들과 관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라면 한 그릇을 먹는다.
개인화, 시장화, 탈맥락화돼버린 현재 먹거리체계는 먹거리에 대한 앎의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
먹거리가 나와 내 가족의 건강을 위해 정말로 중요한 것이라면,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먹거리를 사회적 이슈로 바라보는 사회학적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즉 개인 일상의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이해하는 ‘사회학적 상상력’이 요구된다. 마이클 캐롤란 교수는 자신의 저서 『먹거리와 농업의 사회학Sociology of Food and Agriculture』에서 이 점을 대단히 강조한다.
#한국어판 서문
이 책은 먹거리를 실제로 구성하는 관계망 전체에 관한 것입니다. 먹거리라는 주제를 생각할 때 사회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먹거리가 근본적으로 농업, 문화, 정치, 인간의 참살이, 그리고 공공 및 환경적 건강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또한 개인적 불편으로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더 넓은 사회적 수준의 문제임을 알게 해줍니다. 먹거리 및 농업과 관련해서도 이는 분명합니다.
먹거리 시장 자유화의 또 다른 흥미로운 결과는 우리를 살찌고 병들게 한다는 점입니다…이는 의심할 여지없이 “값싼” 가공식품의 범람과 먹거리 관련 외국인 직접투자의 결과로, 이러한 변화들은 열랑만 높은 식품의 1인당 소비량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또한 한국인은 2년 전과 비교해 운동량이 줄었습니다.
이런 모든 문제는 한 가지 질문과 맞닥뜨립니다. 어떤 먹거리체계든 그 목적은 환경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러나 현실은 매우 다릅니다. 바로 그 때문에 전세계 농민들이 기존의 구조와 정책에 대항하고자 단결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과 가족이 먹는 음식에 의문을 품고 있으며, 현실에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랄 것입니다. 의문은 좋은 것입니다. 자주 질문하십시오. 이 책이 그 질문들에 얼마간 답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가장 큰 바람은, 이 책이 당신이 아직까지 생각지 못했던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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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먹거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먹거리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산업화된 국가에 사는 소비자 대부분에게, 농작물 경작지와 매년 수확물은 마트의 진열대와 매주의 쇼핑으로 대체된 지 오래다. 다섯 살배기 아이들도 태양계 모든 행성의 이름을 댈 수 있지만, 이들의 형이나 언니들조차 피클이 오이에서, 베이컨이 돼지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렇다. 우리는 가까운 슈퍼마켓에 도착하지 전까지의 먹거리의 생애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에 관해 진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바로 이점에서 사회학이 개입한다. 먹거리의 일대기, 즉 먹거리가 유전자에서 진열대를 거쳐 쓰레기통에 들어가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더 알게 함으로써 큰 그림을 이해하는 데 사회학은 도움을 주는 것이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먹거리체계에 관해 정말로 자유분방한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 먹거리의 “이면”에는 모든 세계가 존재한다. 먹거리체계는 사람, 조직, 국가, 규제/법, 생태계, 그리고 가치/신념 등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연결된 네트워크다…그렇기 때문에 먹거리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은 큰 의미가 있다.
사회학의 핵심은 그 어느 것도 단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 있기 때문이다.
먹거리 체계의 특징적인 “모래시계” 모양? 농가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부분이 매우 집중화된 목이 좁은 형태를 취하기 시작.
사회학적 상상력은 공기가 지정학적인 경계를 넘나드는 것만큼 학문적 경계를 넘나든다
하이데거는 기술적 인공물들은 그것들이 고장 났을 때에만 가시적인 것이 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현존의 존제와 도구적 존재) 텔레비전이 고장 나거나 전기가 나가야 예전에는 안 보이던 요소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고, 현존의 존재가 된다.
사람들은 대개 먹거리체계의 어떤 부분이 기능장애를 일으키고 나서야, 예를 들어 대규모 식품 리콜 같은 사태가 벌어지고 난 뒤에야 이에 관해 실질적이고 적극적으로 생각한다….그러나 이 상태는 언제나 잠시 이어질 뿐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먹거리의 ‘이면’에 있는 체계는 배경으로 사라지는 데 성공하며, 보통의 소비자들에게 다시 투명한 것으로 비친다. 결과적으로 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만, 대부분은 별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
세계 30대 국가는 연간 3650억 달러 식품 및 농업보조금으로 지급, 이는 하루에 10억 달러 꼴. 이러한 보조금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은 누구인가? 거대 농기업들이다!
미국에서는 모든 먹거리의 약 50%가 쓰레기, 그 “쓰레기”는 약 2억명을 먹이는 데 충분한 영양분.
식품1칼로리를 생산하려면 약 10칼로리의 화석연료가 필요, 1kg의 비육우를 생산하려면 약 1만 5500리터의 물이 필요.
이상과 같은 불평등과 낭비가 계속 이어지게 하는 현실은 어떻게 하여 이루어졌나?
사회적 상상력을 가지고 생각하게 함으로써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들려고 적극 노력한다.
이 책은 음식을 다시는 예전과 같이 바라보지 않게 만드는 의식을 고양하는 저술인 것이다.
##세계 먹거리경제
#변화하는 농업 구조
농업보조금은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내면서 현재의 농업 구조를 탄생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기계화 혁명? 자본에 의한 노동의 대체였다!
농업의 악순환? 농민들이 신기술 채택과 규모 확대를 강요당하면서 엄청난 경제적 압박에 시달린다? 논리는 단순하다. 기술 특히, 수확량이나 농장 효율을 증대하는 기술을 처음 도입하는 농민은 증대된 수확으로 초과이윤을 얻는다. 그러나 그 기술의 상대적 이점을 발견한 다른 농민들이 초과이윤을 기대하며 마찬가지로 신기술을 받아들인다. 증가한 수확량의 누적적인 효과는 결국 넘쳐나는 공급으로 이어져 시장가격을 낮추는 힘으로 작용한다.
새로운 농업기술이 소비자의 수요를 직접 증가시키는 예는 거의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신기술을 채용하지 않은 농민들은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으려고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과잉생산의 결과로 옥수수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졌다고 하자. 수확량을 두 배로 늘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서 새로운 기술을 채택한 덕분에 전과 같은 소득을 얻지만, 예전 방식으로 생산하는 농민들은 수확량에 변동이 없음에도 소득이 절반으로 줄게 된다. 새로운 기술을 채택한 사람도 근본적으로는 제자리에 머무는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농민 대부분은 잘해봐야 제자리에 머물 수 있을 뿐이다.
피할 수 없는 과잉생산? 생산은 새로운 기술과 추가적인 경작으로 훨씬 빨리 증가한다.
농산물의 가격을 지난 35년 동안 놀라울 정도로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투입재가격은 같은 기간 동안 두 배 이상 올랐다.
경제의 다른 영역 대부분과 달리 농민은 생산물을 도매가격으로 판매하고 투입재는 소매가격으로 지급한다.(농민은 생산자가 아니라 농자재의 소비자다!)
농업보조금. 농업 내부에 존재하는 소득 불균형? 75년 전에는 보조금이 가장 곤경에 빠진 농민을 보호하는 안전망의 기능을 좀 더 수행했다면, 오늘날에는 보조금이 가장 부유한 농가들에 집중되고 있다.(허울뿐인 세계화, Small is Beautiful, Big is Subsidised)
보조금 대부분은 대지주나 농기업에 돌아간다. 재원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분산되지만, 농업보조금의 혜책은 소수에 집중된다(비용의 사회화 이익의 사유화)
생산기간과 노동기간의 차이. 다른 어떤 경제부문보다도 노동기간과 생산기간 간의 괴리가 큰 농업 생산 영역은 “대규모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 매력적이지 않다”
“활용도가 낮은 고정자본은 농민에게 부담이 되고, 자본가는 이런 부담을 피하려 한다”
“어떤 상품의 물리적 속성이 쉽게 부패할수록, 유통기간의 절대적 제약이 클수록, 그 상품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대상으로는 덜 적합하다”
유기농업의 “관행화”라는 개념은 유기농 채소산업에 자본이 침투하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서였다.
획일적인 유기농산물 기준이 제정되면서 놀랄 정도로 촉진되었다. 그 덕분에 유기농업에서도 관행농업과 똑같이 “내부의”(농생태적) 조절을 외적인 투입재로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유기농업은 쓰이는 투입재의 종류만 관행농업과 다른 시스템에 불과하게 되었다!
지역시장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일들은 관행화 이론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를 별다른 대안이 거의 없는 농민의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불과하다고 본다.
한국은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산업화를 경험한 나라 중 하나. 급속한 산업화로 농업은 급속하게 축소되었다. 지난 40여 년간 농가소득은 120 증가에 그쳤지만, 농가부채는 무려 1,600배 이상 증가했다!
농업을 경쟁력 없는 산업으로 규정, 제조업과 중화학공업 육성에 국가 자원을 집중하는 정책을 펼쳤다.
#먹거리체게의 이해
최근 수십 년 동안 먹거리 상품사슬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몇몇 부문이 고도로 집중화하면서, 먹거리체계에서 “모래시계”로 알려진 형태가 등장하였다.
종자산업의 시장집중이 가장 현저하다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은 대부분 부패하기 쉽기 때문에 농민들은 구매자 파워에 특히 취약하다
식량체제라는 개념은 다소 잘못된 명칭이다? “식량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식량이 생산되는 영역인 관계에 관한 것이고, 자본주의가 만들어지고 재생산되는 관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영양실조
기근은 세계에 먹거리가 부족한 결과라기보다는 분배 문제를 반영한다
먹거리보장의 장기적 해결책은 물량이나 특허 활용에 있지 않고 사회적·경제적·정치적 구조를 새롭게 하는 데 있다.
현대의 식량위기는 식량의 부족이 아니라 이를 구매할 능력의 부재와 관련 있다. 인도 벵골지역의 대기근, 일주일에 5만 명 이상 아사, 원인은 식량 부족이 아니라 ‘구할 수 있는’ 식량의 부족이었다. 식량사재기, 시장가격 상승, 비상시기 동안 식량을 전달하는 데 시장이 한계를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요약하면, 기근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문제이며 비용효율적으로 완화될 수 있다.
IMF 구조조정. 농업보조금 삭감. 이러한 정책의 최종 결과는 먹거리 의존선의 증대였다.
녹색혁명은 가난한 농민의 소득을 늘리는 데 기여한 것이 거의 없다. 다수확 종자를 손에 넣은 농부들은 이제는 비용이 많이 드는 석유화학 투입물을 구매하고, 관개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미량영양소의 부족: 숨겨진 기아. 녹색혁명이 음식물 섭취의 다양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한국과 식량원조: 식량원조의 정치경제학
미국 밀에 깊이 의존, 미국 밀의 주요 고객이 되었다. 또한 값싼 미국 밀은 한국 내 밀 생산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였으며, 한국의 곡물가격 하락 요인으로 작동하여 농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심화시켰다.
미국의 값싼 밀은 저소득 도시 노동자들의 주식으로 자리 잡았다.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던 이들 여성 노동자에게 미국산 값싼 밀로 만든 라면은 가장 효율적인 생계 식품이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농산물 원조와 수출은 한국의 원시적 테일러주의의 기반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지역사회, 문화 그리고 지식
#지역사화, 노동, 소농
수십 년간의 경험적 연구들은 대규모 산업농업이 농촌 지역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뒷받침한다.
임금 불평등에서부터 축산업이나 농약에 노출되는 위험한 노동환경 조건에 이르기까지 먹거리체계의 모든 부문에서 노동착취를 보여주는 증거들이 많다
세계 먹거리체계는 덜 풍요로운 나라들의 소농 공동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골드슈미트 테제. 대체로 산업형 농업이 지역사회의 삶의 질과 관련하여 다양한 지표에 나쁜 영향을 미친 것으로 결론지었다.
기후 변화 해법? “해법은 소농의 지식과 실험을 지원하고, 소농의 소득을 높여 농촌 발전에 이바지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소농 농업은 더욱 노동집약적일 수 있으나 어떤 점에서 보다라도 제대로 작동한다!
생명공학의 생산량 증대? “2000년 수준의 두 배 수확량”이라는 약속은 기껏해야 과대광고일 뿐이다. 예를 들어 폭넓게 대중화된 라운드업 레디 대두 품종이 기존 종자보다 수확량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경지 규모로 본 한국의 소농. 산업형 농업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규모화를 통해 주농업의 소득은 늘어났으나, 농가 전체의 소득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과 문화
미각은 무작위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미각은 전략적인 것이다. 미각의 자본의 형태를 취할 수 있다. 본질상 궁극적으로 사회적인 것이다.
맛의 방주. 음식 보전을 위한 노아의 방주
우리 선조, 적어도 시골에 사는 농민들은 동물과 매우 가깝게 살았지만, 오늘날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황교익, 2012 「음식 쇼의 시대」
음식의 시대가 곧 ‘맛있는 음식의 시대’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최근 10여 년간의 일을 더듬으면, 음식 정보의 양만 늘었지 음식의 질이 나아진 것이 아니다. 식당 비평이란 기껏 ‘맛있다’ ‘가볼 만하다’ 정도의 인상기 수준. 그럼에도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이 땅의 음식 소비자이며 음식 정보 수용자인 한국인은 맛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단지 ‘음식 쇼’만 있을 뿐이다.
막상 냉면의 주요 재료인 메일을 어찌 갈고 반죽해 국수를 내려야 메밀 맛이 사는지에 대해서는 그 자리에서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먹어본 것은 먹어본 것일 뿐이지 아는 것은 아니다…그 맛이 어떤지 품평할 수 있는 정보도 없이, 그 음식이 맛있는지 맛없는지도 모르고 그냥 먹는다!
음식을 즐기는 일에 관해서는 유럽 각국과 일본이 한국에 앞서 있는 것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그들의 나라에서는 아이들에게 미각교육을 한다. 맛을 아는 일은 본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황당한 그 모든 음식 쇼를 그만두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교육밖에 없다. 어떤 것이든 알아야 속지 않는다.
#농업생물다양성과 지식의 이전
문화다양성과 생물다양성을 보통 별개의 현상으로 간주되지만, 사실을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으며, 먹거리와 농업의 맥락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기억은행이나 토종종자은행: 농업생물다양성 보존에 있어 유전자은행이 인기 있는 도구로 널리 보급되기는 했지만, 여기에는 기억이나 실용지식처럼 정말로 중요한 것의 보전은 망각되어 있다.
지역경제와 함께 지역사회가 쇠락해감에 따라 농촌에서 거대한 기억상실이 일어나고 있다.-웬델 베리
생물문화다양성 개념? 이 용어는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어 온 문화적 관행과 지식 때문에 세계 많은 지역에서 농업생물다양성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생물다양성과 문화가 서로 지탱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실천: 농업생물다양성의 접착제
전통 작물과 결부된 문화지식. 많은 전통문화가 구전문화이므로, 이 같은 전승지식에 관한 문헌기록은 어디에도 없는 예가 많다. 이런 지식을 일단 소실되면 영원히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쓰이지 않는 지식, 감지되지 않는 정보는 모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세계 종자은행의 25만 식물 품종 종자 보관? 하지만 이들 종자에 관해 우리는 실제로 아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 사람들이 이들 종자를 제대로 쓸 수 있도록 해준 문화지식이 사라진다면, 이들 종자의 가치는 애석하게도 줄어들게 된다
##먹거리보장과 환경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양의 먹거리를 생산해야 할지 파악하려면, 먼저 먹거리가 식량, 사료, 연료 중 어디로, 얼마나 쓰일지를 정확히 결정해야 한다.
부자나라들은 자국의 먹거리 생산능력을 증대하고 늘어나는 자국 인구를 먹이고자 가난한 나라에서 토지와 물(그리고 값싼 노동력)을 획득한다. 이른바 전세계적 농지 수탈이라 부르는 형태다.
역사상 최대의 비극? 곡물로 자동차 연료 생산용으로 전환하여 자국의 석유 불안정성을 감소하려는 잘못된 노력을 통해 사상 유례없는 전세계적 먹거리 불안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농지 수탈이라는이슈가 소비자에게 주는 의미도 좀 더 분명해진다. 내가 농산물을 고르는 행위 하나하나가 땅을 빼앗기는 농민의 고통을 배가시키느냐 덜어주느냐와 직결되는 것이다.
다기능성은 농업이 먹거리와 섬유 생산에 더하여 다른 많은 것을 생산하거나 유지한다. 그 대부분은 상품이 아닌 “산출”인데, 예를 들어 홍수 조절, 생태계 서비스의 유지, 농촌개발, 농업유산과 문화 등이다.
#먹거리, 농업, 환경
먹거리의 소매 가격은 그 실질비용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 한 추정치에 따르면, 농업의 연간 외부비용은 독일 20억 달러, 영국 38억 달러, 미국은 347억 달러였다.
푸드마일의 함정? 생태와 관련하여 진짜 문제는 푸드마일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음이 드러난다. 먹거리 관련 온실가스 배출량은 생산단계에서 주로 발생한다. 무엇을 생산하느냐의 문제가 먹거리가 얼마나 멀리 이동하느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과정평가(Lifecycle analysis, LCA)
불행하게도 민영화가 약속했던 것은 대개 속빈 강정으로 드러났다. 어떤 이윤 추구 기업도 자사의 서비스를 지불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로 확대하지 않는다.
##대안들
#대안 먹거리 네트워크
“빵, 혁명은 빵이 필요하다!”
인간과 먹거리 간의 일상적인 상호작용은 먹거리를 정치적인 것으로 만든다
최근 유기농의 엄청난 시장 성공은 먹거리체계의 실질적 변화를 나타낸다기보다는 그것이 “관행화”되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달리 말하면, 산업화된 유기농은 진정한 유기농이 아니다.
비아캄페시나(La Via Campesina)와 식량 주권
슬로푸드는 서구 중심적이며 중상류계급의 음식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계의 수백만 소농은 어떤 대안이 있을까? 소농 운동, 비아캄페시나
#농식품 연구에서 “함정”에 빠지지 않기
로컬푸드가 최근 많은 관심과 흥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로컬”이 분명히 규정되며, 이는 본질적으로 좋은 것이라 믿는 ‘로컬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농장에서 학교로’ 프로그램의 함정? FTS가 반드시 소농을 돕는 것은 아니다. 가령, 전세계 최대 유기농 채소 생산자인 어스바운드 농장은 캘리포니아 주 커멜밸리에 있는 올세인트데이 학교의 파트너가 되었다.
품앗이생활협동조합.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인 로컬푸드나 지역순환 경제체제, 이웃공동체라는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기존 생협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품앗이생협을 만든 동기이고 과제이다.”
대형마트의 로컬푸드 진입 선언은 이율배반이다. 1996년 유통시장 개방 이후 시장독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도시와 농촌, 생산과 소비를 끊임없이 분리시켜온 장본인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이들의 행태는 꼼수다. 로컬푸드는 농산물 유통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대규모 상업농이 장악해야 할 공간도 아니다”
#되돌아보기,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기
식민통치자들과 개발업자들은 흔히 “검소함”을 근대화된 “빈곤”과 혼동하면서, 후자를 비유럽 세계에 투사한다…빈곤의 수사는 세계은행이 작동하는 개발 경로에 특징을 부여하면서 이를 정당화한다.